서방국가, 러-우 전쟁 책임공방...메르켈 ‘쩔쩔’

메르켈 “퇴입직전, 푸틴과 협상력 잃어” 유럽, 미국에 “전쟁 수혜 다 가져가” IRA법 시행에 불만 터지기 직전

2019년 회견 중인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왼쪽)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 사진=연합뉴스
2019년 회견 중인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왼쪽)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 사진=연합뉴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10개월째로 접어들면서 유럽이 입은 충격에 대한 책임공방이 본격화하고 있다. 유럽 내부에서는 누구보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총리가 표적에 올라 있는 상태다. 또 외부로는 전쟁 지원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에너지, 무기 등에서이익을 보고 있다는 볼멘소리로 균열 조심을 보이고 있다.

메르켈 “전쟁 막을 힘이 없었다”

25일 영국 일간 가디언과 BBC 등에 따르면 메르켈 전 총리는 최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지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모두가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내 생각을 밀어붙일 힘이 없었다”며 “임기 말 레임덕 때문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해명했다.

이 발언은 볼프강 쇼이블레 전 하원의장이 메르켈의 16년 임기 동안 펼친 러시아 정책에 큰 실책이 있었다고 공개 비난한데 대한 반박겸 해명으로 보인다.

메르켈 전 총리는 16년간의 재임을 끝으로 지난 2001년 12월초 정식 퇴임했다. 퇴임후 3개월뒤인 2022년 2월 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격 공격했다. 많은 서방 언론과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개전 10개월이 지난 상황에서 휴전 전망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메르켈 전총리가 지난 2008년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에 반대해 러시아가 침공할 여지를 만들었다는 주장,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원유에 지나치게 의존해 유럽 에너지 위기를 초래했다는 주장 등이 비난이 쏠리고 있다. 특히 그는 16년 임기 동안 푸틴 대통령을 60여 차례 만나는 등 친러시아 정책을 펴온 반면, 상대적으로 미국,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대통령과는 껄끄러운 관계를 보인 점도 논란이 됐다.

하지만 메르켈 전총리는 이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준비한다는 첩보가 나오기 시작한 지난해 7~8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을 잇달아 만나 회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서도 “그때는 이미 협상력을 거의 잃은 상태였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9월에 다시 (총리직을) 맡을 상황이었다면 계속 파고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푸틴 대통령과의) 마지막 회담에서 받은 느낌은 명확했다. ‘정치권력적 관점에서 넌 끝났다’는 것이었다. 푸틴에게는 단지 권력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과의 오랜 친분이 깨지는 순간의 배신감을 전했다.

“미국만 이익보는 전쟁...IRA법이 웬말이냐” 성토

한편,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반러 전선을 구축한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균열음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전쟁의 여파로 유럽 경기는 침체에 빠진 반면, 에너지 수출국인 미국은 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 상승의 혜택을 보고 있고 무기 수출 혜택도 톡톡히 보고 있다는 것. 여기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해 동맹국들을 궁지로 몰고 있어서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익명의 EU 고위 당국자는 인터뷰에서 “냉정하게 본다면 이 전쟁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국가는 미국”이라면서 “미국은 더 많은 천연가스를 비싼 가격에 팔고 더 많은 무기를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미국은 많은 EU 국가에서 여론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산 천연가스 가격이 ‘우호적’이지 않다고 말했고 독일 경제부 장관은 미국 정부가 에너지 가격 안정을 돕기 위한 ‘연대’를 보일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느라 유럽 각국의 무기고는 비어가고 있는데, 결국 이를 다시 채우는 것은 미국산 무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양측 갈등의 소지가 될 우려가 제기된다고 폴리티코가 덧붙였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현재까지 152억 달러(약 20조원) 규모의 무기와 장비를 제공했고, EU 역시 80억 유로(약 11조원) 상당의 원조를 했다.

전쟁에 따른 차별적 피해와 손실로 인한 누적된 유럽의 불만은 급기야 미국이 IRA를 시행해 유럽 산업계를 벼랑으로 내몰면서 ‘동맹국의 등을 찌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EU 당국자들의 시각이다.

유럽 각국은 IRA 시행을 계기로 미국과 무역전쟁에 들어갈 가능성을 열어둔 상황이다. 25일에는 브뤼셀에서 EU 27개국 무역장관이 참석하는 무역분야 회의를 열고 미국에 ‘동등 대우’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미국은 IRA와 관련해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폴리티코는 ‘IRA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워싱턴은 여전히 우리 동맹인가’라는 한 EU 외교관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이러한 갈등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그토록 기다려온 서방 동맹국간의 균열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글쓴이

문주용 기자

문주용 대표이사 겸 기자는 31년간 언론인 생활을 바탕으로 새로운 언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힘든 세상에서 위로받고 지혜를 얻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바라는 미디어를 만들려 합니다.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집단지성의 지혜를 쌓을 것입니다. 전문가그룹과 소비자들이 함께 하는 미디어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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