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발언이 안전한 사회’를 위해

[신지영의 품격 있는 한국어 사용법] 수다떨다 윗사람 오면 입 다문 적 없나요 상급자로 혼자 말 다하고 ‘설화’ 빚은 적은? ‘발언이 안전한 환경’ 만들면 좋은 이유

권력 차이가 클수록 상급자는 하급자의 입을 닫게 만든다.
권력 차이가 클수록 상급자는 하급자의 입을 닫게 만든다.

흥미로운 관찰

한 교수법 강연에서 흥미로운 관찰을 공유할 수 있었다. 연사는 한국계 미국인이며 미국 대학의 교수였다. 그 교수가 한 번은 자신의 대학원생들을 인솔하여 공동연구를 하는 국내 교수의 대학원 연구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그 교수는 미국 대학원생들에게 한국 대학을 방문하고 가장 인상적인 것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한 대학원생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학원생들은 교수와 같이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아주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어요. 한국 대학원생들은 우리와 함께 있을 때는 이야기를 아주 활발하게 하다가 교수가 나타나면 바로 입을 다물고 거의 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게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이 말을 듣고 모든 미국 대학원생들이 격하게 공감을 했다고 했다.

익숙한 풍경

사실이다. 이런 풍경은 우리나라 대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다. 처음 교수가 돼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도 바로 대학원생들의 무거운 침묵이었다. 대학원생들은 마치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교수 앞에서는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학기가 높을수록, 대학원에 적응할수록 그 침묵의 무게는 더해지는 듯했다. 교수 앞에서는 늘 살얼음을 걷듯이 조심스러워 했고 그러다 보니 그들의 언행은 늘 자연스럽지 못해 보였다. 자기 자신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지 못하는 듯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대학에만 한정된 풍경일까? 사실 이런 풍경은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나 관찰할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다.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나타남과 동시에 함께 모여 이야기 하던 가족들이 갑자기 입을 다물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거나 함께 말없이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한다. 회사에서는 사장이나 대표는 물론, 이사진이나 심지어 부장만 나타나도 직원들이 서로 나누던 대화를 멈춘다. 급하게 모임을 파하고 뿔뿔이 흩어진다. 이런 장면은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매우 익숙한 장면이다.

발언하는 소수와 침묵하는 다수

말을 목적으로 만나는 회의의 풍경은 어떤가? 회의도 예외는 아니다. 회의가 이루어지는 장면을 관찰하면 조직의 문화와 회의 참여자들 사이의 권력관계를 바로 알 수 있다. 발언은 늘 상급자들의 전유물이다. 하급자들은 좀처럼 발언을 하려 하지 않는다. 상급자의 발언을 경청하는 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추임새를 넣는다. 설령 발언을 한다고 해도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로 빙빙 돌려가며 말한다. 이러한 경향은 조직 문화가 수직적일수록, 회의 참여자들 사이의 권력 차이가 클수록, 구성원의 사회 생활 연차가 높을수록 더 강하다.

과연 상급자들은 할 말이 많고, 하급자들은 할 말이 없어서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같은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 아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상급자 앞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사람들이 자신보다 하급자들과 만나면 발언권을 독점한다. 마치 자신이 견뎠던 침묵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권력에 민감한 소통 문화

이처럼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매우 유사한 의사소통 양상이 관찰된다. 권력 관계에 민감한 의사소통 양상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권력이 큰 사람을 상급자, 작은 사람을 하급자라고 표현하고, 우리 사회에서 관찰되는 의사소통의 양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상급자는 하급자 앞에서는 발언권 독점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부끄러운 말인지 부적절한 말인지 스스로 점검하거나 확인하지 않는 듯한 언행을 보인다. 자신의 말이 듣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릴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 무례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아무 말이나 너무나 편안하게 말해서 뜨악해질 지경이다. 긴장감을 전혀 갖지 않는 것이 문제다.

반면에 하급자들은 상급자 앞에서는 발언하지 않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행동한다. 권력자 앞에서는 말을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의견이 없어서도 할 말이 없어서도 아니다. 자신의 말이 권력자에게 어떻게 들릴까를 지나치게 의식한 탓이다. 잔뜩 긴장한 탓에 언행이 부자연스럽다. 권력자의 눈 밖에 나면 손해라는 생각에 무척 조심스러운 것이다.

특히, 하급자들은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애쓴다.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가 소위 ‘싸가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는 경향이 있다. 둘이 있을 때는 불만이 한가득이던 동료가 회의에 들어가서는 언제 불만이 있었냐는 듯이 말간 얼굴을 하고 권력자의 말에 예, 예를 반복한다. 예의를 가장한 비겁함 뒤에 숨는 것이다.

발언 안전도의 차이

그러니 상급자들은 하급자들과의 말이 편하지만 하급자들은 상급자들과의 말이 편할 리 없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편하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한쪽이 일방적으로 불편하다는 뜻이 된다. 말하기의 편함과 불편함은 바로 발언 안전도와 관련이 있다. 발언이 안전하다고 느낄수록 말하기는 편해지고, 반대로 발언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수록 말하기는 불편해진다.

권력관계에서 상급자는 말하기 안전도가 높으니 어떤 말도 편하게 한다. 반면에 하급자는 말을 잘못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이 돼서 말하는 환경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말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아직도 권력의 크기에 반비례하여 발언의 안전도 차이를 아주 크게 느낀다. 이는 우리 사회의 수직적 조직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으로 지적 되는 세대 간 소통의 문제나 직급 간 소통의 문제 이면에, 바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공고한 연령 권력과 수직적 조직 문화가 버티고 있다.

박근혜 전대통령이 장차관 토론회 하는 모습. 대통령이 발언을 시작하자 장차관들이 일제히 받아쓰기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전대통령이 장차관 토론회 하는 모습. 대통령이 발언을 시작하자 장차관들이 일제히 받아쓰기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무례함와 비겁함의 공존

그 결과 상급자는 하급자를 의식하지 않는 듯 아무 말이나 하는 경향이, 하급자는 상급자를 과도하게 의식해서 입을 열려 하지 않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상급자는 무례해질 가능성이, 하급자는 비굴한 자세를 자발적으로 취할 가능성이 높다.

상급자들이 자주 소위 설화 사건을 일으키게 되는 이유도 같은 선상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설화 사건의 장본인이 자신의 발언이 왜 문제가 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정도의 발언이 무슨 문제냐고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관찰된다. 설령 이유를 찾는다고 해도 엉뚱한 곳에서 찾는다. 그러니 억울하다고만 생각한다.

한편, 하급자들은 말의 억압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것은 소위 ‘개념’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괘씸죄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뻔히 현실에 존재하는데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스트레스가 역치에 도달 하기 전까지는 말을 하지 않고 꾹꾹 참는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한계점, 즉 역치를 넘게 되면 갑자기 그간 쌓인 것까지 한꺼번에 폭발한다. 그러니 작은 일에 과도한 대응을 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게 된다.

사실, 발언 안전도를 높이는 일은 상급자와 하급자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하다. 하급자의 부적절한 침묵이나 비겁한 동조는 상급자를 무례한 사람으로 만들어 위험에 빠지게 한다. 또, 상급자의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와 공감 능력 부족은 하급자들의 다양한 생각을 이끌어내지 못하여 조직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이와 같은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소통 문화는 우리 사회의 성장과 성숙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따라서 발언이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발언이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은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문화적 토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발언이 안전한 사회,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말하기의 전제 조건

이를 위해 먼저 ‘말하기’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 만의 관점이 있고 그 관점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다. 말하기는 바로 서로의 관점을 주고받는 일이다. 말을 함으로써 자신의 관점을 상대에게 전하고 말을 들음으로써 상대의 관점을 수용한다.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확장해 간다. 대화와 토론이 생각을 성장시키고 생각의 지평을 넓히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말하기에 대한 이와 같은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나와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과의 대화와 토론일수록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 발언권을 독점하는 것은 타인의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잃는 일이므로 지양하게 될 것이다. 대신에 더 많은 구성원들이 자신만의 관점을 안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발언이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다양한 관점이 필요한 이유

특히, 조직이나 사회에서 더 큰 책임을 진 사람, 즉 리더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발언이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리더는 결정하는 사람이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리더가 하는 고민의 핵심은 결국 좋은 결정을 하는 것이다. 리더의 결정은 구성원의 삶에 큰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더는 자신만의 관점에 빠져서는 안 된다. 좋은 결정을 위해 사안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의 검토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좋은 리더는 구성원들이 자신만의 관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와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애쓴다. 좋은 리더가 결정의 과정에서 입을 여는 대신 귀를 여는 이유다.

그렇다면 리더들에게만 다양한 관점이 필요한 것일까?

우리 모두는 우리 삶의 주인이며 동시에 대한민국의 주인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자기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며 대한민국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대표자를 정하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 중요한 결정을 하기 위해 다양한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갖춰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갖는다.

결국, 다양한 관점들이 드러날 수 있도록 발언이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일은 나를 위해, 조직을 위해, 우리 사회를 위해 우리가 꼭 이루어야 할 전제 조건인 것이다.

글쓴이

신지영 언어탐험가(고려대 국어국문과 교수)

신지영 교수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베이스캠프로 인간의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것인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는 언어 탐험가다.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다. 저서로는 <언어의 높이뛰기>, <언어의 줄다리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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