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도, 정치도 없는 이태원 참사...진상규명 실패
158명의 희생자를 냈던 10·29 이태원 참사 현장에 국가는 없었고, 2개월여만에 열린 국정조사에 정치가 없었다. 책임자 처벌은 고사하고 진상규명에 사실상 실패해 국회의 무기력이 그대로 노출됐다. 진상규명을 호소한 유족들의 절규를 여야 정략적인 머리싸움 끝에 외면해버린 것이다.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는 유가족과 생존자, 상인,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경찰청, 소방청 등을 대상으로 2차 공청회를 진행했다. 유가족과 생존자 등 11명의 증언이 잇따랐고 이어 국조특위 위원들의 질의가 이어졌다.
11명의 유가족과 생존자 증언 도중에는 참석자들의 감정이 격해지며 울음바다가 되면서 국조특위 진행이 순간순간 중단되기도 했다.
박가영씨 유가족 최선미 진술인은 “놀러가서 죽었다고? 우리 청년들은 놀면 안 되나. 놀러오라면서, 축제라면서 홍보하지 않았나”라며 “어른이란 사람들이 이렇게 아이들에게 모든 걸 덮어씌우냐”고 울분을 터트렸다. 최 진술인은 “참사 당일 정부는 유가족들을 찾지 않았다”며 “언론에 사망자 명단만 속보로 내보냈다면 유가족들의 연락처 또한 저절로 알게 됐을 것을 명단을 감추고 전혀 내보내지 않아 유가족들은 자기의 아이가 주검이 된 사실조차도 모른 채, 12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왜 정부를 못 믿냐고? 우리는 정부의 모든 정보를 언론을 통해 알게 된다”며 “(아들의) 상담 내용이 경찰에 알려졌고 청소년이 상담받는 곳이 아닌 곳을 소개시켜주면서 정부는 모든 조처와 서비스를 다한다고 언론에만 알렸다”고 성토했다.
희생자 김의현씨의 어머니 김호경 진술인도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질타했다. 김 진술인은 “아들의 행방을 찾을 때까지 14시간이 걸렸다. 신원확인을 위해 동국대 일산병원에 갔을 때는 손대지 말라고, 신원만 확인하라는 말에 자는 듯 누워있는 아들을 보고 울기만 했다. 왜 손 한번 못 잡아보고, 왜 살뜰히 못봤는지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그렇게 보냈다”고 말했다.
생존자로서 참석한 김초롱 진술인은 “저는 강한 사람이다. 심리상담도 자발적으로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악성댓글이나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저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다. 저에게 2차 가해는 장관, 총리, 국회의원들의 말이었다. 참사 후 행안부 장관의 첫 브리핑을 보며 처음으로 무너져내렸다”고 했다.
김 진술인은 “몇 주 전 고등학생 생존자가 스스로 세상에 작별을 고했을 때는 국무총리 발언이 생각났다. 스스로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정면으로 반박하고 싶다. 치료와 상담을 이렇게 열심히 받는 저는 매번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한다. 참사와 같은 재난을 겪은 사람에게 개인적 극복도 중요하지만 진상규명만큼 큰 치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청한 고(故) 유채화씨 동생은 “저희 유가족은 사회에 시끄러운 존재들이 아니다. 그냥 한 국민으로서 억울한 목소리를 내는 것 뿐”이라며 “네티즌과 정치인들의 2차가해, 왜 본인들은 이러한 사건을 당하지 않을까 거라 생각하나. 자식잃은 부모로서, 형제잃은 동생으로서 억울한 부분이 있다면 원인을 밝혀 지적하고 사과받고 싶은 게 당연한 마음 아니겠나. 지금이라도 다시 바로잡지 않으면 본인의 가족이 참사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제발 2차 가해를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이태원 지역 상인을 대표해 나온 남인철씨는 “죽음을 눈 앞에서 봤다”며 “트라우마에 너무 숨이 막히니 이해해달라”고 말한 뒤 “이태원 골목에서 죽은 그 많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이태원의 영원한 등불이 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며 추모공간 건설을 제안했다.
고 이지한씨의 아버지인 이종철씨는 “국회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지난 국정감사 때 국회의원님들이 행정부를 잘 감시해서 이 모래성 같은 행정부와 경찰청 조직에 대한 상황을 인지하고 꾸짖고 일 못하는 분들을 처벌해 주셨으면 이런 참사는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유가족들이 보는 방향을 여야 의원들이 모두 똑같이 바라보고, 우리가 어떤 걸 원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는지 봐달라”며 “뒷다리는 잡지 말고, 같은 방향만 바라봐주셔도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국정조사 후에도 진상규명을 지속할 조사기구 설치를 제안했다. 그는 “정권이나 윗선의 눈치를 보지 않고 유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마련해달라”고 했다.
희생자 유족들의 발언에 이어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또 다른 익명의 유가족의 편지를 대신 전했다. 이어 “예산안이 빨리 타결되지 않아 국정조사 기간 반절 이상을 허공에 날렸다. 보다 철저한 조사가 되지 않았던 점 아쉽고 죄송하다”며 “국조 기간 후에도 계속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정부가 모든 치유의 시작인 진상규명을 위해서 국정조사에서 이렇게 방만하고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는데 유가족들께서 어떻게 분노하지 않으실 수 있겠나”라며 정부가 여전히 자료 제출에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저는 이태원 참사 특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일이면 특수본 수사 결과가 밝혀지는데 의미 있는 결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그런데 국정조사에서 이상민 장관의 명백한 법령위반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국정조사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책임자들에 대한 법적, 행적적 책임을 제대로 묻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특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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