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부는 의학 교육 체계마저 파괴하려 하나

[정신의학자 강웅구의 ‘마음의 길’] 체험·실습 없이 의사 배출할 수 있나 장비·인력 안갖춘 의대 괜찮다는건가 정부, 이젠 의평원을 무력화시키려 엉터리 처방 끝까지 밀어부치려 해

의과대학 교수들은 3일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무리하게 추진하기 위해 의대를 평가·인증하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을 무력화하려고 한다며 '의학교육평가원 무력화 저지를 위한 전국의과대학 교수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의과대학 교수들은 3일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무리하게 추진하기 위해 의대를 평가·인증하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을 무력화하려고 한다며 '의학교육평가원 무력화 저지를 위한 전국의과대학 교수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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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개혁이라는 돌팔이 치료

정부의 의료 개혁은 처음부터 돌팔이 치료의 일종이었다. 폐결핵 환자는 기침을 한다. 기침이라는 증상은 결핵균이 폐 조직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생기는 증상이다. 진짜 의사는 진찰하여 이 증상을 알아낸 뒤, 원인을 추정하고 그 추정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방사선 촬영을 하고 객담 검사를 한다. 그 결과 결핵이 확인되면 기침약이 아닌 항결핵제를 처방한다.

OECD 평균에 비해 의사수가 부족하다는 단편적 현상은 결핵 환자의 기침과 같다. 왜 기침하는지를 알려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정밀 진단을 해야 한다. 정밀 진단 결과, 기침은 하지만 특별한 병은 아니므로 몸조리하면서 지켜보기만 해도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OECD 평균 이하라는 증상에 대해 정부가 내세운 처방은 당장 의대 입학생을 늘리는 것이다. 결핵 환자에게 “기침병에는 기침약”을 처방한 것이다. 그랬더니 환자는 곧 피묻은 가래를 뱉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정부 수장은 자신이 ‘명의’이므로 이 처방을 절대로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는 와중에 병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사상 초유의 의료 대란은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는 응급실 진료 대란 등 임상 진료와 관계된 문제들이 주된 이슈였다. 그러다가 정부가 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을 무력화하려 시도하고, 서울대 의대가 학생들의 오래 묵은 휴학원을 처리하면서부터 의과대학 교육과 관계된 문제들이 전면에 드러나고 있다. 정부가 의료 개혁을 한다며 내지른 의학 교육 파괴 조치,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개별 학생들의 휴학을 막는 황당함

정부로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2025년도 새로운 의사 배출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일 터이다. 모든 학년의 의대생들이 다 휴학하면서 의사 국가고시를 칠 수험생들이 없어졌다. 매년 3천명씩 배출되던 흐름이 끊어진 것이다. 의사 숫자를 늘리는 것이 의료개혁의 핵심이라 주장하던 정부가 난처해진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에 대한 황당한 해결책은, 교육을 받지 않아도 어떻게든 의사를 만들어내고 말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학생들의 휴학을 불허했다. 학생들을 형식상 재학중인 것으로 만들어 놓으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실제로 강의를 듣고 실습을 연마하였는지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년 초에 3천 명이 의사 타이틀을 달게 되는 게 중요할 뿐이다. 그런데 내년에 의사로 배출되어야 할 본과 4학년 학생들은 이번 학년도에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가 될 지식과 기술을 갖추지 못했다.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들은 이런 학생들이 의사로 배출되는 것이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다. 다음해에 제대로 공부한 뒤에야 이들은 의사가 될 자질을 갖추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휴학 처리가 당연하다. 학생들은 학기초 휴학원을 제출한데다가 실질적으로도 휴학 상태이기 때문이다. 결핵 환자에게 기침약을 처방하는 돌팔이 의사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다.

정부는 발끈하면서 서울대학교를 감사하고, 대학 총장들을 모아다가 휴학을 승인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였다. 학생이 휴학할 때 정부가 허락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기괴하다. 법 전문가를 수장으로 모시고 있는 정부지만 법 분야에서 조차도 돌팔이인 모양이다. 의대 학생들은 정부의 허락을 얻어 입학한 것이 아니다. 일개 대학생이 입학하고 수업 듣고 휴학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권리다. 여기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하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가의 기본 의무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국민 일부가 아니라 전체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다. 그런데 간혹 국민들 사이에 갈등이 벌어질 수도 있다.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의 능력은 갈등을 조정하는데서 드러난다. 포퓰리즘 정부의 해결 방식은 소수 집단을 악(惡)으로 지목해서 모든 혐오를 쏟아 붓게 함으로써 다수의 증오를 해소하는 것이다. 히틀러가 유대인에게 한 방식이 바로 이것이다.

이 정부에서는 킬러 문항을 만들어내는 교육계, 연구비를 독점(?)하는 과학계에 이어 돈 많이 버는 의료계가 국민의 불만을 배출시키는 출구가 되었다. 정부는 의사들이 대중의 지탄을 받게 해서 일부 성공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제는 의대생들을 ‘비윤리적 집단’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인다. 무능한 정부를 향하는 비난의 화살을 그리로 돌리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의대생들의 휴학을 “정치적 동맹휴학”이라 규정한다. 이렇게 언론에 퍼뜨리는 것은 학생들을 악마화하려는 전략이다.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볼모로 삼는다는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동맹휴학이라면 동맹을 만든 대표가 있어야 하고 협상을 하더라도 그 대표와 해야 할 터인데, 정부가 뭔가 대화를 하려 해도 상대가 없다. 휴학은 각 학생들이 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학생들이 휴학하게 된 것은 각자의 판단이 같은 방향이기 때문일 따름이다. 각자 내린 판단이 모여 커다란 한 개의 흐름을 만들어낸 것은 1987년 민주화의 여름에도 그랬고, 지난번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촛불시위 때도 그랬다. 상부의 지령을 받아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은 검찰조직이나 공무원 사회에서는 당연할 지는 몰라도, 민주사회를 구성하는 건강한 시민들은 그런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그동안 상대해왔던 조폭들도 그렇게 움직였기에, 그는 시민사회 전체가 그렇게 움직인다고 알고 있는 것 같다.

어쨌건 정부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었다. 정부의 말을 따르지 않는 대학에 정부가 내릴 수 있는 ‘최대의 보복’은 학생 수를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한결 같은 주장은 의대 학생수를 늘려야 우리나라 의료가 정상화된다는 것이다. 의과대학으로서도 다소 황당한 상황이 되었다. 학생을 휴학 처리해서 징벌로 정원이 감축되면 교육 여건이 좋아져서 오히려 더 품질 좋은 교육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이상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사태의 공범인 대학 총장(의대 학장이 아닌 대학 총장)들은 등록금 수입 감소를 걱정하여 감원을 막으려 결사적으로 뛰어다닐 것이다. 이들도 교육의 품질은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형병원의 응급치례 체계마저 최악으로 들어선 상황에서도 정부는 의사증원 정책에서 물러설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형병원의 응급치례 체계마저 최악으로 들어선 상황에서도 정부는 의사증원 정책에서 물러설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의학 교육의 품질

의학을 포함한 전문가 교육은 독특한 측면이 있다. 강의를 듣는 것 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부동산 중개사는 독학으로 공부해서 자격시험에 붙으면 그만이지만, 의학의 경우 교수들의 지도하에 환자를 직접 돌보는 체험, 실습이 없이는 제대로 된 전문가가 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일반 대학생이 1년에 4개월의 방학을 갖는데 비해 의대생의 방학은 훨씬 짧다. 실습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교육의 많은 분야에서 국가 차원의 품질 관리를 하는 기구가 없지만, 의학에는 있다. 그만큼 전문성이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 기구가 의평원(의학교육평가원)이다. 의평원은 정부 조직이 아니라 의학 교육계가 만든 자율적 조직이다.

며칠전 의대 교수들은 정부의 의평원 무력화 시도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였다. 의평원이 무력화되면 국제 수준의 품질을 인정받던 우리나라 의대들은 후진국 의대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열심히 교육받고 의사가 되어도, 국제 인증 기준에 못 미치는 교육을 받은 우리 의사를 인정해주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게 될 것이다.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AI 분야 절대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의학 교육은 후진국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의평원을 무력화하려는 이유는 명백하다. 2천 명 증원시 상당수의 의과대학들이 인증 기준에 미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사태 이전에도 자격 미달의 의과대학 한 군데(서남대)가 의평원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인증 취소된 사례가 있었다. 당시 이 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은 다른 학교로 전출가서 ‘동냥 수업’을 들으며 간신히 졸업했다. 이번에 정원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일부 의대는 시설 및 인력 기준으로 인증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정부의 2천 명 증원 정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 의대들이 제대로 된 인증 평가를 받게 해서는 안된다는 식이다.

증원이 꼭 필요했다면 먼저 대학들이 증원된 인원을 수용할 품질과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확인하고, 부족하다면 인원과 시설부터 확충한 뒤에 증원하는 것이 순서였을 터인데, 계획 자체가 무계획성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고려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문제가 제기되고 나서야 정부는 의대 교수를 1천 명 증원하겠다는 등 더 황당한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교수 역시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교수의 기본 조건은 일정 수준의 연구와 교육 실적이다. 이 조건을 갖춘 사람을 당장 어디에서 1천 명씩이나 찾겠는가? 제대로 된 교수를 확보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자 이제는 개원가 의사들을 교수로 삼겠다는 더 퇴행적인 주장을 대책이라 내세우기도 했다. 의대 학생 수만 늘릴 수 있다면 의학 교육의 품질은 어떻게 되는 괜찮다는 발상이다. 결핵으로 폐가 망가져도 당장 기침만 멈춘다면 제대로 치료한 것이라는 돌팔이 의사의 관점이다.

중국에는 “맨발의 의사(赤脚医生)”라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기초 의료 훈련을 받고 의료 취약지역에 근무한 의료서비스 제공자였다. 이 제도는 1940년대 시작하여 문화혁명기를 거쳐서 시행되었는데, 기본 의료서비스조차 제공되지 않던 무의촌 지역에 서비스를 제공한, 개발도상국 의료체계로서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제도였다. 1980년대에 국가적 제도가 정비되면서 비로소 폐지되었다고 한다. ‘맨발의 의사’는 제대로 된 의학 교육을 제공할 여건이 되지 않던 시대에 어쩔 수 없이 시행되었던 제도였다.

필자는 1980년대 초반에 의대에 입학했는데, 학생들끼리 한 세미나에서 ‘맨발의 의사’ 제도를 듣고 우리나라도 이런 제도를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2020년대의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다. 의사 수가 절대 부족해서 최소한도의 의료 공급을 위한 비상 대책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다.

의대 교육의 질을 떨어뜨려서라도 의사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정부의 논리는, 정부가 우리나라를 마오쩌뚱 시대의 중국으로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해 참담할 뿐이다.

글쓴이

강웅구 서울대 의대 교수

강웅구는 1988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뇌의 유전자 발현 이상 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정신질환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대표저서로 <정신병리학 – 정신병리의 개념적 접근>(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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