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심리학
[정신의학자 강웅구의 ‘마음의 길’] “그건 덕담이었다”는 대통령의 해명 네 살 아이 수준도 안되는 거짓말 거짓말 들킬 경우 ‘모든 것 내주게 돼’ 그런데도 왜 그들은 거짓말을 계속할까
우리는 어려서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 배웠다. 정직함이 가장 좋다는 격언도 있다. 그런데 “거짓말은 나쁘고 정직이 좋은 것”이라는 주장은 무엇에 근거한 것일까? 그리고 이런 도덕적 명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누구나 거짓말을 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이 글에서는 거짓말에 대해 분석하려 한다.
거짓말의 기원과 기능
진실은 꾸밀 필요가 없는 반면 거짓말은 꾸며야 한다는 점에서, 더 원초적인 것은 진실이다. 거짓말은 진실에서 파생된다. 거짓말은 왜 탄생했을까?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거짓말은 나의 생존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거짓말을 함으로써 나는 위기를 모면하고 더 많은 재화를 차지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을 동시에 속이면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다. 그래서 거짓말은 진화하였다. 거짓말이 나쁜 것은 부도덕하기 때문이 아니라 들켰을 경우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실패한 거짓말은 안 한 것만 못하다. 제대로 된 사회에서는 거짓말이 밝혀지면 그것을 통해 얻으려 했던 이익을 더 이상 취할 수 없을 뿐더러, 내가 이미 가진 것을 내주어야 할 수도 있다. 실패한 거짓말을 처벌하는 제도가 도덕과 법률이다.
거짓말은 게임이다. 상대가 속으면 내가 이기는 것이고, 안 속으면 지는 것이다. 거짓말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은 나의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거짓말이 항상 제1의 전략인 것은 아니다. 거짓말 전략은 때로는 위험하다. 진화심리학의 견해로는, 우리 마음은 “거짓말 탐지기”를 장착하고 있다. 거짓말쟁이가 일방적으로 게임에서 이기지 못하게 해서 듣는 사람을 보호하는 능력이다. 거짓말이 승리할 확률이 줄어들면 상대적으로 정직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고 상대가 나를 정직 전략으로 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내가 속아서 빼앗길 가능성이 줄어든다. 물론 “나는 속아넘어가지 않는 사람이다”라는 위세를 부려서 나를 속이려는 거짓말쟁이가 거기에 속도록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속고 속이는 것은 상호적이다.
이 거짓말 탐지기의 문제는 가끔 오동작하는 것이다. 오동작하는 화재경보기와 같다. 그렇게 되면 피해망상이 생긴다. 주위에서 나를 해치기 위해 무언가 꾸며지고 있으며, 주위 사람들이 다 거짓말쟁이여서 나를 속일 것이라 믿게 된다. 매우 불쾌한 체험이며 병의 증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의 거짓말 탐지기가 없다면 나는 거짓말쟁이들한테 속아서 모든 것을 빼앗길 것이다.

거짓말이라는 능력
거짓말이 통하는 것은 듣는 사람이 속기 때문인데, 능숙한 거짓말쟁이는 어떻게 하면 듣는 사람을 속여 넘길 수 있는지 안다. 순진무구하던 어린이가 부모가 속아넘어가는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면, 그 아동은 도덕적으로 나쁜 것을 배운 것이 아니라, “마음 읽기”라는 생존 필수적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성공적인 거짓말을 하려면 상대의 마음을 읽어서 그가 속아줄 것임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상대의 거짓말 탐지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거짓말은 고도의 기술이다.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는 피와 눈물도 없는, 타인에게 공감을 못하는 냉혹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 사람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속고, 가스라이팅 당한다. 사이코패스는 상대를 착취해서 내 이익을 최대화하는 분야의 전문가로, 상대의 마음을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자신의 작업을 펼칠 수 있다.
마음이론
마음이론(Theory of Mind)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정신상태를 추론하고 그것에 근거해서 그의 행동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인지적 도구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론”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마음이론이라 부른다. 마음이론은 인지과학의 한 연구분야로 정립되어 있다.
마음이론은 다른 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내가 한 사람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상대도 마음이 있고 상대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비슷하기 때문에 내가 그 상태를 추론할 수 있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관계의 상호성이 생긴다. 거짓말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마음이론을 가져야 한다. 거짓말 탐지기도 마음이론이 있어야 동작한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것 역시 마음이론이 있어야 가능하다.
인간의 마음에 대한 나의 경험과 지식 및 내 앞에 있는 상대의 표정이나 몸짓 등 표현행위가 상대의 마음을 추론하기 위한 주된 근거자료가 된다. 마음은 직접 전달될 수 없으므로 추론만이 가능하다. 물론 이 추론은 심사숙고가 아닌 직관에 가깝다. 또한 추론 결과는 사실이 아닌 가설 내지 이론일 뿐이다. 그래서 마음”이론”이라 한다. 이론이므로 틀릴 수도 있지만, 내 삶을 꾸려나갈 때 제법 잘 동작한다. 그래서 나는 성공적인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마음이론은 사람이면 누구나 갖지만 언어 능력이 있다고 바로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정도 발달단계에 이르러야 마음이론을 장착하게 된다. 아동이 마음이론을 갖추었는지를 알아보는 간단한 실험이 있다. 피험자 아동은 방 안에 샐리와 앤이라는 두 인형이 있는 것을 본다. 빨강 파랑의 두 상자도 있다. 샐리는 구슬을 빨강 상자에 넣고 방을 나간다. 앤은 그 사이 구슬을 파랑 상자로 옮겨 놓는다. 아동은 샐리가 방으로 돌아와서 어느 상자에서 구슬을 찾으려 할 것인지를 질문받는다. 아동은 구슬이 파랑 상자에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질문받는 것은 “샐리는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관점을 취해서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검증이다.(물론 실제 구슬을 옮기는 것은 인형을 조작하는 사람이지만, 아이들은 소꿉장난할 때처럼 인형이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빨강 상자라 대답하면 아동은 이 능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만 네살의 아동은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과거에는 마음이론을 인간만이 갖는다고 믿어왔지만 요사이는 인간 이외의 영장류는 물론 설치류까지도 그렇다는 주장들이 있다. 개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개가 주인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놀란 적이 있을 것이다.
거짓말의 무대 1
법정은 진실을 밝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증인들은 법정에서 진실만 이야기하겠다는 엄숙한 선서를 한다. 그러나 법정이 누구의 거짓말이 그럴듯한지를 경쟁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좋은 변호사는 더 그럴듯한 거짓말을 만드는 사람이고, 판사는 참/거짓을 구분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그럴듯한 것을 판별하는 사람이다. 법이 판단한다는 진실은 재판 중 조립되는 것이지 이미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진실이 조립된다고 한 것은 비유였지만, 정치적 의미를 띤 형사 사건의 경우에는 진실이 조립된다는 것이 비유가 아닌 사실 기술인 경우도 있어 보인다. 사건의 부분적 조각들을 선택적으로 꿰어 맞춰서 진실이라 내놓으면서 여기 근거해서 기소하거나 기소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렇다. 선택적으로 조립된 것이지만 거짓말이라는 레이블은 붙지 않는다. 그러나 조립이 허접한 경우가 많아서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진실이 아님을 안다. 하지만 허접함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 승리하기도 한다.
거짓말의 무대 2
우리 정치판에서 난무하는 거짓말을 보면 거짓말이어서가 아니라 거짓말의 수준이 네 살 아이만큼도 되지 못해서 필자가 부끄러울 정도다. 대통령 측근 인사들은 샐리-앤 실험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 해 주라고 했다”는 대통령의 육성이 그냥 해본 덕담이라 주장하면 국민들이 믿어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이들은 평범한 국민들이 자기들과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판단할 것임을 모른다. 세살 아이가 샐리의 관점에서 사물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런 허접한 거짓말을 국민들이 믿어주리라고 이들이 믿는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필자는 마음이론을 적용해서 이들의 마음을 추론해 보았다. 그 결과로 이들의 정신상태에 대한 두가지 가설을 제시하려 한다.
첫번째 가설은 이들의 거짓말을 자기기만의 일종이라 보는 것이다. 더 엄밀하게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다가오지만 이를 처리할 능력이 없을 때 아예 엉뚱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힌 동물이 과제 해결과 전혀 무관한 행동을 하는 것을 전위행동(轉位行動, displacement behavior)이라 하는데,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전위행동의 일종으로 보는 가설이다. 그렇다면 거짓말은 심사숙고 끝에 꾸민 것이라기 보다는 무심코 저지른 행동에 가깝고 그 배경에 있는 심리는 “멘붕”이라 추론할 수 있다.
두번째 가설은 이들이 아예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마음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므로, 말은 듣는이의 마음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문법적으로 옳으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전에 이들이 문법에도 맞지 않는 “날리면”을 생각해내고 쾌재를 불렀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그러나 이들은 듣는 사람이 기막혀하고 황당해하고 분노할 것이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한다. 애완견도 가지고 있는 공감능력을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다는 가설이 다소 황당해 보이지만, 정규교육을 받은 성인들이 이 정도로 수준 이하의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다른 가설로는 설명하기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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