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인간, ‘완벽한’ AI에 승리한 비결은
- 철저한 자기 부정과 스타일 변화 ‘인간 최강’ 신진서는 장기인 전투적인 수읽기를 봉인하고, 오직 승리를 위해 수비 지향적인 ‘집 바둑’으로 노선을 완전히 틀어 실리를 챙겼다.
- AI의 맹점(완벽주의) 공략 카타고가 확률이 낮으면 모험을 하지 않는 점을 파악해, 기계가 가질 수밖에 없는 소극성을 역이용했다.
- 불굴의 용기와 직관 승률이 1%로 떨어지는 순간에도 확률을 거스르는 과감한 ‘승부수’와 ‘묘수’를 던질 줄 아는, 인간만의 절박함과 직관력으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한국경제TV 스튜디오의 바둑판 위에 또 하나의 역사가 연출됐다. 인간을 대표하는 세계 바둑 랭킹 1위 신진서 9단이 최강의 바둑 인공지능(AI) 카타고(KataGo)를 완벽히 제압하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인간들끼리 경쟁하는 월드컵이 끝난지 불과 며칠만에 최고의 인간대표가 인공지능 대표를 보기 좋게 완파한 것이다.
신진서 9단은 이날 쎈수학·한경 기신전 3번기 최종국에서 221수 만에 흑 11집 반 승리를 거두며 역전 드라마의 방점을 찍었다. 1국 패배의 충격을 딛고 거둔 2연승, 그리고 최종국 완승인데, 최종국 완승은 그 여러 측면에서 인공지능을 제압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물론 2점 접바둑이었기 때문에 완벽한 승리라고 할 수는 없다.
바둑계는 물론 많은 AI 전문가들도 “인간의 희망을 쏘아 올렸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만큼 이번 승리는 단순한 ‘인간의 승리’ 그 이상의 서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AI는 ‘완벽함’에 가까운 기계라고 하지만, 그 완벽한 기계조차 흉내낼 수 없는 천외천의 세상을 신진서가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신진서의 이번 대국은 철저한 자기 부정의 소산이었다. 그는 자신의 장기인 화려한 전투와 날카로운 수읽기를 숨기고, 철저히 집을 지키는 수비형 바둑으로 노선을 틀었다. 이기기 위해 자신의 색깔을 지워내는 것, 그것은 오직 인간만이 감내할 수 있는 의지였다.
대국 후 신진서는 카타고의 약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AI는 완벽한 것이 (오히려) 약점인 것 같다. 불리해도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다.”
기계와 인간의 결정적 차이를 관통하는 표현으로 들린다.
사실 AI인 카타고는 수만 판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확률적으로 가장 높은 정답만을 찾아낸다. 형세가 불리해져도 확률이 낮다면 모험을 택하지 않는다. 그것이 기계의 ‘완벽성’이다. 반면 인간은 승률이 1%로 떨어지는 순간에도, 상대를 흔들기 위해 확률을 거스르는 ‘묘수’와 ‘승부수’를 던질 줄 안다. 무모해 보이는 용기야말로 인간 본연의 가치이며, 특히 바둑을 ‘살아있는 예술’로 만드는 본질이다. 인간이 AI를 이길 수 있는 희망은 용기인 것이다.
2점 접바둑이라는 조건, RTX 3090 4장의 병렬 연산 능력. 조건만 보면 기계가 압도하는 판이었고, 대다수 전문가들은 아무리 세계랭킹 1위라하더라도 신진서가 1승조차 올리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2016년 이세돌을 꺾었던 알파고보다 훨씬 강한 카타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진서는 3시간 20여 분 동안 단 한 순간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거대한 흑진을 구축해 승리를 지켜냈다. 긴 시간 동안 그는 AI의 무감정한 연산에 맞서 자신의 전투 본능을 최대한 역제했다.
AI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있을지언정, ‘절박함’이나 ‘숭부수’에 대한 극적인 감정에서 발현하는 직관의 수를 던질 수 없다. 그래서 신진서가 보여준 이번 역전극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AI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토를 증명한 사건으로 다가온다.
이번 대회의 승자로 신진서에게 안겨진 상금 2억 5천만 원과 제네시스 G90이라는 부상이다. 이같은 상보다 AI를 눌렀다는 역사가 완벽한 보상으로 다가올 것이다. 기계와 인간의 승부는 내년에도 다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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