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말의 심리학

[정신의학자 강웅구의 ‘마음의 길’] 거짓말할 능력조차 없는 윤석열 그의 참말은 정신적 문제 그대로 보여줘 거칠고 험악한, 냉전시대에 머문 믿음 계엄은 ‘격노’ 발사...충동성은 비문명인 파트너를 범죄자로 선언할 정도의 충동성 그의 부하들은 거짓말로 돌려막기하기도

지난 7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표결이 무산됐지만, 그의 조기퇴진은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7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표결이 무산됐지만, 그의 조기퇴진은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참말과 거짓말

윤석열 대통령과 측근들은 거짓말을 할 능력조차 없어 보였다. 제대로 된 거짓말을 하려면 속아 줄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필요한데, 네 살짜리 아이도 갖고 있는 이 능력이 신기하게도 이 집단에는 없다. 이에 비해 참말은 훨씬 쉬워 보인다. 참말은 있는 그대로를 꾸밈없이 보여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말에도 기술이 필요한 것이, 적절한 상황과 방법을 생각치 않고 함부로 한 참말이 파국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온갖 거짓말로 난국을 타개해 나가던 와중에 대통령의 참말이 하나 나왔다. 참말이란 “사실을 정확하게 기술”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믿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 하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자충수

“…북한 공산세력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국민들과 국회의 빠르고 현명한 대응으로 몇 시간짜리 해프닝으로 끝나버렸지만, 대통령의 이 말은 그에 대한 많은 것을 보여준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오늘이 만우절 아닌가’ 생각을 했다. 웃자고 하는 거짓말로서는 별로 품질이 좋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게 거짓말이 아닌 참말이었다.

그의 발표를 들으면서 필자의 마음은 당황과 황당 사이를 오갔다. “저 사람은 왜 자충수를 둘까?” 였다. 국회에서 야당만으로도 해제 결의를 할 수 있으므로 계엄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 뻔해 보였기 때문이다. 계엄군이 국회를 접수하지 못하도록 국민들이 먼저 나선 것이 그의 패착인 것 같다.

그런 정치적 문제를 떠나, 필자는 그가 황당한 시점에 험악한 말로 무모한 승부수를 던진 사건 자체를 이해하려 시도해 보았다. 거짓말은 마음 읽기 능력을 보여주지만, 참말은 한 사람의 믿음뿐만 아니라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믿음

대통령의 ‘믿음’은 선포문에 노래 후렴구처럼 반복되므로 정교한 분석은 필요 없다. 그의 정치적 믿음이 1960~70 년대 냉전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윤 대통령과 필자가 속한 소위 86세대는 반공을 내세우며 인권을 탄압했던 정권에 저항하면서 청년기를 보냈다. 윤 대통령이 청년기를 어떻게 보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가 어린이에서 장년으로 성장한 50여년의 시간동안, 그의 정신은 초등학교 저학년때 배웠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에서 더 성장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와 정치적 견해를 공유하는 지지자는 냉전시대에 정치적 발달을 멈춘 현재의 노년층이다.

독선

대통령의 참말이 더 잘 보여주는 것은 그의 성격, 주위 사람과 관계 맺고 과제를 해결하는 태도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발표문의 험악한 말투와 무계획적 반복이다. 필자는 이 발표문을 대변인이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쓴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혼자 작성했을 것으로 본다. 애드립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써 놓은 글을 읽는 것인데도 이렇게 조악하다는 것은 홍보 담당자 등의 퇴고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사태 자체가 대통령 혼자 또는 극소수의 그와 닮은 사람들만 데리고서 저지른 일이라 추측할 수 있다. 집단 지성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민주적 정치행위가 아니라는 뜻이다. 대통령의 독선적 태도는 종종 언론에서 이슈가 되어 왔는데, 이 발표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 역시 그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보도에 의하면 대통령 참모나 여당 핵심인사들도 계엄을 선포할 것임을 전혀 몰랐고, 국무회의에서는 반대의견이 강했다고 한다.

격노

또하나 잊을만하면 언론에 나오는 이야기가 대통령의 “격노”다. 필자는 그 격노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언론인들 사이에서 회자될까 궁금했는데, 이번 사태를 통해서 드디어 알아버렸다. 왜 그가 무모한 계엄 선포를 했는지도 감을 잡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격노다. 그는 계엄 선언으로 격노를 발사한 것이다. 격노 발사를 통해 국회를 정치 파트너가 아닌 적이라 선언하였다.

요사이 대통령의 마음을 지배하는 강력한 정서는 억울함일 것이다. 손바닥뿐만 아니라 마음속에도 왕(王)을 쓴 절대자의 뜻은 항상 집행되어야 되는데, 반역자들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정치적으로 구석에 몰려 있다. 왕은 이런 사태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그래서 억울하고, 억울함과 연결된 강력한 정서가 바로 분노다. 분노는 우리의 기본적 정서 중 하나로, 나를 억울하게 만든 적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행동을 일으킨다. 억울함은 원래 사적 감정이지만 자기기만을 통해 정의감으로 포장된다. 그래서 공적인 문제인 양 떳떳하게 선언할 수 있다.

충동성

문명사회는 분노 표출에 대한 규범을 가지고 있다. 내가 화난다고 상대방에게 내 멋대로 하는 것은 문명인의 행동이 아니다. 그러나 분노에 대한 문명사회의 규범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고싶은 것이 있을 때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내지르는 성격 특성을 ‘충동성’이라 한다. 부정적으로 보면 사려 깊지 못함, 무모함이다. 충동성 높은 사람은 문명사회의 규범을 지키기 힘들다. 분노나 억울함을 참고 협상과 설득을 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저 행동으로 튀어나올 뿐이다. 계엄 선언의 무모함은 대통령이 충동성이 높은 사람임을 보여준다.

긍정적으로 보면 충동성은 결단력 있고, 시원시원한 성격과 관계된다. 그나마 남아있는 지지자들이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 중 하나가 결단력인데, 결단력은 충동성과 동전의 앞뒤 같은 것이다.

발달력

충동성이 얼마나 높은지는 개인의 타고난 특성이다. 하지만 어린이는 가정과 학교에서의 훈육을 통해 타고난 충동성을 제어하는 법을 배운다. 아동이 문화화(enculturation)되는 중요한 과정으로, 충동성이 삶의 경험을 통해 달라짐을 보여준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정치판에서 파트너를 범죄자 집단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은 웬만한 수준의 충동성으로서는 불가능한 무모한 일이다. 그가 충동성을 제어할 필요가 없는 환경에서 살아왔음을 시사한다. 제왕무치(帝王無恥)라는 말은 힘이 있으면 참을 필요 없이 하고싶은 대로 하면 된다는 뜻인데, 우리나라 검찰의 위상도 이에 빗대어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런 보스 밑에서 살아가는 부하들

대통령은 계엄 선포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독선적이고, 화를 잘 내고, 충동적인 보스를 모시고 일하는 부하들은 어떨까?

부하들에게 보스는 “못말리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도 윤 대통령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은 주위의 간신배만 물리치면 대통령이 제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대통령이 이런 사람인 이상 주위 사람들이 그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다. 보스가 발사한 격노를 맞는 순간, 부하들은 공상과학 영화에서 레이저빔을 맞은 것처럼 꼼짝할 수 없게 마비된다. 그러고 난 뒤 보스는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간다.

부하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보스가 저지른 것을 뒷수습하고 합리화하는 것 밖에는 없다. 그런데 충동적 결정은 비합리적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합리화하기 어렵다. 제 일감은 거짓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유감스럽게도 거짓말하는 능력조차 부족하다. 거짓말을 또다른 거짓말로 돌려막다가 파탄이 나면 정치적 스캔들이 되어 언론을 휩쓴다. 어떤 경우는 자신이 책임을 뒤집어쓰려는 안타까운 노력을 한다. “그건 대통령님이 아니라 미천한 제가 결정한 것이다”라고 실드친다. 물론 아무도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이들에게는 정책 실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안 했다는 것이 중요할 따름이다.

정말 한심해 보이지만, 이 부하들 중에는 원래는 상식적이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험난한 보스를 만나서 무리한 문제를 풀다 보니 인간으로서 망가진 것 같다(고위 관료들을 “부하”라 한 것이 다소 비하하는 것 같지만,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직장의 상사-부하직원의 관계로 본 것일 뿐임을 밝힌다).

글쓴이

강웅구 서울대 의대 교수

강웅구는 1988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뇌의 유전자 발현 이상 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정신질환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대표저서로 <정신병리학 – 정신병리의 개념적 접근>(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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