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망상과 신념 사이

[정신의학자 강웅구의 ‘마음의 길’] 윤 대통령의 굳은 신념, 망상일까? 정신의학적 ‘망상’ 진단은 쉽지않아 마음 강한 사람, 사고의 유연성 돋보여 윤석열, 지도자하기엔 정신적으로 취약

탄핵소추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씨.
탄핵소추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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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과 신념

‘망상’은 나쁜 것이고 병의 증상인 반면, ‘신념’은 좋은 것이고 건강한 것이다. 명쾌하고 알기 쉬워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망상인지 신념인지 구분되지 않는 믿음들이 많을뿐더러, 어떤 믿음이 망상인지 여부가 그 믿음이 생겨난 배경을 살펴보지 않고는 판단내릴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두가지는 구분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 종북 반국가세력이 준동한다”는 대통령의 굳건한 믿음은 망상일까 신념일까?

망상이란?

필자는 망상을 가지고 온 환자들을 많이 보지만, 망상과 건전한 믿음을 구분하는 것은 정신과의사에게도 종종 어렵다. 믿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전에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을까), 망상과 건전한 믿음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다르지 않다. 자신이 겪은 것(체험)과 그것에 근거한 판단(추론)이 믿음을 만든다. 믿음 중 쉽게 망상이라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은, 배경 체험이 기괴하거나(우주인이 쏘는 광선을 맞았다), 믿음에 이르게 된 추론이 명백히 불합리한 경우(개가 앞발을 흔드는 것을 보는 순간 내가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임을 깨달았다) 다.

하지만 체험과 추론의 이상(異常)이 명백하지 않은 망상도 많이 있다. “그럴듯한” 망상들이다. 더구나 우리가 가진 정상적 믿음 중 많은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논리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왠지 마음이 끌려서” 믿게 되는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기본 모드는 합리성이 아니며 합리적이지 않다고 바로 병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의 판단은 합리적 사고뿐만 아니라 감정, 욕망 등의 영향을 받는데 그것들 역시 믿음을 만드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우리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도 건강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탄핵소추된 윤석열 대통령. 사진=YTN캡처
탄핵소추된 윤석열 대통령. 사진=YTN캡처

망상적 태도

망상의 내용은 대개 사실이 아니다. 사실을 확인해 보면 될 것 같지만 확인하기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그러니 믿음의 내용이 아닌 다른 것으로 망상을 판별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망상의 특징은 믿음의 내용보다는 믿음을 견지하는 태도다. 정신의학적으로 망상은 “반대되는 증거를 보여주어도 바뀌지 않는 믿음”이라 정의된다. 그러나 정당한 신념과 확신 역시 변하지 않는다. 종교적-정치적 신념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이 믿음을 견지하는 태도는 목숨과 바꿀 만큼 굳건하다. 그러니 “얼마나 강력한 믿음인가” 만으로 망상과 신념을 구분하는 것도 어렵다.

믿음을 갖게 된 배경

한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그가 갖는 믿음의 배경을 제공한다. 지금 천동설을 주장한다면 명백한 망상이겠지만,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시대에 살던 사람에게는 천동설은 당연하고 정당한 믿음이었다.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이 불건전한 사상을 가졌다고 핍박받았던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사회적 배경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이 갖는 상식의 범위를 결정한다. 상식에 벗어나는 믿음은 “망상이 아닌가?” 의심할 단초를 제공한다. 그러나 배경을 안다는 것이 만만치 않다. 배경은 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왜 그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려면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의 가족 관계나 성장 과정 등을 알아야 한다. 정신건강의학과의 병력 청취가 매우 자세하고 길어지는 이유다. 환자의 배경을 이해하는 능력은 정신과의사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행동으로 표출됨

행동으로 표출되는 믿음은 굳건한 믿음이므로 망상이 될 기본 조건을 갖추었다. 어떤 믿음을 갖더라도 말과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는다면 실질적 의미는 없다. 그러나 부적절한 행동을 한다고 항상 망상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한 여름에 겨울 코트를 입고 병원에 온 환자가 태평하게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이 행동은 명백하게 부적절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인가에 따라 망상 여부에 대한 판단은 달라진다. 외계인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보호장구로 입은 것이라면, 외계인이 자신을 공격한다는 믿음이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므로 환자가 망상을 갖는다고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옷장에서 겨울 옷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는데, 다른 옷 찾기 귀찮아 입고 온 것이라면 부적절하더라도 환자가 망상을 가졌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망상과 아닌 것을 구분하는 절대적 기준은 없다.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대안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또 한가지 요인이 있는데, 망상 자체보다는 망상을 갖게 되는 사람의 심리적 특성에 대한 것이다. 망상을 갖기 쉬운 사람은 사고의 유연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가 살면서 접하는 다양한 정보들을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해 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기존 믿음과 다른 정보가 있다는 것에 대해 매우 불편해 하거나 심지어 위협을 느낀다. 자신이 접하는 정보와 자아 사이에 “거리두기”가 되지 않는 것인데, 마음의 회복탄력성(resilience, 나쁜 심리적 영향을 극복하고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마음이 취약할수록 자신의 믿음을 극도로 강력하게 지키려 한다. 믿음이 붕괴되는 순간 자아도 붕괴하기 때문이다.

지배관념

한편, 망상과 신념의 사이에 또 다른 것이 있다. 망상은 아니면서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굳건한 믿음(주로 가치적 믿음)을 정신의학 용어로 지배관념(overvalued idea)이라 한다. 병적인 경우만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병적이라는 함의를 제법 가지고 있다. 법적인 맥락에서, 확신범들의 범죄 동기가 지배관념일 수 있다. 정치적 신념 등도 이런 범주에 속할 수 있다. 믿음이 “사실”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것이라면, 망상인지 아닌지가 사실판단이 아닌 가치판단이 되어버리므로 과학(의학)의 영역에서 벗어난다.

망상, 지배관념, 신념?

윤석열 대통령이 상대 정치세력을 종북 범죄자 집단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들을 박멸하겠다고 군대를 동원한 것은 행동화된 믿음의 예다. 사무친 원한을 토해내는 듯한 그의 태도를 보면 그는 이 믿음에 진심이다. 설득되거나 반례를 보고 바뀔 믿음이 아니다. 이전부터 그가 설득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사고의 유연성이 없고 망상을 갖기 쉬운 성격적 특성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그의 생각은 망상일까, 지배관념일까, 신념일까?

정당한 믿음은 그것이 통용되는 시대가 있다. 코페르니쿠스 이후 시대의 사람이 천동설을 믿는다면 망상이다. ‘종북 분자’ 믿음은 1980년대까지는 통용될 수 있었겠지만 2020년대는 아니다. 시대적 배경에 비추어 이해할 수 없는 믿음이다. 다만 그의 믿음이 생성된 개인적 배경으로 그가 시대착오적인 특정 유튜버들에 종속되어 있었다는 보도들이 많이 나온다.

유튜브가 모든 정보를 얻는 원천이라면 나름 합리적 결론이 “종북좌파에 의한 나라 폭망”일 수도 있다. 망상을 가진 사람의 강력한 영향을 받는 사람은 그 망상을 공유하게 된다. 강자의 망상이 정신적 약자에게 심어져서 망상이 형성되는 것이다. 오래된 용어로 공유정신병(folie à deux)이라 한다. 망상을 공유하게 되는 것은 가스라이팅 당함의 일종이다. 국가 지도자가 일부 유튜버에 가스라이팅 당할만큼 마음의 회복탄력성이 낮다는 것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그런데 그는 자기 아내에게도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의 믿음이 행동화 되는 경우

인간은 누구나 왜곡된 믿음에 취약하다. 장삼이사(張三李四)라면 그래도 된다. 그 생각으로 태극기와 미국기를 들고 광화문 광장에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래서는 안된다. 그가 극우파 유튜브를 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특정 세력에 가스라이팅 당할 정도의 정신적 취약성이 있고 그 스스로는 그것을 부정하거나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지도자라면 다양한 견해를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조폭집단의 모임이 아니라 국민들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와 그 수장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마음이 강하다는 것은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유연한 사고를 갖는 것이다. 망상적 태도는 믿음의 내용이 아니라 주장의 황당한 경직성에 있고, 자기 사고를 반성해 볼 능력이 없다는 점에 있다. 더욱이 문제되는 것은 그 믿음이 행동화되어 나라를 위태롭게 했다는 점이다. “종북세력 준동”이라는 그의 믿음이 망상인지 신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신과의사가 그를 불러놓고 진찰하고 병력 청취를 열심히 해도 그것이 망상인지 아닌지는 밝혀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믿음이 가치관이라면 의학적 평가 대상도 아니다. 그러나 그가 국가 지도자로서 부적절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글쓴이

강웅구 서울대 의대 교수

강웅구는 1988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뇌의 유전자 발현 이상 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정신질환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대표저서로 <정신병리학 – 정신병리의 개념적 접근>(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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