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악마처럼, 때론 천사처럼 ‘패션계의 여왕’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실제 인물 글로벌 패션계의 여왕 애나 윈터 37년만에 보그 편집장에서 물러나기로 신예 디자이너를 불굴, 스타로 키운 장인 그녀의 철학 “감각은 배울 수 없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모델이자 글로벌 패션계의 여왕이 일선에서 물러난다. 미국판 『보그(Vogue)』의 편집장 애나 윈터(Anna Wintour)이 37년간 세계 패션계를 좌지우지했던 편집장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2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윈터 편집장은 전날 직원회의에서 “오랫동안 고민해 온 중요한 결정에 대해 오늘 아침 여러분과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편집장직 사퇴 소식을 알렸다. 그러나 그녀가 보그를 완전히 떠나는 것은 아니다. 편집장직만 물러날 뿐 보그내에서 주요한 역할은 물론 세계 패션계에도 여전히 여왕 자리를 지킬 예정이다.
그녀는 앞으로 신설된 직위인 보그의 글로벌 편집책임자와 보그 발행사인 콘데나스트의 글로벌 최고콘텐츠책임자(CCO) 역할을 유지하며, 세계에 발행되는 콘데 나스트 발행 출판물 콘텐츠를 총괄 감독하게 된다. 콘데 나스트는 GQ, 배니티페어 등 다양한 대중문화 잡지를 전 세계에서 발행하고 있다.
그녀의 사퇴는 단순한 인사 이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패션 산업과 대중문화의 흐름을 선도해온 한 인물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카리스마의 대명사, 애나 윈터
1949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애나 윈터는 1988년부터 미국판 『보그』의 편집장을 맡아왔다. 단정한 보브컷, 검은 선글라스로 상징되는 그녀의 이미지는 냉철하고 강인한 리더십의 아이콘으로 인식되어 왔다.
2000년대 이후에는 콘데 나스트(Condé Nast)의 글로벌 편집 총괄 및 최고 콘텐츠 책임자(CCO) 자리에 오르며 『보그』를 넘어 전 세계 콘텐츠 트렌드의 설계자 역할까지 수행했다. 미국 대통령 ‘자유의 메달’ 수상, 각국 정상과의 교류, 글로벌 스타들과의 협업 등 그녀의 영향력은 패션계를 넘어 정치·문화 전반에 걸쳐 확장됐다.
그녀가 발굴한 디자이너들은 한 둘이 아니다. 편집장으로 재직한 30년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신예 디자이너들이 그녀의 눈에 띄었고, 그들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밖에 조셉 알투자라, 제이슨 우, 톰 브라운, 피비 파일로 등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그녀의 지지로 커리어를 확장했다.
윈터의 신예 디자이너 발굴 방식은
그녀는 자신만의 일정한 방식으로 신예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스타로 만들어갔다.
그녀는 단순한 ‘감’이나 우연을 믿지 않았다. 철저한 전략과 직관, 그리고 시스템적인 후원 구조에 기반을 두고 스타로 만들었다.
발굴 방식에서 돋보이는 것은 그녀의 ‘날카로운 직관’과 ‘현장 중시 자세’다. 그래서 유명 패션 스쿨의 졸업 컬렉션을 직접 관람하기로 유명하다. 윈터는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CSM), 파슨스, FIT 등 주요 패션 스쿨의 졸업 컬렉션을 직접 보거나, 신뢰하는 에디터를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
또 런던·뉴욕 패션위크의 신인 쇼를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대형 브랜드보다 신인 디자이너 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새로운 감각과 태도를 가진 디자이너를 눈여겨본다.
이를 통해 발굴된 신예 디자이너에 대해 그녀는 ‘보그 내부 추천 시스템’을 가동시킨다. 보그 에디터, 포토그래퍼, 스타일리스트들이 추천한 신인을 검토하고, 내부 회의에서 집중 조명할 인물을 선정한다.
디자이너를 띄우는 방식도 ‘보그만의 독특한 시스템’이 있다. 핵심은 보그의 ‘플랫폼 + 자금 + 네트워크’다.

예를 들어 톰 브라운은 자금난에 시달릴 때 애나 윈터가 브룩스 브라더스와 연결해 컬렉션을 선보일 기회를 마련해줬고, 마크 제이콥스는 논란 속에서도 그녀의 지지로 루이비통 수석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어요.

그녀의 철학은 ‘현장 중시’
그녀는 자기만의 패턴과 디자이너 철학을 갖고 있다. 윈터는 “감각은 배울 수 없다”는 말로 그녀의 철학을 대신한다. 테크닉 보다는 디자이너의 세계관과 태도를 중시하고, 독창성과 시대정신을 읽는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
그는 또 “패션은 문화다”라는 신념 아래 단순히 옷을 잘 만드는 것보다, 사회적 메시지와 예술적 감각을 담은 디자이너를 선호했다. 특히 “(대중에) 보여주기 전에 믿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서 그녀는 신인 디자이너를 띄우기 전에 직접 만나 대화하고 철학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기로 유명하다.
마치 패션계의 ‘벤처 캐피털리스트’처럼, 가능성 있는 디자이너를 조기에 발굴하고, 자금·미디어·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브랜드로 성장시켜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 기준은 냉정하고 직관적이며, 타협이 없기로 유명하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메릴 스트립처럼.
그녀의 한마디는 패션계 생태계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힘을 지녔다고 해서 “윈터가 한 번 웃으면 브랜드의 봄이 온다”는 말이 탄생하기도 했다.
애나 윈터는 “다음 세대의 편집자들이 전면에 나설 때”라며 지금 퇴임의 의미를 밝혔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겠지만, 애나 윈터가 심어놓은 기준과 감각, 그리고 철학은 오랫동안 패션계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녀는 단지 옷을 고른 것이 아니라, 시대를 편집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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