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감원장 인사, 의외지만 신호는 분명하다

이재명 정부 첫 금감원장에 대한 기대 금융정책도 ‘억강부약’ 신호 무엇보다 금융카르텔을 깨달라 금융회사보다 금융수요자 중심 금융감독의 새틀을 짜주길 기대

이찬진 신임 금융감독원장.
이찬진 신임 금융감독원장.

이찬진 변호사가 국민연금 기금운영위원회 위원으로 처음 회의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900조 원이 넘는 국민연금 기금의 운영방향을 결정하는 최고 회의기구 말이다.

“국민연금 운용을 수익률을 높이는데만 골몰하지 말고,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처럼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갖고 그런 분야에 투자를 하는 것도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회의에 있던 다른 위원들은 이 자리에 처음 참석한 이 변호사의 한마디가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거의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얘기를 하길래, 너무 몰라서 그런가 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엉뚱했지만, 신선한 얘기 아니었나 싶어요”라고 말하는 당시 참석자의 얘기.

두 달 넘는 공백 끝에 이찬진 변호사가 금융감독원장으로 임명돼 일을 시작하게 된다. 전형적인 금융 관료 라인이 아닌 ‘아웃사이더’의 등판이라 의외지만, 현 정부가 금융의 방향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압축적 신호처럼 읽힌다. 그의 임명은 금융위원회 의결 후 김병원 위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에서 이뤄졌고, 언론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반응했다.

이찬진 신임 금감원장은 홍대부고·서울대 법대, 사법시험(28회, 사법연수원 18회) 출신으로 민변 부회장,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 활동 등 이력으로 소개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로 공직선거법 위반사건 등의 변호를 맡았던 측근이다.

억강부약의 금융 철학

이번 인사는 이 대통령이 ‘억강부약(강한 자를 제어하고 약한 자를 받치는)’시각의 금융으로 옮겨가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이 산업과 다를 것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금융은 더 직접적으로 가계의 삶을 흔든다. 금융위원회가 내세우는 “혁신적 금융, 포용적 금융, 신뢰받는 금융”이라는 표어도 이 방향과 결을 같이한다. 표어가 현실이 되려면, 규제의 잣대가 ‘기관의 편의’가 아니라 ‘금융수요자 효용’으로 이동해야 한다.

카르텔 구조의 해체가 최우선

우리 사회의 고질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 카르텔형 부패구조다. 금융마피아가 만연해있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법조 카르텔, 원전·교육·건설·토지까지 얽혀 있는 이해관계의 사슬은 디지털과 AI로 재편되는 지금도 여전히 견고하다. 가진 자의 카르텔이 유지해온 관행을 근본에서 반성하고, 새 틀을 짜야 하는 시점이다. 폐쇄적 네트워크를 끊는 건 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다. 퇴직자 전관 유착 차단, 이해충돌 등록·공개, 감독기관 면담기록 상시 공개, 이해관계자 회의의 스트리밍·의사록 의무화 같은 장치가 실제 힘을 가져야 한다.

당장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복현 전임 금감원장이 재임 중 50대초반의 팀장들을 다 일선에서 물러나도록 인사했다. 이들은 패기있던 감독자였고, 한창 교육비 들어가는 가정의 가장이었다. 50대 중반에 임금피크제로 일선에 물러나게 하던 관행 대신 50대초반에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들이 금융산업체에 가서 굽신굽신 자리를 구걸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감독의 처벌이 무뎌지고, 피감회사의 데미지는 약해졌다. 이복현 전 감독원장도 아마 그 자리를 찾고 있을 것이다.(이 전원장의 행보는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그렇게 카르텔 집단의 공급이 이뤄지게 됐다.이들 50대초반의 금감원 팀장급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친금융회사에서 금융수요자 중심으로

IMF위기 이후 한국의 금융정책은 대체로 ‘기관 건전성—시장 안정—성장’의 순서로 설계·집행됐다. 이제 순서를 바꿀 때가 됐다. 진입장벽을 낮추되(면허와 규제를 비례화하고 규제샌드박스를 ‘상시화·신속화’), 반복 위반자는 강력히 징계·퇴출하고, 금융회사의 과도한 성과급·급여 체계는 소비자 성과지표와 연동해 고쳐야 한다. 상품적합성·설명의무를 형식에서 실질로 전환하고, 수수료·보수 구조의 이해상충을 드러내며, 데이터 이동권·오픈파이낸스·클라우드 활용을 전제로 AI 신용·추천 알고리즘의 설명가능성과 차별감사를 의무화하자. 아울러 정부가 논의 중인 금융정책·감독체계 개편(소비자보호 기능의 분리·독립 등)이 현실화된다면, 독립성과 집행력을 갖춘 소비자보호 기관으로 설계해 감독 공백과 혼선을 최소화해야 한다.

부동산 급등의 땔감을 제공하던 금융, 의사들의 과잉진료를 조장하고 의료수가를 올려놓은 실손보험 정책들. 금융정책의 실패에서 온 결과물들이며 감독 당국의 책임방기가 가볍지 않다.

무경험 논란과 기대 사이

이 신임 금감원장에 대해 금융감독 무경험이란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근본적 혁신은 종종 내부의 형식논리와 거리 있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이 원장은 시민사회에서의 거버넌스 경험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 활동 이력이 있다. 전통적 금융 관료는 아니지만, 다른 각도에서 ‘낯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때로는 ‘엉뚱하다’고 느껴질 만큼 기존 틀 밖의 시선이 있었는데, 지금 필요한 건 바로 그 낯섦일지 모른다. 국민연금 기금운영에 대해 수익보다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가지라고 했던 그때의 지적은 지금 유효한 얘기가 됐다.

무엇보다 금융카르텔 감시를 상설화해야 한다. 금융·법조·정치의 이해연결을 데이터로 추적하는 상설 태스크포스를 만들고, 분기별 공개보고로 견제의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또 진입·퇴출의 공정성도 갖춰야 한다. 신규 진입은 규제비례로 열고, 반복 위반·상습 민원기관은 ‘집단적 합의’ 대신 법·원칙대로 퇴출해 신호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금융회사의 인센티브구조도 재설계해야한다. 임직원 보상에 소비자피해율·민원지수·적합성 점수 등 소비자 지표를 핵심 KPI로 연동하는것도 요구해야 한다.

이 감독원장의 전문성은 부족할지 모른다. 그러나 방향이 분명하고 이해관계의 올가미를 끊는 용기가 있다면, 금융수요자에게 실질적 이득이 돌아오는 감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새 틀’이다. 밖에서 온 사람이 ‘새 틀’을 잘 만들어주길 기대한다.

글쓴이

문주용 기자

문주용 대표이사 겸 기자는 31년간 언론인 생활을 바탕으로 새로운 언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힘든 세상에서 위로받고 지혜를 얻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바라는 미디어를 만들려 합니다.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집단지성의 지혜를 쌓을 것입니다. 전문가그룹과 소비자들이 함께 하는 미디어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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