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발밑의 비밀, 서울은 왜 단단할까?
- 102년 만에 완성된 국가기본지질도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에서 출발해 연구자들의 수많은 땀방울을 거쳐, 남한 357개 지역의 땅속 역사와 암석 분포를 담은 정밀한 ‘보물지도’가 완간되었다.
- 복잡하고 역동적인 한반도의 지층 격렬한 지각 변동과 풍화 속에서도 강원도 삼척이나 경기도 연천처럼 수억 년의 시간과 다양한 지질 구조가 좁은 국토에 겹겹이 살아 숨 쉬고 있다.
- 서울을 지탱하는 단단한 뼈대 서울은 20억 년 넘은 편마암 지반 위에 중생대 화강암의 견고한 뼈대가 깊숙이 박혀 있어, 오랜 충격 속에서도 안정적이고 단단하게 지반을 유지해 오고 있다.
지도만큼 세상을 바꾼 지질도
최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국가기본지질도(地質圖) 완간 소식을 알렸다. 지질도는 특정 지역의 땅속 역사와 구조, 암석의 종류, 분포, 생성 시기, 단층·습곡 같은 지질 구조를 색상과 기호로 나타낸 지도를 말한다. 지질연구자들에겐 보물지도 같은 존재다.
지질도는 지도보다 낯설지만 훨씬 중요하다할 것이다. 지질도 제작자인 영국의 윌리엄 스미스(1769-1839)는 낯설지만 지도 제작 이상으로 세계를 바꾸는 지도를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조선시대의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1804?-1866?)는 땅 표면에만 주목해 1861년 대동여지도를 만든 반면, 윌리엄 스미스는 땅속에 주목해 1815년 세계 최초의 지질도를 만들었다. 물론 두 사람의 차이는 개인의 차이 이전에 두 나라의 경제 구조, 산업 발전 단계, 자연에 대한 관점이 다른 데서 비롯되었다.
토지 측량 기사였던 스미스가 만든 지질도는 자국의 산업 혁명에 필요한 자원, 광물 채굴에 활용되는 이점이 알려지면서 전세계로 전해졌다.

수탈의 역사 파묻고 102년만에 완간한 남한 지질도
지난 9월 10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완간한 국가기본지질도는 102년 만의 일이다. 남한 357개 지역의 지질도로 구성되어 있다. ‘완간’이란 표현은 우리의 땅속 구조가 시각적으로 파악되어 관리와 통제의 대상인 영토가 되었음을 뜻한다.
여기서 102년의 의미는 무엇일까? 답을 알려면 일본 메이지 정부(1868-1947)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중앙집권적 독재 권력을 구축한 메이지 정부는 세계 최초로 지질도를 만든 영국이 아닌, 국가 주도의 중앙집권적 시스템을 갖춘 독일로부터 지질학을 배우고 지질도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를 거친 일본은 1918년 우리의 지하 자원을 조직적이고 대대적으로 수탈하기 위해 조선지질조사소를 세웠다. 1920년 이후 한반도 전역의 노두(露頭, 지표에 드러난 암석)를 조사하고 지층을 측량하기 시작해 1924년 처음으로 축척 1 대 50000의 조선지질도를 만들었다.
그 이후 1938년까지 그들은 석탄, 철광석, 텅스텐, 마그네사이트, 금, 구리, 납 같은 조선의 광물들을 수탈해 가는 데 필요한 지침서로 지질도들을 널리 활용했다. 102년이란 수치는 첫 지질도가 나온 1924년에서 2026년까지 걸린 시간을 말한다.
해방 이후 조선지질조사소는 우리의 국토 자원을 연구하는 국립 연구기관으로 흡수·통합된 이래 1981년 현재의 한국지질자원연구원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지질도 제작은 많은 노고와 인내, 전문 역량이 필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1976년 이전까지는 두 사람씩 조를 이뤄 1년에 지도 한 장을 만들기 위해 서울시 면적의 2/3에 해당하는 416㎢(지질도 한 도폭이 포괄하는 면적)의 면적을 다니며 육안으로 보고 망치로 암석을 깨 조사했다.
사유지 무단 침입, 민통선 및 군사 통제구역 진입 등으로 신고당하거나 조사받기도 했고 암석 표본을 넣은 배낭 무게와의 사투, 장비 분실, 야생동물과의 조우, 극한의 기상 조건으로 인한 수난, GPS 수신 불량 등의 다양한 어려움을 겪었음이 이번 완간한 지질도 자료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힘든 현장조사에다 전문 장비까지 총동원
지질상 우리나라는 격렬한 지각 변동을 많이 겪어 지층이 뒤틀리고(습곡), 끊어지고(단층), 뒤집힌(역전) 곳이 많다. 이 때문에 땅속 구조를 연결해 선을 그리기가 매우 어렵다. 약 25억년 전부터의 선캄브리아기 변성암, 고생대 석회암, 중생대 화강암, 제주도, 울릉도, 한탄강 유역의 신생대 화산암까지 좁은 면적에 모든 시대의 암석이 공존한다.
습도가 많은 온대 기후로 인해 암석이 쉽게 풍화되어 흙으로 변하고, 그 위를 수풀과 나무가 촘촘하게 덮고 있다. 노두를 찾아내 망치로 암석을 깨서 얻은 풍화되지 않은 단면을 확대경으로 관찰해 화강암, 편마암, 사암 여부를 판별한다.
육안으로 판별하기 어려울 때는 편광 현미경을 활용한다. 암석을, 빛이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얇은 0.03mm 두께의 박편(薄片)으로 만들어 편광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밖에 없다. 이때 어둡고 칙칙하던 암석은 빛이 물질을 통과함에 따라 두 개의 광선으로 갈라져 굴절하는 ‘복굴절 현상’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분홍, 노랑, 파랑 등 화려한 간섭색이 나타난다. 이 간섭색은 암석의 종류를 판별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특수 장비인 클리노미터(지질 나침반)로 지층이 기울어진 방향(주향과 경사)을 측정해 땅속 지층이 어떻게 휘어지거나 끊어졌는지 파악한다. 또 암석 속에 포함된 극미량의 방사성 원소 비율을 측정하여 암석이 만들어진 시기를 계산한다. 화석을 통해서는 그 지층이 과거 어떤 환경이었고(호수였는지, 바다였는지 등) 어느 시대에 쌓였는지(고생대, 중생대 등) 알아낸다.
깊은 땅속이나 바닷속 등 지표 조사만으로 모두 알 수 없는 곳은 인위적 진동을 가해 되돌아오는 파동을 분석하는 ‘탄성파 탐사’를 하기도 한다. 전기, 자력 탐사 등을 통해서는 병원에서 MRI를 찍듯 지하 깊은 곳의 단층 구조나 암석 경계를 알아낸다.
지하에 구멍을 뚫어 원통 모양 그대로 뽑아낸 암석이나 토양 시료를 보면 직접 볼 수 없는 수백m 아래 지층의 생생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숲이 우거져 접근하기 힘든 지역은 항공사진이나 위성 레이더 영상을 분석하여 파악한다.
지질도는 색깔로 말한다
지질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색상’이다. 화강암류는 마그마의 뜨거운 열과 용암을 직관적으로 연상시키는 분홍색~붉은색으로 표현된다. 퇴적암류는 토양과 사막, 지표면을 연상시키는 갈색~노란색으로, 변성암류는 새로 형성되는 녹색 광물의 이미지와 닮은 연두색~녹색으로 채색된다.
이 밖에 실선, 점선, 숫자도 표시되는데 J(쥐라기), K(백악기), gr(화강암), sh(셰일) 등의 기호도 추가된다.
또 신생대는 노란색 계열로, 중생대는 녹색 계열로, 고생대는 파란색, 보라색, 회색 계열로, 선캄브리아 시대는 갈색, 분홍색, 붉은색 계열로 표현된다. 선캄브리아 시대는 PCE(Precambrian), 고생대 페름기는 P, 석탄기는 C 등으로 표시하고 채색된다. 영문 약자가 추가된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 만드는 지질도에는 지질 역사, 암석 분포의 복잡함의 정도 등이 한눈에 드러난다.

한국의 특징적인 지질 세 곳
강원도 삼척, 경기도 연천, 서울은 그런 차이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특징적인 세 곳이다.
강원도 동해안 최남단의 삼척은 약 25억년 전~5억 7천만년 전의 거대 변성암·화강암 덩어리인 영남 지괴(땅덩어리)와, 중부지역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옥천대(沃川帶)라는 퇴적분지의 경계에 자리해 대륙 충돌 등의 강한 지각변동을 많이 받아 지질 구조가 대단히 복잡하다. 석회암, 사암, 셰일, 편마암 등 다양한 암석을 볼 수 있다.
경기도 중서부의 최북단 연천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밀고, 잡아당기고, 밀고, 옆으로 비벼지는 등 네 차례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 지금의 독특한 지질 구조를 갖게 되었다. 선캄브리아기 변성암류, 고생대 변성퇴적암, 화성암, 중생대 퇴적암, 화산폭발로 분출한 고체 파편 물체들이 지표면에 쌓여 굳어 만들어진 화산쇄설암, 신생대 제4기 현무암 등 다양한 암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서울 땅밑이 안정적인 단순한 이유
수도 서울은 북동부에 북한산에서 북악산에 이르는 산맥이 뚜렷하게 솟아 있고 중앙부에 한강이 북서 방향으로 흐른다. 동부는 장년기 지형이고 서부는 노년기 지형이다. 이곳에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주변 땅은 평평하게 깎여 나갔지만 단단하고 침식에 강해 깎이지 않고 평지에 홀로 남은 언덕이나 산을 볼 수 있다.
선캄브리아기 편마암류와 이들을 뚫고 들어온 중생대 화강암류, 비교적 최근인 신생대 제4기에 강/ 하천 등에 의해 깎여 내려온 흙, 모래, 자갈이 강 주변이나 하구에 쌓여 만들어진 퇴적층이 자리한다.
20억년 이상 된 단단한 편마암 지반 위에 중생대의 견고한 화강암 뼈대가 지하 깊숙이 박혀 있었기에 수억년 전 큰 충격이 가해지는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이고 단순하게 남았다. 서울의 이 안정적인 단순함은 삼척 및 연천의 복잡함과 크게 대비된다.
국가기본지질도는 건축물이나 도로를 짓거나 건설하기 전 땅을 파도 괜찮은지를 확인하는 기초 자료, 지질 위험 지역을 분류하는 기준, 에너지와 광물 자원의 매장 여부를 예측하는 지도, 연구용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것이다.
현재 지질도의 3D 자료화도 추진되고 있다. 누구나 자기가 사는 곳 발 아래의 암석과 지층, 구조 등을 입체적이고도 업그레이드 된 형태로 조망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제작 및 활용 양면에서 새 시대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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