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문’ 앞에서 눈이 내리면…생명일까
[지질해설가 박태웅의 지구 속 이야기] 바다 눈에서 심해 열수구까지... 판구조론이 던진 생명 기원의 수수께끼
- 밤하늘 닮은 어둠의 심해저 1930년대 윌리엄 비브와 레이첼 카슨은 칠흑 같은 심해를 별빛 반짝이는 공간으로 묘사하고 표층의 유기물 낙하를 ‘바다 눈’이라 부르며 바다를 모든 것을 감싸 안는 ‘생명의 어머니’로 추정했다.
- ‘지옥의 문’과 혹독한 생태계의 발견 1977년 탐사선 앨빈호는 생명이 없을 거라 믿었던 해령의 차가운 열곡에서 400도에 달하는 뜨거운 물을 뿜어내는 ‘지옥의 문’ 열수구를 발견하고, 화학합성으로 자생하는 독자적인 생태계를 목격했다.
- 원시 지구의 수수께끼가 남긴 생명의 기원 극한의 어둠과 유독한 환경 탓에 열수구 주변은 한때 40억 년 전 원시 지구의 ‘생명 탄생 기원지’로 추정되었으나 과학적 반박에 부딪혔고, 우리는 “진짜 생명의 고향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의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바다 속에도 눈이 내리네’
1934년 미국의 해양생물학자 윌리엄 비브(William Beebe; 1877~1962)는 『반(半) 마일 아래』란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비브 교수가 심해 잠수구(潛水球)인 배시스피어(Bathysphere)를 타고 버뮤다 제도 앞바다를 탐험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책은 문학적 표현이 두드러졌다.
당시 비브 교수가 세운 잠수 깊이는 반 마일(800m)보다 100여m 깊은 908m였다. 책에서 그는 발광(發光) 생물들이 여기저기에서 차가운 ‘생물학적 빛’을 내는 심해의 모습을 드문드문 별빛이 반짝이는 밤하늘에 비유했다. 또 바다 표층으로부터 유기물, 해양 생물들의 배설물, 사체 찌꺼기들의 결합체가 심해로 내리는 것을 ‘바다 눈’(Marine Snow)이라 명명했다.
‘바다 눈’은 생물들의 먹잇감이지만 다른 의미에서 중요한 존재다. 그것은 식물성 플랑크톤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후 배설물, 사체 등으로 이루어진 결합체의 형태로 심해에 가라앉으면서, 탄소가 장기간에 걸쳐 격리되거나 심해에서 새롭게 구성되기 때문이다.
당시 비브 교수의 탐험 목적은 생명의 기원 자체보다 심해 생태계와 자연사 관찰에 있었다. 그는 바다를 생명의 기원과 관련해 연구하지는 않았으나, 심해 생물들의 기이한 생태계를 전하면서 생명 다양성과 진화 과정을 상상하는 데 큰 영감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혹시 바다가 생명의 기원지가 아닐까
바다를 생명의 기원과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았던 윌리엄 비브 교수와는 달리, 비슷한 시기를 살았지만 초점이 달랐던 인물이 『우리를 둘러싼 바다』의 저자인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Rachel Louise Carson; 1907~1964)이다.
카슨은 이 책에서 첫 문장부터 아름다운 문학적 감수성을 보여주었다. “모든 시작은 어슴푸레하기 마련이며, 생명의 위대한 어머니인 바다의 시작 또한 그러하다”는 첫 문장으로 책은 시작된다.
카슨 교수는 바다를 모든 것을 제공하고 감싸주는 어머니 공간으로 표현했다. 구체적으로는 심해(深海)를 변화가 아주 느리게 일어나는 곳으로, 해저(海底)를 대륙을 이루는 물질과 마찬가지로 맨틀을 덮고 있는 얇은 지각으로 서술했다.
그는 해령(海嶺)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해령 전체는 거대한 힘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겨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곳이라 했다.
해령은 ‘판구조론’에서 말하는 중요한 해저 지형 가운데 하나다. 두 개의 판이 서로 멀어지는 확장 경계에서 해양판(해양 지각 + 상부 맨틀 최상부)이 멀어질 때 맨틀 상승부의 마그마가 솟아올라 새로운 판이 만들어지고 해저가 넓어진다.
확장 경계의 중심부에서 맨틀의 상승류가 해양판을 들어올리는 일이 발생한다. 그 결과 높아진 해저 지형을 ‘바다의 고개’란 뜻의 해령이라 부른다. 해령은 해양판이 들어올려진 곳이기에 해수면 아래 2500~ 2600m 깊이에서 발견된다.
해령은 해수면을 기준으로 4000~ 6000m 깊이에 자리하는 심해 평원과 대비된다. 해령은 뜨거워서 솟아오른 곳이고, 심해 평원은 식어서 가라앉은 곳이다. 그런데 둘의 관계는 밀접하다.
해령에서 만들어진 해양판은 새로운 해양판에 밀려 중심에서 멀어지며 냉각됨에 따라 무거워져 심해 평원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해양판 자체가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처럼 움직인 결과다.
사람이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널 경우 사람은 지각에 비유되고 뗏목은 상부 맨틀에 비유된다. 사람과 뗏목이 같이 움직이는 것처럼 지각과 상부 맨틀도 같이 움직인다. 지각과 상부 맨틀을 묶어 판이라 부른다. ‘지각구조론’이라 하지 않고 ‘판구조론’이라 하는 이유는 지각과 상부 맨틀이 함께 이동하기 때문이다.

생명은 ‘지옥의 문’ 앞에서 태어났을까
1977년, 지구화학자와 지질학자들로 구성된 우즈홀 해양연구소 과학자들이 미국의 잠수정 앨빈(Alvin)호에 승선해 심해 탐사에 나섰다. 해저 열곡(裂谷)을 따라 일어나는 지질학적 현상 및 해양 지각의 열 흐름을 감지하기 위한 탐사였다.
그들은 심해저가 차갑고 황량하며 빈 영양 상태이기에 생태계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이런 이유로 당시 앨빈호에는 생물학자가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생태계는 물론 주변의 차가운 심해 수온과 다른 급격한 온도 상승 현상이 목격되었다.
바로 지하로부터 뜨거운 물과 기체가 솟아나오는 굴뚝형 구멍인 ‘열수구’(熱水口)다. 태평양 동부 갈라파고스 섬 인근의 한 해령에서였다. 해령의 구조 가운데 중요한 것은 중심부에 열곡(裂谷)이 있다는 점이다.
열수는 바닷물이 이 열곡 아래에 자리하는 분화구와 약간 다른 주위의 갈라진 틈새로 ‘10 ㎞’까지 스며든 뒤 마그마 때문에 뜨거워진 암석에 닿아 데워지면서 만들어진다. 스며들었던 물은 지각의 약한 틈으로 솟구친다. 가열이 계속되어 바닥의 물이 임계 온도에 도달하면 증기 팽창 현상이 생기고 그 결과 틈새 상부의 일부 물이 밖으로 밀려 넘친다.
당시 열수구 발견자들은 350~400℃의 극도로 높은 수온과 유독성 금속 성분, 칠흑 같이 어두운 환경 등을 보고 열수구를 ‘지옥의 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몇 년이 지나 관련 과학자들은 열수구 주변의 관벌레, 대합, 게 등의 생명체들이 ‘황화수소’를 에너지원으로 화학합성을 하는 박테리아에 의존해 살아가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이에 따라 열수구는 ‘생명 탄생의 기원지’로 추정되기에 이르렀다. 화학합성이란 햇빛이 비치지 않는 극한 환경에서 미생물들이 무기화학 물질을 산화시켜 유기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검은 바다굴뚝, 흰 바다굴뚝
열수구는 뜨거운 바닷물 속에 금속이 용해되었다가 솟아나는 과정에서 차가운 물을 만나 가라앉아 층을 이루며 쌓이는 모습에 따라 ‘블랙 스모커’와 ‘화이트 스모커’로 나뉜다.
350~400℃에 이르는 초고온의 열수가 나오는 ‘블랙 스모커’는 검은 연기처럼 보이는 입자를 내뿜는다. 블랙 스모커라 불리는 것은 금속들이 온도와 압력 변화에 따라 순차적으로 침전되는 모습이 짙은 검은색 연기가 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구리, 황화철, 아연, 금, 은 등이 침전된다.
블랙 스모커 발견 이후 2년이 지난 1979년 앨빈호는 태평양 해령 탐사중 ‘화이트 스모커’도 발견했다. 당시 우즈홀 해양연구소는 1977년의 예상밖 교훈에 다수의 생물학자를 참여시켰다.
블랙 스모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인 100~300℃의 열수가 나오는 ‘화이트 스모커’는 흰 연기처럼 보이는 입자를 내뿜는다. 이는 열원(熱源)인 마그마방에서 상대적으로 멀거나 물이 어느 정도 식은 채 올라오기 때문인데, 블랙 스모커에 비해 크기가 작고 덜 촘촘한 흰색이나 밝은색의 굴뚝 같은 구조다. 이곳에서는 바륨, 칼슘, 실리콘 등이 침전된다.
블랙 스모커와 화이트 스모커에서 분출하는 열수는 상상할 수 없이 높은 수압에 따라 수증기가 되지 않고 액체 상태가 유지된다.
블랙 스모커와 화이트 스모커 이론 진영은 모두 빛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는 해저 지각 틈새 등의 심해 환경을 ‘생명의 기원지’로 추정했었다. 극한의 어둠, 극도로 높은 온도와 압력, 유독(有毒)한 환경이 생명체가 탄생한 약 40억 년 전의 원시 지구 환경과 비슷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되돌아온 질문, 생명은 어디서 왔나
‘했었다’는 과거완료형의 말을 하는 이유는 열수의 300°C가 넘는 수온은 생명체의 기초가 되는 유기 분자가 합성되자마자 파괴될 가능성이 큰 온도이고, 강산성을 띠고 있어서 초기 생명체가 껍질이나 막을 형성하는 구조를 유지하기 어렵고, 화산 활동에 의존하기 때문에 수명이 짧아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주장에 의해 반박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단계를 거쳐 열수구 주변은 생명이 최초로 만들어진 기원지가 아니라고 정의되었다. 특별하고 다양하게 진화한 생물종들이 지구 내부의 열과 화학 에너지를 이용해 화학합성을 하며 혹독한 환경을 삶의 터전으로 개척해낸 ‘독자적 생태계’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잠정적 결론이다.
그럼 생명이 기원한 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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