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온도가 ‘계급’이 되어서는 안 된다

[홍정민의 ‘경제정치를 읽어드립니다’] 겨울 한파에 고환율로 인한 고유가 공포 난방 위해 아침식사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합의통과된 내년 예산 ‘에너지 복지’는? 에너지 바우처制, 현장에 맞게 개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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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Heat or Eat처럼?

“오늘 아침, 당신의 보일러 설정 온도는 몇 도였습니까? 누군가에게 이 질문은 단순한 숫자를 묻는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슴 서늘한 ‘계급’을 묻는 질문이 됩니다.“

2025년의 마지막 달, 거리가 얼어붙고 있다. 단순한 계절의 변화 때문만이 아니다. 경제 지표가 가리키는 숫자들이 매서운 한파보다 더 차갑게 서민들의 삶을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30일, 전국의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ℓ)당 1,746.56원을 기록했다. 이는 2023년 10월 이후 2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불과 5개월 전보다 7% 이상, 금액으로는 120원 가까이 뛰었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폭 축소(10%→7%)에 고환율(1,470원 선)과 국제유가 상승이라는 악재가 겹친 탓이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고유가와 고환율이라는 전형적인 ‘이중고(二重苦)’에 갇혀 버렸다.

차를 몰고 출퇴근하는 시민들은 주유소 가격표 앞에서 한숨을 쉬지만, 더 큰 공포는 집 안으로 밀려오고 있다. 휘발유 가격의 급등은 곧 난방용 등유와 LNG 가격의 연쇄 상승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영국에는 ‘히트 오어 잇(Heat or Eat)’이라는 서글픈 경제 용어가 있다. 겨울철 에너지 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치솟으면, 저소득층은 ‘난방(Heat)’을 위해 ‘식사(Eat)’를 포기하거나, 반대로 밥을 먹기 위해 추위에 떨어야 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다는 뜻이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조차 에너지 빈곤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프랑스 역시 이를 막기 위해 ‘에너지 수표(Chèque énergie)’를 발행해 가계 소득에 따라 난방비를 직접 지원한다. 에너지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기본권’임을 국가가 인정한 것이다.

겨울철에 닥친 고환율의 고물가

지금 우리도 이 ‘히트 오어 잇’의 딜레마가 현실화되고 있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에너지 가격 급등은 가장 나쁜 형태의 ‘역진세(Regressive Tax)’다. 부유층에게 가스비 인상은 통장 잔고의 미미한 숫자 변화에 불과하지만, 서민에게는 생존의 위협이 된다. 소득이 적을수록 가계 지출에서 에너지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시장 논리에만 맡겨둔다면, 올겨울 우리는 돈이 없어 냉골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이웃들의 비극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국회에서 심의해 통과된 ‘2026년도 예산’의 방향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재명 정부는 기존의 ‘건전 재정’ 기조에서 탈피해 다른 복지예산과 함께 ‘에너지 기본권’도 재정 운용의 상수로 두었다는 점이다. 예산에 포함된 ‘에너지 바우처 확대’는 단순한 시혜성 복지가 아니다.

에너지와 같은 필수재 가격이 급등할 때 재정이 역할을 하지 않으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경기 침체와 가계 부채 증가라는 더 큰 청구서로 돌아오게 된다. 에너지 비용으로 가처분 소득이 증발하여 소비가 얼어붙는 ‘내수 절벽’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은 경제 논리상 타당하다. 이는 정치적 구호를 넘어선, 거시경제 운용의 필수 전략이다.

다행스런 예산안 통과...에너지 복지는

국가 재정의 존재 이유는 국민이 감당할 수 없는 외부 충격이 닥쳤을 때 ‘최후의 보루’가 되어주는데 있다. 다행히 12월 2일, 여야가 예산안 처리 시한에 맞춰 극적으로 합의를 이뤘다. 이는 5년 만의 법정시한 준수다. 이번 합의안에는 도시가스 공급 배관 설치 지원을 늘리고 지역사랑상품권 등 민생 예산을 지켜내는 등 한파에 떠는 서민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예산 통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착시 현상과 싸워야 한다. 시중에는 “환율이 오르면 수출 기업에 유리하니 경제에 좋은 것 아니냐”는 안이한 인식이 여전히 존재한다. 사람들의 눈과 귀가 온통 주가 지수의 등락과 수출 대기업의 실적에만 쏠려 있는 탓이다.

그러나 ‘1,470원대 고환율’이 가리키는 진짜 공포는 주식 시장이 아니라 우리네 부엌과 보일러실에 있다. 에너지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에서, 고환율은 곧 ‘수입 물가 폭등’을 의미한다. 겨울철 전력과 난방 수요가 폭증하는 시기에 겹친 고환율과 고유가는 서민 가계에 징벌적 세금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이번에 확정된 예산이 현장에서 어떻게 집행되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에너지 바우처’의 보급 방식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한국에너지공단과 울산 울주군청, 하나은행, (사)에너지사랑(회장 유제혁)이 함께 한 ‘에너지바우처 돌봄서비스’ 사랑나눔 활동.
한국에너지공단과 울산 울주군청, 하나은행, (사)에너지사랑(회장 유제혁)이 함께 한 ‘에너지바우처 돌봄서비스’ 사랑나눔 활동.

현장에 맞는 에너지복지 펼치길

첫째, ‘찾아가는 바우처’가 되어야 한다. 정보 접근성이 낮은 독거노인이나 쪽방촌 주민들이 복잡한 서류를 들고 주민센터를 찾아가 신청해야만 혜택을 주는 ‘신청주의’ 방식은 이 비상시국에 맞지 않는다. 실제 2023년말 기준, 지원 대상 202만 가구 중 약 50만 가구가 난방비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다. 지원 예산 1조2000억원 가운데 6,000억원이 쓰이지 못한 것이다. 사각지대는 지원 대상 가구가 신청해야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적 한계로 발생했다. 한전이나 가스공사의 데이터와 연동해 에너지 빈곤층의 에너지 요금에서 바우처 금액만큼을 자동으로 선차감하는 ‘자동 삭감(Auto-Deduction)’ 방식을 전면 도입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지원의 폭을 ‘차상위’ 이상으로 넓혀야 한다. 기초수급자뿐만 아니라, 고물가로 인해 급격히 빈곤해진 ‘에너지 취약계층’까지 포괄해야 한다. 프랑스의 ‘에너지 수표’처럼 소득 구간별로 차등을 두더라도 지원 대상을 최대한 넓혀, 돈이 없어 냉골에서 잠을 청하는 이웃이 없도록 해야 한다.

보일러 온도가 계급을 나누는 서글픈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여야가 모처럼 손을 맞잡고 통과시킨 2026년도 예산이, 서류상의 숫자를 넘어 고유가 한파에 떨고 있는 이웃들의 안방을 덥히는 실질적인 온기로 전달되기를 기대한다. 따뜻할 권리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누려야 할 최소한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홍정민 전 국회의원

홍정민은 경제학 박사, 변호사, 기업인 출신 정치인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취득했으며, 제5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경제 및 금융 분야를 연구했다. 이후 AIT 주식회사를 창업하여 대표이사로 활동하며 벤처기업인의 길을 걸었다. 2020년 더불어민주당의 6호 영입인재로 정계에 입문하여, 같은 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 고양시 병 지역구에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재임 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과 정책위원회 부의장 등 주요 당직을 맡았으며, 국회에서는 주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 경제 및 첨단산업 분야에서 활동했다. 현재는 법무법인 대표변호사, 세종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경제 현안을 다룬 『홍정민의 경제를 읽어드립니다』, 『대한민국 코너스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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