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미움받을 용기’로 지방 가자

[홍정민의 ‘경제정치를 읽어드립니다’] 수도권 성장의 ‘비법’이 ‘비용’된 시대 미·영·독·프 지역경제 분산사례 ‘모범’ “지역이 미래”...이젠 수도권 밀집 안돼! 반도체 단지, 나라미래 위해 호남으로 정부, 욕먹을 각오하고 지방에 올인하자

인구과밀과 아파트 과밀로 포화상태에 이른 서울.
인구과밀과 아파트 과밀로 포화상태에 이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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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새해 벽두부터 대한민국 행정 지도가 요동치고 있다. 대전과 충남이 36년 만에 다시 하나가 되기로 했고, 광주와 전남 역시 행정통합의 급물살을 탔다. 단순한 ‘합치기’가 아니다. 지난 1월 21일, 이재명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지방주도 성장은 더 이상 ‘배려’가 아닌 대한민국 생존을 위한 유일한 ‘성장 전략’”이라고 못 박았다. 정부는 이들에게 연방제 수준의 파격적인 권한과 재정 인센티브를 약속했다. 왜 지금일까? 경제학의 답은 명쾌하다.

성공의 역설: 집적의 이익에서 ‘불경제’로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규모의 경제’나 ‘집적의 이익’이라는 말은 한두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학에는 이와 대비되는 냉혹한 원리가 하나 더 존재한다. 바로 ‘한계생산 체감의 법칙’이다. 투입을 늘려도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산출의 증가 폭이 줄어들고, 결국 비용이 이익을 앞지르기 시작한다는 법칙이다.

대한민국은 지난 60년간 수도권 집중을 통해 성장해왔다. 자본이 부족했던 시절, 인프라를 한곳에 몰아넣은 것은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2024년 기준 국토의 11.8%인 수도권에 인구와 GDP의 절반 이상이 쏠린 지금, 상황은 반전됐다.

이제 수도권은 투입을 늘려도 산출보다 비용(주거비, 혼잡비용, 스트레스)이 더 커지는 ‘집적의 불(不)경제’ 구간에 진입했다. 매일 아침의 지옥철과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 그 증거다. 과거 성장의 비법이었던 ‘집중’이 이제는 국가의 숨통을 조이는 ‘비용’이자 ‘경로 의존성’의 덫이 된 것이다.

각자도생은 필패...‘체급’을 키워라

반면 지방은 생산성을 내기 위한 최소한의 ‘규모’조차 확보하지 못한 곳이 많고, 인재와 기업을 담기에 개별 도시는 작다. 해법은 명확하다. 흩어진 점들을 이어 ‘면’을 만드는 것이다.

미국 텍사스는 오스틴(IT)-휴스턴(에너지)-댈러스(금융)를 잇는 ‘트라이앵글 초경제권’을 구축해 지난 20년간 미국 연평균의 2배에 달하는 성장률을 보이며 GDP가 한국 전체에 육박(1.85조 달러)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프랑스 역시 2014년 ‘메트로폴 법’을 통해 리옹 등에 전권을 부여하며 파리 일극 체제를 극복했다.

프랑스의 신규 메트로폴(Métropole) 현황.
프랑스의 신규 메트로폴(Métropole) 현황.

이들 사례가 주는 교훈은 ‘다발 엔진’이 ‘단일 엔진’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례는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우리의 지방주도성장에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정부가 대전-충남, 광주-전남 통합 모델에 약속한 ‘파격적 인센티브’는 사실상 한국판 ‘메트로폴 법’의 서막이다. 단순한 행정 구역의 통합을 넘어, 라이프 권역과 경제 권역을 일치시키고 그에 걸맞은 실질적 권한(예산, 도시계획권 등)을 쥐어주는 것. 이것이 52%가 쏠린 수도권 일극 체제를 깨트릴 유일한 ‘망치’다.

미국 텍사스와 프랑스 리옹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핵심 시사점은 ‘각자도생은 필패’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중앙정부가 내려주는 예산을 잘 따내는 것이 관건이었다면, 이제는 지역 스스로가 성장의 엔진을 돌릴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 체급(Critical Mass)’을 확보해야 한다.

최근의 통합 논의가 반가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전의 과학기술(두뇌)과 충남의 제조기반(근육)이 행정장벽 없이 결합한다면, 기업은 R&D부터 생산까지 원스톱 생태계를 누릴 수 있다. 광주와 전남이 합쳐지면 에너지 밸리와 AI 융합 단지가 하나의 거대 시장으로 묶인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이 말하는 ‘범위의 경제’이자, 중앙의 수혈 없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자생적 체급’의 완성이다.

전환의 진통: ‘현재’의 효율 vs ‘미래’의 생존

물론 장밋빛 청사진만 있는 것은 아니다. ‘1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는 막대한 ‘전환 비용(Transition Cost)’과 사회적 갈등이 수반된다. 이미 모든 인프라가 갖춰진 수도권의 효율성을 포기하고, 지방에 새로운 판을 까는 것은 당장에는 비효율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픽= 연합뉴스
그래픽= 연합뉴스

최근 논란이 된 ‘호남 반도체 특화단지’ 전환 문제는 이러한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용인 클러스터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인프라가 부족한 호남으로 분산하는 것은 중복 투자이자 비효율”이라며 날선 비판을 제기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당장의 투자 수익률(ROI)과 막대한 매몰 비용(Sunk Cost)만 따진다면, 이미 생태계가 구축된 수도권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여기서 우리는 냉정한 선택을 해야 한다. ‘수도권’은 현재의 먹거리이자 효율이다. 하지만 ‘지방’은 미래의 생존이자 보험이다. 당장의 효율을 위해 수도권 과밀이라는 시한폭탄을 계속 안고 갈 것인가, 아니면 막대한 초기 전환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다극 체제로 갈 것인가.

독일과 영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통일 직후 독일은 행정 수도를 본(Bonn)에서 베를린으로 옮기고, 낙후된 구 동독 지역을 재건하기 위해 막대한 ‘연대세 (Solidaritatszuschlag)’를 걷으며 천문학적인 전환 비용을 치렀다. 당시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난이 빗발쳤지만, 그 결과 독일은 현재 베를린(스타트업·문화), 프랑크푸르트(금융), 뮌헨(제조·과학) 등 전역이 고르게 발전한 다극 체제를 완성했다.

영국 역시 런던 집중을 해소하기 위해 공영방송 BBC를 맨체스터(샐퍼드)로 강제 이전하는 등 ‘고통스러운 분산’을 감내하며 ‘북부의 경제 엔진(Northern Powerhouse)’을 재가동하고 있다.

5극3특 국가균형성장 추진전략 설계도안. 자료제공=지방시대위원회
5극3특 국가균형성장 추진전략 설계도안. 자료제공=지방시대위원회

결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골든타임

결국 해법은 ‘이원화 전략(Two-track Strategy)’이다. 수도권은 이미 갖춰진 인프라를 바탕으로 고도화하되, 더 이상의 양적 팽창은 억제해야 한다. 대신 국가의 새로운 자원은 과감히 지방 거점에 투입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호남 반도체 단지 논란에서 보듯, 지방으로의 전환은 필연적으로 비효율과 갈등을 동반한다. 하지만 그 ‘불편한 비용’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소멸을 피하고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지불해야 할 ‘미래를 위한 보험료’다.

지금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지방은 소멸하고 수도권은 터져버린다. ‘지방주도 성장’이 단순한 정치적 레토릭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정부는 욕먹을 각오로 ‘미움받을 용기’를 보이자.

글쓴이

홍정민 전 국회의원

홍정민은 경제학 박사, 변호사, 기업인 출신 정치인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취득했으며, 제5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경제 및 금융 분야를 연구했다. 이후 AIT 주식회사를 창업하여 대표이사로 활동하며 벤처기업인의 길을 걸었다. 2020년 더불어민주당의 6호 영입인재로 정계에 입문하여, 같은 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 고양시 병 지역구에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재임 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과 정책위원회 부의장 등 주요 당직을 맡았으며, 국회에서는 주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 경제 및 첨단산업 분야에서 활동했다. 현재는 법무법인 대표변호사, 세종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경제 현안을 다룬 『홍정민의 경제를 읽어드립니다』, 『대한민국 코너스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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