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왜 대학농구에 미칠까

[정규수의 스포츠 깊게 바라보기] 미국 3월 대학농구에 전역이 ‘광란’ 직장, 정치인들 모두 승패 점치며 내기도 출신지·졸업대학 통해 ‘자기 정체성’ 확인 시합마다 브랜드화, 유치도시戰도 치열 한국 신임회장, 대학농구 전성기 찾아주길

2025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플로리다 대학교 농구팀.
2025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플로리다 대학교 농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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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옛날이여~ 대학농구 전성시대

유승민 회장은 ‘대이변’이라는 평과 함께 대한체육회의 수장이 되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85.7%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4선 연임에 성공했다. 지난 몇 달간 이 두 체육회장 선거는 대한민국 체육 행정과 관련한 모든 이야기를 빨아들였다. 주목은 못 받았지만 새롭게 당선된 또 다른 체육회장이 있다. 지난 2월부터 업무를 시작한 한국대학농구연맹 김양구 회장이다.

김양구 회장은 배구 선수 출신이다. 스포티즌 본부장과 세마 스포츠 부사장을 거쳐 현재는 스포츠 서비스 회사 비욘드더스포츠 대표이사로서 스포츠 마케팅 현장 전문가이다. 선거에서 김양구 회장은 서울 SK(당시 청주 SK) 코치와 연세대학교 농구부 감독까지 역임한 박건연 후보자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축적된 스포츠 마케팅 실무 경험이 침체된 대학농구에 활력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비농구인인 김양구 회장을 선출한 것이다. 그만큼 대학 농구는 절실했던 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90년대 한국대학농구의 폭발적인 인기를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입장권 예매 시스템조차 없었던 그 때 잠실 학생 체육관에서 열리는 ‘농구대잔치’ 대학 경기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던 오빠 부대는 하나의 문화였다. 유튜브의 빛바랜 영상으로만 볼 수 있는 그때 대학농구 경기장의 함성은 30년이나 지난 최근 대학농구의 텅빈 관람석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3월의 광란’ 미국인은 왜 미칠까

지난 3월 말 미국은 ‘3월의 광란(March Madness)’으로 뜨거웠다. 3월의 광란이란 매해 3월 중하순부터 4월 초까지 약 3주에 걸쳐 펼쳐지는 미국 대학농구 토너먼트를 칭하는 용어이다. 광란이라고? 그렇다. 3월 미국 대학농구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과 애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다. 졸업한 대학 농구팀이나 고향에 있는 대학 농구팀들에 대한 소소한 내기도 하고 우승 예상팀에 대한 얘기는 미국 직장의 단골 점심 메뉴이다. 심지어 업무 이메일에 자신의 팀의 승리를 자랑하고 라이벌 동료가 응원하는 팀의 패배를 놀리기도 하는 등 3월의 광란은 미국 전체의 문화 축제이다.

실제로 필자의 연구실이 있는 복도에도 교수들이 수작업한 3월의 광란 대진표(Bracket)를 걸어놓고 개인 연구실 문에 대진표를 붙여 놓기도 한다. 대학 농구팬으로 유명한 오바마 전 대통령은 그의 재단 홈페이지에 그가 예측하는 2025년 대진표를 공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진표에 관한 기자 질문에 “만들지는 않았지만 진작에 만들었어야 했다”라고 답했다. 이 정도면 광란이 맞다.

'3월의 광란'을 불러온 2025년 미 남자대학농구 대진표
‘3월의 광란’을 불러온 2025년 미 남자대학농구 대진표
남자 대회 못지않게 인기가 높은 여자대학농구의 대진표.
남자 대회 못지않게 인기가 높은 여자대학농구의 대진표.

미국인들의 3월 대학농구 사랑은 단순히 농구 경기 때문만은 아니다. 농구 경기 그 이상의 뭔가가 있는데, 바로 미국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3월의 광란은 단기간에 각 대학팀들이 승패를 겨루는 토너먼트로 철저한 ‘실력 위주’로 희비가 엇갈린다. 이는 경쟁을 통한 승리를 지향하는 미국인들의 가치와 잘 맞아 떨어진다.

경쟁에 대한 미국인들의 믿음은 비록 흙수저라도 이기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소위 ‘아메리칸 드림’과도 연결된다. 비록 사회 양극화로 인해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3%가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의 가능성을 믿는다고 했다. 또한 3월의 광란은 늘 신데렐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소위 듣보잡 팀이 전통의 엘리트 팀을 이기거나 굉장한 선전을 했을 경우 느낄 수 있는 희열(underdog effect)을 미국인들은 사랑한다. 즉, 3월의 광란은 미국인들이 추구하는 경쟁에 대한 가치를 잘 투영해주는 거울인 것이다.

2010년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대학농구 예상 대진표를 만들어 보여주고 있다.
2010년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대학농구 예상 대진표를 만들어 보여주고 있다.

대학농구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이벤트

농구 경기 그 이상의 또 다른 것은 바로 ‘정체성’(identity)이다. 최근 들어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단일 민족국가인 한국에서는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이 어느정도 정형화되어 있다. 하지만 다양한 인종이 각자의 문화와 풍습을 가지고 살아가는 미국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으며 상황과 환경에 따라 그 정체성은 수시로 변한다. 미국 내 한인 이민자 가족의 자녀들이 스스로를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고민하면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미국인들에게 자신이 공부했던 대학이나 고향에 있는 대학은 정체성을 잡아주는 무게추 역할을 한다. 짧은 미국 역사에서 옛날부터 존재하는 각 지역의 대학들은 부모가 다닌 대학을 자녀들도 다니는 가족 정체성을 만들어준다. 지역 대학교들마다 나타내는 지역성 또한 미국인들의 정체성을 형성해준다. 즉, 우리가 한민족 정체성으로 국가 대표 경기를 응원하듯 미국인들은 3월의 광란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투영된 대학팀들의 농구 경기를 열렬히 응원하는 것이다.

미국인들의 이러한 가치를 더욱 자랑스럽게 해주는 것은 ‘3월의 광란’ 브랜드화라 할 수 있다. 3월의 광란은 영어로 March Madness인데 두 단어의 첫 알파벳을 같은 M으로 사용해서 귀에 착착 감기면서도 다양한 상품화가 가능하도록 브랜딩한 것이다. 이런 브랜딩 방법으로 16강전은 Sweet Sixteen, 8강전은 Elite Eight, 4강전은 Final Four로 고유 명사화해서 마케팅 활동에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했다.

미 대학농구 Final Four 로고.
미 대학농구 Final Four 로고.

스포츠시합을 대대적인 관광이벤트로

무엇보다 Final Four부터는 유치 도시를 선정해 관광 산업과 연계한 스포츠 축제의 형태로 치뤄진다. 올해 2025년에는 유명 관광 도시인 텍사스의 샌 안토니오에서 남자부 Final Four 경기들이 4월 5일부터 열렸으며 미국 전역의 관광객들이 모여들었다. 미국의 각 도시들간 Final Four 유치전이 치열한데 2031년까지 유치 도시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한국 대학농구의 침체에 대해서는 프로 농구와의 분리로 인한 실력 저하, 대학스포츠협의회의 탄생으로 인한 대학농구연맹의 수익 구조 및 방송권 변화, 농구 경기 전략의 변화로 인한 터프한 플레이 부재 등 여러 이유가 제기되고 있다. 유명 가수 콘서트보다도 인기가 많았던 90년대 대학 농구는 오빠 부대의 문화 콘서트장이었다.

오빠 부대는 90년대 들어 본격적인 문화 자본화가 시작되면서 십대들이 보다 능동적인 소비 주체로 거듭나면서 만들어진 팬클럽이었다. 80년대 미국에서 마이클 조던이라는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가 탄생한 것도 그의 화려한 농구 기술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다른 흑인 농구 선수들과는 구별되는 조던의 깔끔한 이미지와 정제된 언론 인터뷰 등이 높은 소비력을 갖춘 미국 중산층 백인 남성들에게 흑인 선수에 대한 마음의 벽을 녹였기 때문이다.

침체된 한국 대학농구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흐름을 잘 읽고 그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 뛰어난 마케팅 기법으로 단기적 홍보 효과를 거둘 수는 있겠지만 문화 컨텐츠가 매일 쏟아지는 요즘에는 그런 효과는 금방 사라질 것이다. 미국 대학농구 ‘3월의 광란’은 스포츠 그 이상의 문화 상품이다. ‘팬 퍼스트 마케팅’을 내세우고 있는 한국대학농구연맹 김양구 회장이 스포츠 경기가 스포츠 그 이상의 것을 담을 수 있었을 때 성공했던 사례들을 살펴보길 부탁한다. 90년대 대학 농구 어게인을 희망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글쓴이

정규수 미 케네쎄대 스포츠경영학 교수

정규수 교수는 현재 미국 케네써 주립대학교 스포츠 경영학과에 재직 중이다.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졸업 후 미국 센트럴 미시건대학교에서 스포츠 행정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텍사스(어스틴) 대학교에서 스포츠 경영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한인 이민자들의 스포츠 활동을 주로 연구하며 미국 및 한국에서 일어나는 스포츠 현상들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을 통해 경영관리적인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노력한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시안계 운동선수들을 바라보는 미국 주류 사회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중이다. 학술 활동 이외에도 미주 한인 동포 사회를 위한 한인 스포츠 단체들의 활동에도 적극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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