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축구하는 조선족 동포들

제 2회 뉴욕 조선족 축구대회에서 조선족 동포들이 개막공연을 하고 있다.
제 2회 뉴욕 조선족 축구대회에서 조선족 동포들이 개막공연을 하고 있다.
  • 뉴욕 조선족 공동체의 급성장 뉴욕·뉴저지 지역에 거주하는 4만~5만 명의 조선족 동포들. 소상공업을 기반으로 독자적 상권을 형성하며 이민자 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뉴욕 조선족 축구 대회’는 이 공동체의 역동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 독특한 언어와 문화적 융합 이들은 북한과 연변의 문화가 결합되어 ‘심판’ 대신 ‘재판’, ‘단체 사진’ 대신 ‘집체 사진’이라는 연변식 표현을 사용했다. 새콤달콤한 향신료 풍미의 퓨전 음식과 간식으로 즐기는 양꼬치 및 왕만두를 통해 한국인과는 또 다른 ‘같음 속의 다름’을 드러낸다.
  • 경계를 넘어선 ‘관계’ 중심의 연대 축구 대회는 단순한 민족적 결속을 넘어 전문 마술사의 마법 공연, 연변 전통 타악기 공연, 서로를 ‘고모’, ‘이모’, ‘삼촌’이라 호칭하는 복합 정체성을 보인다. 이들은 아이들과 가족이 함께 어우러지는 상생과 신뢰 기반의 새로운 공동체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뉴욕에서 자라잡은 ‘조선족 공동체’

전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시에는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고 있다. 뉴욕시의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면, 전체 시민의 약 37%가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태어났으며, 도시에서는 200개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인구학적 다양성은 뉴욕시의 문화적 다양성을 만들어낸다. 맨해튼이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융합되어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한 ‘용광로’라면, 맨해튼을 벗어난 지역에서는 각 민족 집단마다 자신들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미국인의 전형이라고 여기는 백인 역시 거대한 뉴욕시를 구성하는 한 집단일 뿐이다. 뉴욕시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의 축소판’이다.

뉴욕시 플러싱(Flushing)은 한인뿐만 아니라 중국계 및 다양한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밀집한 대표적 다문화 지역이다. 이들 가운데 조선족 동포들은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이민자 공동체이다.

뉴욕 지역 한인 언론에 따르면, 뉴욕과 뉴저지에 거주하는 조선족 동포는 약 4만 명에서 5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주로 한인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소상공업체에서 근로자로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경제력이 점차 상승하면서 직접 창업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독자적인 조선족 상권을 형성해 뉴욕 이민자 경제의 한 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뉴욕시의 ‘뉴욕조선족동포회’와 ‘뉴욕조선족봉사센터’뿐만 아니라 미 전역 조직인 ‘미국조선족총연합회’ 등 다양한 시민 사회 단체들이 만들어지면서 미국 내 조선족 동포들을 연결하고 공동체 정체성 강화와 권익 신장에 기여하고 있다.

제 2회 뉴욕 조선족 축구대회

뉴욕시 조선족 단합과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조직은 ‘축구 동호회’다. 현재 뉴욕시에는 6개의 조선족 축구 동호회가 왕성히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 8월 30일에는 ‘제2회 뉴욕 조선족 축구 대회’가 열렸다. 지난해 개최된 제1회 대회에는 4개 팀이 참석했는데, 불과 1년 만에 참가 팀이 6개로 늘어날 만큼 조선족 축구 대회는 빠르게 성장하는 뉴욕시 조선족 동포 공동체를 반영하고 있다.

스포츠 경영학자로서 이들의 활동과 공동체 형성 과정에 관심을 가져온 필자는 현장에서 대회를 준비하는 운영진과 축구 동호회의 조선족 동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회가 열리는 아침, 운영진들은 아침 일찍부터 운영본부 및 귀빈석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대회 운영본부 텐트가 갖춰질 무렵, 조선족 동포 선수들이 삼삼오오 축구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인 이민자들과 외모는 달라 보이지 않았지만, 이들이 서로 나누는 대화 속의 연변 방언이나 중국말은 확실히 다른 공동체임을 실감하게 했다. 하지만 연변 방언보다 중국어나 영어를 더 선호하는 젊은 세대의 모습은 영어 사용을 편하게 느끼는 한인 이민 2세대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축구 경기를 하고 있는 조선족 축구동호회 선수들.
축구 경기를 하고 있는 조선족 축구동호회 선수들.

축구 동호회 이름을 보면 조선족 공동체의 특성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백두 축구단, 천지 축구단, 동포 축구단, Korean Chinese United와 같은 명칭은 필자에게 강렬한 인식을 심어 주었다. 특히 ‘백두’와 ‘천지’와 같은 명칭에는 조선족 공동체의 역사적·문화적 자부심이 담겨 있는 듯했다.

조선족 동포들이 사용하는 단어 역시 흥미로웠다. 이들은 ‘심판’ 대신 ‘재판’이라고 말했고, ‘단체 사진’ 대신 ‘집체 사진’이라고 말했다. 낯선 단어였지만 다 이해가 되는 필자는 조선족 동포들에게 언어적 뿌리를 공유하는 같은 민족이라는 묘한 친밀감이 느껴졌다.

점심으로 제공된 뷔페 음식을 먹으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준비된 음식들은 여느 한인 식당에 있는 메뉴들과 똑같았지만, 그 맛은 익숙하면서도 색달랐다. 향신료의 풍미가 강했고, 전체적으로 새콤달콤한 맛이 두드러졌다.

필자가 그 이유를 묻자, 조선족 동포들은 자신들의 음식을 북한과 연변의 음식 문화가 합쳐진 퓨전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양꼬치’와 ‘왕만두’였다. 조선족 동포들은 양꼬치와 찐빵 같은 왕만두를 손에 들고 시시때때로 간식처럼 먹곤 했다. 언어적 뿌리는 같지만, 중국 동북 지역의 문화를 지닌 조선족 동포들에게서 ‘같음 속의 다름’이 느껴졌었다.

뉴욕 조선족 축구대회 개막식에서 참가선수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뉴욕 조선족 축구대회 개막식에서 참가선수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뉴욕에서 조선족 동포는 무엇을 추구할까

스포츠 대회는 단순한 운동경기를 넘어 문화적·사회적 의미가 응축된 공간이다. 올림픽 개막식을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쇼가 아닌 거대한 문화 축제로 준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규모가 작은 지역사회 스포츠 대회도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이 공유하는 믿음과 가치, 그리고 공동체가 추구하는 방향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스포츠 대회는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효과적인 매개체이며, 공동체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는 조직위원회가 특정 메시지를 설정하고 하향식으로 전달하지만, 지역사회 대회는 조금 다르다. 대회를 조직하는 사람들과 참가자들이 같은 공동체 구성원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대회의 의미와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따라서 대회의 메시지는 대회 홍보 방식, 참여자들의 상호작용, 경기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나 문제 해결, 경기장에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시나브로 드러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의 관심은 경기 결과나 우승팀이 아니라, ‘조선족 축구 대회’라는 문화적 텍스트 속에서 뉴욕 조선족 축구 대회가 표현하고자 하는 정체성과 공동체 정신에 있었다.

조선족 동포들의 정체성은 흔히 경계인(marginal ma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조선족은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이지만 한국에서는 중국 동포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는 또 하나의 아시아계 이민자 집단이다. 한민족의 뿌리를 공유하지만, 대부분은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중국 문화와 한국 문화, 나아가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역사적·문화적 연고지는 연변이다. 경계인은 이방인과 다르다. 이방인은 철저히 외부자이자 타자로 규정되지만, 경계인은 완전한 외부자도, 그렇다고 완전한 내부자도 아니다. 어느 한 공동체에 온전히 소속될 수 없지만, 동시에 여러 공동체를 넘나들며 때때로 이방인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축구대회 운영 본부석. 동호회의 이름이 낯익으면서도 생소한 느낌을 준다.
축구대회 운영 본부석. 동호회의 이름이 낯익으면서도 생소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누구인가” 조선족 동포의 정체성

이민자 연구자들은 뉴욕 조선족 동포들의 이러한 특성을 ‘복합 정체성’(multiple identit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필자가 축구 대회에서 만난 조선족 동포들의 모습은 복합 정체성이라는 개념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필자와 교류한 축구 대회 운영진 중 한 조선족 동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모 세대가 한국에서 겪었던 안 좋은 일들은 일부 안 좋은 한국 사람들 때문에 생긴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중국에도 안 좋은 사람들이 있고, 또 좋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 조선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건 우리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좋은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분법적 사고나 민족, 국적, 인종과 같은 범주를 통해 사회를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가 보여준 세계관에서는 특정 민족 정체성이나 국가 정체성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대신, 국가나 민족의 경계를 넘어 사람 간의 관계의 질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모습이 보였다. 서로 다른 정체성의 경계선을 넘어 관계를 형성하고 미래를 만들어 가려는 상생의 실천적 태도였다.

필자가 참관했던 축구 대회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아이들, 부모들, 친구들, 그리고 모든 가족이 함께 모이는 ‘가족 축제’에 가까웠다. 아이들을 위해 전문 마술사가 따로 초청되어 즐거운 시간을 선사했고, 어르신들을 위해 흥겨운 노래와 연변 전통 타악기 공연도 준비되어 있었다. 대회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서로를 ‘고모’, ‘이모’, ‘삼촌’이라고 호칭했다.

축구대회 행사장 한 곳에 마련된 점심 뷔페. 김밥, 만두, 잠채, 불고기, 떡 같은 음식에서 같은 동포임을 느끼게 된다.
축구대회 행사장 한 곳에 마련된 점심 뷔페. 김밥, 만두, 잠채, 불고기, 떡 같은 음식에서 같은 동포임을 느끼게 된다.

참가자들에게 제공된 기념품 가방에는 “한마음 한 뜻으로 뭉치자”라는 구호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다소 투박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구호에서 뉴욕 조선족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체성이 함축적으로 드러났다.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특정 국가나 민족에 대한 배타적 소속감이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 중심의 공동체적 연대였다.

필자가 조선족 축구 대회 현장에서 발견한 것은 복합 정체성이라는 학술적 개념이 아니었다. 또한 축구 대회는 단순한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거나 재확인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축구 대회는 신뢰와 관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사회적 매개체였고, 뉴욕 조선족 동포들은 그 안에서 새로운 자신들만의 공동체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었다. 내년 이맘때 다시 열릴 축구 대회는 얼마나 성장할지, 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기대된다.

글쓴이

정규수 미 케네쎄대 스포츠경영학 교수

정규수 교수는 현재 미국 케네써 주립대학교 스포츠 경영학과에 재직 중이다.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졸업 후 미국 센트럴 미시건대학교에서 스포츠 행정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텍사스(어스틴) 대학교에서 스포츠 경영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한인 이민자들의 스포츠 활동을 주로 연구하며 미국 및 한국에서 일어나는 스포츠 현상들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을 통해 경영관리적인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노력한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시안계 운동선수들을 바라보는 미국 주류 사회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중이다. 학술 활동 이외에도 미주 한인 동포 사회를 위한 한인 스포츠 단체들의 활동에도 적극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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