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돌팔매질하지 않는다

[정규수의 스포츠 깊게 바라보기]

지난 6월 29일 고교야구 대회에서 서울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이 상대팀인 광주일고를 향해 지역 비하를 연상시키는 구호를 외쳐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6월 29일 고교야구 대회에서 서울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이 상대팀인 광주일고를 향해 지역 비하를 연상시키는 구호를 외쳐 논란이 일고 있다.
  • 기억의 차이와 역사 인식 미국 중장년층에게 9·11 테러는 ‘직접적 기억’이지만, 젊은 세대에게 이는 미디어를 통한 ‘소통적 기억’에 불과하다. 5·18 민주화 운동 역시 직접 경험하지 못한 우리 젊은이들에게 역사는 감정적 깊이가 얕은 단순 사건으로 치부될 수 있다.
  • 예방주사형 교육까지 하는 미국 미국은 학생 선수들의 인종차별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인성 교육의 기회로 삼는다. 미국은 잘못된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 비행을 단순히 징벌하기보다, 공동체 의식과 책임감을 깨우치는 예방주사형 교육에 집중한다.
  • 팀 문화도 자정하는 교육 실행해야 미국은 박물관 현장 학습과 같은 ‘경험적 학습’을 기본으로, 피해자와의 만남, 회고적 반성문 작성, 스포츠맨십 및 방관자 개입 훈련 등을 체계적으로 실행한다. 이는 단기적 처벌을 넘어 조직 문화를 스스로 자정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치유 과정이다.

고교 운동경기도 교육 활동이다

필자는 배재고등학교가 전통과 역사의 야구부가 있고, 필자의 학생 시절 인기 가수 박진영이 학생회장을 했던 학교 정도로 알고 있었다. 이런 배재고 야구부가 5·18 비하 조롱 구호로 연일 미디어에 나오고, 이에 정치권이 가세하면서 일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사건은 6월 29일 배재고와 광주제일고 간 야구 경기 도중 벤치의 배재고 선수들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라고 상대 선수들을 대상으로 조롱 구호를 외쳤던 것이다. 해당 소식은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졌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사건의 심각성을 고려해 배재고에게 6개월 시합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보수와 진보 진영의 정치인들이 각 진영의 관점에서 해당 사건에 대한 논평을 냈으며, 여러 단체들도 배재고 앞에 축하 및 근조 화환을 보냈다.

필자는 5·18을 폄하했던 스타벅스 마케팅을, 그것도 광주제일고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응원 구호에 활용했던 배재고 선수들을 두둔할 마음은 전혀 없다. 하지만 고등학교 야구 경기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담론이 전개되고 있는 방향은 분명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운동경기는 여전히 교육 활동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는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심히 우려스럽다.

미국 단체운동경기에서도 인종차별로 시끌

미국에서는 고등학생들의 단체운동경기 도중 불미스러운 응원 구호로 인한 뉴스를 종종 접한다. 대부분은 흑인 선수들에 대한 인종차별과 관련한 일들이다.

배재고 조롱 구호와 가장 유사한 사례는 올해 4월 오레곤 주 포틀랜트에 있는 Central Catholic 고등학교 야구부 경기에서, 미국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흑인 인종차별 단어를 백인 선수가 응원 구호로 사용했던 것이다.

해당 사건으로 인해 이틀 동안 학교는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었고, 학교의 사과와 학생들의 자발적인 항의 시위가 있었다. 경기 구호와 관련된 사례는 아니지만, 지난 2022년에는 캘리포니아의 River Valley 고등학교 미식축구 팀 백인 선수들이 같은 팀 흑인 선수들을 사고 파는 옛날 노예 거래를 흉내내는 퍼포먼스를 소셜 미디어에 올려서 미국 전역이 충격에 빠진 적도 있다.

이 외에도 미국 고등학교 운동경기에서 선수나 응원단이 흑인 비하를 상징하는 검은 마스크를 쓰고 등장하는 등 인종차별과 관련한 여러 불미스러운 일이 종종 발생한다. 심지어 일부 대학교 학생 운동선수들이 나치 심볼이나 히틀러를 영웅시하면서 ‘반유대주의’를 언급하는 내용을 소셜 미디어에 올려 미국 사회의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직접적 기억’과 ‘소통적 기억’의 강도는 다르다

미국에서는 젊은 세대인 Z세대와 그 이전의 기성 세대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생물학적 나이 이외에도 2001년 9·11 테러를 직접 경험했는지 여부를 종종 언급한다.

뉴욕 맨하탄의 쌍둥이 타워가 무너져 내리는 현장을 TV생중계로 직접 본 세대와 나중에 미디어와 가족이나 주변인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세대는 9·11 에 대한 인식이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

중장년 세대에게 9·11은 개인적이자 ‘직접적인 기억’(live memory)이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소통적 기억’(communicative memory)이다. 소통적 기억은 금방 사라지기 마련이며 감정의 정도는 약할 수밖에 없다. ‘소통적 기억’만을 가지고 있는 개인에게는 아주 심각하고 의의가 있는 역사적 일도 하나의 역사적 사건 그 이상 이하도 아닐 수도 있다.

미국의 Z세대가 9·11에 대한 역사 인식, 밀레니얼 세대가 베트남전을 바라보는 시각은 소통적 기억에만 머무르며 문화적 기억(cultural memory)이나 확고한 역사적 기억(historical memory)으로 자리 잡지 못하기도 한다.

1980년대에서 90년대 중반까지의 민주화 운동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고, 미디어와 주변인을 통해서만 5·18민주화운동을 간접 경험한 우리 젊은이들이 그 역사적 의의와 소중함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우리 사회는 심각하게 논의해 본적이 있는가?

지난 6월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 배재고의 5.18비하 응원에 항의하는 광주일고 선수들과 코치들. 사진출처= 유튜브 채널 ‘강릉 야구 TV’ 캡처출처 : 발리볼코리아닷컴(http://www.volleyballkorea.com)
지난 6월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 배재고의 5.18비하 응원에 항의하는 광주일고 선수들과 코치들. 사진출처= 유튜브 채널 ‘강릉 야구 TV’ 캡처출처 : 발리볼코리아닷컴(http://www.volleyballkorea.com)

미국이 재발방지 교육에 방점두는 이유는

미국에서는 종종 발생하는 학생 선수들의 인종차별 발언에 대해 처벌보다는 교육을 통한 개선에 집중하는 편이다. 처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교육을 통한 재발 방지에 더욱 방점을 두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우선, 학생들의 운동 경기는 여전히 교육 활동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학생 선수들의 모든 운동 경기가 승패를 가르는 하나의 이벤트가 아니라 이를 통해 다양한 교육적 경험과 성과를 제공할 수 있는 또 다른 교실이라는 것을 미국 사회는 굳건하게 믿고 있다.

다른 이유로는, 잘못된 역사 인식을 통해 나타난 비행들에 대한 처벌이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단기적으로 끝나며, 오히려 더 심한 반작용과 증오 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으로부터의 진정한 울림이 아닌 처벌을 피하기 위한 표면적인 변화만 만들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와 우리의 5·18 민주화 운동은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의미에서 차이가 있지만 학생들의 역사 인식 부족이 혐오 표현 및 조롱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교육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교육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을까

미국 사회의 이러한 믿음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의 정책적 실행으로 나타난다. 우선, 역사 교육과 문화적 감수성(cultural awareness) 증진 교육이 의무적으로 시행된다.

이와 함께 치유 프로그램이 병행된다. 치유 프로그램으로는 토론, 피해자들과의 만남 및 사과, 회고적 반성문, 봉사 활동 등이 실행된다.

팀의 상대 선수 비하 구호 등은 팀 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따라서 비행을 저지른 선수를 포함한 팀 전체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 필수적이다. 팀 전통에 대한 공동체 의식 및 책임의식 증진과 팀원 간 상호 존중 등의 교육 내용이다.

더불어 스포츠맨십 교육과 무엇보다 조직의 잘못된 문화를 방관하지 않도록 하는 ‘제3자 개입 훈련’(bystander intervention)을 체계적으로 실시한다. 즉, 자체적으로 조직문화의 독소적 요인들을 제거할 수 있도록 예방주사를 주는 것이다. 감독 및 코치, 학부모, 학교 관계자들에 대한 교육도 수반된다.

마지막으로 경험적 학습(experiential learning)이 중요하게 적용된다. 박물관 및 현장 방문을 통한 역사 학습과 기념비 방문 등을 통한 역사 인식 정립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교육들은 해당 학교와 더불어 상위 교육 기관과 학교 스포츠를 담당하는 민간 영역의 NCAA(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나 NFHS (National Federation of State High School Associations), 인권 관련 비영리 단체가 모두 협업하여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프로그램의 실행을 관리·감독한다.

학생 선수들을 위한 올바른 역사인식 교육을

배재고 야구팀과 선수들은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필자가 교육적 개입을 주장하지만 징계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학생 선수들에게 상대팀을 이겨서 좋은 성과를 내야만 좋은 대학 운동부에 선발될 수 있다는 것을 일방적으로 주입한 것 외에 우리가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어떤 역사 교육을 해준 적이 있는지 반문할 수밖에 없다.

또, 학생 선수들에게 대기업의 천박한 마케팅을 어떻게 자정할 수 있도록 교육했는지, 사회적 정의감과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줄 교육 기회를 제공했는지 물어봐야 한다. 우리 누구도 떳떳하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배재고 선수 및 팀에 대한 처벌만 얘기되고 있으며, 각 정치 진영의 자기편 굳히기 논의만 들리고 있다.

김동연 배재학당총동창회장이 지난 3일 배재고 학생들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동연 배재학당총동창회장이 지난 3일 배재고 학생들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필자가 글을 쓰는 3일 저녁, 6일에 배재고 야구부는 광주제일고를 찾아 사과하고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할 것으로 보도됐다. 또 배재고 동창회는 성장하는 학생들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앞으로 어떻게 이러한 일들을 방지할 것인지, 배재고 야구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학생 선수들에 대한 올바른 역사 인식 정립을 위한 우리는 어떠한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고등학교 운동부 경기를 대학 진학을 위한 도구로만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여전히 교육 활동의 수단임을 인식하는 담론이 형성되길 바라며 글을 맺는다.

글쓴이

정규수 미 케네쎄대 스포츠경영학 교수

정규수 교수는 현재 미국 케네써 주립대학교 스포츠 경영학과에 재직 중이다.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졸업 후 미국 센트럴 미시건대학교에서 스포츠 행정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텍사스(어스틴) 대학교에서 스포츠 경영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한인 이민자들의 스포츠 활동을 주로 연구하며 미국 및 한국에서 일어나는 스포츠 현상들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을 통해 경영관리적인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노력한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시안계 운동선수들을 바라보는 미국 주류 사회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중이다. 학술 활동 이외에도 미주 한인 동포 사회를 위한 한인 스포츠 단체들의 활동에도 적극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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