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축구와 총기, 미국이 외면하는 두 얼굴
[정규수의 스포츠 깊게 바라보기] 왜 미국은 총기사고를 막지 못할까 미식축구 선수에 발생하는 CTE 병 미식축구와 총기소지, 공통점 있어 미국인 정체성과 산업계 로비 탓
전 미식축구 선수의 총기사고
지난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가까운 청년 보수 우파 정치운동가 찰리 커크(Charlie Kirk)가 열린 공개 강연 중 저격에 의해 사망하면서 미 정치권에 큰 충격을 줬다. 하지만 이보다 한 달여 전 총기 사고는 스포츠경영을 연구하는 필자에게 더 큰 충격이었다.
8월 끝자락에서 9월로 넘어가는 시기, 미국은 노동절 휴일과 미식축구 시즌 개막으로 활기차다. 미국의 대표적 공휴일인 노동절(9월 첫째 월요일)은 새학기 아이들의 학교 적응으로 누적된 온 가족의 피로를 풀어주는 기간이다. 미식축구 시즌 개막은 이 기간을 축제로 만들어준다. 각종 미디어는 미식축구 소식을 쏟아내고 뷰잉 파티(viewing party,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 TV나 스크린으로 방송을 함께 시청하는 행사)를 위한 음식과 용품 광고들이 미국의 9월을 활력으로 충만하게 만든다.
필자는 이러한 축제 풍경 속에서 한 가슴아픈 총격 사건을 되짚고자 한다. 미국에서 총격 사건은 몇 일 지나면 금세 잊히기 마련이지만, 지난 7월 28일 저녁 뉴욕 맨해튼에서 일어났던 총기 사건은 필자에게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날 맨해튼 미드타운의 고층 빌딩으로 방탄복을 입은 한 남자가 장총을 들고 걸어갔다. 캘리포니아에서 고등학교 미식축구 선수였던 27세의 셰인 타무라가 총을 갖고 들어간 곳은 2024년 한 해에만 230억 달러 수입을 올린 미국프로미식축구(NFL) 본사였다. 타무라는 4명을 살해하고 1명을 중태에 빠뜨린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국 스포츠 산업의 심장부를 표적으로 총기 사건 범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NFL에 맞서면 반드시 짓밟힌다”
타무라는 유서에서 스스로를 ‘만성 외상성 뇌병증(Chronic Traumatic Encephalopathy, CTE) 환자’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다. CTE는 반복적인 뇌진탕으로 발생하는 뇌 질환이다. 주요 증상으로는 우울감, 기억 상실, 치매, 충동 조절 장애 등이 있으며 스포츠 선수나 군인들이 자주 걸린다. 더욱 위험한 점은 뇌진탕까지는 아니더라도 경미한 충격이 뇌에 누적되어도 CTE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에서 CTE는 잘 알려진 질병이다. 2016년 워싱턴 포스트의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94%가 스포츠 중 발생하는 뇌진탕을 공중 보건의 심각한 문제로 인식했으며, 85%는 미식축구가 CTE를 유발한다고 믿고 있었다. 타무라는 고등학교 시절 미식축구가 자신의 정신 질환을 일으켰다고 믿었으며 그 피해의식이 NFL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을 품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머리가 아닌 가슴을 겨누어 생을 마감했다. 유서에는 자신의 뇌를 CTE연구에 기증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차갑게 적힌 문장 한 줄이 있었다. “NFL에 맞서면 반드시 짓밟힌다”.

미식축구의 컨트롤 타워격인 NFL이 선수들의 뇌진탕과 CTE 문제를 외면해온 것은 아니다. 2016년 NFL은 뇌 연구와 헬멧 기능 향상 연구에 1억 달러를 투자했다. NFL은 규정 개선에도 나섰다. 경기 도중 헬멧과 헬멧이 충돌하는 행위에 대해 강력한 페널티를 부과하고, 뇌진탕 증세가 의심되는 선수는 즉시 경기에서 배제되어 정밀 검사와 회복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의무 교육을 통해 선수들에게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 선수까지 보호해야 한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더 나아가 NFL은 선수 간의 충돌이 없는 플래그 풋볼(flag football ; 미식축구처럼 공을 들고 달리거나 패스하지만, 상대를 넘어뜨리는 태클 대신 허리에 달린 깃발(flag)을 뺏는 방식으로 수비하는 경기-편집자주)을 적극 보급하면서, 유소년과 학부모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NFL은 플래그 풋볼의 2028년 LA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까지 이끌었다. 하지만 미식축구 선수들의 CTE문제는 지속되고 있다.

미식축구로 인해 발생하는 총기 폭력 아카이브(Gun Violence Archive)에 따르면, 최소 4명 이상이 총에 맞은 사건을 총기 난사(mass shooting) 사건으로 정의하는데, 2025년 들어 9월까지 이미 298건이나 발생했다. 총으로 사망한 사람만 해도 무려 1만 313명에 이른다. 이처럼 미국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총기 난사 사건은 상당수가 총격범의 정신 질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데, 이번 타무라의 총격 사건은 그 최악의 결과가 현실화된 사례였다. 사실 타무라 이전에도 여러 프로미식축구 선수들이 총기로 타인의 생명을 앗아가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끔찍한 사건들이 있었다. 사후 부검에서 이들 대부분은 CTE를 앓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왜 위험한데도 바로잡지 않을까?
필자는 이번 타무라 총격 사건을 개인의 정신 질환 문제로 물타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 사회가 열광하는 미식축구가 낳은 CTE라는 질병이, 미국에서 가장 심각한 공공안전 위협인 총기 난사 사건들과 맞닿아 있는 불편한 진실을 화두로 던지는 것이다.
미식축구와 총기 사건. 얼핏 보면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주제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위험을 알면서도 근본적 변화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많은 미국인들은 미식축구 선수들이 겪는 CTE의 심각성을 잘 안다. 그러나 정작 미식축구 자체를 바꾸는 것에는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미국인들이 사랑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미식축구에는 점진적인 규칙 개정이나 장비 개선만 허용할 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쉽게 묻히고 만다.
총기 난사 문제도 다르지 않다. 미국인들은 총기 난사 사건의 빈번함과 위험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제도적 개혁으로 이어지는 것은 언제나 벽에 부딪힌다. 즉, 두 문제에 관해서 미국인들 모두 변화의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그 변화를 실현할 만한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건국’ 상징성과 로비, 변화 가로막아
또 다른 공통점은 ‘정체성’이다. 각 지역 미식축구 팀은 공동체의 전통과 자부심을 상징하며, 지역민들의 충성심을 결집시키는 중심축이다. 미국인들에게 미식축구는 그저 관람하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소속감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문화적 상징이다.
총기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수정헌법 2조가 보장하는 ‘무기 소지’ 권리는 개인의 자유와 자기방어의 권리를 넘어, 미국의 건국이념과 개척자 정신을 반영하는 핵심 가치다. 많은 미국인들이 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 상당한 사회적 비용과 희생을 치르고 있다.
결국 미식축구와 총기 소지는 단순한 취향의 선택이 아니라, 미국인의 정체성과 영혼을 구성하는 요소다. 이처럼 뿌리 깊은 상징성과 문화적 무게가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지고 근본적 변화를 가로막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간과할 수 없는 공통점은 막대한 산업적 이해관계다. NFL은 선수들의 뇌진탕과 관련해 병원과 연구 기관은 물론, 주정부와 연방 의회를 상대로 대대적인 로비를 벌이고 있다. 선수 노조, 세금, 독점 사업과 관련한 이해관계까지 얽히면서 NFL이 지출하는 로비 비용은 연간 1억~2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NFL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근본적 개혁은 번번이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총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 중심에는 ‘내셔널 라이플 어소시에이션’(NRA ; 미국총기협회)이 있다. NRA는 정치인들이 총기 규제에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에 따라 막대한 선거 지원금을 집행하고, 여론전을 벌이며, 당락까지 좌우할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결과, 총기 규제 법안은 의회에서 번번이 무산되며 총기 산업에 대한 실질적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필자는 미식축구와 총기 문제가 개별적 현상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구조적 딜레마를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이라 생각한다. 역설적이게도, 미국인들이 소중히 지키려는 것들이 오히려 공공안전의 위험요소가 되어 미국인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미식축구 선수들에게 발병할 수 있는CTE의 위험성을 알지만, 미국인들은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새로운 시즌에 응원하는 팀의 선전을 기대하며 지인들과 가족들과 미식축구 파티를 열 계획을 세운다.
타무라의 총기 사건은 미식축구 시즌이 시작되는 9월에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런 하나의 비극이었을 뿐이다. 타무라의 총격 사건은 이미 잊혀졌지만, 미식축구와 총기 사건이 낳는 구조적 위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7월 28일 타무라의 총에 고인이 된 4명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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