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海서 동강난 해저케이블...다음 타겟은?
[최수정의 유럽외교전] 지난달 중국선박 닻으로 긁다 끊어 독일등 4개 피해국 조사 관할권 없어 테러단체 등 악용한다면 무방비 상태 국제법 정비하고, 우리도 대응책 세워야
범죄인데 처벌할 수 없는 사고
지난달인 11월 15일 러시아 북방항구 우스트-루가(Ust-Luga)항을 출발한 중국 국적 벌크선 이펑 3호(The Yi-Peng 3)가 발트해를 통과하면서, 100마일(약 161㎞)이 넘는 거리의 해저를 바닥에 내린 닻으로 긁어 해당 수역의 해저통신케이블 두 개가 파괴되는 사고가 벌어졌다. 그야말로 영화 속에 거대 범죄 세력의 국제적 테러 같은 장면이다.
이 케이블의 절단지점 중 한 곳은 핀란드와 독일을 직접 연결하는 해저통신케이블구간이며, 다른 한 곳은 스웨덴과 리투아니아로 파생되는 선이었다. 현재 스웨덴, 독일, 리투아니아가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는데, 문제의 선박은 덴마크의 배타적 경제자유수역(EEZ)에 정선한 채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소속 군함의 감시하에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현재까지의 보도에 의하면 언론인들과 전문가들은 문제의 선박이 닻을 끌고 100마일 이상 이동하는 중에 선장이 이를 모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닻이 바닥에 끌리는 상태에서는 선박의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느려지기 때문이다. 조사관들은 이 사건이 러시아 정보기관의 공작으로 러시아 국적 선장이 저지른 범죄일 가능성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편 덴마크, 독일, 스웨덴에서 파견된 NATO 군함들은 이 선박의 국적국인 중국에 승선검색권 허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에 적극 협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수사관들은 사건의 배후에 중국이 아닌 러시아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으나, 러시아는 즉각 부인하고 나선 상태다. 다만 선박의 선원이 의도적으로 닻을 내려 해저케이블을 파괴하고자 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수사관들의 추정이다. 이 선박의 선장이 러시아인이기 때문.
왜 이평3호 처벌할 수 없을까?
일반적으로 선박이 국가관할권 밖에서 항행하다 해저케이블 파괴행위를 저질렀을 때는 유엔해양법협약 제113조의 적용을 받게 된다. 해당 조항의 내용상, 해저케이블 파괴행위 혐의가 의심되는 선박의 국적국 또는 선박에 승선하고 있는 선원의 국적국이 관할권을 행사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중국 또는 일부 선원의 국적국인 러시아가 이 파괴행위의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관할권을 가지게 된다.
이 조항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국가규범과 법치주의의 신뢰성을 고려할 때, 그들이 국제사회가 공감하는 수준의 범죄 처벌을 공정하게 할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왜 피해국인 스웨덴이나 독일, 리투아니아가 이 문제에 개입하여 해당 선박에 직접 승선해 사고경위를 확인하고, 처벌하면 안될까. 매우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
과거 이 조항이 만들어질 때 해저케이블 파손은 거의 70~80% 이상이 어선의 실수에 의한 파손이었다. 따라서 어선이나 상선이 닻을 잘못 내리거나 어구를 부주의하게 끌어서 내는 사고에 엄청난 벌금과 형벌을 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고려가 있었다. 이에 유엔해양법은 사고가 났을 때 각국이 알아서 해당 선박을 처벌할 수 있도록 국내법을 마련하라는 규정을 뒀다.
그러나 정작 많은 나라들은 해저케이블의 복구비용에 비해 매우 적은 금액의 벌금을 정하는데 그쳤다. 그런 관행이 오늘날까지 이어졌고, 해저케이블이 전세계 글로벌통신망의 핵심기간시설로 자리 매김했음에도 그 중요성에 비례한 보호조치를 하는 나라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결국, 나쁜 마음을 먹은 테러단체나 국가가 해저케이블을 파괴하겠다고 맘 먹은 뒤에 실패하거나 정체가 탄로났을 때 감수해야 할 부담은 상상보다 훨씬 적다. 반면 그 사고로 인한 피해는 금전적 피해 외에도, 통신 장애 등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산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질 수 있다. 국제케이블보호위원회(ICPC, International Cable Protection Committee)에 따르면 해저케이블의 통신장애가 발생할 경우 시간당 피해금액은 15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호주 같은 나라의 경우 국내로 들어오는 주요 해저케이블이 3개의 라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느 하나가 파괴될 경우 심각한 수준의 인터넷 연결 속도 저하 현상이 일어난다. 이 때문에 호주는 해저통신케이블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2014년 해저케이블보호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 개정 법은 주요 해저케이블 세 개가 호주 대륙의 영해로 진입하는 수역과 EEZ에 해저케이블보호를 위한 보호수역을 설치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이러한 조치는 세계적으로 눈여겨 볼 해저케이블 보호조치의 모범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륙간 해저케이블이 공해와 EEZ를 모두 지나갈 수밖에 없다는데 각국의 근본적인 고민이 있다. 유엔해양법 제87조에 적시된 ‘공해의 자유’에는 어느 누구나 해저케이블을 설치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다. 그런데 권리만 보장할 뿐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의 처벌은 공해상 전통적인 기국주의 원칙(선박이나 항공기는 국적을 가진 국가의 국기를 게양하도록 하고, 그 기국법(旗國法)에 따라 선박이나 항공기에 대한 관할권을 결정하는 원칙-편집자주)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파괴행위를 한 선박의 기국이나 선원의 국적국 외 어느 누구도 해당 사건을 처벌할 법집행 관할권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해저케이블을 설치한 국가나 해저케이블의 통신서비스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국가도 이 사건에 대한 접근권을 가지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는 나쁜 마음을 먹은 비정부단체나 국가에게 얼마나 유리한 상황인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국가들이 관할권을 행사하여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선박의 기국 뒤에 숨거나 범죄를 은폐하기 얼마나 좋은가? 선박기국이라는 나라가 이 문제에 대해서 엄격한 국내법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이러한 문제에 사실상 관할권을 행사할 여력이 없는 편의치적국(Flag of Convenience; 선박의 실제 소유주가 세제 혜택이나 선원의 원활한 수급 등 경제적인 이유와 국제기구의 안전규제 등 실용적인 편의성을 위해서 선박을 등록한 나라-편집자주)이라면 더더욱 범죄를 은폐하기 좋다.
따라서 해저케이블 파괴행위로 인한 피해국의 경제적 피해와 통신장애 피해 등을 고려하면, 정치적 수단으로서 이같은 파괴행위를 자행할 유인은 매우 강력하다할 것이다. 특히 해저케이블이 모든 국가의 핵심기간시설임에도 이에 대한 국내외 보호규범이 허술하다는 측면에서, 정치적 또는 군사적 위협수단으로 사용되기에 아주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다.
스웨덴이 나선다면 처벌할 순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 연안국이 개입할 수 있는 희망의 작은 불씨가 있긴 하다. AP통신에 따르면 사고를 낸 이펑3호가 스웨덴 영해를 통과해서 EEZ로 진입하면서 스웨덴수역에서 해저케이블을 파괴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즉 파괴된 해저케이블 중 하나는 스웨덴 영해에 존재하기 때문에 스웨덴은 즉각적으로 국내법에 따라 이펑3호를 나포해 스웨덴 국내법에 따라 처벌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엔해양법 제19조(무해통항의 의미) (K)항에 따르면 “연안국의 통신시스템을 방해할 목적의 어떠한 행위”도 무해통항(일반국제법상 외국선박의 항행이 연안국의 안전·공서·재정적 이익이나 위생에 해가 되지 않는 한 영해를 자유로이 항행할 수 있는 것-편집자주)을 위반한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따라서 스웨덴 영해를 무해통항하면서 발생한 해저케이블의 파괴행위는 해당 조항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스웨덴 군함은 유엔해양법 제111조 제1항(추적권)에 따라 스웨덴 국내법을 위반한 무해통항 행위에 대해 영해에서부터 추적권을 발동해 행사할 수 있다.
이펑3호가 스웨덴 관할권 이원(바깥쪽)에 정선해 NATO군함들에 의해 감시받고 있다면 스웨덴은 국내법 위반을 들어 관할권을 행사하겠다고 선박기국과 관련 군함들에게 통고하고, 해당 선박을 나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스웨덴은 해저케이블이 파괴된 시점에 그 주변수역을 항행하고 있었던 이펑3호가 가장 의심된다며,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기국인 중국에게 사건협조를 요청한 상태라고 한다. 아직까지 이펑3호의 파괴행위가 확증되지 않았다고 보지만, 스웨덴 군함이 이펑3호를 국내법 위반 혐의로 나포하여 조사한다고 과도한 관할권 행사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스웨덴이 관할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만약 스웨덴이 이펑3호에 대해 관할권 행사를 하지 않을 경우 중국과 러시아 외에 어떤 나라도 해당 선박과 선원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파괴된 해저케이블은 하나가 독일과 핀란드를 직접 연결하는 주요 통신선이며, 다른 하나는 스웨덴과 리투아니아를 연결하는 선이다. 네 나라의 통신서비스가 급격하게 느려지는 피해를 입고 있음에도 피해국인 독일과 핀란드, 리투아니아 세 나라는 관할권도 행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관련 국제법 규정 탓이다.
해저통신케이블에 관한 국제법은 1884년 파리협약에서 시작되었는데, 역사적으로는 100년도 넘은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가진 법규범 영역이다. 그러나 해저통신케이블이 인터넷통신의 중추기간시설로 사용된 것은 1988년 해저광(光)케이블이 놓이면서부터다. 1982년 유엔해양법 협약이 성안된 후 ‘인터넷서비스’라는 것이 등장했다. 따라서 “바다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유엔해양법도 해저통신케이블이 전세계 통신의 핵심기간시설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이처럼 해저통신케이블의 설치와 유지보수가 철저하게 사적영역으로 치부되면서 국제공법의 국가책임범주에 포함시켜 핵심기간시설(Critical Infrastructure)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국제적으로 비정부단체와 정부개입테러행위 등의 핵심타겟으로 해저통신케이블이 주목받는 이유다.
우리도 해저통신케이블 보호 법령 만들자
우리나라도 앞으로 해저통신케이블 파괴행위에 관한 처벌규정의 조속한 입법행위가 있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 해양관련 규범 중 해저케이블 보호에 관한 법은 전무한 상황이다. 국가관할권인 영해 내에서 발생한 파괴행위 처벌에 관한 규정을 서둘러야 하며, 나아가 국가관할권 밖인 영해 이원(바깥쪽)에서 발생하는 해저통신케이블 파괴행위에 관한 처벌규정도 도입해야 한다. 이는 자국 국적의 선박과 선원이 해당 행위에 연루되었을 경우 처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이와 함께 국제사회는 국가관할권 이원에서 발생하는 해저통신케이블 파괴행위에 관한 기국주의의 보완 규칙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지금의 유엔해양법 체계로는 EEZ와 공해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진 단체나 정부가 개입된 해저통신케이블 파괴 행위가 발생할 경우 처벌이 불가능에 가깝다. 국가간 정치적 긴장관계가 높아질 경우 공해에서 전혀 보호되지 못하는 해저통신케이블은 언제나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해저통신케이블이 사이버안보의 핵심기간시설이 된 지 오래다. 사이버안보를 위해 국가관할권 이원 수역에 존재하는 해저통신케이블의 보호에 관한 조치는 국제협력을 통해 유엔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어떠한 형태의 국제규범이 도입되는 것이 국가안보와 국가이익에 적합할지 판단하고,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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