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 G7 위세 누르는 진영연합체 되나

[최수정의 유럽 외교전] 카잔 회의, 정치적 의도 뚜렷이 드러내 가입 원하는 국가들 갈수록 늘어 중국 주도 “다자주의” 공감대 확산세 G7에 대항하는 ‘진영연합체’될 수도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제16회 브릭스 회의에 참석한 32개국 대표들. 출처= www.klfy.com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제16회 브릭스 회의에 참석한 32개국 대표들. 출처= www.klf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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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국에서 열린 2024 브릭스 회의

지난 10월 22일 러시아 카잔에서 브릭스(BRICS)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이번 회의는 과거 회의와 달리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던져주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번 브릭스 회의의 주제는 “다자주의(Multilateralism)”였다. 왜 다자주의이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인 이 시점에 세계에 던지는 메세지는 무엇이었을까?

브릭스 정상회의를 개최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이고 있는 무력침략과 관련해 자신들의 역사와 통일에 대한 정당성을 피력하는 기회로 적극 활용했다. 러시아는 자국이 직면한 안보위협에 대응하는 조치가 독자적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회의를 주도했다. 브릭스내 모든 국가들의 합법적 이익, 주권적 선택은 공정한 국제제도 아래에 인정되어야 하며, 이는 국제사회 주권국가간 공평한 접근방법으로, 보편주의적 관점에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릭스는 2001년 러시아, 중국, 인도, 브라질을 중심으로 기존의 서방 주요국들의 협의체인 G7에 대응하기 위하여 설립된 신흥강국들의 모임이다. 애초 목표는 ‘국제경제체제의 개혁과 개도국의 발언권 강화’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강화되고 러시아 경제제재가 발동된 후 반서구 중심의 세계질서를 대변하는 국제기구의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브릭스 회의는 어느 때보다 정치적 의도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할 수 있다.

러시아 카잔의 외교 풍경

이번 회의가 러시아 카잔에서 대규모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일단 특별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침공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와중인데, 회의 장소의 변경 없이 러시아의 카잔에서 ‘공식적인 주최국 자격’ 속에 치러진 것이다. 이는 그 자리에 모인 국가들이 러시아의 침략행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반증하는 셈이다.

앞서 지난 2023년 3월 24일 채택된 UN 총회 결의 (141개국 찬성, 32개국 기권, 7개국 반대)는 압도적 다수의 국가들이 러시아의 철군을 요청한 바 있다. 이 때 반대표를 던진 나라들인 벨라루스, 에트리아, 말리, 북한, 시리아는 그 침략행위를 러시아의 위법한 행위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카잔 회의에 참석한 나라는 32개국이었고, 24개국은 국가정상들이 참여했다.

특히 NATO회원국인 튀르키예는 지난 9월 브릭스 회원가입을 신청했는데, 튀르키예의 태도는 NATO회원국들을 당황스럽게 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지난 6월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브릭스 회원가입을 신청해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 캄보디아와 필리핀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브릭스에 가입하려고 하고 있다. 아프리아와 중남미국가들과 함께 과거 비동맹국가(G-77)들의 움직임도 브릭스로 쏠리고 있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덕분에 러시아의 카잔은 10월 내내 외교관으로 붐볐고 러시아로서는 여전히 어울릴 외교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증명했다.

브릭스가 G7에 대항하는 방법

브릭스는 애초 경제성장 잠재력이 큰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이 G7 중심의 경제정책에 반기를 든 일종의 친목 모임였다가 2006년 정식 국제기구로 거듭났다. 문제제기의 대상은 ‘달러 중심의 경제체제’이고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대항이었다. 브릭스는 달러를 무기로 전세계 무역질서를 ‘달러 천하’ 속에 줄세우는 식의 미국 주도 신자유주의 경제가 전세계적인 부의 양극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특히 달러의 지나친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경제적 동조국가들을 규합하려 했다.

2015년 10월 공식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위안화결제시스템(CIPS)은 미국을 포함한 서방의 달러결제시스템(SWIFT)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금융결제시스템이다. 그런데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서방은 SWIFT체제에서 러시아를 퇴출시켰다. 이에 러시아는 러시아중앙은행이 구축한 SPFS(System for Transfer of Financial Messages)와 중국의 CIPS 등을 통해 국제거래를 결제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올해 6월 9일 미국과 사우디 간의 ‘페트로 달러’ 체제도 종료됐다. 이제 사우디는 석유대금을 달러가 아닌 위안화, 루블화로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브릭스 국가들은 자국화폐로도 원유대금을 치를 수 있게 됐다. 중동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 아랍에미레이트(UAE), 이란이 브릭스의 정식가입국으로 합류했기 때문이다.

수치로 볼 때, 브릭스는 이제 세계인구의 45%를 포함하고 있다. 반면 G7은 10%에 그친다. 게다가 G7이 세계 GDP의 30%를 차지하는데 비해 브릭스의 GDP비중은 35%에 달한다. 이는 브릭스가 글로벌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NATO회원국인 튀르키예, 동남아시아 주요국인 인도네시아 등이 가입하고자 대기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40개 이상의 회원국을 가진 거대한 경제협력체로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브릭스의 야심, 경제적 구상을 넘어

올해 브릭스 회의에서 눈에 띄는 점은 이들 국가들이 주장하는 “다자주의”와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영향력 확대 추세이다. 브릭스의 활동목표 속에는 경제적 요인이 크게 자리잡고 있지만, 러시아처럼 국제평화위협국으로 지목받고 있는 국가를 사실상 지원하는 기구로 활용되면서 정치적 성향도 보다 뚜렷해지고 있다. 때문에 러시아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반서방’ 블럭의 형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브릭스는 비(非)서구 중심의 국가모임은 맞지만 ‘반(反)서방은 아니다’라며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나라는 별로 없다.

이번 브릭스 회의에서 제시된 “다자주의”는 구체적으로 “정의로운 국제개발과 안보를 위한 다자주의”라고 표현된다. 브릭스 국가들은 “정의로운 국제개발과 안보”의 근간이 “주권존중과 영토영유권 주장 존중”에 있다고 본다. 특히 중국은 2023년 9월 UN에서 발표한 내용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의 근원에 있는 영토영유권 주장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중국이 대만에 대해 취하고 있는 “하나의 중국(One China)” 정책 기조와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정의로운 국제개발과 지역안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과 국가의 특수성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행방법에 있어서도 중남미는 중남미 방식대로,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개발과 안보가 제공되는 것을 우선시한다. 이는 각 국가들이 겪고 있는 고질적인 주변국가와의 갈등 또는 내전에 있어서 서구 중심의 해결법을 거부한다는 것을 의미이기도 하다. 이 주장 속에 내재하고 있는 “주권존중”의 방식은 결국 내정간섭을 배제하고자 하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 지역적 영토갈등을 ‘국내문제화’하여 외부세력의 분쟁개입을 차단하고, 국제사회에서 엄격하게 주장되는 주권국가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UN을 장악해가는 다자주의

이러한 주장은 UN이 추구하고 있는 “다자주의”방식으로 다시 확대되고 있다. 중국은 강력한 UN시스템의 지지국가로서 모든 국가들이 1국 1표를 행사하여 다수결에 이르는 국제규범 접근방식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것이 가지는 강점은 약소국의 한 표도 미국의 한 표와 같기 때문에, 다수의 약소국이 국제여론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도록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원론적으로 이것을 반대하는 국가가 있을까?

이런 흐름을 적극 활용하여 주요한 모든 국제정치와 규범의 결정과정에서 친중국적인 분위기를 구축하게 될 경우 중국은 자국이 늘 지적하는 주요 서방선진국들에 의해 만들어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주요 국제기구의 고위직에 친중국 인사를 지명하고, 이들을 통한 의제선정과정 자체를 친중국화하는 전략은 “다자주의” 정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G7을 중심으로 국제정치경제의 흐름을 주도하려는 국가들은 UN에서 단순히 7표에 불과한 나라라는 한계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G7의 리더쉽을 지지하는 국가들이 점점 줄어든다면 ‘G7의 세계 거버넌스 구상’은 점점 허상에 불과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올해 브릭스에 모인 국가가 32개국이었으며, 머잖아 40여개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소식은 매우 조심스럽다. 또한 중국이 주창하였지만 참여국 모두에게 공감될 수 있는 “다자주의”는 우크라이나 침략국인 러시아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또 그런 러시아에 국운을 걸고 있는 북한에게는 또 어떤 기회를 열릴지 모른다.

글로벌 사우스로 확대되고 있는 브릭스. 출처: 독일 통계청(www.statista.com)
글로벌 사우스로 확대되고 있는 브릭스. 출처: 독일 통계청(www.statista.com)

북한, 러시아 거쳐 경제제재 돌파

브릭스에 참석한 국가들의 국제정치적 성향을 살펴보면 그들을 반서방적이거나 친러시아적이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NATO회원국인 튀르키예, 동남아시아에서 공산주의가 정치에 개입한 적이 없던 태국이 브릭스 참여신청을 한 것은 왜일까? 2023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된 브릭스 회의를 기점으로 아르헨티나,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UAE가 신규회원국으로 참여한 바 있다.

이 국가들 중 이란을 제외한 국가들은 러-우 전쟁 당시 중립을 지켰던 국가이다. 심지어 러시아의 침략에 대해 서방과 동일한 입장을 취했던 국가들이 다수다. 그러나 이들의 경제적인 성향을 보면 정치적 성향과 무관한 경제협력을 추구하고자 하는 성향이 뚜렷하다. 브릭스가 추구하는 움직임이 이들 국가들에게 경제적으로 이익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올해 카잔 회의에는 정식 회원국 외 22개국이 참석함으로써 추가가입 의지가 있는 국가들의 움직임이 분명하게 강화된 것을 볼 수 있다. 브릭스는 중국이 주창한 다자주의를 통해 많은 중진국 또는 약소국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면서 중국 중심의 세확장에 상당부분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러시아” 문제가 개입되고 있다는 점에서 브릭스의 움직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미국의 국제결제시스템에서 퇴출된 후 국제무역결제시스템의 다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자국의 가스대금을 루블화 또는 위안화로 결제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브릭스 국가들이 러시아를 세계경제체제에서 퇴출시킬 생각이 없다면 러시아는 브릭스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 수 있다. 이는 향후 북한의 경제제재 회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북러협약을 통해 러시아가 북한의 경제적 후원자로 등극한 상황에서 러시아의 새로운 활로는 북한의 새로운 생존을 보장할 수도 있다.

비동맹주의 국가들의 결집이 던지는 경고

장기적으로 브릭스를 통해 비동맹주의 국가들을 모집하기 시작한 것은 중국이다. 비동맹주의는 친서방주의나 친공산주의적 성향을 거부하고 중립을 고수하여 국제적인 영향력을 강화시켜 온 중소국가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다. 비동맹주의 국가들은 크게 인도와 중국을 중심으로 어느 진영에도 가담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국제정치에서 자체적인 협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이 비동맹주의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이미 역내 패권주의적 성향을 넘어 글로벌 패권경쟁에 돌입하자 비동맹주의의 정치적 이용 가능성에 대해 의심을 사고 있다. 그간 중국이 지속적으로 유지해 온 아프리카 지원 및 반제국주의 운동을 볼 때 중국이 가지는 비동맹주의 국가들에 대한 리더쉽은 상당히 견고하다. 물론 인도가 중국과 국경분쟁 갈등을 벌이고 비동맹주의 내에서 리더십 경쟁을 하고 있지만 중국의 브릭스를 통한 비동맹주의 영향력 확대를 대놓고 반대하기도 어렵다.

중국은 비동맹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글로벌 사우스”로 통칭해 이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함으로써 국제사회 “다자주의” 정치력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의 국제정치적 영향력 투사 방법이 전형적인 ‘비제도주의적’ 접근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이 UN를 이용한 다자주의 접근법을 사용하는 것은 향후 중국이 국제정치 리더쉽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질 가능성이 높다.

일방주의가 아닌 다자주의를 기초로 다수 주권국가의 지지를 받는 국제여론 형성은 국제사회에서 어떤 정치력보다 강력하다. 기존의 다자국제기구가 친중국적 성향을 띄게 되는 과정을 애써 무시한 채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태도는 브릭스의 세력화가 강화되면 될수록 심각한 도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191개국이 참여하는 주권국가들의 의사결정체인 UN을 통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세력화되고 그 핵심 결집체로 브릭스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브릭스가 신냉전시대 진영간 갈등 시점에서 G7에 대항하는 ‘진영협의체’로 거듭나게 될 경우, 이는 “글로벌 사우스”의 지지도 브릭스에 빼앗길 수 있다는 점에서 브릭스와 글로벌 사우스의 결합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글쓴이

최수정 칼럼니스트

최수정 칼럼니스트는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박사과정에서 해양법을 전공하고 있다. 한국 해양수산개발원에서 11년간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해양환경, 국제수산규범, 독도영토분쟁을 포함한 유엔해양법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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