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동원과 민주주의의 역할
[강우진의 투명인간들을 위한 민주주의] 한국의 민주주의는 성공적이지만 정치의 갈등조정 능력 떨어져 분노 부추기는 ‘심판 프레임’ 득세 미래 비전 놓고 담론 경쟁하는 정치돼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이제 곧 치러진다. 민주화 이후 역대 어느 국회의원 선거가 그러지 않았을까만은 이번 선거가 한국 정치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크다.
분노 표출로 민주주의를 끌어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은 전 세계적 흐름으로 볼 때 민주주의 제3의 물결의 흐름 속에서 민주화로 이행했다. 민주화 이후 한국은 이번 선거까지 포함하면 10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8번의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이 과정에서 4번의 정권교체를 큰 무리 없이 달성했다. 경쟁적이고 주기적인, 그리고 공정한 선거를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한국에서 정치 권력을 교체하는 게임의 규칙이 된 것이다. 세계적 시간으로 볼 때 민주주의 도도한 물결에 다소 늦게 동참하였지만 제3의 물결을 통해서 민주주의로 이행한 나라 중에서는 가장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제도화한 소수의 사례에 속한다.
한국 민주주의 ‘성공적 제도화’의 이면에는 시민들의 분노가 광장에서 반복적으로 폭발하는 ‘광장 정치의 활성화’라는 속살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만 보더라도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서 사망한 효순·미순 추모 촛불,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통과 반대 촛불, 2008년 미국 광우병 수입소 반대 촛불, 200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촉발되어 연인원 1700여만 명이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탄 및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촛불, 2019년 검찰·언론 개혁 촛불 집회가 있다. 제20대 대선(2022) 이후에는 이태원 참사를 기점으로 윤석열 정부 퇴진을 위한 촛불 집회가 지속되고 있다.
광장의 정치는 비판적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반촛불)로 본격화된 이른바 태극기 집회는 문재인 대통령 퇴진 시위, 윤석열 대통령 지지 시위로 진화해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 민주주의는 제도적 안정성과 광장의 정치라는 두 가지 모습이 때론 공존하면서 때론 대립하면서 발전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가 둘인 오르토스(Όρθρος)와 비견될 수 있을지 모른다.

시민들의 열정이 폭발하는 광장의 정치는 카르텔화된 제도권 민주주의에 지속적인 긴장을 제공한다. 나아가 2016~17년 촛불시위의 사례와 같이 ‘제도권 민주주의의 병목’ 현상을 돌파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민주주의 이론의 석학인 로버트 달(Robert Dahl)이 지적한 바와 같이, 정치적 평등을 위한 도덕적 행위의 안내자는 이성만이 아니라 공감과 분노와 같은 감정인 것이 사실이다(Dahl 2006). 하지만 정치의 역할과 민주주의의 기능을 환기한다면 분노와 열정의 동원만으로는 우리가 바라는 좋은 정치와 민주주의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민주주의는 사적 갈등을 공적으로 풀어내는 것
민주주의는 경쟁적인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를 통해서 사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이해관계의 충돌을 공적인 영역에서 제도적으로 대표하고 조정하는 체제다. 이러한 면에서 정치의 본령은 갈등에 있다(Schattsschneider 1960).
정치는 갈등의 범위와 동원 방식과 전략을 둘러싼 투쟁인 것이다. 민주주의가 갈등을 어떻게 제도화하고 조정하느냐에 따라서 사회 통합과 민주주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선거에서 패자는 같은 조건에서 선거가 치러지고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면, 패배의 선거 결과를 수용할 것이다. 승자는 권력의 위임이 잠정적이고 조건적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모든 것은 과정의 공정성에 달려 있다. 즉 민주주의 체제는 과정의 공정성이 결과를 정당화한다. 이러한 면에서 이 체제는 잠정적이며 불안정한 균형에 기반을 둔 체제다.
만약에 사적 영역의 열정과 정념이 공적인 영역에서 여과 없이 표출되고 충돌한다면 잠정적인 균형은 쉽게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 대의제 대통령제의 전형으로 꼽히던 미국 사례가 상징적인 사례다. 워싱턴 정치의 이단아였던 트럼프는 카르텔화된 미국 정치가 제대로 대표하지 않았던 백인들의 분노를 동원하여 2016년 대선 경쟁에서 공화당의 후보가 되었으며 결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이었던 2020년 대선에서 민주당 바이든 후보에게 패배하자 선거가 부정선거였으며 승리를 빼앗겼다는 음모론을 퍼뜨렸다. 이 음모론을 신봉하는 분노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워싱턴 의사당을 난입하는 유례없는 폭동이 발생했다.
역대 최소차 패배 야당을 ‘범죄세력’이라니
가장 성공적인 제도화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한국은 어떠한가?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제도화된 소수의 사례라는 국제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갈등 해결’ 기제로서 민주주의 역할이 취약하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갈등 지수는 조사 대상 OECD 30개 국가 중에서 3위를 기록했다(2008년 4위에서 2016년 3위로 심화). 1위와 2위를 기록한 멕시코와 이스라엘에 비교할 때 한국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종교적·인종적 갈등이 낮은 나라인데도 그렇다. 이에 따라 한국의 갈등관리 지수는 OECD 조사 대상 30개 국가 중에서 27위에 그쳤다(Global Insight 2021). 갈등 조정 체제로서 한국 민주주의는 여전히 갈 길이 매우 멀다.
민주주의 꽃인 선거를 지배하는 언술은 한국에서 정치의 본령과 민주주의의 역할로서 한국 민주주의 거울이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당 모두 중앙 선거관리 위원회에 10대 공약을 제출했다. 각 당의 정책은 내용과 우선순위에 있어서 작지 않은 차이가 있다(대표적으로 기후 위기에 대한 공약). 그런데도 선거캠페인을 지배하는 것은 정당의 대표 공약이 아니라 여야 정당이 제시한 ‘심판 프레임’이다. 더구나 이러한 심판 프레임은 상대 정당에 대해 낙인찍기와 나아가 악마화를 주저하지 않는다.
집권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당을 찍으면 범죄집단에 면허증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2024년 국회의원 선거를 ‘범죄 세력 심판’ 선거로 규정했다. 제20대 대선에서 1600여만 표를 획득해 집권당과 역대 최소 지지율 차(0.73%)와 두 번째로 적은 표 차(24여만 표 차)로 패배한 민주당을 범죄집단으로 규정한 것이다. 또한 윤석열 정부의 조기 종식을 정당 창당의 목표로 삼았던 조국혁신당의 구호는 ‘3년은 너무 길다’다. 제1 야당의 대표는 ‘이번 총선은 신한일전’이라고 주장하며 ‘친일 심판론’을 띄웠다.
‘심판 프레임’ 대신 ‘정치적 담론’ 복원해야
왜 선거 캠페인 과정을 지배하는 담론이 중요한가? 인간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한 철학자는 흥미롭게도 인간은 정치적 동물임을 강조한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와 말 불가분의 관계를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동물 중에서 인간만이 말(logos)을 가진다. 인간의 말은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 따라서 정의로운 것과 비정의로운 것을 분명하게 한다. 인간에게 고유한 이러한 특성에 기반을 두어 공동체가 ‘폴리스’를 만들어낸다(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김재홍 역, 33-35).
정치는 사적인 영역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인 충돌을 공적인 영역에서 설득으로 대치한 것이다. 대표자를 선출하는 민주주의 꽃인 선거 캠페인 과정을 지배하는 담론의 내용은 유권자-대표자를 매개하는 민주적 책임성의 내용과 질을 결정한다. 후보자가 정책적으로 어떻게 주권자인 유권자를 대표할지 제대로 모르거나, 분노와 혐오의 언술에 휩쓸려서 투표한다면 민주적 책임성의 고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그리스 이후 민주주의 역사는 민주주의 체제는 오랫동안 불신의 대상이었으며 불안정한 체제였다는 것을 잘 나타낸다. 프랑스 대혁명이 부활의 씨앗을 뿌리고 나서 20세기 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민주주의는 한때 시대정신이 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 민주주의는 적지 않은 곳에서 후퇴와 퇴행 나아가 전복을 겪었다. 바야흐로 민주주의 위기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로부터 출발한다. ‘정치란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라는 칼 슈미트식의 인식은 제도로서 민주주의 기반을 침식한다. 선거에서 패배한 반대 진영은 절멸의 대상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의 파트너다. 민주주의의 원칙 속에서 미래 비전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다. 민주주의 체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진영을 넘어서 민주주의 원칙과 규범에 동의하는 기반과 근육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적인 담론의 복원이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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