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만 바꾸지 않기 위해서
[강우진의 투명인간들을 위한 민주주의] “두번째 맞은 위기, 근본적 민주주의 위기 극복 과정이 촛불항쟁의 재판 아니길” 직접행동으로 위기 막은 파수꾼 민주주의 대통령제의 수평적·수직적 분권화를
2016년 때보다 심각한 민주주의 위기
12.3 내란과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로 한국 민주주의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 12.3 내란이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첫 번째 변곡점이었다면,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는 두 번째 변곡점이었다. 이 사태는 미국에서 2021년 1월 16일 발생한 의사당 난입사태와 비견할 수 있다. 이 사태가 2016~17년 촛불 항쟁과 마찬가지로 헌정질서 틀 속에서 해소될 수 있느냐 여부는 한국 민주주의의 장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될 것이다.
이 사태로 인해 한국이 전통적 의미의 일당독재나 파시즘으로 전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이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경쟁적 권위주의 체제’(competitive authoritarianism)로 회귀할 수도 있다. 이 체제는 선거는 형식적으로 유지되지만, 민주주의 외피를 두른 권위주의자가 비대한 권력을 이용하여 선거의 경쟁성을 무력화시키는 체제다,
12.3 내란의 주범에 대한 탄핵 심판은 최종 선고만 남겨두고 있다. 12.3 내란이 한국 사회에 미친 충격과 영향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촛불 항쟁과 코로나를 거치면서 한국 민주주의는 세계가 주목하는 사례가 되었다. 하지만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부설기관인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에서 발표한 올해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민주주의 수준은 167개 조사 대상 국가 중 32위를 차지해 이전 해보다 10단계 하락했다. 이로써 한국은 ‘완전한 민주주의’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하락했다.
대통령만 바꾸면 극복될 위기인가
한국이 이 위기를 넘어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위기의 성격과 원인을 제대로 분석해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세 가지 차원을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먼저, 한국이 직면한 민주주의 위기는 음모론에 빠져서 시대착오적인 세계관을 가진 대통령의 일탈이 위기의 원인인가. 그래서 헌법재판소가 헌정을 유린한 대통령을 파면하고 대선을 통해서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면 한국 민주주의 위기는 복원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2016년 촛불 광장에서 공적으로 위임한 주권을 사유화한 권력자를 시민의 힘으로 헌정 절차에 따라서 탄핵했다. 하지만 10년도 되지 않은 시간에 국정농단보다 훨씬 더 심각한 내란으로 공동체를 위기에 몰아넣은 대통령을 경험하고 있다.
승자 독식의 대통령제는 근본 원인 아닌가
둘째, 민주화 이후 정치적 위기 때마다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온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인가 하는 점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환원론은 중요한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다. 한국의 대통령제가 제왕적인가. 그렇다면 어떠한 면에서 제왕적인가. 제왕적 권한의 원천은 무엇인가. 제도적인 것인가? 정치적인 것인가?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의 권한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앞선 비교 연구에 따르면 한국 대통령의 권한은 다른 대통령에 비해서 중간 정도에 해당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잘 알려져 있듯이 슐레진저의 ‘제왕적 대통령’(Schlesinger 1973)에서 기인했다. 이는 미국 대통령의 권한이 대외정책에 있어서 비대해지는 경향을 지칭한 것이었다. 베트남 전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처럼 대외정책에 있어서 대통령의 권한은 절대적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대외정책 영역에서 미국 대통령의 사실상 위헌적인 절대적인 권한 행사를 막기 위해서 War Power Act(1973) 제정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의 권한은 제도적 권한(institutional authority)과 정당 기반(partisan) 권한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의 대통령제에서 실제로 더 중요한 권한은 정당 기반 권한이다한국의 대통령제는 결선투표제 없는 5년 단임제가 형식적으로 혼합제 선거제도이지만 사실상 다수제적 성격을 가진 선거제도가 결합한 승자 독식제도이다. 이러한 ‘승자독식 제도’는 대통령직에 대한 보상을 극대화하여 이 시스템 안에 있는 내부자(insider)끼리는 대통령직에 대한 과열된 경쟁을 유발한다. 하지만 이 시스템 밖에 있는 외부자(outsider)에게는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3김 시절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대통령은 퇴장했지만, 정치적 개인화의 조건 속에서 정치적 팬덤에 기반을 두어 대통령의 정치적 권한은 여전히 강하다. 때문에 대통령제를 의회중심제나 준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로 정부형태를 바꾸면 민주주의 위기는 도래하지 않을 것인가? 정치적 개인화가 높은 수준인 한국에서 헝가리의 오반, 인도의 모리, 일본의 아베와 같이 대통령화된 총리가 출현하지 않을 조건은 무엇인가? 준대통령제의 대표적 사례인 프랑스에서 겪고 있는 헌정체제의 위기가 한국에 던지는 함의는 무엇인가?
‘투표장에서 멈춘 민주주의’ 라는 위기
셋째, 한국이 당면한 민주주의 체제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편향된 대표 체계의 위기다.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거대 양당간 카르텔화된 체제로 굳어졌다. 최근 금투세나 상속세를 둘러싼 논쟁에서 잘 드러나듯이 거대 양당의 정책은 서로 수렴하고 있다. 거대 양당간 정책적 차이보다는 거대 양당이 대표하는 집단과 거대 양당이 대표하지 않는 집단의 차이가 더 크다.
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는 거대 양당은 정책을 둘러싼 경쟁 보다는 보상이 극대화된 대통령직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에 골몰한다. 편향된 대표체계는 시민들의 인식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아시아 바로미터 서베이(Asian Barometer Survey)가 “선거가 후보자와 정당 사이의 실질적인 선택을 제공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2003년 제1차 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54.45%였으나 5차 조사(2019년)에서는 35.76%로 크게 하락했다. ‘항상 그렇다’는 같은 기간 15.15%에서 3.89%로 급락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청년(20~30대)의 절반이 넘는 집단이 21대 국회가 자신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면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투표장에서 멈춘 민주주의’라고 부를 만한다.
민주화 이후 두 번째로 직면한 위기는 첫 번째 위기와는 그 성격을 달리하는 근본적인 위기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 촛불 항쟁의 재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촛불 광장에서 한 시인은 ‘대통령 하나 갈아치우려고 촛불을 들지 않았다’고 일갈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의 요구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던 한국의 카르텔 체제를 개방적인 체제로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대통령 권한의 수평적· 수직적 분산을 위해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수평적 분산과 함께 수직적 분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수평적 분산을 위해서 정부형태와 선거제도 개혁을 아우르는 종합적 제도개혁 패키지가 필요하다.
결선투표의 도입과 의원 정수 확대를 통해서 비례대표의원 수를 충분히 늘려야 한다. 또한 국회의 재정통제권을 확대하여 대통령의 예산권을 축소해야 한다. 나아가 대통령의 인사권을 축소하고 고위 공직자에 대한 국회의 임명 동의권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감사원의 독립 기관화 또는 국회 이관을 추진해야 한다.
수직적 분산을 위해서 급박하게 전개되는 정치 일정 때문에 헌법을 대폭 손질하기가 어렵다면 원포인트 개헌을 통해서 지방자치 단체를 ‘지방정부’로 바꾸고 이미 앞선 대통령 후보들이 공약한 바와 같이 지방분권 국가를 헌법에 명문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민주주의는 진전과 정체 그리고 후퇴를 반복하면서 성장해 왔다. 한국 민주주의 위기 순간마다 한국 시민들은 직접 행동을 통해서 민주주의 위기를 막아내 한국 민주주의 복원 탄력성을 보여주었다. 파수꾼 민주주의(monitory democracy)의 역동성을 수평적·수직적 분권화를 내용으로 하는 ‘복원 탄력성의 제도화’로 이어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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