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가 내버려둔 ‘능력주의 공정성’

[강우진의 투명인간들을 위한 민주주의] 문재인 정부·대선 논란후 잠잠해져 능력주의 논란 ‘진행중’..정치권 무관심 방치된 “승자에겐 오만, 패자에겐 절망”

지난 2022년 6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보안검색 직원 1천900여명을 '청원경찰' 신분으로 직접 고용하기로 결정하자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이 반발하고 나선 일명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의 줄임말)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에 불공정 화두를 던지는 계기가 됐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22년 6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보안검색 직원 1천900여명을 '청원경찰' 신분으로 직접 고용하기로 결정하자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이 반발하고 나선 일명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의 줄임말)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에 불공정 화두를 던지는 계기가 됐다. 사진=연합뉴스

▶ 유튜브로 칼럼 듣기

다시 흔들리는 한국 민주주의

한국 민주주의는 안녕한가? 여야 간 극심한 대립이 한국 정치를 설명하는 열쇄말이 된 지 오래되었다. 임기 절반을 보낸 윤석열 대통령은 헌정사에 기록된 거부권의 4분의 1 이상을 행사한 대통령이다(90건 중 26.7%인 24건). 윤 대통령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체의석의 3분의 2인 200석에 근접하는 192석을 얻은 야권이 통과시킨 자신과 배우자와 관련된 법안조차도 거부권을 행사해왔다. 이에 대항하여 야당은 대통령 배우자 특검법을 계속 추진할 뜻을 명확히 했다. 특히 ‘3년은 너무 길다’라는 구호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권심판론을 확산시키며 돌풍을 일으켰던 조국혁신당은 특위를 발족시키며 윤 대통령 탄핵 추진을 본격화했다.

현재 조금씩 밝혀지고 있는 윤 정부의 법률 위반이 탄핵에 이를 만큼 중대한 사안인지는 앞으로 드러날 일이다. 하지만 윤 정부의 탄핵 이슈와는 별도로, 우리는 정치의 실종과 민주주의 부재의 결과에 마주한다.

문재인 정부시절의 공정성 논란

한국 정치가 대표하지 않는 많은 쟁점 중에서 ‘능력주의의 공정성’ 이슈가 두드러진다. 이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촛불항쟁으로 치러진 제19대 대선 캠페인에서 문재인 후보는 ‘기회는 공평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가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정의로운 결과’는 제19대 대선에서 승리하여 촛불 정부를 자임했던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정치적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공정성의 화두만 던졌을 뿐 다층적 수준에서 충돌했던 다양한 공정성 논의를 제도화할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봇물 터지듯 제기되었던 공정성 논의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첫째.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공정성 담론이 매우 협소하게 정의된 ‘절차적 공정성’에 집중하여 충돌했다. 한 연구자가 지적한 것처럼 한국인들은 불평등은 수용해도 불공정은 참지 못하곤 한다(박권일 2021). 한국 사람들이 못 참는 불공정은 가시적인 절차적 불공정성이다.

둘째, 공정성 논의의 무기화가 두드러졌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당한 몫을 주장하기 위해서 공정성 논의에 몰입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집단)의 주장을 공격하기 위해 무기화되는 경향이 컸다. 특히 정치적으로 극심하게 양극화된 한국 사회에서 공정성 담론은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정치적으로 동원되어 무기화된 공정성 담론은 주류 집단을 과대 대표하고 비주류 집단은 비가시화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낳는다.

셋째, 공정성 담론의 이면에는 한국식 능력주의(K-Meritocracy)에 대한 논쟁이 자리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청년층의 민심 이반의 계기가 되었던, 이른바 ‘조국 사태’는 대학입시를 둘러싼 부모 찬스 논란이 핵심이었다.

조국 사태 이후 정치권에서 능력주의 이슈는 하버드대학 졸업이라는 스펙을 가지고 헌정 사상 최초로 30대 야당 대표로 선출된 이준석 국민의 힘 전 대표가 불을 붙였다. 그는 출마 선언문에서 ‘실력만 있으면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도록 하는 공정함으로 모두의 가슴을 뛰게 만들자’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정하는 장치로 도입된 여성 할당제를 포함한 다양한 할당제 폐지를 주장했다. 또한 공직 후보자 자격시험을 도입하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세워 논란에 휩싸였다. 즉 그가 말하는 능력주의는 한국형 시험 능력주의가 핵심 내용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능력주의 공정성 이슈는 더는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잦아들었다는 사실이다.

한국형 능력주의는 ‘학력주의’

한국형 능력주의의 특징은 무엇인가? 능력주의는 자원 배분 기제로서 능력을 가장 우선시하는 체제를 말한다. 여기서 능력은 타고난 지능에 노력의 결합을 의미한다. 한국형 능력주의는 학력을 능력의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제시하고 이를 측정하는 도구로서 시험을 절대시하는 특징을 가진다. 한국형 능력주의는 이른바 ‘시험 능력주의’인 것이다(김동춘 2022).

한국 능력주의의 역사적 기원은 과거제를 도입하고 제도화했던 고려·조선 왕조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른바 보통문관 시험을 비롯한 각종 고시를 통한 입신과 계층 상승이 이등 시민이었던 조선의 청년들에게는 계층 상승의 통로였다. 하지만 능력주의의 현대적 기원은 압축적 산업화 시기였다. 이 시기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와 새로운 인재 채용을 위한 능력 시험과 공채가 제도화되었다. 고도 성장기 능력주의는 상대적으로 열린 사회적 이동성과 결합하면서 보편성의 신화를 구축할 수 있었다. 민주화를 거치면서 능력주의는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부상했고 한국인의 일상, 정치 사회를 지배하는 망탈리떼(mentalité)가 되었다.

한국형 능력주의는 그래도 공정한가

문제는 시험으로 측정되는 한국형 능력주의가 공정한가다. 이미 많은 연구가 경험적으로 제시하듯이 한국 사회에서 시험 성적은 수험생의 노력만의 결과가 아니다.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일타 강사에게 고액 과외를 받은 학생과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인터넷 강의로 자습한 학생의 시험 성적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능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면 능력이 자원 배분 기제로써 중요한 기준이라는 것에는 큰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다. 하지만 능력주의가 한국과 같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되었을 때는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 좌절과 굴욕을 준다.

한국의 수직적으로 서열화된 대학 구조속에서 상위권 대학을 진학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은 이른바 ‘대치동’과 ‘스카이 캐슬’이 상징하는 한국형 대학 입시 카르텔을 낳았다. 학부모들의 사교육비(고교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지속해서 증가했으며 소득 수준별, 거주 지역별 사교육비 격차는 계속 커져왔다. 이러한 차이는 소득 수준별, 거주 지역별 상위권 대학 진학률 차이로 이어졌다.

왜 상위권 대학 진학에 학부모, 학생 모두 모든 자원과 에너지를 투여하는가? 대학 서열은 실질적인 임금격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학 서열과 생애임금을 연구한 최근 한 연구(이지영·고영선 2023)에 따르면 노동시장 진입 시 최상위 그룹 대학 졸업자는 최하위 그룹 대학 졸업자들과 비교해 24.6%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 이후 이 격차는 점차 증가하여 40~44세에 최대치인 50.5%에 달했다. 이처럼 한국의 고도성장 시기 위대한 균형자(great equalizer) 역할을 했던 교육은 다중 격차 시대에 거대한 구분자(great divider) 역할을 하고 있다.

정치는 왜 능력주의를 고치지 않는가

능력주의로 번역되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용어의 기원이 되었다고 알려진 마이클 영의 저작(『능력주의』)은 이미 오래전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적 폐해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는 “능력을 결정적 요소로 보는 만연한 인식 때문에 아무 능력도 없는 다수가 무기력한 절망의 나락에 빠진다······이렇게 절망에 빠지는 사람은 분별력이 부족해서 사회에 항의도 하지 못하게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분노를 돌리게 되며 결국 무기력해지면서 더더욱 확실하게 절망에 빠진다”라고 경고했다(한글 번역본 2020, 197쪽).

문재인 정부에서 조국 사태, 인천공항공사 논란, 그리고 윤석열 정부에서 서오남(서울대, 오십대, 남자)과 검사 중심의 윤석열式 능력주의 논란이 나타내듯이 촛불 항쟁 이후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 논란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치권의 답은 앙상하고 빈약하다(제20대 대선 주요 정당 후보의 청년 공약을 보라.) 능력주의의 오작동이 문제인가? 능력주의의 한국식 작동이 문제인가? 한국 민주주의가 답해야 하는 문제다.

글쓴이

강우진 경북대 정치학 교수

강우진 경북대 정치학 교수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를 받았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 선거학회장, 한국 정당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최근 민주주의가 보통 사람들의 뜻을 어떻게 잘 대표하여 개선시킬 수 있는지에 관심이 크다. 주요 연구 영역은 민주주의 수행력, 권위주의 향수, 선거행태등이다. 최근 저작으로는 『거대한 뿌리-박정희 노스탤지어』, 『한국 민주주의 역설-제도신뢰 결손』, 『박정희 노스탤지어와 한국 민주주의』등이 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