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과 한국 민주주의의 결정적 순간

[강우진의 투명인간들을 위한 민주주의] 한국의 보수, 민주주의 ‘내면화’에 실패 ‘가치 보수’라기보다는 ‘권력 보수’에 불과 12.3사태 시민들, ‘파수꾼 민주주의’ 발현 현 상황, 헌정질서내 종식시킬 수 있을까

우원식 국회의장이 1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언하며 의사봉을 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우원식 국회의장이 1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언하며 의사봉을 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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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친위쿠데타였던 12.3 내란 시도는 시민들의 저항과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 그리고 국회의 대통령 탄핵 의결로 일단 실패했다. 내란의 1차 시도는 저지되었지만, 내란 주체와 그 동조 세력 그리고 민주주의 수호 세력 간의 대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 대행이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을 거부하여 국회에 의해서 탄핵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2025년 4월 18일 두 명의 재판관이 퇴임하기 이전에 헌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탄핵 심판의 결론을 내지 못한다면 한국은 심각한 혼란에 직면할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

1987년 유월 항쟁, 그리고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이어서 한국 민주주의 세 번째 결정적 순간이 도래했다. 이 결정적 순간의 도래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그동안의 이해와 해석에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첫째, 12.3 내란 사태는 그동안 한국 민주주의의 성취에 대한 국내외적 평가에 근본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사건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은 전후 독립한 나라 중에서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제도화한 소수의 사례였다. 학자는 보통 민주주의가 권위주의 체제로 퇴행하지 않는 공고화의 기준으로 두 번의 정권교체를 꼽곤 했다. 한국은 윤 대통령의 당선으로 네 번의 정권교체를 큰 탈 없이 완수했다.

많은 학자들은 공정하고 경쟁적인 선거를 통한 권력의 교체라는 민주주의 핵심 규칙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유일한 게임의 규칙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또한, 한국은 ‘하나회 해체’를 통해서 신생 민주주의 국가의 민주화 과제 중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인 ‘군부의 문민통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많은 학자는 한국에서 다시는 영화 ‘서울의 봄’의 상황이 도래하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네 번의 정권교체를 달성한 정부에서 ‘서울의 밤’이 도래했다. 12.3 내란 사태로 인해서 우리는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다시 쓰고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 도대체 민주화 이후 한국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우리는 민주주의자였던가

둘째, 한국의 주요 정치 행위자가 민주주의자였는가 여부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그동안 민주주의 연구자는 선거 체제의 제도화를 중심으로 민주주의 공고화를 바라봤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공고화되기 위해서는 해당 사회의 주요 행위자들이 민주주의 원칙을 수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면화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다수의 시민, 특히 주요 정치 행위자들이 정파주의자 이전에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자는 ‘잠정적 균형’인 선거 결과가 자신이 속한 정파의 이익과 반하더라도 이를 수용해야 한다. 또한 민주적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하거나 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극단주의자와 연대해서는 안 된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원형으로 불리던 미국에서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한 국회 의사당 난입 사건이 발생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치른 2020년 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하자 선거 부정이 패배의 원인이라는 음모론을 주장했다. 이를 믿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폭력으로 의사당을 난입하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12.3 내란 사건을 통해서 한국 보수의 중심세력이 민주주의 원칙을 공유하고 내면화한 민주주의자일 것이라는 믿음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가가 드러났다. 한국의 보수 세력은 분단국가 수립과 위로부터 권위주의적 동원에 의한 산업화의 주역이었다. 또한 3당 합당으로 민주화 세력 일부를 끌어들여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교 구실을 했다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 세력은 자신만의 이념을 만들고 발전시켜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기 한국 보수 세력의 이념은 한국 사회의 나침판을 제시하는 적극적인 이념이라기보다는 반공주의에 기반을 둔 부정적인 이념이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공동체 자유주의와 대한민국 선진화’(박세일 교수)와 ‘따듯한 보수’(유승민)와 같이 새로운 보수를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보수 이념의 재구성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한국의 보수는 정부 수립 이후 한국 사회의 지배 세력으로 헤게모니적 지위를 유지해오고 있지만, 독자적 이념에 기초한 ‘가치 보수’라기보다는 권력을 향해 부유하는 ‘권력 보수’였다.

한국 정치의 부조리극을 상징하는 장면들을 통해서 권력 보수의 민낯을 알 수 있다. 국민의힘은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을 구속한 국정농단 수사의 수사팀장을 역임했으며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후보를 영입하여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윤석열 후보는 대선에서 승리한 후 당선인 신분으로 박 전 대통령을 방문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에게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전하고 정책 계승과 홍보를 통해서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을 다시 방문했다. 또한 국정농단 수사에서 검사로서 국정 사유화와 헌법 가치 훼손을 이유로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했던 한동훈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방문했다. 그동안 찾아보기 힘든 한국 정치 부조리극의 절정이다.

2023년 10월26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2023년 10월26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권력 보수의 민낯은 권력을 장악했을 때 더 잘 드러난다. 한국 사회 헤게모니 세력인 보수가 진보 진영에 두 번에 걸쳐서 권력을 내어주고 절치부심하여 권력을 되찾아온 이명박 정부로 돌아가보자. 제17대 대선(2007년) 결과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자 한국은 두 번의 정권 교체를 달성하여 민주주의가 최소 정의의 기준을 따르면 공고화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일부 학자들의 표현으로는 ‘경이로운 민주주의’).

이러한 대내외적 평가와는 대조적으로 권력을 되찾아온 보수 세력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선거에서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보수는 집권당으로서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국가 기관을 동원하여 제18대 대통령 선거(2012년) 과정에 개입하였다. 이 사건은 선거의 완결성(electoral integrity)를 훼손한 심각한 사건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원에 의한 댓글 공작 사건 수사로 대중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자신이 수사하여 기소한 대표적인 민주주의 유린 사건 주범에 대해서 사면했다.

또한 한국 보수의 적지 않은 세력이 자신이 집권당으로 치른 선거 결과가 불리하게 나타나자 ‘부정선거 음모론’을 신봉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윤 대통령은 12.3 내란을 정당화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 담화에서 그는 선관위 시스템은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으며 국방부 장관에게 이를 점검하도록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 권한 대행을 역임했으며 당 대표를 지낸 인사는 부정선거를 공공연히 주장한다. 또한 부정선거와 음모론을 근거로 반헌법적인 내란을 옹호하는 광장의 집회에 집권당의 주요 정치인이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토록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던 자유 민주주의 헌정질서의 위기 앞에서 한국의 집권 보수는 민주주의 가치와 원칙을 지키기보다 파당적 이익의 수호에 골몰했다. 첫 번째 탄핵 표결에는 아예 참여하지 않아서 투표 불성립을 만들었다. 또한 제2차 탄핵 표결에서도 마라톤 회의 끝에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셋째, 민주주의 지지기반의 축소와 정파적 도구화다. 한편으로 12.3 내란 사태를 통해서 한국 민주주의의 복원 탄력성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한밤중 계엄령이 발표되자 수천 명의 시민이 국회로 모여들었고 계엄군과 목숨을 걸고 온몸으로 맞섰다. 또한 국회의원들도 담장을 넘어서 국회에 집결했고 비상계엄 선포 두 시간 만에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한 시민은 진격하는 군용차를 맨몸으로 막아섰다. 이 시민의 행동은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에서 탱크맨을 연상시켰다. 또한 여성 청년 정치인은 국회에 난입한 계엄군의 장전된 소총의 총구를 맨손으로 잡고 막았다. 이 장면은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을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다.

12.3 내란 당시 국회의사당으로 오는 군 차량을 막아선 시민.
12.3 내란 당시 국회의사당으로 오는 군 차량을 막아선 시민.

또한 실시간 시위 정보를 X(구 트위터) 등 SNS를 통해서 공유하고 시위 참여자들을 위해서 김밥과 음료를 선결제하는 시위 문화는 시민들이 들었던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함께 새로운 한국 시위 문화의 상징이 됐다. 비상계엄에 저항한 시민들의 직접 행동은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특징으로 자리를 잡은 파수꾼 민주주의(Monitory Democracy)의 참모습을 잘 보여 줬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역할로 좌고우면하던 국민의힘 일부 국회의원이 동참해, 비상계엄을 통해서 친위쿠데타를 시도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두 번째 시도 만에 2024년 12월 14일 가결됐다.

다른 한편으로는 2024년 탄핵 사태를 둘러싸고 한국 민주주의가 정파적 도구로 전락했다는 우려가 크게 제기되었다. 2016년 박근혜 탄핵과 2024년 윤석열 탄핵에 대한 저항 세력의 성격과 규모는 질적으로 다르다. 2016년 탄핵에서 여권은 분열되었고 지지율은 5%까지 급락했다. 하지만 2024년 윤석열의 경우 여당은 여전히 탄핵 직전 지지율은 17%였다(한국 갤럽). 2016년 국정농단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내란 시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보수 시민들은 민주주의 위기를 여전히 정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국회에서 윤석열의 내란 시도에 의한 탄핵 소추 가결 이후 내란은 저지되었지만, 물리적 충돌이 유예된 채 민주주의 세력과 대안적인 헌정질서를 주장하는 세력 간에 내전이 지속되고 있다.

이 내전이 민주적 헌정질서 틀 속에서 종식되느냐 여부가 한국 민주주의 장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결정적 변수다. 다수 시민의 지지를 얻었던 ‘촛불 정부’가 5년 만에 막을 내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최대민주 연합으로 ‘촛불 연합’을 ‘민주주의 개혁 연합’으로 전환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작은 차이와 정파적 대립을 넘어서 탄핵을 지지하는 다수 시민이 최대민주 연합을 유지하고 이 위기를 넘어설 수 있도록 힘을 모을 때다.

글쓴이

강우진 경북대 정치학 교수

강우진 경북대 정치학 교수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를 받았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 선거학회장, 한국 정당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최근 민주주의가 보통 사람들의 뜻을 어떻게 잘 대표하여 개선시킬 수 있는지에 관심이 크다. 주요 연구 영역은 민주주의 수행력, 권위주의 향수, 선거행태등이다. 최근 저작으로는 『거대한 뿌리-박정희 노스탤지어』, 『한국 민주주의 역설-제도신뢰 결손』, 『박정희 노스탤지어와 한국 민주주의』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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