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성공적인 ‘불평등한 민주주의’

[강우진의 투명인간들을 위한 민주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데 능숙한 한국 보통 사람들 이익 실현에 유능한 모습인가 주권자이면서 이익 못 얻는 ‘투명인간’ 많아 언제까지 이들의 이익에 무관심할 것인가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실천해 나가길

지난 2020년 5월 14일 차별금지법제정부산연대는 국제 성 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17일)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앞에서 21대 국회 첫 번째 과제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20년 5월 14일 차별금지법제정부산연대는 국제 성 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17일)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앞에서 21대 국회 첫 번째 과제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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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체는 민주주의라고 불린다. 권력이 소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수 시민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이 나라에 기여하는 한 그 누구도 가난하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무시당하는 일은 없다.” (펠리클레스 ‘우리는 민주주의자다’ 연설 중에서)

한국은 민주주의 위기에 비껴나 있나

바야흐로 민주주의 위기의 시대다. 민주화의 제3 물결이 가속했던 민주주의의 지구적 확산으로 역사상 최초로 민주주의 체제가 전 세계 정치체제의 다수가 되었다 (1974~2005). 하지만 새로운 밀레니엄 이후 민주주의 체제는 점진적으로 퇴행을 겪었고 위기에 직면했다. 한때 지배적인 정치체제를 점했던 민주주의는 더 이상 확산하지 않고 있다. 또한 전 세계의 자유 지수(Freedom Index)는 하락하고 있다. 더구나, 1976~2019년 기간에 민주주의 붕괴(재권위주의화)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네 번의 정권교체를 안정적으로 달성한 우리나라는 이러한 지구적 경향으로부터 벗어나 있나? 우리나라와 같이 경제적 성취를 달성한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민주주의 체제가 붕괴하여 재(再)권위주의화 하는 방식으로 오는 경우는 적다. 오히려 민주주의 규범과 제도의 기반이 야금야금 허물어지는 방식(by stealth)으로 온다. 따라서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도전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역설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제3의 물결을 통해서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민주화 사례 중의 하나로 꼽힌다. 민주화 이후 2022년 제20 대선까지 네 번의 정권교체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민주주의 제도화 과정에서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로 대표되는 경제위기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구속이라는 정치적 위기를 헌정 중단 없이 극복했다.

민주주의의 성취는 다양한 국제 평가기관의 평가에서도 잘 반영되었다. 폴리티 지수(Polity Index)에 따르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체제와 혼합체제의 경계인 6점에 머물렀던 우리나라는 1997년 평화적 정권교체 이후 민주주의 국가 중 가장 높은 점수인 8점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가 발표하는 자유화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1998년 이후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권리 모두 가장 높은 수준인 8점을 유지하고 있다. 인텔리전트 유닛(Economist Intelligent Unit)의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9년 결함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로 일시적으로 하강했으나, 다시 완전한 민주주의로 복귀했다(2023년 지수에 따르면 167개국 중 22위에 올랐다).

국제적 평가만 보면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위기 시대의 도래라는 지구적 흐름에서 비켜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민주주의 체제의 이상을 환기한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속살이 드러난다.

22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 첫날이던 지난 4월 5일 국회 앞에서 빈민 장애인 관계자들이 모여, 22대 국회에 빈곤과 불평등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줄 것을 촉구했다. 사진=빈곤사회연대
22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 첫날이던 지난 4월 5일 국회 앞에서 빈민 장애인 관계자들이 모여, 22대 국회에 빈곤과 불평등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줄 것을 촉구했다. 사진=빈곤사회연대

보통 사람들의 이해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나

민주주의 체제에는 많은 정의가 있지만,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정치적으로 평등한 시민들이 대표자를 선출하여 주권을 일정 기간 위임하고 대표자를 통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실현하는 체제인 것이다. 적지 않은 흠결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체제가 가장 덜 나쁜 체제라는데 합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참모습을 만나기 위해서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기본틀이 되어온 ’87년 체제‘의 특징을 살펴보자. 87년 체제는 중앙집권적인 단임제 대통령제가 사실상 다수제의 성격을 가진 선거제도와 결합된 대표적인 승자독식 체제다. 더구나 정당체제는 정책과 이념에 기반을 둔 체제가 아니라 지역에 정치적 지지기반을 둔 지역 정당체제였다. 이 체제는 대통령직에 대한 보상을 극대화해 체제 내부에서는 거대 정당간 경쟁을 극대화했다. 반대로 이 체제는 높은 진입장벽을 만들어 체제 내에서 기득권화된 ’인싸‘(insider)와 진입장벽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한 ’앗싸’(outsider)사이의 구별짓기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체제를 위계적 카르텔 체제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른다.

수도권을 정점으로 중앙집권화된 위계적 카르텔 체제는 ‘보통 사람들’의 요구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고 이들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성소수자, 장애인, 비정규직, 농민, 청년, 여성과 같이 소수자 출신 국회의원은 카르텔 체제에서 전혀 대표되지 않거나 거의 대표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국회에 보통 사람들이 얼마나 진출했는가를 살펴보자. 이를 ‘기술적 대표성’이라고 부른다. 제13~22대 국회에서 성소수자 출신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차별금지법이 2007년에 발의되었지만, 여전히 입법화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성소수자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지만, 정치적으로 ‘투명인간’인 대표적 집단이다.

같은 기간 장애인 출신 비례대표 의원은 단지 18명에 그쳤다. 그나마 비례대표 재선을 하거나 비례대표를 기반으로 지역구에서 재선한 국회의원은 없었다. 20대 청년 출신 국회의원은 같은 기간 단 3명에 그쳤다. 제22대 국회에서 노조출신 국회의원은 15명(한국노총 10명 민주노총 5명)으로 제21대 국회의 13명 보다 소폭 증가했다.

하지만 제13~22대 국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출신 국회의원은 손에 꼽는다. 13.1%에 불과한 우리나라 노조 조직율과 37.0%(통계청)~41.3%(노동사회 연구원)에 달하는 비정규직 비율(2022년 기준)을 고려할 때 편향된 정치적 대표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상황이 나은 여성 국회의원 비율도 여전히 전체 의원 중에서 2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성의원 당선자는 총 57명(지역구 29명, 비례대표 28명)으로 제21대 국회(17%)보다 소폭 늘었지만, 여전히 19%에 그쳤다. 이에 따라 2023년 한국의 의회에서 여성 비율은 조사 대상 146개국 중에서 84위 그쳤다(2023 세계 젠더격차 보고서, WEF).

정치 엘리트들은 보통 사람들을 잘 대변하고 있나

‘보통 사람들’이 국회에 직접 진출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정치 엘리트가 보통 사람들의 의사와 이해관계를 잘 대변해왔는가? 대표적인 정치적 투명인간인 성소수자는 전혀 대표되지 않는다.

다양한 가족 구성원을 인정하는 법안(‘가족 구성원 3법’- 혼인평등법, 비혼출산지원법, 생활동반자법- 정의당 장혜영 의원 발의)은 제21대 국회에서야 최초로 발의되었다. 또한, 다층적 격차구조에 직면한 빈곤 청년과 관련된 중요한 민생 이슈는 정치권에서 중요한 의제로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과일값과 대파가격 논란이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었지만 ‘양곡관리법’은 ‘포퓰리즘 강제매수법’이라는 대통령의 규정으로 거부된 채 멈추어져 있다.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로 부상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는 80만명(2022년 기준)을 돌파해 전체 노동자의 3%를 차지했지만 63%는 고용계약조차 맺지 않고 일하고 있다(고용노동부·한국고용정보원 2022). 일감의 배정과 이에 따른 보수를 결정하는 알고리즘에 규정을 받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실질적인 생활권을 보장하는 법적인 기반은 부재하다.

보통 사람들이 ‘타는 목마름’으로 외쳤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대표자를 선출하는 방식을 민주화하는 것에 머무를 수 없다. 우리가 민주주의 체제를 다른 정치체제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것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사회의 공동선이 가장 잘 결정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또한, 이 믿음이 근거를 가지기 위해서는 공동선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이 결정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의 이익이 고려되어야 한다. 나아가, 이를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선택을 가질 수 있도록 동등한 기회를 얻어야 한다.

위계적 카르텔 체제로 굳어져 버린 우리의 민주주의가 대표하지 않는 정치적 투명인간을 대표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글쓴이

강우진 경북대 정치학 교수

강우진 경북대 정치학 교수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를 받았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 선거학회장, 한국 정당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최근 민주주의가 보통 사람들의 뜻을 어떻게 잘 대표하여 개선시킬 수 있는지에 관심이 크다. 주요 연구 영역은 민주주의 수행력, 권위주의 향수, 선거행태등이다. 최근 저작으로는 『거대한 뿌리-박정희 노스탤지어』, 『한국 민주주의 역설-제도신뢰 결손』, 『박정희 노스탤지어와 한국 민주주의』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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