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과 꼰대 사이, KAIST 졸업식을 보는 눈

[김석희의 “이분법 넘어” - in Betweenness] 쌍팔년 시대 저항을 본받았어야 했을까 KAIST졸업생들 항의 목소리 분명히 들려 젊은이들 사이 “침묵했다면 문제” 인식도 “나 때”보다 못하다는 생각은 옳지 않아

지난 2월 16일 대전 KAIST 학위수여식 도중 한 석사 졸업생이 “R&D 예산 복원하십시오”라고 소리치는 순간 경호원이 입을 막으며 제지하고 있다.
지난 2월 16일 대전 KAIST 학위수여식 도중 한 석사 졸업생이 “R&D 예산 복원하십시오”라고 소리치는 순간 경호원이 입을 막으며 제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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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역행적인 경호원들의 행동

최근 KAIST 졸업식에서 “R&D예산을 원상회복하라”고 외친 박사과정 졸업생 신민기씨가 대통령 경호원들에 의해 강제로 퇴장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달 전 쯤에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대통령 경호원들에 의해 사지가 들린 채 퇴장당한 사건도 있었지요.

대통령실 측에서는 매뉴얼에 따른 절차였을 뿐이라고 주장했고 일부에선 그런 대통령실의 입장을 지지했지만, 시대 역행이라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습니다. 11년 전,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민정책 연설을 하던 중 한 학생이 끼어들었을 때 경호원들이 저지하려 하자 이를 막으며 끝까지 그 학생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일화가 다시 회자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R&D예산’의 삭감 문제는 정부지원금에 의존해 학업 중이던 석박사과정생들에게 현실적인 어려움을 주었고, 그들을 지도하던 교수들은 졸지에 제자들을 내쳐야 하는 가혹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한국 미래 과학의 산실인 KAIST에서 그 정도의 외침은 있어 마땅한 것임을 우리는 수용해야 하겠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지적이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말을 보태지는 않겠습니다.

‘동료들이 가만있었다’는 비판에 대해

그보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어른들의 SNS’라 불리는 페이스북에서 목격한, 청년들을 향한 시선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 시선이란, 목격한 순서대로 말하자면 ‘친구가 끌려나가는데 왜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는가’와 지난 1987년, 서울대 졸업식에서 학생들이 일제히 돌아앉아 저항했던 사건을 예로 들며 ‘이 정도는 되어야하지 않겠는가’라고 하는 주장입니다.

1986년 서울대 졸업식 사진을 첨부된 한 게시물은 페이스북에서 80차례 가까이 공유되었습니다. 추측컨대, 이 게시물을 처음 올린 분은 반쯤은 장난스럽게, 반쯤은 지난 시절에 대한 추억을 공유한다는 취지로 포스팅했을 것입니다. 당시 서울대 총장이던 박봉식은 1981년 신군부가 쿠데타 직후 국회를 불법적으로 강제해산하고 정권장악을 위해서 설치했던 국가보위입법회의의 입법위원을 지낸 경력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1986년, 1987년 서울대 졸업식이 열릴 때마다 박봉식 총장이 축사를 위해서 연단에 오르면 졸업생들이 돌아앉아 아침 이슬을 불렀습니다. 손제석 문교부 장관이 연단에 오를 땐 ‘물러가라’는 구호와 함께 6200여명이 집단 퇴장당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래의 취지와 달리 원게시물이 공유되어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요즘 학생들을 꾸짖거나 화내는 듯한 어조가 가미되면서 비판 쪽에 무게가 실렸습니다.

우선, 사건의 진위여부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KAIST 졸업식 현장을 찍은 오마이뉴스의 보도 영상을 보면, 신민기씨가 ‘R&D 예산을 복원하십시오’라고 외칠 때 졸업생들은 박수를 쳐서 응원과 동의의 뜻을 표했습니다. 그가 강제 퇴장 당할 때에도 ‘끌고 가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학생들이 적어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이 정도의 저항’은 1980년대 전국의 학생이 하나의 조직처럼 움직였던 학생운동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의 일입니다. 지금의 학생들에게 그때와 똑같은 저항방식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학생들이 그런 조직력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든 기성세대, 흔히 말하는 586세대로 범위를 규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이들의 성취가 아닐지요.

세대 갈등이라 할만한 생각차 없어

앞에서 언급한 질문들은 정작 무엇이 문제였던가를 잊게 만든다는 점에 문제가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충분한 토론과 협의를 거치지 않은 R&D 예산 삭감이라는 사실에 있을테죠. 나는 이 상황에 대하여 평소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마침 이공계 학생이 많은 그룹의 단톡방에 질문했습니다. 이 학생들이 모든 젊은이들을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그 일단을 살펴볼 수는 있는 자료라 생각되어 부분적으로 공유해 보겠습니다.

“R&D예산 삭감에 대한 학생의 발언에 공감 가는 부분이 있고, 무력을 사용한 대처도 부적절한 면이 있다.” (건축공학을 전공하는 S)

“(특정 정당 활동가의 행동이었다는데) 정치색과 관련하여 야당 지지자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과학계를 대표한 발언이기도 했다. 학위수여식에서 의견을 표출하게 된 경위도 살펴보아야 한다.”(국제정치학을 전공하는 J)

“모두가 용기 있는 행동을 따르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변 학생들은 왜 가만히 있는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이해가 간다. 아마 그 졸업생이 계획을 하고 대여섯 친구들과 함께 목소리를 냈다면 다른 친구들도 쉽게 따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아마 당황해서 ‘어어’하는 사이에 상황이 끝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소프트웨어융합학을 전공하는 H)

여기 열거된 학생들이 의견은 KAIST 학생들이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한 얘기입니다.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저항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면, ‘왜 가만히 있는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해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일부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리, 젊은 학생들에게도 불합리한 상황에서 옆 사람의 곤란을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KAIST 졸업식장에 있던 젊은이 중에도, 앞에서 언급한 학생들 중에도 어른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항상 젊은이들 비판할 구실만 찾고 있나

우선은 보도 형태로 인한 오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어쩌면, 우리 어른들은 매사에 젊은이들을 비판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요즘 아이들’이라는 말로 일축하는 비판 뒤에는, 그들이 기성세대와 같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그것은 ‘요즘 아이들’의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왜 옛날 아이들과 같아야 할까요? 인류 사상 아이들이 기성세대의 입맛에 맞는 신세대였던 적은 없었습니다. 같다면 발전이 아니겠지요. 젊은 세대의 그러한 자유로움과 변화야말로 어른 세대가 가꾸어 온 변화이자 성취입니다. 어른들을 무조건 비판하는 것이 젊은이의 패기가 아닌 것처럼, ‘라떼(나 때)’보다 못한 젊은이라 생각하고 매사를 판단하는 것은 어른다움이 아닐 것입니다.

세대 갈등의 문제가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는 요즘, 해결의 실마리는 결국 인정과 믿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글쓴이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김석희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교수. 태어나보니 강원도 평창군 미탄이었다. 서른둘에 처음 국제선을 타고 일본에 갔다. 오사카대학에서 언어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역가, '어쩌다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계정 <문학팔레트>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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