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놓치고 있는 그들의 얼굴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서’] 역주행하는 켄 로치의 ‘나의 올드 오크’ 현대 사회 열악하고 답답한 현실 그려 공감하는 이들 역시 힘든 처지의 사람들 약자의 목소리를 영화에서 들어도 될까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켄 로치 감독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1초만에 매진 사태를 부르며 상영됐던 켄 로치 감독의 <나의 올드 오크>가 상업 영화관에서 개봉한 뒤, 호평을 받으며 조용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나의 올드 오크>는 폐광촌에 이주해온 난민들을 향한 편견의 시선을 다룬 영화다. 대중적인 영화가 아닌데도 탄탄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감독들이 있다. 켄 로치 감독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켄 로치는 일관성 있게 비슷한 성향의 영화를 만드는 이른바 ‘작가주의’ 감독이다. 요즈음처럼 OTT의 판타지성 드라마가 득세하는 상황에서 작가주의 성향은 살아남기가 힘들다. 불평등한 계층의식을 비롯해 사회적 이슈를 영화에 담아 주목을 끈 봉준호 감독도 작가주의 감독은 아니며 다양한 주제로 영화를 만든다.

관심을 끌기 힘든 사회적 약자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는 감독들 중 한 사람인 켄 로치의 영화가 조용히 관객 수를 올리고, 꾸준하게 언급되는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작인 <나의 올드 오크>는 약자에 대한 책임감, 다 함께 잘 살아야 행복한 이유를 암시하면서 연대 가능성의 희망과 가치를 보여주며 끝났다. 하지만 그의 이전 영화들은 개선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끝을 맺는다. 열악하고 답답한 현실에서 탈출할 방법이 없어 보이는 상황을 지켜보는 관객의 마음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관객으로서 여러 종류의 영화를 보며 갖가지 감정이 요동치면서도 현실보다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허구라는 ‘안전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인데 이런 종류의 영화는 그 반대다. 현실과 너무 흡사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며,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면서 진실에 다가가도록 인도하는 의도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사회 시스템들
2019년에 개봉한 켄 로치 감독의 <미안해요, 리키>는 2016년에 만들었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맥을 같이 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처럼 <미안해요, 리키> 역시 삶의 답답함에 숨이 막힐 듯한 영화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통과하면서 택배 수요도 엄청나게 늘어났고 택배기사의 노동량도 급증했다. 과로로 40대 택배기사가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미안해요, 리키>에서 주인공인 리키는 처음부터 끝까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아내 역시 간병인으로 일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데,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아무리 시간과 돈을 아껴가며 열심히 노력해도, 일할수록 형편이 나아지기는커녕 예상치 못한 일들이 터져서 적자만 커진다. 게다가 돈 버느라 정신이 없어서 자녀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니 자식은 자식 대로 소외감으로 비뚤어진다. 고생하는 부모의 고통을 이해하기에는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자신의 문제가 더 크다. 영화에서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상황에만 매몰되어 있다. 억울하게 사정은 점점 더 악화되지만 주인공 리키는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한다. 고용주는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며 손실에 대한 책임을 리키가 지게 한다.

계속 지켜보자면 속이 터질 정도인데 그런 심정은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봤을 때도 마찬가지다. 두 영화에서 개인은 사회 시스템 속에 눌려 질식할 정도다.
젊은 시절부터 목수일을 해왔던 솜씨 좋은 기술자인 다니엘은 심장에 문제가 생겨서 일을 잠시 쉬고, 질병수당 수령을 위한 심사를 받는다. 심사자는 스스로 의료전문가라고 칭하지만 심장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질문들만 해서 다니엘을 열받게 한다. 이 두 영화에서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벽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정도로 상대와 소통이 불가능하다. 아날로그 세대인 다니엘은 인터넷으로 신청서를 작성하라는 관공서 직원의 말에 난감해한다. 컴맹이라서 주변 청년들 도움을 받아 겨우 진행을 하는데 자꾸 에러가 나고 그러는 사이에 할당된 시간이 지나가버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문진으로 엉뚱한 질문만 해댔던 심사원이 아직 일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수당도 받지 못하고, 건강 때문에 일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였는데 하소연할 데도 없다.
“장관이나 잡아가라”고 외치는 이웃
이 두 영화에는 힘든 상황에서도 타인을 돕거나 공감을 표시하는 장면이 삽입돼 있다. 감독의 의도가 엿보이는 장면이다. <미안해요, 리키>에서 리키의 아내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을 자신의 가족처럼 애정을 가지고 돌본다. 집에 가면 옷장 안에 숨어 있거나 화장실에서 실수하는 노인도 있고, 밥을 주려는데 욕을 하는 장애인도 있으며, 흥분해서 간병인을 할퀴는 노인도 있다. 하지만 리키의 아내는 화를 내는 대신에, 약한 그들을 가엾게 생각하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노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도 그런 장면이 있다. 블레이크가 관공서 건물 벽에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 문구를 스프레이로 쓰는 장면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 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 상담 전화의 구린 대기음도 바꿔라”라고 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이유는 그들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관공서 직원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해 블레이크가 잡혀가자 행인은 “장관이나 잡아가라”고 소리치며 블레이크를 지지한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자신의 코가 석자이면서도 싱글맘으로 힘들게 두 아이를 키우는 이웃을 돕는다. 힘든 사정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그보다 나은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같이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질병수당도 끊기고 살길이 막막한데, 공무원들은 한 사람의 생사가 걸린 일에 아무 관심도 없고 매뉴얼 대로 무조건 적용해서 빨리 일을 처리해버리고 싶어할 뿐이다.
켄 로치 감독은 영화를 해피엔딩으로 봉합하지 않고 해결이 나지 않는 상태로 그냥 두면서 영화에서라도 문제가 해결돼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고 싶은 관객의 욕망을 배반한다.
영화에서나마 위안받는 걸로 괜찮을까
최근에 라미란과 염혜란의 연기로 호평을 받은 영화 <시민 덕희>가 예상외로 흥행했던 이유는 악을 응징하는 사이다 같은 복수의 쾌락이 있기 때문이다. 나약한 시민이 보여주는 정의에 대한 집요함과 의지는 아무리 반복돼도 지루하지 않은 인기 서사다.

반면에 개봉 뒤에 화제가 됐던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는 켄 로치 감독의 영화처럼 약자의 죽음으로 끝난다. <다음 소희> 보기 운동까지 일어나며 응원을 받았지만 10만 관객수를 상회하는 성과에 그치면서 결국 손익분기점을 뛰어넘지 못했다. 영화는 사회에 갓 진출한 특수고 출신 새내기가 거대 기업에서 어떻게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얼굴 없는 익명의 톱니바퀴가 되어가는지, 그런 현상에 사회 전체가 어떻게 일조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거대한 시스템 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 약자들의 목소리를 영화에서나마 듣고 문제를 인식할 기회를 가졌다는 것에 위안받아야 하는 걸까.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마지막 장면에서 폭행당해 한쪽 눈이 보이지 않은 채로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택배차의 운전대를 잡는 리키의 얼굴, <다음 소희>에서 소희의 유품인 휴대폰에 남겨진 영상 속에서 춤추며 즐거워했던 소희의 모습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그들을 떠올리게 한다. <미안해요, 리키>의 영어 제목인 <Sorry, we missed you>가 말해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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