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영화제 개막작 ‘새벽의 모든’

[이화정의 ‘영화의 한순간에서’] ‘우리의 새벽은 늘 같지 않다’ 미야케 쇼 감독의 두 작품 행복 속에 슬픔, 슬픔 속에 행복처럼 새벽은 낮과 밤 사이에 가치를 깨운다

전주 국제영화제 개막작 '새벽의 모든'
전주 국제영화제 개막작 '새벽의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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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아닌, 장애인 같은 주인공

올해로 25회를 맞이한 전주 영화제의 개막작은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으로 선정됐다. 마무리가 되지 않고 중간에 끊긴 듯한 느낌의 제목은 영화 전체의 서사와도 연결된다. 두 남녀 주인공은 장애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끔 제어하기 힘든 증상으로 일상생활이 단절되는 기분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여주인공인 후지사와는 심한 PMS(월경전증후군)을, 남자주인공인 야마조에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후지사와는 평상시에는 매우 공손하고 사려 깊은 아가씨이지만 어느 순간 PMS 징조가 나타나면 매우 공격적으로 변한다. 갑자기 만사가 귀찮고 무기력해지면서 주변의 사소한 모든 것이 그녀의 신경을 거스른다. 증상이 나타나는 순간이 오면, 바로 옆에 있는 직장동료에게 시비를 걸고 화를 낸다. 하지만 증상이 사라지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일이 반복된다. 결국 다니던 회사를 스스로 그만 두고 과학기구를 제작하는 작은 회사로 옮긴다.

비슷한 이유로 큰 회사를 다니다가 공황장애 때문에 보잘 것 없는 회사로 오게 된 야마조에는 처음에는 이전 회사로 복직하기만을 기다리면서 정을 주지 않는다. 회사의 가족적인 분위기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후지사와에게도 거리를 두지만 그녀도 PMS로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동병상련을 느끼며 도와주고 싶어한다. 두 사람이 낯선 타인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여는 순간이 온다.

두 사람이 앓고 있는 병은 겨우 병명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원인이나 치료방법을 찾을 수 없으며 장애인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정확하게 규정하기 힘들다는 특징이 있다. 본인은 죽을 만큼 힘들지만, 타인들은 그 고통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는 서로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사이다.

별은 어떻게 빛을 내나

영화에서는 다른 심리적 아픔을 지닌 사람들도 나오면서 ‘애도 상담’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아픔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준다. 같은 회사의 상사는 20년 전에 갑자기 동생을 잃은 아픔이 있다. 우주를 공부했던 동생이 남긴 녹음 테이프와 노트가 야마조에와 후지사와에게 전해지면서 우주로 세계가 넓어지는데 그 과정이 자연스러운 공감으로 이어진다. 그럼으로써 신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의 세계는 현실에서 상상 속의 우주로 확장된다. 그렇게 미야케 쇼 감독은 평범한 일상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든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별은 500년 전에 존재했던 별에서 나왔던 빛이니 지금은 소멸한 별일 수도 있습니다. 우주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소멸됩니다”라고 녹음테이프에 담긴 목소리가 설명한다. 그 목소리의 주인 역시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소리를 통해 현재로 전달된다. 두 주인공도 증상이 나타날 때는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존재와 소멸 사이에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우주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그들은 오히려 안정감을 느낀다.

미야케 쇼 감독 작품에서 자신의 존재감은 타인에 의해 지지를 받을 때 빛을 발한다. 자신감을 잃어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지만, 타인이 주는 애정이 그의 몸에 반사되어 빛나게 한다.

마치 춤을 추듯, 함께 악기를 연주하듯

미야케 감독의 전작인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서 프로 복싱 선수인 여주인공은 난청 때문에 듣지도, 말도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는 복서에게 치명적이다. 끝남을 알리는 공 소리도, 코치의 지시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권투에 열정을 보이지만 관장은 그녀가 권투에 재능이 있지는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관장은 그녀에게는 인간적인 기량이 있다고 말하면서 정직하고 솔직한 점을 장점으로 든다. 그리고 그녀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 장면은 미야케 쇼 감독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대사다. 코치와 호흡을 맞춰 마치 춤을 추듯, 악기를 연주하듯 리듬감 있게 복싱 연습을 하는 모습 역시 타인과 관계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영화에서 어느 날 여주인공은 고민 끝에 복싱을 그만 두려고 하지만, 복서로서 그녀에 대한 관장의 진한 애정을 확인하는 순간, 감동의 눈물을 삼키며 마음을 바꾼다. 태양빛이 사라져야 별빛이 드러나듯이,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지만 정말로 힘들 때,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주는 사람,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보인다. 그래서 자신이 존재할 수 있다.

미야케 쇼 감독이 지난 1일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새벽의 모든’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미야케 쇼 감독이 지난 1일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새벽의 모든’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우리가 새벽을 기다리는 이유는

<새벽의 모든>에서 두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연인관계로 발전할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하지만 미야케 쇼 감독은 그런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같은 직장, 바로 옆자리에 근무하면서 서로 위안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환경에 맞는 선택을 한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돕지만 서로에게 어떤 영향력도 발휘하려들지 않고 독립적이다. 야마조에는 이전 직장에 복귀할 기회를 얻었지만 지금의 직장이 자신에게 맞다고 판단해 남기로 하며, 후지사와는 다리를 다친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고향에 있는 회사로 이직한다.

맑은 대낮처럼 밝은 행복 속에도 작은 슬픔이 있고 어둠처럼 진한 슬픔 속에도 별처럼 작은 행복이 있다. 자신에게 가장 큰 위안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대단하지는 않지만 작게 빛나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 중 하나처럼 자신의 작은 가치를 알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어두움을 지탱해주고 다시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게 해주는 힘이 아닐까.

미야케 쇼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전주영화제에 초청돼 기뻤고 더군다나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을 알고 놀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새벽의 모든>은 원작 소설이 있지만 더 효과적인 영상적 표현을 위해 바꾼 부분들도 있다. ‘아침이 생물들을 존재하게 만들지만 밤은 낮에는 보이지 못했던 더 큰 세계, 우주를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극중 대사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누구에게는 아침이, 다른 누구에게는 밤이 더 좋을 수 있지만 그 중간에 있는 새벽은 늘 똑같지 않다. 날마다 조금씩 변화하는 새로운 새벽이 오기 때문이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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