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리즘은 먹고사니즘을 이길 수 없다
[김유익의 내관(內觀) 차이나] 왜 ‘시진핑 실각설’ 나왔을까 시진핑은 5월 방송부터 자취 감춰 당국의 강경 모드에 모두 지쳤나? 국민, 경제 어렵지만 정책 이해하는 듯 중국도 민족주의보다 ‘먹고사니즘’ 중요
갑자기 팟캐스트 방송에서 사라진 량원다오
“98년에 수하르토 정권이 왜 허망하게 무너진줄 아시나요?” 국내에서 원로급으로 꼽히는 동남아시아 전문가 H선생이 강연중 돌연 질문을 던졌다. “30년간의 인도네시아 철권 통치가 갑자기 무너지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아시아 경제위기가 한국이나 태국과 같은 국가들에게 심각한 경제위기를 불러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레짐 체인지’가 이뤄진 것은 인도네시아였죠. 원인은 결국 기본 생계문제였습니다. 당시 인도네시아 재계의 큰손이었던 화교들이 공포에 질려 다 도망가면서 경제가 마비됐죠. 반대로 말레이지아는 화교들이 남아서 당시의 총리인 마하티르와 함께 문제 수습에 임했고요.”
그렇다면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위기를 맞은 인도네시아의 상황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대륙을 포함한 전체 중화권에서도 손꼽히는 홍콩출신 시사평론가 량원다오(梁文道)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기 직전인 8월 중순까지 인도네시아에서 휴가를 즐기고 왔는데, 얼마전 근 한달만에 자신의 오디오 평론 “8분반”을 이 소식으로 업데이트했다.
그의 조사에 의하면 인도네시아는 겉보기에 경제 성적이 매우 좋다. GDP성장률도 양호하고, 인플레이션 비율도 낮고, 실업률도 낮다. 구미 선진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국가들이나 주위의 아세안 국가들과 비교하자면 거짓말처럼 좋은 상황이다. 아직 취임 1주년도 맞지 못한 새 대통령 집권 치하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전체 인플레이션 지수는 낮게 유지되는 반면, 주곡인 쌀값이 많이 올랐다. 생산량도 늘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일본과 비슷하게 유통구조의 왜곡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두번째로, 심각한 빈부격차 문제가 있다. 전체 인구의 60%가 ‘빈곤’상태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정치 엘리트들의 물색없는 자기 주머니 채우기가 분노에 불을 붙였다. 30년전의 정권 교체가 절대적인 생계문제였다면, 지금은 상대적인 생계가 문제가 된 것인 듯하다. 어쨌든 새 대통령 프라보워가 문제가 된 정책을 철회하는 등 재빠르게 대처한 덕에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이런 분석을 전해준 량원다오가 인도네시아 여행을 다녀오면서 한달간 자기 방송을 쉴 수 있었던 것은 실은 그의 주무대인 대륙의 미디어 업계에서 얼마전 퇴출됐기 때문이다. 그가 진행하던 모든 미디어와 유료 팟캐스트 프로그램들이 중국내 플랫폼에서 사라졌다. 지금은 중국내에서는 정상적으로 들을 수 없는 유튜브 채널의 불법업로드 버전만이 그가 유일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다. (아이러니하게 이 음성파일들을 다시 중국의 유튜브 격인 비리비리에서 찾아들을 수 있다.) 그는 이미 일년치 요금을 낸 그의 청취자들을 위해서 중국내에서는 이메일로 음성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해줬다.

중국 당국의 방송 검열이 강해지고 있는 상황
사단이 난 것은 7월초의 한 방송 때문이었다. 중국내에서도 유명한 홍콩의 문화인 추아람(蔡瀾)씨가 노환으로 별세했는데, 그의 활동을 회고하면서 최근 유래없는 불황과 침체에 빠진 홍콩의 상황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 과정에서 홍콩의 반송중 사태이후 중형을 받아 지금 복역중인 애플데일리의 창업자, 전투적 자유주의자인 ‘지미 라이’의 이름을 입에 올린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인터넷 매체를 검열하고 통제하는 왕신빤(網信辦, 중앙망락안전신식화위원회판공실)은 크리에이터 본인에게도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은 채, 입을 막아버리거나 계정을 삭제해버린다. 중국 바깥의 매체와 평론가들이 짐작하고 분석하는 수 밖에 없다.
1995년부터 레거시 언론과 문화계에서 활발히 활동했으며 홍콩의 보통화 TV 봉황위성에서 책을 소개하는 <8분>이라는 교양 프로그램 등으로 중화권의 대표적인 평론가로 명성을 쌓아 온 그의 대표저서는 “상식(common sense)”이라는 칼럼 모음이다. 그는 특정한 이념적 색깔을 분명히 하기보다는 상식을 중시하는 논리를 펼쳐왔기에 대륙에서도 당국가에 대한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젊은 지식인들과 엘리트들에게 사랑받아왔다.
또, 그는 홍콩 문화계와 지식인 사회에 대해서도 서구중심적 시각으로 미화하기보다는 그 “쌈마이”적이고 동서융합적인 특성이 가져왔던 “번영”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편이다. 그보다는 좀 더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대륙의 지식인들이 동종 미디어에 많이 출연하다가 팬데믹 이후의 “룬(潤)”열풍을 타고, 해외로 이주해서 반공산당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것과 달리, 끝까지 살아남아왔던 그마저도 이번 고비는 넘지 못하고 말았다. 오랜 기간 그를 주목해 온 검열기관이 민감한 홍콩 문제로 결국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의 방송을 애호하는 주변의 중국인 지인들과 함께 필자도 무척 아쉬움을 느꼈는데, ‘시진핑 실각설’을 전후해서 대륙 미디어와 지식인 사회를 옥죄는 긴장이 조금은 느슨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필자가 몇년 째 모니터링 해오고 있는 CCTV의 저녁뉴스 신문연파(新聞聯播)도 결국 “땡시뉴스”로 완전히 복귀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시진핑 실각설’이 등장하게 된 나름의 배경
고백하자면 중국에 거주하는 필자도 시진핑 실각설에 낚였었다. 화제가 된 국내 모주간지의 보도 때문이 아니라 나름의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방금 이야기한대로 일주일에 두어번 ‘신문연파’를 모니터링하는데, 이 뉴스는 당국가가 일방적으로 중국 인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을 연출된 화면과 함께 전하는 최고 권위의 관제프로그램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프로파간다의 부정적인 이미지만을 떠올리는 한국인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중국내에서는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가진 고령의 인민들과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즐겨보는 프로이기도 하다. 정부 정책의 방향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고, 특히 기업가라면 신뢰할만한 비즈니스 정보 소스로 삼을 수 있다. 중국인 아내가 이렇게 한마디로 적절하게 설명해준 적이 있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현실의 한쪽면만을 보여주는 것이지.”
이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시진핑의 동정과 “말씀”이다. 시진핑 개인의 우상화라기보다는 국가 상징물의 형상과 입을 빌어서 당국가의 관심사와 전략을 드러내는 방법이다. 당 영도가 전국 각지의 민생 현장을 방문해서 사람들을 위무하고 격려하는 것은 특히 중요하다. 전통시대 황제의 지역 순행 전통을 현대에도 계승하고 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수십, 수백 명에 불과하지만, 신문연파를 통해서 전달되는 그의 목소리와 모습은 수억 명의 중국인 시청자들에게 마치 그가 옆에 있는 것과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중국의 발전적 미래에 대한 기대가 많은 이라면 굳이 거리를 두려하기보다는 이런 환상에 즐거이 동참할 것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5월 중순부터 7월초에 이르기까지, 한달 넘게 이런 시찰 동정이 전달되지 않았다. 모습 자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물론, 기껏해야 외국 원수들과의 의례적인 회합이 노출됐고, 그의 육성도 들리지 않은 채 과거의 영상위주로 ‘말씀’이 반복됐다. 마치 일부러 소격효과를 노린 연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의 실각설이 국외뿐 아니라 중국 서민들의 ‘뒷담화’ 소재가 될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이를 잠재우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보여서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지 싶었다. 그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군부 지도자라든가, 곧 등장할 유력한 차기 주자에 대한 항간의 구체적인 미확인 소문들은 믿을 수 없을 지 몰라도, 밖에서는 알 수 없는 모종의 권력재분배가 상층부에서는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는 짐작을 하게 됐다.

여기에 필자의 확신을 더해준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1년 전쯤 일본으로 이주해서 반중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한 자유주의적 중국 지식인의 방송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 사회를 고압적으로 통제하는 시진핑의 각종 사회관리 정책이 등장한 것이 바로 10년 전인 2015년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줬다. 막 그의 집정이 시작된 2012년부터 3년간, 비교적 유화적인 대내외적 태도를 취하면서 후진타오와 같은 전임 지도자들의 정책 노선과 개방 정도를 유지하거나 확대할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던 시진핑이 2015년부터 본색을 드러냈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천안문 사태를 비롯해서 오래전 서구사회로 망명한 지식인들이나 민주화 운동가들, 파룬궁 세력 등의 중국에 대한 분석이나 전망을 그다지 귀담아 듣지 않는 편이다. 이들은 실제의 중국 사회를 관찰하고 경험한지 너무 오래됐을 뿐더러 자기들의 신념과 운명, 이익이 당국가의 패배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탓에 이들의 주장은 인디안 기우제식의 ‘희망회로(wishful thinking)’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1~2년전 중국을 떠난 인사들은 중국의 현실에 충분히 동조돼 있고 끝까지 중국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던 이력과 정치적 성향, 정서 때문에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합리적인 비판 수준을 유지하는 편이다.
10년 정도 유지된 긴장 상태때문에 최고위층을 비롯한 공산당 내부에서도 그에 대한 불만이 누적됐을 것이고, 지식인과 문화인들도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물극필반(物極必反)”, 이제 전환기가 도래한 것이 아닐까하는 막연한 느낌적 느낌을 필자는 선택했다. 팬데믹 이후 극심한 불경기 상태로 진입한 중국 경제 상황도 최고지도자에게 모종의 변화를 강요했을 수 있다는 짐작을 더했다. 들뜬 나머지 오랜만에 만난 홍콩 친구에게도 이런 소식을 전하면서 홍콩에 다시 좋은 날이 올지도 모른다며 덕담을 건냈다. 그러하니 량원다오의 퇴출은 아마도 필자보다 그에게 더 큰 심리적 타격을 줬을 것이다. 그의 낙담에 내 책임이 적지 않다.
중국 국민의 민심이반이 시작되고 있나
필자의 판단 착오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그것은 만일 중국 공산당이 큰 방향의 정책적 전환을 추구한다면 역시 민생 문제나 이 때문에 형성된 보통 사람들의 집단적 정서가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라는 내 경험칙을 스스로 망각했기 때문이다. 공산당의 상층부나 지식인, 중산층, 자유주의자들이 개별적으로 어떻게 느끼고 판단하는 지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럼 경제는 별탈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팬데믹 이후 중산층뿐아니라 서민과 직장인, 소상공인들의 삶이 힘겨워진 것을 오랜 기간 관찰해왔다. 대학에서 조경학을 가르치는 아내의 제자들은 건설과 부동산 경기의 극심한 위축과 함께 원하는 직장을 얻지 못하거나 정리해고를 단행하기 시작한 과거 “꿈의 직장”에서의 이직을 선택해야만 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큰 문제가 된 청년 실업률은 중국 정부의 최대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 경제에 켜진 적신호는 사회 불안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30년전과 달리 문제가 된 것은 절대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이었다. 최근 몇년간 서구사회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 중국 정부의 경제 정책은 보통 중국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관되게 빈부격차를 줄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더 두드러졌다. 독점성이 강하던 알리바바와 같은 플랫폼 기업이나 계급고착화를 부추긴다는 사교육 업체들을 손 본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 중국이 미국과의 대결상황에서 추구한 일대일로와 같은 정책은 자급이 불가능한 에너지와 식량의 안전한 수입 경로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미국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첨단 기술이나 군사 기술에 대한 투자도 공격적인 확장 전략이나 무분별한 패권 다툼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생존 능력이나 주권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중국 인민들에게는 비쳐졌다. 이 점은 예방적 전쟁 논리를 외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선택한 러시아와도 대조적인 모습이다. 대만문제를 둘러싼 대만과 미국, 그 동맹국들의 자극적인 언사에도 “가시적 엄포”를 제외한 “필요 이상의 대응”은 자제하는 중국의 방침은 중립적인 중국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한국에서는 주목받지 못하지만 2017년 이래 일관되게 추진돼 온 ‘향촌진흥’ 전략도 선부(先富)를 취한 연안과 대도시 지역 “중산층” 주민들이 누리던 과실을 농촌과 내륙지역의 “중위층 이하”와 나누겠다는 균형발전 정책이다. 결국 대부분의 국가 전략은 중국내 상류층의 권력 강화라기보다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로 읽혔을 가능성이 높다.
유일하게 중국 서민들을 동요하게 만든 새 경제 정책은 9월1일부터 시작된 영세기업과 소상인들의 사회보험 강제가입 방침이다. 마치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서 파생됐던 최저임금이 일부 자영업자들의 폐업 선택을 가속화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서민 복지 강화를 목표로 하지만, 당장은 오히려 부담을 늘리게 된다. 하지만 이미 세계 최대의 ‘긱이코노미’를 형성한 중국에서 자영업과 소기업을 국가의 복지망안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면 안전망을 확대하고 서민 소비의 유효수요를 증가시킬 방법이 없다. AI와 드론, 로봇산업에서도 최첨단을 달리는 중국에서 하이테크나 하이엔드 서비스업의 임금 상승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인구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냉전과 같이 쉽게 통제할 수 없는 외재적 요인들, 또 장기적 불황의 원인이 될 부동산, 건설 경제에서 탈피하겠다는 내재적 구조 혁신의 노력은 경제 상황이 나빠지는 국면에서도 빈부격차를 늘리는 요인으로 읽히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마치 이재명 대통령이 내놓는 새로운 경제 정책들이 민생회복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갑작스럽게 한국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게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중국민의 내셔럴리즘이 전부는 아니다
중국 사회의 민주화나 자유화를 열망하는 한국인들 가운데 전승절 열병식을 벅찬 감격으로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중국 사람들의 모습에 실망감을 느낀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필자 생각은 좀 다르다. 꽤 오래전부터 중국인들의 ‘내셔널리즘’이 한국인들의 그것보다 더 강하지는 않다고 느끼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국가가 공공연하게 애국주의를 고무하는 중국과 달리 일정하게 자유주의 이념화가 진행된 한국 사회에서는 정부를 포함해서 민족주의 언설을 과도하게 내세우는 것을 자제하려는 분위기가 있다는 정도이다.
그런데 “케데헌”의 세계적 히트처럼 어떤 계기로 ‘국뽕’이 차오르는 순간이 오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식인 사회를 포함한 미디어, 국가가 함께 시민들과 함께 내셔널리즘을 분출한다. 중국의 전승절 방송을 흥미롭고, 주의깊게 본 한국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 내셔널리즘의 발호를 걱정하는 이들이라면 거의 본능적으로 이런 화면에 거부감을 느끼고 채널을 돌렸을 법한데 말이다.
하지만 내셔널리즘보다 강한 것은 역시 ‘먹고사니즘’이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열병식을 자랑스럽게 지켜본 것은, 여전히 먹고살만하니까 다시 비주얼한 오락물을 찾은 것이지, 주린 배를 스펙터클의 허영심으로 채운 것은 아니다. 누군가 다시 ‘시진핑 실각설’을 제기한다면, 가장 먼저 정밀하게 검증해봐야 할 것은 확인이 불가능한 고위층의 권력 다툼 서사가 아니라 중국 인민들의 생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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