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서울, 미-중 ‘스파이전’ 무대 될까
[김유익의 내관(內觀) 차이나] 영화 ‘Dear You’가 말하지 못한 것들 ③
- 중국의 패권 및 통전 확대 중국은 2035년을 목표로 패권을 공고히 하며 종족·유교문명 담론을 통해 한국 등 주변국에 자국 편에 설 것을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 서울 내 미·중 첩보·학술전 심화 미·중 간 신냉전 구도로 인해 서울은 양국의 학술·기술 교류마저 엮이는 치열한 통전 및 첩보전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 한국의 생존 전략과 대응 한국은 미·중 어느 쪽에도 휩쓸리지 않는 생존 전략을 구축하는 동시에, 중국의 전통적 윤리와 정서를 이해하는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춰야한다.
중국의 통전, 조선족 다음은 한국일까
중국 공산당의 통전(통일전선전술)과 <민족단결법>은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두가지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직접적 통전공작의 대상인 조선족 동포들이다. 한국을 선호하던 윗세대와 달리 젊은 조선족 엘리트들은 중국의 주류사회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다. 반면 가정을 이룬 젊은 조선족 동포들 중에 자녀의 교육을 위해 한국으로 이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중국에 남아 있든 한국으로 들어와서 생활하든, 이들은 ‘경계인’으로서 이중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어려서부터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한 동포라면 국적에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한국사회의 가치관과 문화를 우선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중국에 남은 동포들은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더 강하게 내면화할 것이다. 통전 공작의 결과인 동시에 자연스러운 변화다. 이미 ‘조선어’가 서툰 3세대, 4세대 동포들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다 .
조금 더 복잡한 차원의 문제는 중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한국에 대해 취하게 될 태도다. 싱가포르의 리콴유는 덩샤오핑 시절의 중국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을 줬다. 그는 생전에 중국과 중화문명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태도를 유지했지만, 이마저도 중국의 부상이 궁극적으로 근린국들에게 ‘어디에 줄서야 할 지’ 고민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최근 싱가포르 정부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일찌감치 예상한 셈이다.
싱가포르, 중국에 대한 입장 정리 안돼
이전 글에서 조지 여(George YEO)라는 싱가포르 전직외무장관의 사례를 들어 싱가포르의 친중성향을 지적했지만, 싱가포르의 고위 관료들은 입장이 각자 다르다. 조지 여 이상으로 친중적이며 역시 외무장관을 역임한 키쇼어 마부바니는 2024년에 출간한 『Living the Asian Century』라는 저작 등을 통해 헤게모니가 아시아 특히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강력히 주장했다.
또 다른 전직 외무장관 빌라하리 카우시칸은 2025년에 출간한 『The myth of Asian Century』에서 이런 주장을 직접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중국은 아직 미국을 대체할 새로운 세계 질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동아시아나 유럽과는 전혀 다른 배경과 역사적 맥락에서 만들어진 미국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트럼프에 끌려다니며 정신나간듯한 일을 벌이는 것처럼 보이는 연방정부’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건국초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주별로 분산된 권력에 의해서 나라를 운영하고 있으며, 새로운 구조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어지러워 보이지만 일단 새로운 합의가 만들어지면, 무서운 역량을 보이는 것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한편 덩샤오핑의 통역관 출신인 중국의 매파 지식인 빅터 가오(Victor GAO 高志凱)는 얼마전 싱가포르에게 “미국에 줄을 서지 말라”고 노골적인 경고를 날렸는데, 중국의 거듭된 압력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 싱가포르 언론들은 역으로 카우시칸 전 외무장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한국은 중국의 압력에 자유로울까
한국은 싱가포르와 달리, 종족이나 언어 모두 다른 중국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나의 답은 부정적이다.
‘차이나 맥싱’은 중국 지식인들의 국제적 담론권을 강화하고 있다. 이미 중국의 눈부신 과학기술 진보와 이를 추동한 중국 정부의 장기적 정책과 전략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는 ‘통전’이 문명차원으로 추상화하고 확대될 가능성을 예견하게 만든다.
중국이 지금은 종족적 동질성을 기반으로 싱가포르에 압력을 가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중화문명, 유교문명, 한자문명의 동질성을 유대감의 요소로 강조할 것이다. 정리하자면 대만은 하나의 네이션(국가) 안으로, 싱가포르은 화인 에쓰닉(ethnic, 민족)권 안으로, 그리고 한국과 같은 나라에는 ‘유교문명권’으로 들어올 것을 요구할 것이다. 이는 중국의 공작차원을 떠나 미국과 유럽의 급격한 쇠락이 가져오고 있는 리밸런싱(rebalancing)이기도 하다.
2035년은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실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점인데, 이때쯤 되면, 미국의 아시아지역에 대한 영향력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어들어 있을 것이고, 역으로 중국의 지역에 대한 헤게모니는 공고해져 있을 것이다.
헤게모니는 군사력이나 경제력뿐 아니라, 스스로 패권국가를 닮고 싶게 만드는 ‘담론권력’이다. 단순한 민족국가 네이션이 아니라 ‘문명의 담지자’를 자처하는 중국이라는 국가가 자신의 헤게모니 역량을 어떻게 지역내에서 ‘플렉스’하려할지 굳이 복잡한 시나리오를 상상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아니지만, 2035년엔 아닐 수 있어
하지만 한국은 유교문명권에 속하는 동시에, 현대 서구문명의 자유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수용해서 발전하고 있다. 더 이상 중국을 문명의 핵심으로 여기는 피교화대상이자 변방 국가가 아니다. 중국과 훨씬 유사한 정치체제를 가진 베트남이나 북한조차 중국과의 관계를 과거와 같이 설정하지는 않는다.
지난 8월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 겸 정치국위원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제발 미국에 줄을 서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거나 혹은 가벼운 경고를 하는 수준의 요구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2035년 혹은 그 이전이라도 때가 되면 중국은 동일한 문명권인 우리에게 ‘자신에게 줄을 서라’고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중국이 좋아하는 표현으로 ‘어디로 이사도 갈 수 없는 빼박 이웃’인 우리에게 그다지 많은 선택지가 주어질 리 없다. 나는 얼마전 유튜브에서 왕이 부장의 한국 방문에 대해서 중국 입장을 대변해서 논평하는 미국의 지식인 제프리 삭스 교수와 중국 지식인 원톄쥔 교수의 영상을 본 일이 있다. 둘 다 출처가 불분명했고, AI로 만든 페이크 영상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였다. 나는 이번 연속된 칼럼의 글초반에 언급한 싱가포르의 사례가 떠올랐다. 과연 누가 이런 디지털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는지 궁금해졌다.
물론 이 영상들은 각각 영어와 중국어로 된 것이었기 때문에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통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몇 년후에 한국어로 된 이런 영상들이 등장한다고 해도 그리 이상하게 여겨지지는 않을 것 같다.
미-중, 한국에 “우리에게 줄서라”
사실 중국과 미국의 ‘통전(?)’은 이미 한반도에서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명문 공대에서 교수로 일하는 한 한국인 과학자는 최근에 한중간 과학기술 교류를 위해서 자주 한국을 찾고 있다. 중국의 기술 리더쉽과 이니시어티브가 세계를 선도해 나가기 시작하는 마당이니, 자연스럽게 ‘과학기술 동맹’의 범위를 넓히려고 한다.
그런데 ‘우방’인 미국이 이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의 명문 공대에서 과학기술 사회학을 가르치는 다른 연구자는 과학기술 정책과 관련한 정부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모교이기도 한 한 미국 대학 연구소가 중국의 국방기술과 연관이 있다는 ‘중국 공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유포하며 위험성을 경고한다. 우연이지만, 앞서 언급한 중국 명문 공대도 이 명단에 들어있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이들 두 사람이 양국의 정보기관에서 사주를 받고 벌이는 일은 물론 아닐 것이다. 그러나 미중 간에 냉전구도가 이미 공식화된 현실에서, 과거라면 평범하게 받아들여질 연구학술 교류, 정부의 연구 과제가 일종의 양강 간의 ‘통전’경쟁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몇 년 후엔 서울이 동서냉전 시대의 베를린처럼, 진짜 미국과 중국 스파이들의 치열한 첩보전이 벌어지는 도시가 될 지도 모른다. <MI>나 <제이슨 본> 영화 시리즈 신작의 무대로 서울이 등장할 날이 멀지 않을 것 같다. 농담같은 진담이다.
우리가 익혀야할 ‘중국의 언어’
나는 이재명 정부의 <대체불가 대한민국>이라는 정책 구호가 그냥 멋있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실은 이 신냉전 구도속에서 미국과 중국 어느쪽에도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생존의 조건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들린다.
이 대통령이 지금 해외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모습에서 그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중앙아시아의 지도자들을 서울로 초청한다든가, 몽골을 국빈방문하는 일, 예전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을 서울에 초청해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모습에서, 중국이 에너지와 식량 자립을 위해 10년 넘게 추진해 온 ‘일대일로’의 한국판 버전을 본다.
이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또 다른 관건이 있는데, 그것은 위상이 현저히 변화한 중국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역시 중국과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프로토콜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한마디로 다시 ‘그들의 언어’를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이 아시아 선도국가가 되려면
‘차이나 맥싱’은 장기적으로 중국 정부에도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물리적 힘이나 부유함만으로 타인의 존경을 얻을 수는 없다. 중국이 문명 선도국가로 복귀하기 위해 필요한 현대적 요소들이 있다. 개인보다 관계와 집단을 중시하는 것이 꼭 ‘입틀막’으로 귀결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호락호락하게 티벳 네이션의 독립이나 진정한 자치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티벳 고원지역은 황하와 장강을 포함한 중국의 대표적인 강들의 수원지이기 때문이다. 독립된 티벳 자체가 위협이 된다기보다는, 수자원을 놓고 이해 관계가 충돌하는 인도나 중국과 패권경쟁을 하는 다른 강대국이 티벳에 영향을 끼치려 할 경우, 중국이 안게될 리스크가 너무 크다.
얼마 전 빙하가 녹아 내려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네팔-중국의 참사 과정에서, 중국이 국경 검문소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희생과 비용을 치르는 것이 의아했다면, 이런 배경을 이해한다면 의문이 다소 풀릴 것이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 특히 한족 중에서도 티벳 독립을 지지하거나 그들의 처지를 동정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팅장후이(華語青年挺藏會)라는 NGO활동을 하는 중국 청년들이 있다. 이들은 망명한 티벳 독립 정부를 지원하는 모임이다. 이들과 같이 내 민족을 아끼는 사람들이라면 설사 자기 민족국가의 이익과 충돌하는 경우라도 다른 민족의 고통을 일방적으로 회피하기는 힘들 것이다.
영화 <Dear You>의 차오저우 출신 화교들이 고향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에 공감한다면, 티벳 난민들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에도 눈을 감지 말아야 한다. 팅장후이의 리더격인 ‘진저(ginger)’라는 별명을 사용하는 30세의 윈난성 출신 한족 여성은 원래 티벳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한 경험이 있다.
그는 중국 행정당국의 강경한 통치 방식 때문에 상당수 티벳 사람들이 고통과 인권 침해를 받고 있는 모습을 실제로 경험했기 때문에 이들을 지지하기 시작했고, 결국 미국으로 망명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에 의하면 티벳 사람들을 지지하는 대다수 한족이 쓰촨성 출신이라고 하는데, 이는 쓰촨이 티벳으로 들어가는 중국 내륙의 관문이기 때문이다. 결국 장족 친구를 이웃으로 둔 한족이 그들의 처지를 진심으로 동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이나 이념적 가치 지향보다 설득력 있고 지속가능한 것은, 사실 영화 <Dear You>가 말하던 중국인의 전통적 정서이자 윤리의식인 정(情)과 의(義)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다시 익혀야 할 ‘중국어의 문법’에는 이런 키워드들이 포함된다.
중국, 그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중국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에너지 전환에 앞장서는 생태문명을 기획한다든가, AI 오픈소스 모델을 제공하고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미 도덕적 권위가 추락하고 문제해결능력을 상실한 미국과 서구사회의 실질적인 대안을 내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징적 기호와 같은 정치지도자가 국가의 선전 플랫폼을 통해 제시하는 초국가적 어젠다나 거대 자본의 활약과는 별개로 작은 목소리로 전달되는 공감능력들의 표현도 중요하다. 한국과 같은 이웃 국가의 시민들은 오히려 후자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때, 중국에 대한 경계의 눈초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민족단결법>의 실천에서 또 한가지 확인하고 싶은 점은 법이 명시한 바와 같이 민족간 원한감정을 부추기거나 민족차별을 금지한 규정이다. 중국내에는 극우적 한족중심주의자들도 존재한다. 대중화주의와는 또 다른 관점으로 중국내 소수민족을 차별하거나 외국인을 적대시한다.
‘차이나 맥싱’은 중국이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이긴 하지만, 동시에 백인중심주의와 유사한 부정적인 의미의 집단적 엘리트주의가 살아날 가능성도 있다. 민족주의 갈등은 절대적인 가해자와 피해자가 없는 게임이기에 중국정부의 공평한 ‘차별금지’원칙 실행여부를 지켜볼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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