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중국 교과서에 고구려는 없다”

[김유일의 내관(內觀) 차이나] 중국 6종 교과서 일일이 뒤져보니...

수나라와 고구려간 전쟁이 벌어진 살수대첩에서 을지문덕 장군이 지휘하는 모습의 상상도. 출처= War Memorial of Korea Open Archives
수나라와 고구려간 전쟁이 벌어진 살수대첩에서 을지문덕 장군이 지휘하는 모습의 상상도. 출처= War Memorial of Korea Open Archives
  • [1분 핵심 요약]
  •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중국 교과서 6종을 전수조사한 결과, 고구려를 자국사로 가르치는 비중은 극히 낮다. 중국인들에게 고구려는 ‘뺏어야 할 역사’가 아니라, 수나라를 망하게 한 강력한 외부의 적(빌런) 혹은 관심 밖의 ‘옆 동네 이야기’일 뿐이다.
  • 반면 발해는 이미 1990년대부터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으로 조용히 편입이 완료된 상태다.
  • [The Insight - 행간의 재구성]
  • 우리의 공포와 그들의 무관심 사이의 간극
  • 우리는 중국이 고구려를 집어삼키려 한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언급 자체를 회피하거나 지우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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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가르치기도 버거워요”

소원성취했다. 모두 <환단고기>덕이다. 중국의 고등학교 역사교재에서 한국 고대사와 관련한 부분을 제법 낱낱이 훑어봤다. 중국 최대의 중고책 온라인 판매 플랫폼 ‘쿵푸즈’(孔夫子)에서 사 모은 도합 6종의 교재는 1990년대부터 현재 사용되고 있는 것을 망라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 내용이 없더라. 우리가 “역사왜곡”이라면서 그렇게 열을 올려야할 만한 건덕지가 없다는 말이다. 내가 2021년에 상하이의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중국인 친구 판(范)선생에게 진지하게 물어봤다가 어이없는 그의 반응에 실소를 했던 답변은 정말 사실이었다.

“동북공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친구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을까 긴장한 채 물어봤다.

“동북공정이 뭔가요? 동북의 대규모 건설 인프라 프로젝트인가요?” 그는 반문했다.

“아니 역사 교과서 프로젝트요. 중국의 고등학교에서는 고구려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나요?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고”.

간명한 답변이 돌아왔다.

“중국 역사만 가르치기에도 3년이 버거워요. 언제 옆동네 얘기까지 해요?” 

나는 선입견없이 육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국내 연구 자료를 따로 검색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우선 중국 역사 교과서 변화의 큰 흐름에 대해서 알리바바의 인공지능(AI) QWEN에게 물어봤더니, 아주 친절하게 중국어, 영어 자료뿐 아니라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한 국내의 다양한 연구 성과를 함께 검색해 준다. 아마 한국어로 질문을 했기 때문인 듯하다. 가장 최신 성과만 일견했다.

중국 교과서 편찬의 시기

QWEN을 비롯해서 딥시크, 제미나이, 그리고 챗GPT를 통해서 1990년대 이후 중국의 역사 교과서가 어떤 흐름으로 변화해왔는지 살펴봤다. 공통적으로 세 가지 단계를 설명한다. 이 변화를 설명하는데 가장 유용한 키워드는 ‘일강일본’(一綱一本)에서 ‘일강다본(一綱多本)으로의 변화’ 그리고 통편(統編)이라 불리는 ‘일강일본으로의 회귀’다.

여기서 강은 원칙을 의미하고 본은 원칙의 틀안에서 다양한 판본, 즉 버전을 가져간다는 뜻이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일강일본 혹은 통편은 전국의 교과서들이 하나로 통일된 ‘국정 교과서’를 의미한다.

1990년대부터 현재 버전까지 모두 6종의 중국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상단은 2019년부터 사용되는 현재의 국정교과서, 우하단은 90년대와 2천년대 초반의 국정교과서, 좌하단은 2천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사용되던 검정 교과서중 3종. 사진=필자
1990년대부터 현재 버전까지 모두 6종의 중국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상단은 2019년부터 사용되는 현재의 국정교과서, 우하단은 90년대와 2천년대 초반의 국정교과서, 좌하단은 2천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사용되던 검정 교과서중 3종. 사진=필자

첫번째 단계인 1990년대는 1989년 천안문 사태가 벌어진 직후이다. 10년간 개혁개방의 열광속에 불어닥친 과도한 자유화의 열망은 비극으로 마무리됐다. 경제개방에 치중하면서 1992년 남순강화로 다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지만, 사상적 단도리가 요구됐을 것이다. 그래서 1990년대 중국의 교과서는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것에 치중했다고 한다.

두번째 단계인 2000년대 초반, 중국은 다시 한번 사회와 지식계의 자유화 요구에 부응한다. 인민교육출판사가 간행하는 단일 국정교과서(‘인교판人教版’이라고도 불린다.) 대신 복수의 출판사가 각자의 관점과 개성을 살린 교과서를 출판했고, 학교들이 지역별로 자기 입맛에 맞는 교과서를 선택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검정교과서’ 전성시대이다.

이 당시 교과서의 또 다른 특징은 지리적, 혹은 통사적인 교과서 편집이 아니라, 주제별 편집이다. 즉, 정치, 경제, 문화와 과학과 같은 주제가 각각의 교재로 나뉘어 묶인다. 하나의 주제별 교재 안에 중국사와 세계사가 번갈아 가면서 등장한다.

교과서로 실험한 적도 있다

원래 중국의 교과서는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관점에 따라 계급투쟁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런데 2000년대의 교과서는 보다 전통적인 문명사적 관점을 택했다. 체제의 역사관에 큰 변화를 모색한 것이기 때문에 이 당시의 교과서를 “실험교과서”라고 부른다. 실제로 표지에 그렇게 표기가 돼있어서 조금 어리둥절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정식 교과서가 아니라 잠깐 실험적으로 사용해 본다는 뜻인가?”

이런 실험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는데,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상하이 지역 교과서는 (화둥사범대학華東師範大學에서 출간했다.) 심지어 빌게이츠를 마오쩌둥보다 비중있게 다루는 등의 파격으로 사회적 반발을 불러왔다. 결국, 이 교과서는 논란 끝에 1년만에 폐기됐다고 한다.

나는 ‘쿵푸즈’에서 당시의 대표적인 교과서를 출판사별로 수집했는데 인민교육출판사, 인민출판사, 악록서사(岳麓書社) 출판사의 교재를 모으는데 성공했지만, 화제가 된 상하이 교과서는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암묵적으로 온라인 판매가 금지돼있지 않나 추정한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단계는 2010년대 후반부터 다시 사상의 통제로 돌입한다. ‘통편본’이라는 국정교과서로 회귀하는데, 이는 권력을 당국가에 집중한 시진핑 시대의 적절한 반영으로 볼 수도 있다. 사회주의 사상 교육도 강화되는데 1990년대와 큰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중국식 사회주의”이다. 중화문명과 중화민족의 수월성을 드러내는 것에도 특별한 방점이 찍혀있다.

한반도 국가가 등장하는 대목

대충 가닥이 잡혔을 터이니, 실제 각 교과서에서 관찰한 내용을 설명해보겠다. 내가 수집한 가장 오래된 역사 교과서는 1991년 초판의 94년 출간본이다. <중국고대사>인데 필수가 아니라 선택과목이라고 한다.

중국 역사교재에서 고대사(古代史)라는 표현은 근현대사(近現代史)를 제외한 모든 역사 과정을 포괄한다는 사실이다. 즉, 상고사(上古史)나 중세사(中世史) 같은 구분이 따로 없다.

삼국시대를 중심으로 한국의 고대사에 대한 기술은 어떻게 찾아볼 수 있을까? 특히 고구려를 포함한 삼국시기, 혹은 보다 쟁점이 될 수 있는 남북국시기의 발해에 대해서는 중국의 수당(隋唐) 시기를 찾아보면 된다. 인물로 보자면 수 양제(隋 煬帝)와 당 태종(唐 太宗)이 가장 근접해 있다. 이런 검색 방법은 이후의 모든 교과서에 적용될 수 있다.

1991년 교과서에 따르면 수나라는 농민반란으로 멸망하게 되는데 수양제가 궁궐축조, 운하 건설 등의 대규모 토목공사와 전쟁 동원으로 농민들의 원성을 산 것이 원인이다. 이때 전쟁은 대 고구려 전쟁을 의미하며, “수양제가 고려(高麗)와의 전쟁을 발동하여, 전함 건조와 군량 수송을 위해 수십만 명의 농민과 병사를 동원했고, 많은 사람들이 고려로 이동하는 중에 사망했다”라고 적고 있다.

“수나라는 고구려 때문에 망하고...”

여기에서 고려는 고구려를 의미한다. 중국인들은 예전부터 일반적으로 고려와 고구려를 잘 구분하지 않았고, 조선(朝鮮), 고려(高麗), 한국(韓國)이라는 명칭은 모두 우리 한민족을 통칭하는 표현들이다.

이제 당나라로 넘어가보자.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다룰 내용으로 여겨질 “당나라의 변경 민족과 그 발전(第15章 唐朝時期邊疆各族的發展)”을 보면 동쪽으로는 흑룡강과 송화강 그리고 오수리강 유역에 살던 말갈족을 자세히 서술한다.

이 말갈족의 일부 세력이 수립한 정권이 바로 발해 왕조이다. “속말말갈(粟末靺鞨)의 우두머리인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했고, 현종이 그를 국왕으로 봉한 후 문화와 경제가 발달했다”고 묘사한다. 1990년대 교과서에 발해는 이미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

내 또래의 한국인이라면 조금은 납득이 가는 일이다. 왜냐하면 내가 의무교육으로 역사를 배우던 시기인 1980년대에 처음에는 삼국통일 후의 통일 신라에 대해서만 다루다가, 중간에 교육과정이 개편되면서 남북국 시대로 발해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즉, 발해라는 고대 국가는 우리에게 상대적인 존재이다.

“당나라는 신라와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그 다음장은  “당나라 시기의 대외관계(第16章 唐朝時期的對外關係)”이다. 여기에서 바로 당나라와 조선, 일본의 외교 관계가 등장한다. 이때 조선은 훗날의 조선왕조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조선반도에 속한 국가들이나 우리 한민족의 왕조 국가들을 의미한다.

“당나라 초기에 조선반도에는 고려, 백제, 신라 세 개의 나라가 있었고, 나중에 신라가 이중 대부분을 통일한다. 신라와 당 왕조는 시종일관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며,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있다.

첫째, 조선의 음악가들이 장안으로 와서 환영을 받는다. 당 악중에는 고려악의 부분도 있다. 둘째, 7세기 후기 이후 많은 조선인들이 장안으로 유학을 왔고, 중국의 정치, 역사, 철학, 천문, 역법, 의학 등을 연구했으며, 신라 유학생들은 특히 중국의 시가를 좋아했다. 셋째, 신라는 당나라의 수공업 기술의 영향을 받아서 나름의 비단 방직 기술을 개발한다. 넷째, 당과 조선은 무역도 활발했다.”

대체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당과 한민족의 관계를 적절히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 부분은 당나라와 일본의 관계인데, 대체로 비슷하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면 일본의 경우 대표적인 인물들을 거명한 것이 눈에 띈다.

당에 건너와 과거에 급제하고 당의 고위 관료로 봉직했으며 이백을 비록한 당의 문인들과 깊은 교류를 나눈 아베 노나카마로(阿倍仲麻呂)라는 지식인과 당나라 사람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불법을 전한 고승 젠전(監真)이 그들이다. 아베노나카마로는 정확히 최치원에 비견되는 인물이다.

수나라 멸망의 직접적 원인이 된 타자 혹은 적대적 세력으로서의 고구려에 대한 중국인들의 일반적인 인식은 사실 굳이 국정교과서를 빌지 않아도 찾아 볼 수 있는 고전 작품이 존재한다.

『설인귀정동(薛仁貴征東)』이라는 청나라 때의 영웅군담소설이다. 여기에서 영웅으로 묘사된 당나라의 장수 설인귀가 상대하고 결국 멸망시키는 동요국東遼國(고구려)의 빌런은 바로 (연)개소문이다.

이 소설은 심지어 조선에 수입되어 토착화한 로컬 버전 『설인귀전』이 따로 있고, 현대에도 홍콩에서 드라마로 제작된 역사가 있다. 그만큼 대중화한 내러티브라는 뜻이다. 중국인 혹은 한족을 중심으로 화인들에게 고구려는 전통적인 타자, 타민족이다.

'설인귀정동'은 청나라 시기의 영웅군담소설로서, 중국의 고전텍스트중 하나다. 사진=필자
‘설인귀정동’은 청나라 시기의 영웅군담소설로서, 중국의 고전텍스트중 하나다. 사진=필자

보다 구체적인 고대사 기록

10년후인 2002년에 검열을 통과하고 2003년에 초판을 찍은 국정 교과서 <중국 고대사>를 확인해보자. 수양제의 폭정과 수나라의 멸망을 기술한 부분에는 이와 같은 설명이 있다.  “고려를 세번 정벌하려 하다가(三征高麗), 사병의 절반 이상 죽었다(士兵死亡大半).“ 이 교과서에는 마침 수나라와 조선반도 삼국인 고려, 신라, 백제의 지도가 명확하게 구분돼 그려져 있다.

말갈과 발해국에 대한 설명도 1991년 교과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속말말갈의 우두머리 대조영이 발해국을 세우고, 당의 현종이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봉하여, 발해가 당나라의 판도에 들어갔다”라고 설명한다. 같은 논리에 의해 발해가 당의 영토에 속하는 지도가 표시돼 있다.

수당시기의 대외 관계는 “동쪽으로 오늘날의 조선, 한국, 일본에 이른다는” 설명이 있는데 여기서 조선은 북한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조선반도와의 외교 관계는 더 이상 고구려, 백제를 언급하는 대신, “조선반도상의 국가와”라고 애매하게 표현하고, 바로 7세기 후반부터 신라와의 외교 관계를 설명한다.

1990년대의 교과서와 다른 점은 최치원의 구체적 행적과 그의 문집인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을 언급하는 점이다. 또, 장안의 외국유학생들 중 신라인이 가장 많은 수를 점했고, 그래서 당나라의 대도시에 ‘신라방’이나 ‘신라관’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언급한다.

일본에 대한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일본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당나라에 남았던 아베노나카마로(阿倍仲麻呂)대신, 일본에 중국의 문물을 많이 전파한 키비 노마키비(吉備真備)라는 인물을 언급한 점도 이채롭다. 1993년 한중 수교후 한국과 밀월기에 접어들고 일본과는 다소 소원해진 2000년대 초반의 동아시아 관계를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고구려에 무관심한 검정교과서

흥미로운 자율화 시대의 검정본 교과서를 살펴보자. 나는 앞서 밝힌대로 세 개의 출판사에서 나온 교과서를 검토해봤다. 그런데 고구려와 관련해서는 좀 실망스러운 결론을 전해야겠다.

이 교과서들은 모두 문명사적 관점에 주제별로 중국사와 세계사를 종횡으로 살펴보는 것이 목적인지라, 중국의 고대사에 대해서는 매우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다. 당연히 수당시기와 연관된 조선반도의 역사도 필수 역사과목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중국 역사를 이렇게 소홀히 다뤄도 되냐고 아내(중국인)에게 물어봤더니, 필수적인 지식은 아마 중학교 과정에서 이미 다뤘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선택과목 교과서들도 여전히 근현대사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데, 딱 한 권에서 소략하지만 관련된 설명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중국과 외국의 인물평>이라는 교재인데(인교판), 당태종의 생애를 언급한 부분에 관련 내용이 있다.

당의 대외관계에서 조선과 일본의 승려들이 장안으로 유학을 오고, 당태종을 친견했다는 설명이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조선반도의 고려, 백제, 신라 등의 국가가 있고, 신라와 당의 교류가 특히 빈번하여, 당의 문물을 많이 흡수했다는 설명이 부연된다. 나는 실망스럽다고 위에서 말했지만, 아마 동북공정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훨씬 만족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겠다.

2천년대의 중국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는 여전히 고구려를 자국 역사가 아니라 조선반도의 역사로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②편으로 이어짐

이 칼럼을 영상으로 · 1:22 시진핑 국정 교과서 입수! 한국 고대사를 어떻게 조작했나 봤더니...?
글쓴이

김유익 한중 문화교류 코디네이터

김유익은 한중 문화교류 코디네이터다. 중국 광저우와 한국의 전남 목포를 오가면서 살고 있다. 중국 남방 지역의 사회, 문화와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쓴다. 늦깎이로 문화인류학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다. 중국인 아내 덕에 1/3쯤은 중국인의 정체성을 갖게 됐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호기심은 한국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번역서로 <주변의 상실(글항아리, 2022)>, 저서로 <차이나 리터러시(한겨레출판사, 2023)>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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