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구, 누가 ‘판도라 상자’ 열었나?

[김유익의 내관(內觀) 차이나] 서구의 ‘창조적 파괴’가 인류 구원할까? 중국은 ‘문명 파괴 리스크’ 방치 중인가?

서구와 중국은 누가 미래기술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문명론을 발전시켜왔는가를 보면 앞으로 어떤 미래 문명을 만들지 예견할 수 있다.
서구와 중국은 누가 미래기술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문명론을 발전시켜왔는가를 보면 앞으로 어떤 미래 문명을 만들지 예견할 수 있다.
  • 서구의 위선 앤트로픽 등 미 테크 기업들은 ‘윤리’를 내세우지만, 실제론 실리콘밸리의 패권 경쟁과 군사적 목적을 위해 AI 안전 기준을 낮추며 ‘테크노 퓨달리즘(기술 봉건주의)’으로 치닫고 있다.
  • 중국의 로직 중국은 AI 혁신보다 ‘그린 테크’와 ‘사회적 리스크 관리’에 집중한다. 유전자 편집 과학자 허젠쿠이를 처벌한 사례처럼, 중국 문명은 체제를 위협하는 ‘창조적 파괴’보다 ‘안정(태평천하)’을 우선시한다.
  • 공통의 위기 서구의 공격적 AI 개발과 중국의 보수적 통제 사이에서, 인류는 생산 과정으로부터 소외되고 실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누가 진정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인류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가?

‘중국 위협론’이라는 편리한 핑계

“내 이랄 줄 아라따!”

지난 2월말에 앤트로픽이 안전한 개발의 기준을 낮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눈의 여왕 엘사처럼 생긴 앤트로픽의 여성 철학자 아만다 아스켈이 AI에게 윤리교육을 시키고 헌법을 준수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인터뷰 동영상을 눈여겨 보면서 반신반의했다.

너드 인상의 CEO아모데이가 강단있게, 자기 회사는 Open AI의 샘 올트먼에 반기를 들고 나온 윤리적인 엔지니어들의 집단이기 때문에 절대로 인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미국 정부와 불화를 겪고 있다고 설명하는 인터뷰도 여러개 들여다봤다.

“대규모 국내 감시”, “완전 자율 살상무기”, 그는 이 두가지 사항에 대해 절대 타협할 수 없기 때문에 벌어진 갈등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엔트로픽 CEO 아모데이(왼쪽), 엔트로픽의 철학자 아만다 아스켈(오른쪽)
엔트로픽 CEO 아모데이(왼쪽), 엔트로픽의 철학자 아만다 아스켈(오른쪽)

내가 주목한 것은 눈빛이 흔들리는 그의 다짐이 아니었다. 그는 끊임없이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적국과의 군사적 AI 사용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미국의 국방 프로젝트에 앤트로픽이 참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라고 전제를 달았다. 나는 그가 솔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진짜 경쟁 상대는 중국 AI기업이 아니라 오픈AI, 구글, 메타, xAI같은 다른 미국계 테크노기업들일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오픈 AI가 앤트로픽의 사업을 낚아채 갔고, 결국 앤트로픽도 “경쟁사가 하는 만큼의 안전”으로 기준을 낮췄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미 구글이 작년에 자신들의 AI개발 원칙을 수정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잊었겠지만, 10년전까지 구글의 비공식 사훈은 “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였다.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만큼 자본과 정보를 독점하는 엘리트 글로벌 기업이 되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라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다.

물론 아무도 이걸 진지하게 믿지는 않았다. 그 회사에서 “꿀빠는” 직원들이 아니라면 말이다.

앤트로픽 관계자들이 미국의 리버럴 언론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든지 말든지, 이미 미군의 이란에 대한 무차별 폭격 계획 설계에 앤트로픽이 사용됐다고 한다. 최종 결정은 아직 사람이 내리고 있지만, 200명 가까운 민간인 살상자를 발생시킨 이란 초등학교를 폭격한 것도 “앤트로픽+팔란티어 솔루션”의 협업 결과라고 많은 이들이 추정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집어삼킨 ‘테크노 퓨달리즘’의 도래

나는 그들의 “피묻은 손”에 손가락질 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막대한 자본과 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경쟁에의 참여조차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이 게임에서 어떻게 미 정부사업 발주 참여를 마다할 수 있을까?

그보다는 미국과 서구의 리버럴 엘리트들이 결론이 이미 정해져있던 이 치킨게임에 뛰어든 동기에 대해서 묻고 싶다. “정말 중국 때문인가?”

비서구의 위협을 과장하기 위해 들러리 세운 러시아는 더 이야기하지 말자. 중국이 AI를 먼저 개발할까 두려워서, 욕망이 실체에 앞서는 대표적인 화폐, ’ 달러’를 허공에서 열심히 찍어내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막대한 자본을 투자했다는 말인가?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불과 1년전 “딥시크”가 등장하기 전까지 안면인식 기술 정도를 제외한 중국의 AI역량이 높이 평가된 적이 없다. 다 떠나서, 지난 10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중국이 미국과 서방을 확실히 앞서게 된 기술은 재생에너지, 배터리, 전기 자동차와 같은 그린테크놀로지 관련 사업들이 아니었나? 그러니, 중국의 위협 때문에 AI에 올인했다는 이야기는 좀 거둬줬으면 한다.

AI 영역에서 중국은 여전히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에 지나지 않는다. 전직 그리스의 재무장관이자 좌파 경제학자인 야니스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가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테크노 퓨달리즘(techno feudalism, 기술 봉건주의)”이라고 설명한 새로운 정치경제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클라우드 플랫폼 독점력 강화를 위해 AI와 로봇 기술의 발전을 요구하지 않았을까? (주- 클라우드 영토를 지배하는 이들 봉건 영주들을 클라우달리스트cloudalist라고도 부른다. 앨런 머스크, 피터 틸, 제프 베조스, 샘 올트먼 등등, 다리오 아모데이도 아마 그 일원일 것이다. )

이것은 아마도 서구근대 문명이 거의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 밖에 없는 자기 파괴적인 종착지일 것이다.

‘혁신’의 서구 vs ‘리스크 관리’의 중화

“문명의 로직(The logic of civilization)”은 자유주의 성향의 華人 경제학자이자 금융전문가인 홍콩대학의 천즈우(陳志武)가 2022년에 펴낸 문명론 저서이다. 대륙 후난(湖南)성 출신인 그는 예일대학을 비롯한 미국의 학계에서 오랜기간 활동했고, 지금도 홍콩에 머물고 있는 서구 학계가 키워낸 학자이다.

많은 서구의 주류 경제사학자들이 “혁신”이야말로 유일한 문명의 기준이라고 단언하는 가운데, “리스크 관리”가 문명의 또다른 기준이라고 반박한다.

전자의 논리에 의하면 인류 문명은 19세기 이전과 이후로 나뉠 뿐이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생산성 혁신이 GDP를 급상승시켰기 때문이다. 반면, 신석기 농업혁명이나 국가체제의 등장은 1만 년이든 수천 년이든, 인류의 생산성 증가에 크게 기여한 바가 없기 때문에 변변치 못한 진보라는 것이다.

따라서 농업문명으로 이해될 수 있는 대부분의 고대문명의 가치도 낮추어 본다. 일부 인류학계 혹은 유발 하라리와 같은 빅히스토리 학자들이 농업이 오히려 채집수렵 단계보다 인류의 복리를 후퇴시켰다는 논리와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천즈우는 농업생산양식, 혼인과 가족, 미신과 종교, 그리고 국가 등이 등장하여 고대 문명의 토대를 이룬 것이, 산업혁명과 마찬가지로 인류문명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한다. 이런 관습, 제도와 생산양식이 인류의 생존 리스크를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테면 중화문명이 주나라에서 청나라 말기에 해당하는 아래 도표의 B지점(정주 농업 초기)에서 C지점 (농업사회말기)까지 유교제도를 확립함으로써 안정된 사회를 만든 것을 문명의 큰 성취라고 본다.

천즈우가 설명하는 문명발전의 경로. X축은 생활에서의 리스크, Y축은 노동생산성이다. A는 수렵과 채집위주의 원시사회, D는 공업사회이다. 출처: ‘문명의 로직’ 필자 촬영
천즈우가 설명하는 문명발전의 경로. X축은 생활에서의 리스크, Y축은 노동생산성이다. A는 수렵과 채집위주의 원시사회, D는 공업사회이다. 출처: ‘문명의 로직’ 필자 촬영

서구의 진보사상과 문명관에 적극 공감하는 동시에 동아시아 문명의 유기적 근대화에 오랜 관심을 가졌던 터라, 이런 맥락에서 중국 사회의 변화를 20년 넘게 경험하고 관찰해왔다. 하지만, 근대 과학기술이 서구에서 태동한 것인 만큼, 과학기술이나 생태주의를 연구하고 사회적으로 의제화하는 인문사회과학 담론에서 서구의 진보 사상에 큰 신뢰를 품어왔다.

역으로, 중국의 지식계에서 이와 관련한 나름의 정치한 담론을 기대했었지만, 최소한 지난 10년간 공론장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자유롭지 못한 학계 풍토와 관련이 있다고 짐작했다. 민주주의 기반의 시민사회가 국가권력이나 이와 결탁한 자본의 폭주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중국 당국가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중국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초래할 리스크에 대해서 노심초사했다. 어린아이 손에 쥐어진 기관총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즐겨 비유했다. 예를 들어 아모데이 CEO가 경계한 것처럼 당 국가가 인민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안면인식 시스템은 서구사회가 비판하는 단골 아이템이다.

‘미치광이 과학자’를 대하는 두 세계의 온도 차

실제 더 극적인 ‘미치광이 과학자’의 사례도 있었다. 중국 경제성장과 첨단 과학기술의 상징인 선전(深圳)시가 엘리트 고등 교육기관을 목표로 설립한 남방과학기술 대학의 허젠쿠이(贺建奎) 교수는 2018년 홍콩에서 인공수정된 인간의 배아를 이용해 유전자를 편집한 실험결과를 발표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HIV에 면역기능이 있다고 주장되는 여성 쌍둥이가 실제로 태어났다. 서구사회에서는 인간배아 실험을 엄격히 제한하는 가운데 생명과 인권에 대한 의식이 약한 중국의 과학기술계가 결국 사고를 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에 접한 허젠쿠이와 관련한 최신 보도는 ‘반전’이었다. 중국 정부는 이 실험결과 발표에 대한 연구 윤리 문제가 제기된 이후 이 연구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그를 우선 학교 사택에 연금했다. 독자들은 중국의 법치 문제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으리라 짐작하지만 이 연금은 법령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그를 법적으로 처벌할 근거도 없었다. 하지만 당국가는 고심끝에 그의 실험을 불법의료행위로 규정해서 그는 3년간 수형생활을 했고 우리돈 6억 원 가량의 벌금을 추징당했다.

해임되고 출옥한 그는 베이징으로 갔다. 중국인 비트코인 자산가의 투자를 받아서 사설 연구소를 만들고 X(엑스)와 유튜브로 자신의 연구 성과를 선전했다. 그럼에도 연구활동에 불편함을 느낀 그는 차례로 홍콩, 그리고 미국으로 이주하려 했지만, 중국 정부가 여권을 압수해서 출국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 5월 그는 X에 “시진핑, 내 여권을 돌려줘!”라고 소란을 피우다가 중국 정부의 경고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유튜브에서 일론 머스크와 한 미모의 여성 스타 유튜버가 체외수정한 배아로 유전자 편집을 이용해 뛰어난 지능, 빼어난 용모, 강한 신체를 지닌 아이를 출산 준비중이며, 자신도 이런 상업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정리하자면 그는 클라우달리스트 그리고 그 신봉자들과 세계관과 이익을 공유하고 있는 반면, 중국의 당국가와 보통 사람들에게는 “미치광이 과학자”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물론 작금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체제 경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당 국가의 일부 세력과 그가 내밀하게 결탁돼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겠다.

서구에서는 도덕적 하한선이 없는 무자비한 전쟁을 의미하는 ‘초한전(超限戰)’이라는 책을 예시하며 당 국가가 이런 노선을 견지한다고 주장한다.

그림3 허젠쿠이는 중국인 전처와 이혼하고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캐나다의 천재소녀 과학자이자 유전공학 스타트업 사업가인 캐시 타이와 재혼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재기를 꿈꾸고 있으나 중국 정부는 이들의 결합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자료출처: 인터넷)

2천 년 넘게 정교화한 유교제도와 의식이 만들어 낸 ‘문명의 로직’은 국가, 가족, 지역 사회의 평판과 관습 등이 조합돼 중국인의 일상과 동기를 지배하는 심층적인 규범이다.

현대 서구문명의 자유주의적 관점으로는 억압적이고 가부장적이고, 반인권적인, 국가와 사회, 가족이 결탁한 ‘독재체제’에 불과할 지 모르지만, 최소한 2천~3천 년 간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돼 온 전통이다.

여기 가해진 대규모 파괴행위들은 항상 인구의 상당수를 제물로 삼았다. 가장 최근의 사태가 서구의 공산주의 영구 혁명 논리를 수용한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이다. 어찌보면 천안문 사태의 비극도, 엘리트가 시작하고 대중이 추수한 사회 운동이 초래한 혼란을 수습하기 힘들어지자, 과거 경험의 트라우마에 갇힌 당 국가 지도부가 빠진 패닉에서 비롯한 것일지도 모른다.

중화문명은 “태평천하”를 유지하는 것을 가장 큰 미션으로 삼고 있고, 혁신보다는 리스크 관리를 문명의 우선적 기준으로 삼는다.

‘사회와 일체화된 국가 시스템’ 자체를 위협하는 파천황식의 파괴를 통한 창조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부적으로는 억압적이지만, 그 대가로 안정과 번영을 약속함으로써 중국의 보통 사람들, 즉 라오바이싱(老百姓)의 지지를 얻는 방식으로 정치체를 유지해왔다.

현재의 당 국가도 역대 제국의 왕조들과 같이 이런 문명의 로직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0에서 1을 만드는 창조, 1에서 N을 만드는 안정

이렇게 설명해 볼 수도 있다. 많은 중국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해온 관찰 결과인데, 얼마전 조선일보의 인터뷰에서도 미국의 IT 석학 존 홉크로프트에 의해 다시 언급이 된 내용이다.

중화문명은 1에서 N을 만들어 내는데 능하고, 서구문명은 0에서 1을 창조하는데 수월성을 보인다고 한다. 홉크로프트는 이를 문제해결능력과 창조능력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미국과 중국은 반목하기보다는 상호협력하고 서로 보완할 때, 인류를 위해 공헌할 수 있다는 해설도 덧붙인다.

당신에게 묻고 싶다. 새로운 일자리와 에너지 생존권을 보장하는 그린 테크놀로지 발전 전략에 방점을 찍었던 중화문명과, 사회의 큰 변화와 불안정을 야기할 AI의 개발에 사활을 걸었던 서구문명중 어느 쪽이 주도적으로 인류의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나?

생산과정에서의 소외, 우리 시대 공통의 실존적 위기

테크노퓨달리즘의 대중적 지지기반이 되는 ‘극우화’는 한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중국내에서도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보수적 남성들의 언설을 일상적으로 접한다. 공격적 페미니즘이나 정체성 정치가 제대로 된 발판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왜 이런 현상이 중국사회에서 발생할까?

내가 관찰한 바로는 중국 사회 곳곳에서 대개 중장년 혹은 노년의 남성들 중심으로 사회에서 주변화돼 있는 경우가 많다. 안정된 수입과 자산이 있는 은퇴 상태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은 없는 이들은 그러나 생산과정에서 소외됐고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쉽게 조급증을 드러내는 한편 여성과 청년층, 그리고 소수자의 평등권 요구에 불편함을 느낀다.

한국에서는 청년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이런 모습은 결국 생산과정에서의 소외가 가장 큰 원인은 아닐까?

과거 생산수단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이 분배의 공정성에 대해서 불만을 품었다면, 지금은 아예 생산과정 자체에서 소외되면서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없게된 이들이 실존적 위기 상황에 놓이고 있다.

이는 중국이나 서구 사회를 막론하고 AI와 로봇 기술이 일자리를 없애고 있는 산업문명 안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도전과제이다. 중화문명과 서구문명은, 그리고 두 문명의 유산을 공유하면서 격렬한 내부적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사회는 각각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글쓴이

김유익 한중 문화교류 코디네이터

김유익은 한중 문화교류 코디네이터다. 중국 광저우와 한국의 전남 목포를 오가면서 살고 있다. 중국 남방 지역의 사회, 문화와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쓴다. 늦깎이로 문화인류학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다. 중국인 아내 덕에 1/3쯤은 중국인의 정체성을 갖게 됐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호기심은 한국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번역서로 <주변의 상실(글항아리, 2022)>, 저서로 <차이나 리터러시(한겨레출판사, 2023)>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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