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환단고기가 동북공정을 돕는다

[김유익의 내관(內觀) 차이나]

지난 2022년 2월 4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한복을 입은 한 공연자가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2022년 2월 4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한복을 입은 한 공연자가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1분 핵심 요약]
  • 시진핑의 국정화 2019년 이후 교과서는 사상 통제를 강화하며 ‘중화민족의 수월성’을 강조하지만, 여전히 고구려 비중은 미미하다.
  • 적대적 공생 <환단고기>식 가짜 역사관은 오히려 중국 당국에 ‘방어적 동북공정’을 강화할 명분을 제공하는 부메랑이 된다.
  • 미들파워의 자신감 약소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성장한 국격과 실용 외교로 정면 돌파할 때, 고대사 판타지는 설 자리를 잃는다.
  • [The Insight - 행간의 재구성]
  • “영토는 주문(呪文)이 아니라 국격(Power)으로 지킨다”
  • 과거의 지도(Map)를 넓히려는 망상은 현재의 주권을 위태롭게 한다. 낭만적 민족주의의 허상을 깨고, 당당한 미들파워 강국으로서 중국과 호쾌하게 합의할 수 있는 ‘진짜 자부심’의 좌표를 만들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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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과 경계의 ‘시진핑 교과서’

이제 한국 입장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19년 이후의 <시진핑 국정 교과서>를 살펴보자. 한국인들은 사드사태 이후 청년층을 중심으로 유난히 시진핑과 중국에 대한 반감이 강한데, 전문가들은 실은 “대국굴기”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넘사벽”으로 돌아온 중국의 산업경쟁력과 한국의 비교열위가 심층적인 이유라는 것이다. 잠재적으로 자신의 일자리와 밥그릇을 빼앗는 상대에 경계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현재 역사 교과서의 필수 과목인 <중외역사강요中外歷史綱要 (상)>과 <국가제도와 사회치리>라는 선택 과목에서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필수 교재에서는 고대사를 상세하게 다루다보니 조선반도와 관련된 약간의 서술이 추가됐다. 진시황의 통일을 설명한 부분에서 사마천의 『사기』를 인용하여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가 “동쪽으로 바다와 조선에 이른다(地東至海暨朝鮮)”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고조선을 의미하는 것일 터이다. 이전의 교과서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내용이다.

조선반도에 대한 직접 언급은 없지만, 삼국시대와 남북조 시대 중국의 강역을 표시한 각각의 지도는 비교적 정확한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삼국 중 위나라가 조선반도의 북부를 점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한4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북제의 동쪽으로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의 영토는 중국 왕조의 영역 바깥인데, 지도만으로 보자면 이는 조선반도와 만주에 걸친 삼국을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현재 사용되는 중국 고등학교 국정 역사교과서(필수과목). 지도를 시대별로 살펴 보면 조선반도와 만주에서 고구려를 포함한 삼국의 존재가 인정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필자
현재 사용되는 중국 고등학교 국정 역사교과서(필수과목). 지도를 시대별로 살펴 보면 조선반도와 만주에서 고구려를 포함한 삼국의 존재가 인정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필자

이전 교과서와 거의 유사한 내용

수당시기를 살펴보면, 이전의 교과서와 거의 유사한 내용이 서술돼 있다. 수나라의 멸망 원인으로 “세 차례의 고려 대정벌에 따른 생산력의 엄중한 파괴”를 들고 있고, 말갈족 대조영이 건립한 발해국에 대한 설명이 있다.

위진남북조와 수당시기에 걸친 조선반도 및 일본과의 교류는 역시 1990년대나 2천년대 초반의 교과서와 비교하면 내용이 대폭 줄어들었다. 따라서 조선반도의 국가들에 대한 언급없이 직접 신라, 일본과의 교류에 대해 약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혹시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으로 바꿔놓은 것은 아닐까 의심할 수도 있지만, 이 점은 선택 교과서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고대의 민족관계와 대외 외교 第11課 中國古代的民族關係輿對外交往”라는 챕터에 수당시기의 소수민족과 그 변경 왕조들을 정리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당나라의 변경민족에 예전과 마찬가지로 발해가 언급돼 있으나 고구려는 찾아 볼 수 없다. 또, 수당시기의 대외 외교부분에는 일본을 간단히 언급할뿐 신라를 비롯한 조선반도의 국가와 관련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놓고 보면 판선생이 내게 했던 이야기는 매우 정확하다. 2천년대 이후 중국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는 조선반도의 삼국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고, 고(구)려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수나라가 멸망한 주요한 원인중의 하나라는 것이 유일하다. 내가 중국의 역사 교사나 고등학생이라면 고구려라는 고대국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고구려는 그들의 지방정권도 아니었다

정리해보자. 1990년대부터의 중국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는 발해를 말갈족의 국가로, 중국 변경의 소수민족, 그리고 지방정권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고구려는 그 대상이 아니다.

다만 조선반도와 만주에 걸친 왕조로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을 기술하는 설명은 현재의 교과서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경계심을 품을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다.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중국의 일반적인 역사책들은 고구려를 수당시기 변경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으로 규정하고 있을까?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1987년에 출간된 <중국문화사 삼백제中国文化史三百题>라는 책을 보면, 전통적으로 존재하는 중국 동북지방의 소수민족중에 숙신, 말갈, 여진으로 이어지는 만주족과 부여를 건설한 예맥족을 들고 있다.

발해의 유민이나 부여의 유민이 한반도로 흘러들어가 한민족에 흡수됐다는 언급이 있는 반면, 고구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경우는 없다.

‘동북공정’이 나오게 된 배경

문제가 되는 것은 21세기 이후 <동북공정>을 위시한 중국내의 다양한 학술적 주장들인데, 이들 중에는 고구려의 다민족적 구성과, 그 기원, 주요 활동 근거지, 고구려의 멸망 후 유민들의 이동을 근거로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주장과 관련 연구 프로젝트가 생겨나게 된 동기는 한중수교 이후 1990년대부터 중국의 동북지방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의 잠재적 영토주장과 독립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 조선족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결국 정치화된 원인과 동기를 따져보면, 우선 정치로 풀어야 할 부분이 있고, 그 후속은 한중의 역사학자들이 학술적으로 논쟁을 지속해야 할 과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이 글을 쓰게 된 근본적 목적으로 돌아가겠다. 역사적 판타지에 해당하는 <환단고기>는 학술적인 주장인 <동북공정>과 맞대응할 수 있는 논리나 서사가 당연히 아니다. 한국 바깥으로 나가면 중국이든 제3의 국가이든 웃음거리, 가쉽거리로 치부될 수 밖에 없는 대상이다.

이런 서사 속에는 물론 우리가 건국 신화라고 알고 있는 내용들도 일부 있다. 이를테면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신화’는 중국의 ‘삼황오제’ 전설과 맞대응된다. 하지만, 양국 역사학계 모두 이는 신화의 세계로 간주하고 왕조국가가 형성되기 전의 부족 사회로 그 실체를 상상하고 기술할 뿐이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지도.
환단고기에 나오는 지도.

환단고기와 비슷한 ‘황한 역사관’

이와 같은 이야기를 윤색하고 덧칠하여 근현대 이후에 만들어진 역사 판타지의 세계는 중국에도 존재한다. “중국만물기원설”의 과장된 버전들이 가끔씩 출몰하는데, 예전에는 중국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가장 먼저 발견했다는 설도 있었다. 최근에 화제가 됐던 것은 소위 “황한皇漢역사관”, “1644역사관”이라고 불리는 서사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을 명나라 팬덤을 뜻하는 “밍펀明粉”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한족중심주의자들로서 만일 1644년에 “청나라 오랑캐”들에게 명이 멸망하지 않았다면, 중국은 근현대 시기에 100년의 치욕을 겪지 않았어도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고 한다.

이 정도 사고방식이라면 대안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이지 굳이 판타지 애호가로 조롱거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명나라에서 반도체의 기반이 될만한 기술을 이미 고안했다”거나 청시기의 대표 문학작품인 “홍루몽”이 사실은 반청복명 사상을 비밀리에 담고 있었다는 음모론식 주장도 펼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중국정부조차 싫어하는 주장들

이들은 대개 애국주의자이며 친정부적이지만, 중국 정부는 이들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들의 주장이 소수민족의 불만과 사회적 긴장을 불러 일으킬 수 있으며 중국식 “정치적 올바름”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신해혁명 이전 손문과 같은 과거의 반청 민족주의자들은 오랑캐를 몰아내고 한족의 중국을 근대국가로 새롭게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들 황한파는 조금 더 현실적이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동화정책을 통해, 소수민족을 모두 한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수에 해당하지만 정말로 중국 정부를 긴장시킬만한 부류도 있다. “남쪽 황한파”라 불리는 사람들인데, 이들의 “이상 중국”은 명나라가 아닌 남송南宋이다. 장강 유역과 주강 유역의 한족을 중심으로 농경 문명이 아닌 해양 상업문명을 기반으로 독립했다면, 남중국은 일찌감치 “야만적이고 낙후한 북쪽이나 내륙”과 결별하고 시장주의와 결합한 자유민주주의 근대국가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문화결정론을 인종주의적으로 발전시킨 경우인데, 실제로 북중국과 남중국 사람들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북중국과 한반도 주민들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멀다. 이들은 그래서 19세기말이나 20세기초로 시간축을 돌려서 새로운 “남방한족 내셔널리즘”을 형성하고, 이에 기반한 네이션 스테이트nation state를 재구성하고 싶어한다.

이런 생각은 대만 민진당과 대만독립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새로운 “대만민족의 내셔널리즘 서사”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홍콩독립주의자”들을 포함해서 이들 모두에게 사상적 영향을 끼치는 인물은 지금은 미국으로 망명한 사천성 출신의 재야 역사평론가 리우중징(刘仲敬, Liu Zhongjing)이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왜소한 ‘집단적 자아’의 극복을 위해

한국이든 중국이든 이러한 “대안역사관” 혹은 “판타지역사관”을 지지하는 이들의 동기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나 왜소한 “집단적 자아” 극복에 있다. 나는 한국이든 중국이든 주류사회에서 점차 이런 의식이 사라질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보는 편인데, 이유는 중국과 한국 모두 국제적 위상이 크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G2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는데, 며칠전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통화 내용이나 이후 자신감에 넘친 중국 정부의 반응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김건희와 윤석열의 계엄이 성공했다면 나락으로 떨어질 뻔했지만, 천우신조로 이를 극복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리더쉽하에 대외적인 국제 정세의 급변과 대내적인 구조적 문제에 대해 모두 전략적으로 잘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런 기조가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를 거쳐 10년이상 유지될 수 있다면, 한국이 단순한 선진국이 아니라 미들파워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희망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굳이 <환단고기>에 의지해서 약소국 컴플렉스를 극복하려할 근본적인 원인도 해소된다고 말할 수 있다.

사진5 중국 정부가 G2로서 내보이는 자신감이 2월초 미중 정상간의 통화내용을 보도하는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CGTN 홈페이지 캡쳐).

불필요한 자극 할 필요없어

마지막으로 한가지 명확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환단고기>를 지지하는 이들의 정서와 한국내의 정치적 영향력이 자신들의 의도와 정반대로 중국 정부, 특히 동북 지방정부에는 <동북공정>식 의식과 실천을 강화할 동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중앙 정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중국의 주류학계 입장에서는 굳이 자신들의 전통적 역사관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고 그들 중 일부가 주장하는 학설을 선택해서 고구려를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해야할 동기가 줄어들고 있다. 신세대 조선족 동포들의 의식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와 2천년대 중국 동북을 방문해서 “고토수복”에 대한 로망을 불살라오고 있고, 지금은 <환단고기>를 지지하는 이들도 다시 불을 지피려고 해도, 이에 “부화뇌동”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한국 정부가 중국 동북지방에 대한 영토적 논란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정치적 제스쳐를 명확히 취한다면 중국 정부도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하는 주류 역사관 변경을 밀어붙이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글쓴이

김유익 한중 문화교류 코디네이터

김유익은 한중 문화교류 코디네이터다. 중국 광저우와 한국의 전남 목포를 오가면서 살고 있다. 중국 남방 지역의 사회, 문화와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쓴다. 늦깎이로 문화인류학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다. 중국인 아내 덕에 1/3쯤은 중국인의 정체성을 갖게 됐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호기심은 한국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번역서로 <주변의 상실(글항아리, 2022)>, 저서로 <차이나 리터러시(한겨레출판사, 2023)>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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