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의 어머니”는 왜 시진핑을 ‘극혐’했나?

[김유익의 내관(內觀) 차이나] 시진핑을 ‘빌런’ 비난했던 故 제인 구달 중국의 기후위기 대응 역할 몰랐던 탓 미국은 중국을 ‘적’ 아닌 ‘경쟁상대’로 중국 서민은 “習, 국난극복 영웅으로” 5~10년내 한국 혐중세력 입장 바뀔 것

중국이 제로 코로나 방역을 고수하던 2022년 4월 25일 베이징 인민대학을 방문한 시진핑. 학생들이 환호로 맞이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중국이 제로 코로나 방역을 고수하던 2022년 4월 25일 베이징 인민대학을 방문한 시진핑. 학생들이 환호로 맞이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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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구달이 몰랐던 중국 기후위기 대처 노력

지난 10월초에 영면한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제인 구달의 생전 인터뷰가 넷플릭스에 공개됐을 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살짝 눈가에 이슬이 맺힐 정도의 감동과 함께 그의 잔잔한 호소를 경청했다. “우리의 후속 세대에게 보석같이 아름다운 지구를 살만한 곳으로 남겨줘야 합니다.”

그런데, 인터뷰어가 말미에 던진 짖궃은 질문에 대한 그의 장난기 섞인 답변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쌀을 찌푸렸다. “박사님이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까?”

“네, 일론 머스크, 도널트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을 스페이스-X 우주선에 태워서 날려보내고 싶어요. 시진핑과 푸틴, 네타나후도 함께 보내버리고 싶습니다.”

생전의 제인 구달 박사. 사진= 연합뉴스
생전의 제인 구달 박사. 사진= 연합뉴스

나도 이런 심정에 대체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우주 유배선에 태워져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었다. “제인 구달도 어쩔 수 없는 서구 리버럴 엘리트군!”

아마 대부분의 한국인들은“그게 뭐가 문제라는 말이죠?”라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보다는 마음속으로 필자를 “역시 친중 분자, 중국 스파이로군”하고 비아냥 거릴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친중”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든 “짱께 빨갱이”이라고 비난을 하든, 굳이 대꾸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왜 그렇게 느꼈는지, 설명을 해보려 한다. 첫째 이유는 간단하다. 제인 구달이 지구 생태계를 보존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호소하면서, 동시에 기후변화 문제에 가장 진정성있게 대응하고 있고, 그 정책을 힘있게 추진하는 국가의 지도자를 저렇게 “국제적인 기후 빌런”들과 한통속으로 묶는 게 과연 공정한지 의문이 든다.

한국 언론이 외면했던 COP30 행사

이런 이중적인 태도는 제인 구달에게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11월초 경주에서 열린 APEC회의 직후에, 브라질의 아마존 열대우림속의 도시 벨렘에서 열린 UN 제30차 기후변화 당사자 회의인 COP30 행사는 한국 언론에 의해서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이건 기후 변화 의제를 매우 중시한다는 진보 언론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반면 중국 언론은 관영CCTV를 포함해서 모든 매체들이 이 소식을 당시 헤드라인으로 앞다퉈 보도했는데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국가 서열 6위인 국무원 부총리 딩쉐샹을 브라질에 파견해 주최측 룰라 대통령을 비롯해 이 회의에 참석한 세계 정치 지도자들과 회담하는 장면을 보도했고, 중국 정부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벌이는 각종 정책을 홍보하는 동시에, 미래 계획에 대한 중국 정부의 확약을 전했기 때문이다.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COP30이 지난 11월 10일 브라질 벨렘에서 개막했다. 중국측 관계자들이 '차이나 코너'에서 참가자들에게 기념품을 건네고 있다.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의 COP30이 지난 11월 10일 브라질 벨렘에서 개막했다. 중국측 관계자들이 ‘차이나 코너’에서 참가자들에게 기념품을 건네고 있다.

이 국제 행사는 중국이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 이 의제에 반대하는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얼마나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이 문제 해결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이던 유럽보다 오히려 더 큰 리더십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다른 무엇보다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기술, 배터리 기술, 전기차 기술 등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에 결정적인 기술과 그 산업적 솔루션의 빠르고 값싼 대량 생산능력에서 다른 나라들을 압도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서구 정치권과 언론의 태도인데, 그들은 중국이 주도하는 기회와 노력들이 못마땅했는지, COP30에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한국 언론은 한발 더 나갔다. 당시 경주행사 성공의 기쁨에 한껏 부풀어있던 탓인지 관련 뉴스로 도배가 되면서 COP 행사에 대한 뉴스는 그 흔한 단신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당시 주목을 받던 외신은 ‘맘디니’라는 무슬림 출신 좌파 정치인의 뉴욕시장 당선 소식이었다.

어쩌면 고의가 아닐 수도 있다. 한국 언론 입장에서 외신으로는 서구의 주요 매체를 우선 참고해야 할 터인데, 당초 소스가 되어줄 그들이 외면했으니 아예 이런 사실을 포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꿔말하면 한국의 주요 매체들은 서구 사회 관심의 자장 밖에 존재하는 사실들은 아예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나는 중국 매체를 통해서 이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지만, 마침 한국의 생태경제정책 전문가 김병권의 페이스북을 구독하는 덕분에 이 행사의 진행 상황과 그 함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김병권 선생은 글로벌 기후변화 문제 대응에 있어서 구축되고 있는 중국의 주도권을 한국 사회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려하기도 한다.

중국의 일반서민들은 시진핑을 어떻게 평가할까

이제 조금 더 까다로운 두번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다. 나는 요즘 자주, 중국의 “보통 사람들”, 아마도 중국 14억 인구의 절반 이상 되는 소득 중위이하의 사람들이 과연 시진핑 주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지 추정을 해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그 반대 위치에 서있는 사람들, 즉중국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해외로 유학이나 이민을 떠난 사람들, 특히 2022년경부터 중국 공산당의 통치가 싫다며 일본으로 이주한 수십만명의 ‘자유주의적 망명객’을 포함한 상하이, 베이징, 선전에 거주하는 중상층 엘리트 집단의 소수파 목소리가 서구 언론에는 더 크게 공명한다. 나는 그대신, 대도시의 저소득층 노동자들, 중소 도시와 농촌에 주로 살고 있는 “라오바이싱老百姓”이라고 불리는 서민들의 관점을 떠올려보고 있다. 간단하게 “포퓰리즘”의 목소리라고 이해해도 좋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를 해야할 점이 있다. 중국도 팬데믹 이후 먹고 살기가 팍팍하다. 집값은 떨어지고, 물가는 오르고, 장사가 잘 안된다. 기업 투자도 줄고, 수출 사정도 만만치 않다. 특히 중국 제품을 잘 수입해주던 부자 나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거나 “노차이나”를 외친다. 이런 중국의 불경기에 공산당의 책임이 없지 않다. 다른 국가보다 팬데믹 봉쇄 기간을 1년이나 더하는 바람에 ‘존버하다가’ 결국 망해버린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경영자들, 해고된 중간 관리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 중 상당수가 중국판 우버인 ‘디디 택시’ 기사로 전직해서 생존 전선에 나섰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에 대립각을 세우면서 수출 제조기업이 타격을 입은 경우도 있다. 몇년 전부터 계급사회를 고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면서 대대적으로 규제를 펼쳐 고용창출 효과가 적지 않았던 학원과 유학원 사업 등을 문닫게 만들고, 학생과 저소득 청년 노동자들이 소액 대출을 받아 소비생활에 사용하게 하면서 가계대출을 급격하게 팽창시키고 있던 알리바바 개미금융그룹처럼 소액 신용평가대출 인터넷 플랫폼 기업을 규제한 정책들도 욕을 먹는다. 정부가 자유시장 질서에 함부로 개입하면서 자본가와 투자자, 기업가를 괴롭힌다는 이유로.

하지만, 아마도 불경기의 가장 큰 원인은 10년전부터 건설과 부동산에서 하이테크로 전환중인 산업 구조조정의 여파일 것 같다. 이는 “미래 가치를 창출할 수 없는 부동산에 자본을 꽁꽁 묶어두는 동아시아 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변화이긴 하지만, 어쨌든 새로운 첨단 기술산업에서는 소수의 상위 엘리트들을 제외하고 고용기회를 창출하는 것이 어렵다는 숙제가 남아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구조전환을 불가피하게 따르는 불경기에 대한 불만을 잠시 논외로 하고, 보통의 중국 사람들이 국가 지도자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자면, 그들은 이미 시진핑을 “국난극복과 대국굴기에 성공한 영웅”으로 판단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이런 설명을 하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도끼눈을 뜨고 반문했을 것이다. “미쳤어요?” 그런데 하반기에 들어 국제 뉴스에 주목하면서 목도한 세계 정세의 극적인 변화들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다.

트럼프 2기가 시작되면서 일부 눈밝은 사람들이 예측하던 변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중국을 무력을 포함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압해야 하는 적이라기 보다는 경쟁상대, 그리고 “나와바리”를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할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즉, 트럼프1기부터 가열차게 진행한 봉쇄전략이 실패했음을 인정한다는 말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시진핑이 오바마와 첫 만남을 가졌을 때 했던 “세계는 넓으니 미국은 태평양 동쪽을 취하고, 태평양 서쪽편, 우리 구역은 인정해 주시오”라는 요구에 대한 매몰찬 거절로서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정책이 이제 실효를 다해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반대입장에서는 시진핑 집권 13년의 결과가 최소한 글로벌 헤게모니 경쟁이라는 영역을 놓고 보자면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를 주장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강화할 필요는 별로 없어 보인다.

최근에 이런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 대만에서 벌어졌다. 대만 인터넷 관리 당국은 12월부터 중국판 인스타그램으로 알려진 ‘샤오홍슈’(레드노트)의 접속을 1년간 차단하기로 했다. 대부분이 젊은 여성인 대만인 사용자가 300만명이나 되는데, 앞으로 이들은 뷰티, 음식, 여행과 같은 라이프 스타일 정보와 소통 위주인 이 앱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륙의 사용자들이 페북이나 구글에 접속하기 위해서 부득불 이용하는 VPN을 알아봐야 하게 생겼다.

대만 정부 당국은 봉쇄 이유를 피싱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고 둘러댔는데, 대만의 피싱사기 피해자 대부분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앱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이런 설명을 곧이 듣지 않는다. 정치적 메시지나 의견 표명 정보가 별로 없는 샤오홍슈의 특성상 중국 정부의 간첩행위나 여론 선전선동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그보다는 대만의 보통 사람들이 중국 대륙의 문화적 영향을 받거나 날로 발전하는 대륙인들의 소비 생활을 인식하고 선호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대륙은 낙후되고, 가난한 사회라고 여전히 믿고 있는 대만 사람들이 적지 않고, 특히 대만독립을 지지하는 젊은이들이 그런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중국의 실상을 더 접할수록 생각을 바꿀지도 모른다고 염려한다는 것이다. 마치 최근 2~3년간 한국의 MZ세대들이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와서 혐중정서에서 벗어났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들이다.

“한국 극우 혐중세력도 5~10년 안에 태도 바꿀 것”

최근 한국의 주요매체들이 “혐중정서” 특집 기사를 연이어 싣고 있다. 나는 이런 위기의식에 공감하면서도, 조금 다른 기대를 피력하려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마치 우물에 독약을 푸는 것처럼”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등의 공동체 파괴 행위를 일삼으며 혐중정서를 선동하고 있는 한국의 일부 극우 정치 세력과 그 지지자들은 의외로 빠른 시간안에 그 태도가 바뀔 수도 있다. 짧으면 5년, 길면 10년내에 그런 변화가 이뤄질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우파 혹은 보수는 성향상 ‘위계’를 매우 중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닭의 무리안에서 모이를 쪼는 순서, 즉 패킹오더pecking order와 비슷하다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이런 평가와 설명이 상당히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그들이 내세우는 정치 담론은 충실한 이념이나 가치관과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윤석열과 그 추종자들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구호를 외칠 때, 일반적인 자유와 민주주의의 개념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계엄을 통해서 정당과 언론의 활동을 중단시키려했던 사람들이 주장하는 ‘비상대권’의 발동은 “지도자의 초법적 결단”을 중시하는 파시즘 사상가 칼 슈미트의 이론에 훨씬 근접해 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보수적 정치지도자로서 양쪽 정치 진영의 사랑과 미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박정희 전대통령을 떠올려 보라. “적대적 경쟁 관계에 있는 미국과 서방의 탄압에 단호히 맞서면서 대국 굴기와 위대한 중화민족의 중흥을 위해서, 중국식 현대화와 중국 특색 사회주의 국가를 완성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경제 성장과 과학기술 발전에 매진하고 이를 위해서 사회의 혼란을 불러 일으키는 자유주의 세력을 탄압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공산당 지도자 시진핑”은 얼마나 과거 한국 사회의 박정희와 닮아 있는가?

향후 5년에서 10년내에 중국의 하드파워가 미국과 대등해지는 순간이 오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보수 인사들은 풍향계처럼 가볍게 방향을 전환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명청교체기의 조선을 떠올리면서 고집스럽게 중화문명의 정통성을 추구하던 그때와 같이, 한국 사회가 앞으로도 아주 오랜 기간 현대 서구문명의 핵심 정치이념인 “자유민주주의”에 천착할 것이라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 명동 앞 중앙우체국에서 시위하고 있는 혐중 시위대. 사진= 연합뉴스
서울 명동 앞 중앙우체국에서 시위하고 있는 혐중 시위대. 사진= 연합뉴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그런데 이들은 앞에서 설명한대로, 한국의 우파나 보수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 입장에 서있는 ‘리버럴과 진보 정치 세력’일 것이다. 한국 진보 세력의 민주정이나 자유에 대한 굳건한 신념은 이미 한 세기에 걸쳐 형성된 신앙에 가깝다. 그렇지 않다면 1년전, 수많은 시민들이 어떻게 목숨을 걸고 그렇게 빨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달려갈 수 있었겠는가? 이 신념은 단순히 K-민주주의를 국내에서 수호하는 것 뿐 아니라, 외부로 이를 전파하려는 문명적 사명감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그런데 곤란한 사정이 발생했다. 경제가 발전하고 개방의 정도가 높아짐에 따라서, 정치적 자유화와 민주화가 진행되리라고 믿었던 중국에서 시진핑 집권후에 그에 역행하는 전략적 방향을 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부가 증가하고 시민의 정치적, 문화적 자유를 제외하고는 사회 제도가 현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중국 사회와 그 발전 맥락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면 일종의 인지부조화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도 미중 경쟁을 보며 최대한 유연해져야 한다

12월초에 발표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미국이 중국을 ‘적’이 아닌 ‘경쟁과 협력의 상대’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대만 문제를 여러번 언급하면서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지만, 중국도 그리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유는 더 이상 미국 정부가 ‘자유민주주의 진영 대(對) 권위주의 진영’이라는 이념적 대결구도로 현실을 파악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미국에게 이익이 되는지 아닌지를 유일한 판단의 근거로 삼고 있다. 즉, 서로 무언가를 주고 받는 협상에 열려있다는 이야기이다.

한국의 경제통상 혹은 반도체 기술 전문가들 중에는, 미중의 경쟁관계 구도 안에서 한국의 경제 발전 전략 방향을 설정함에 있어서 이념적 진영 논리를 유독 강조하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이런 사고 경향이 이념적 경직성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중국 제조업의 전방위적인 발전으로 어느 산업 하나 경쟁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미국, 그리고 서방진영에서 더 큰 협력기회를 발견했기 때문에 진영간 이념적 대립을 오히려 구실로 삼은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나는 한국이 미중의 경쟁관계속에서 한미동맹을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이미 민주정과 자유를 중시하는 문화속에서 발전을 유지해 온 한국의 위치를 긍정하면서도, 동시에 한국이 대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유연한 태도를 취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의 정치체제나 정치 지도자들을 보는 관점에 있어서도 우리의 정치적 신념에 근거한 가치 판단을 앞세우기 보다는, 거리를 두고 중국민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동북아와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서 우리가 앞장서서 긴장을 높여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하는 첨단기술 그리고 거대한 시장의 이점을 누리는 일반 제조업의 가성비 측면에서 중국과 경쟁을 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문화 산업의 영향을 많이 받는 소비자 제품이나 다양한 서비스 산업은 여전히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기회가 있다고 믿고 있기도 하다. 중국 소비자들의 자국 상품 선호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가끔씩 선택의 다양성을 누리고 싶어할 때, 아주 다른 문화권의 상품보다는 친연성이 높은 한국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인지부조화 감각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 선결 조건은 우리의 정치체제가 ‘절대선’이고, 그와 다른 상대방의 정치체제가 ‘악’이거나 낙후돼 있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 이상, 이웃 국가의 정치체제 문제를 지나치게 깊이 염려하거나 간섭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나는 한국 보수의 대중관이 변하리라고 생각하는 5~10년내에 중국 정치체제에도 서서히 변화가 찾아 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하드파워가 강해지고 소프트파워에 해당하는 대외적 발언권이 커지면, 내부적으로도 더 많은 질문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외부 공격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났던 자기 방어 기제가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중국 시민들이 공산당과 그 지도자에게 다시 “중국식 현대화”의 의미에 대해서 진지한 질문을 던질 것이다. 공산당은 이를 일방향적인 주장으로 덮어버리는 것이 더 이상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고 “중국의 진짜 영웅으로서의 시진핑 주석”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때 시작될 것이다.

글쓴이

김유익 한중 문화교류 코디네이터

김유익은 한중 문화교류 코디네이터다. 중국 광저우와 한국의 전남 목포를 오가면서 살고 있다. 중국 남방 지역의 사회, 문화와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쓴다. 늦깎이로 문화인류학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다. 중국인 아내 덕에 1/3쯤은 중국인의 정체성을 갖게 됐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호기심은 한국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번역서로 <주변의 상실(글항아리, 2022)>, 저서로 <차이나 리터러시(한겨레출판사, 2023)>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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