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불 주자고? 지금은 “중꺾마”의 시간
[김유익의 내관(內觀) 차이나] 엘리트들, 3500억불 그냥 주자고? 과거 중화제국, 조선반도 점령에 큰 부담 역사속 조선, 항상 ‘꺾이지 않는 마음’ 가져 지금 민족주의적 태도로 ‘중꺾마’ 절실
- 내관(內觀)은 “내재적으로 본다”는 뜻이며, 중국어로는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관찰한다’는 의미도 있다. ‘내관차이나’는 필자가 어느 정도 중국인의 정체성을 의식하지만, 중국을 수련하듯 살펴보겠다는 다짐이다.
‘민족주의’의 역사적 부침
1980년대는 내셔널리즘과 관련한 기념비적 저작들이 출간된 시기이다. 1983년에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와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 어네스트 겔너의 『민족과 민족주의』가 출간됐고, 1986년에 앤서니 D. 스미스의 『민족의 인종적 기원』이 나왔다.
좌파적 시각이 강하거나 근대 기능주의 성격을 강조한 전자의 세 책들이, 네이션(nation, 엄밀히 번역하자면 근대민족/국민국가)의 등장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상상된’, 혹은 ‘날조된’ 근대적 현상으로 설명한 것과 달리, 앤서니 스미스는 내셔널리즘에는 나름의 역사적, 문화적 기원이 있다는 것을 에쓰니(ethnie, 족류라고도 번역된다)라는 개념을 빌어 설명했다. 에쓰니는 지금은 우리가 종족(種族 enthnicity)이라고 부르는 근대 이전의 문화, 지역 그리고 혈연 공동체와 관련이 있다. 이 때문인지 서구와 중국의 문화와 정치사적 맥락의 차이를 강조하는 중국에서는 자유주의적 역사학자들조차도 앤서니 스미스를 즐겨 인용한다.
하필이면 이런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온 것은 1970~80년대를 거치고 냉전의 긴장이 이완하면서 민족국가적 움직임이 활발해진 것도 큰 이유중 하나라고 한다. 기실 2차대전이 끝나고 대한민국을 포함해서 다수의 네이션들이 등장했지만 좌우냉전의 갈등 속에 내셔널리즘은 다시 수면아래로 가라앉았다. 특히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관점으로 볼 때, 내셔널리즘은 계급갈등을 가리는 장애물인 동시에, 피식민지 상태에서 해방을 추구하는 여러 국가들에게는 유효한 혁명과 투쟁의 도구였기 때문에, 끌어안기에도 내치기에도 거북한 존재였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후에 중-소간의 갈등이나 동남아시아에서 공산주의 국가들간의 전쟁으로 내셔널리즘은 그 존재감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8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화와 함께 나타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와 글로벌라이제이션이 국경을 희미하게 하며 세계 경제와 문화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와중에 내셔널리즘은 다시 힘을 잃었다. 그런데 최근 전세계의 극우화 열풍속에 우리는 내셔널리즘의 부활을 목도하고 있다. 그 선두주자가 MAGA를 내세우는 미국, 그리고 극우 성향의 정당들이 선거에서 강세를 보이는 유럽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이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트랜스내셔널한 성격을 갖는 민간 교류를 코디네이트하기도 하고 문화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는 필자는 내셔널리즘의 “불온한 기운”을 느끼면 조건반사적으로 긴장한다. 무엇보다 중국인 아내가 있고,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생활하는 입장에서 반중, 혐중의 목소리를 대할 때마다, 실존적 위기를 느끼곤 한다. 필자의 내셔널리티 정체성은 모호함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 다가온 내셔널리즘
하지만, 최근의 급작스런 변화를 보면서 역시 내셔널리즘의 등장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깊어졌다. 우리의 동맹국인 미국 때문이다.
오랜 기간 한국의 내셔널리즘의 타겟은 일본과 중국이라는 이웃이었다. 80~90년대에는 반미감정을 품은 대학생들이 없지 않았지만, 한국의 주류사회 담론과는 거리가 매우 멀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굳이 내셔널리즘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 것은 한국 사회의 일부 “보수우파“인사들이 한미 관세협상의 와중에 한국보다는 미국을 응원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USA!”와 “차이나 아웃”을 연호하는 대화가 쉽지 않은 극단주의자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사업체를 운영하는 한국 사회의 최고 엘리트들이다. 3,500억 달러를 그냥 줘버리자고 말한다. 어차피 미국이 갑(甲이니 우리에게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 주요한 이유이다.
나는 현실론자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현실과 동떨어진 과도한 이상주의적 사고나 정서적이기만한 정의감이 가져오는 부정적 결과를 몸소 체험했다. 그래서 이념을 최우선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을 경계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이들의 주장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3,500억 달러는 우리 외환 보유고의 80%이고 실제 우리가 가진 달러는 그 액수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3, 500억 달러의 현금을 미국에 지불하려면 달러를 더 사와서 줘야 한단다. 최소한 98년의 외환위기 사태를 경험했던 사람들이라면 이게 뭘 의미하는지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지만, 이런 상상은 가능하다. 만일 내가 달러 자산을 제법 가지고 있다면, 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면, 혹은 어렵지 않게 이를 취득할 수 있는 처지라면? 다른 상상도 가능하다. 한국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것이 내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개인이든 집단이든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처신은 “줄을 잘 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토착왜구”를 비롯한 상대진영에 대한 극단적인 ‘멸칭’을 사용하는 것에 큰 거부감을 품고 있다. 또, “식민, 매국노, 제국주의”와 같은 표현도 피하고 싶다. 이런 언설은 논리보다는 피끓는 정서를 자극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중 관계와 관련한 주요한 역사적 질문에 나름대로 답변하는 방식으로 위와 같은 주장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내셔널리즘을 옹호하고자 한다.
중화제국이 계산한 조선반도 점령의 비용과 이익
“조선반도는 어떻게 중화제국의 일부로 편입되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면 귀를 쫑긋 세운다. 한중의 역사가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중국의 고전 『염철론』에서 힌트를 좀 얻을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천년 전인 전한(前漢) 시대에 쓰여진 책이다. 한의 황제와 신하들이 한무제의 북쪽 이민족인 흉노와의 대결과 정복전쟁을 평가하는 대목이 있다. 아시다시피 한무제는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만주와 조선반도 북부에 한사군을 설치하기도 했다.
한무제를 비판하는 유생들은 영토를 확대하기 위해 과도한 전비를 사용한 결과,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나라가 기울었다고 평가한다. 물론 중앙의 관료는 그 반대의 의견을 피력한다. 『염철론』의 비판적 사유를 조선반도에 적용한다면 후대의 수당제국이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얻게 된 손실과 그 후과에 대해서도 같은 설명이 가능하다. 한 나라가 영토 확대전략을 취할 때는 항시 장기적인 득실을 따져야 한다. 당이 물러간 이후, 중원의 지배자들은 조선반도를 점령하는 것의 장기적 비용이 이익보다 크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여기서 비용은 결국 조선민족 ‘에쓰니’를 복속하고 동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자원이다. 한나라가 위만 조선을 점령했을 때는 이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만주와 조선반도에는 문화적 응집성이 강한 통일 왕조가 존재하지 않았고, 상응하는 에쓰니의 존재감도 미약했을 것이다. 그래서 구성원들이 함께 힘을 모아 “꺾이지 않는 마음”같은 것을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후대 고려의 ‘항몽 세력’이나 조선의 ‘의병’같은 것에서 볼 수 있는 근성과 정신 말이다. 이걸 전통시대에 존재했던 내셔널리즘의 원형 같은 것으로 칭송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가진 내셔널리즘을 비판하기 위해 내가 설명할 것은 이익의 부분이다. 조선반도는 농경지가 충분히 넓지도 비옥하지도 않다. 그래서 시장에 내어 놓을 수 있는 잉여 생산물이 많지 않았다. 또, 상업과 교역을 발전시키기에 적합한 지리적 환경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과거 천년을 두고 중원의 지배자들에게 조선반도의 지정학적,지경학적 가치는 충분히 높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고대사를 들먹이면서 중국이 한국 영토를 침탈하기 위해 군사적인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에게 잘라 말할 수 밖에 없다. “중국이 피를 보면서 그래야할 이유가 없다고요!” 불과 10여년 전까지는 중국이 탐내는 기술자원 같은 것들이 있었을 터인데,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져버려서, 경쟁에서 밀리게 될 것이라는 반중 심리의 기저가 되는 공포감을 이루고 있다.
수퍼파워가 계산하는 조선반도의 ‘변경적 가치’
그렇다면 현대 중국에게 조선반도를 취하는 것은 어떤 이점도 없을까? 딱 한가지가 있다. 조선 반도의 위치는 수퍼파워급 중국의 적들에게는 지정학적인 강점이다. 마치 중원왕조가 산해관 건너, 만리장성 밖의 이민족들을 두려워하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조선 반도에서 미사일을 날리면 수도 베이징과 중국에서 가장 경제가 발달한 동부 연안 지역을 직접적으로 타격할 수 있다.내륙이 깊은 중국을 영원히 망하게 할 수야 없겠지만, 당대의 중국 경제와 정치는 괴멸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다.
10년전의 사드 사태 당시, 중국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은 조선반도에 자신에게 적대적인 정치세력이 등장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지금 시대라면, 미국이나 러시아가 조선반도에 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가 중립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도 중국은 한국에 외형적으로나마 호의적인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다. 그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것이 바로 윤석열 정부이다.
따지고 보면, 미국이 일본 열도와 한반도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이런 환경적 요소가 잘 드러난다. 동아시아의 일본은 미국에게 있어 중동의 이스라엘과 같다. 마음대로 미군 기지를 유지할 수 있는 불침의 항모로써 기능한다. 조선반도는 그 일본 열도를 지킬 수 있는 완충지대이자 중국 대륙에 공세를 취할 수 있는 교두보와 같다. 즉, 그 자체로서의 중요성보다는 2차적 가치의 중요성을 가진 곳이 조선반도이다.
이것은 조선반도가 중국 영토의 일부가 되든 미국의 영토가 되든, 긍정적인 핵심가치가 아니라 부정적 요소를 제거하거나 줄이기 위한 부차적인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체적 발전과 번영을 위한 엔진이 아니라, 그 번영을 지키기 위한 변경적 성격을 갖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역사적으로 그런 운명을 상상했다면, 현재 중국과 미국의 변경지대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살펴보면 된다. 중국의 신장, 티벳, 아니면 여기서 남쪽으로 윈난, 광시, 미국의 알래스카 혹은 하와이, 괌, 푸에르토리코 등등. 역사적 경로를 거슬러 올라가서 조금 더 현재적 시점으로 우리와 상황이 근접한 지역들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대만과 홍콩 같이 경제가 발전하고 문화적으로도 상당한 역량을 지닌 곳에 빗대어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그런데 놀랍게도 어쨌든 한국은 (심지어 어떤 의미에서는 북한조차도) 위에 열거한 지역들 정도로 주변적 위치에 있지 않다. 국뽕 관점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어쨌든 세계 5위권을 넘본다든가, 세계 10위권 안팎의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번째로는“운이 좋았다.” 보유한 자원이나 환경만으로는 스스로 번영하기 힘든 위치에 있던 우리가 미국과 중국이 스스로의 이익을 늘리거나 지키기 위해서 구사한 여러가지 전략들의 파도에 올라타 2단으로 점프를 하면서 현재의 위치를 획득했다. 그건 현대뿐 아니라, 전통시대 동아시아의 천하체제에서 특정한 상징적 위치를 차지하면서 나름의 문명국가를 건설했던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역대 수퍼파워들과 조선반도의 국가가 이념적으로 위계를 인정하되 공생하며 윈윈하는 관계를 택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내가 운이라고 말한 건, 우리를 비하하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요소들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두번째 요소를 이야기하자면, 그리고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문화적으로 치밀하게 분석을 하려고 한다고 해도 이것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정교한 분석이 오히려 문화결정론이나 본질주의에 빠지는 함정을 더 깊이 팔 수도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분석을 포기하고 일방적이고 거친 주장만으로 그치려 한다.
이 “중꺾마”는 아마도 중원의 지배자들이 조선반도를 장기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 치러야할 비용의 상당부분으로 고민했던 그 무엇일 것이다. 나는 그런 마인드셋이 지금 한국의 번영에도 기여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첫번째 요소와 두번째 요소중 어느 한쪽이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홍콩과 대만의 운명은 역사적 맥락과 당대의 환경에서는 첫번째 요소가 너무 강력해서 두번째 요소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다.
엘리트에겐 ‘중꺾마’가 절실하지 않다
중꺾마가 무엇인지 분석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내가 비판하려고 하는 사람들 즉, 줄을 잘 서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서 약간의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꺾마”는 그 공동체의 엘리트와 보통 사람들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단합할 수 있는 환경에서만 큰 힘을 발휘한다.공동체의 이익을 함께 지키기 위한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줄을 잘 서는 엘리트들에게는 이런 합의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이 줄을 선 세력의 핵심과 자신의 이익을 일치시키는 것이, 출신 지역의 보통 사람들의 이익과 일치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단적으로 예를 들어서 자산 포트폴리오 중에 달러 자산이 충분히 많다면, 원화 환율 변동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이런 엘리트들은 자기가 잘나고 노력해서 엄청 성공을 거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이와 다르다. 한국 정도 규모의 나라가 특정 분야에서 세계적인 성과를 거둔 것은 보통 사람들이 자원을 몰아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극심한 계급간 소득 격차, 산업간의 격차, 지방과 수도권의 불균형이 부정할 수 없는 그 결과이다.
여기서 이야기를 마치려 한다. 더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표현과 진술을 원치 않는다. 나는 문화인류학도로서 사람들의 생활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정부가 주도하는 한국의 민속자료들을 수집하는 일에도 참가하기 시작했다. 아직 접촉이 깊지 않아서 참가자들의 집합적 열정(collective effervescence)의 동기가 무엇일까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또, 국가가 한때는 지역과 그 다양성을 지우고 하나의 근대국가와 중앙 만을 강조하는 “Nationalism”을 강화하기 위해서 민속의 파괴에 앞장섰던 과거 역사와, 지금은 지역의 다양성을 살리겠다며 “도태된 삶의 흔적”으로 규정되던 민속을 다시 발굴하는 작업의 의미가 무엇일까 되짚어 생각해 보게 된다.
특히 나 같이 내셔널리티의 정체성이 모호해진 사람들에게는 민족 국가의 경계를 넘는 정체성과 민족 국가의 정체성, 그리고 다시 국가안에 존재하는 지역민의 정체성 중 어느 한쪽으로의 과도한 쏠림보다는 균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래의 “내셔널리즘”은 혹은 무엇이라 불리든 우리 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한 이념적 시도들은 이 균형을 적절히 유지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제시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갖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