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중엔 스마트폰 같은 ‘파괴적 혁신’ 없나?

[하영균의 진화생태경제학] 생존과 확장을 위한 생물체 진화 정체-점진-혁신-급변 4가지로 나눠 은행나무, 말, 뇌 둥 다른 진화 속도 기업도 4가지 속도중 하나의 방식 ‘급변하는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까

디지털 생계태를 창조한 스티브 잡스와 그의 혁신작 아이폰.
디지털 생계태를 창조한 스티브 잡스와 그의 혁신작 아이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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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대명절인 추석 한가위 시즌에 ‘자연의 힘’ 진화 이야기를 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이번에는 진화의 속도에 대한 이야기다. 생명체의 진화는 다양한 속도로 진행된다. ‘유전적 변이’와 ‘자연 선택’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이루어지는 진화의 4가지 속도는 각각의 특징이 있다. 이 역시 생명체 혹은 DNA를 유지 확장하기 위한 자연 적응 과정이다.

4가지 속도로 진행되는 진화

첫번째 진화의 속도는 ‘진화적 정체’다. 아무 진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생물학적으로 전혀 진화하지 않는 생물은 없다. 다만 특정 환경에서 서식하는 생명체는 환경이 변화하지 않을 때 진화하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기에 진화로 파악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진화적 정체가 나타나는 생물학적 이유는 주로 안정적인 서식 환경과 효율적으로 최적화된 생리 및 형태 구조에 있다. 특정 생물종의 서식 환경이 지질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이었고 강한 선택압이 부재해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는 다른 큰 변화가 생존에 불필요하거나 오히려 진화가 불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실러캔스, 유럽투구새우, 은행나무, 투구게 등이 해당한다. 유럽투구새우는 2010년 기네스북에 ‘현존 생물 중 가장 오래된 생물’로 등재되었으며, 중생대 트라이아스기(2억 5천만~2억 1천만 년 전)때의 모습과 거의 유사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삽 형태의 몸체가 웅덩이 바닥을 파는 데 적합하여 오랜 기간 변화가 적었다. 은행나무 또한 과거의 모습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유럽투구새우
유럽투구새우

두번째는 점진적 진화다. 주로 퇴화나 확장을 하면서 진화를 하는 경우인데, 찰스 다윈의 점진론과 유사하게 긴 시간 미세한 유전적 변이가 축적되어 종 전체의 특성이 변화하는 과정을 뜻한다. 현대 진화생물학에서는 생물 종이 오랜 기간 큰 변화 없이 안정되게 유지되다가 짧은 시간 급격히 변화해 새로운 종이 형성되는 단속평형론(Punctuated Equilibrium), 생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변화하고 축적하는 점진적인 진화 과정을 강조하는 점진론(Gradualism)이 상호 보완적으로 진화의 속도를 결정한다고 설명한다.

점진적 진화의 생물학적 이유는 약한 선택압과 유전적 변이의 꾸준한 축적에 있다. 환경 변화가 급격하지 않고 꾸준히 한 방향으로 작용할 때, 특정 형질에 대한 선택압이 지속적으로 가해지면서 해당 형질이 점진적으로 변화한다. 개체군 내에 존재하는 유전적 변이(돌연변이, 유전자 재조합 등)중에서 환경에 유리한 변이가 세대를 거듭하며 점진적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인간의 뇌’도 점진적 진화의 산물

대표적인 점진적 진화 사례로 말의 진화, 인간의 뇌 및 직립보행 등을 들 수 있다. 말은 시조마(Eohippus)에서 현대의 말(Equus)에 이르는 동안 몸집이 커지고, 발가락 수가 줄고(3개→1개), 어금니가 풀을 씹기에 적합하게 변하는 등 일관성 있는 점진적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되어 왔다. 말의 변화는 북미 지역의 기후 변화로 숲이 초원으로 변하면서, 풀을 찾아 더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고 포식자로부터 빠르게 도망쳐야 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함이었다. 지구력에 도움이 되는 인대와 힘줄, 그리고 이에 맞춰 변형된 뼈 구조가 그 결과다.

점진적 진화의 ‘느림’은 다른 진화 속도와의 상대적 비교다. 그 배경에는 꾸준하고 약한 선택압이 존재한다. 생명체의 긴 세대 주기와 환경 변화가 일관된 방향으로 오랜 기간 지속될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특정 형질이 점진적으로 최적화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로는 혁신적 진화이다. 혁신적인 진화는 생명체에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질이나 생리적 메커니즘이 등장하여 종의 생존 전략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진화를 의미한다.

생물학적 원인은 유전자 중복 및 기능 분화에 있다. 유전자의 염기 서열 변화인 돌연변이는 새로운 단백질이나 조절 기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진화의 궁극적인 원동력인 이런 대규모 돌연변이나 유전자 중복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능의 유전자를 탄생시켜 혁신적인 진화를 가능하게 한다. 유전자 중복은 염색체의 일부 구간이 중복· 복제되는 현상으로, 새로운 기능의 단백질을 만들거나, 기존 유전자가 더 전문적인 기능을 담당하도록 분화를 시키는 기반이 된다. 이는 유전적 다양성을 높이고 진화 속도를 가속화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그렇지만 유전적인 변이는 그대로 지속되기보다는 환경에 적응한 변이만 남고 그렇지 못한 유전 변이는 사라진다. 혁신적인 변이가 발생했을 때, 환경이 강한 선택압을 가하면 해당 변이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고, 세대 주기가 짧은 생물일수록 더욱 빠르게 나타난다.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는 ‘혁신적 진화’의 결과

대표적인 ‘혁신적 진화’ 사례는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를 꼽을 수 있다. 항생제 내성은 세균이 항생제에 저항하여 더이상 효과적으로 억제되지 않는 현상인데, 이는 돌연변이(표적 변경, 약물 접근 제한, 항생제 비활성화 등)와 수평적 유전자 이동을 통해 매우 빠르게 확산된다. 특히 플라스미드(plasmids)를 통한 유전자 전달은 같은 종뿐만 아니라 다른 종의 박테리아 사이에서도 내성 유전자를 빠르게 확산시켜 슈퍼박테리아의 출현을 일으킨다. 이는 짧은 세대 주기와 강한 선택압(항생제 사용)이 결합해 혁신적인 진화가 일어나는 대표적 사례다.

‘혁신적 진화’는 유전자 중복이나 수평적 유전자 이동과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유전자 기능이나 생체 시스템이 발현되고 확산되는 현상이다. 생명체가 기존의 제약을 뛰어넘어 새로운 생태적 지위를 개척하거나, 치명적인 위협(이를테면, 강한 항생제가 투입될 때)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급진적으로 확보하는 과정이다. 특정 조건 하에서는 진화도 비선형적이고 폭발적으로 진행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넷째인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진화의 이유는 강한 자연 선택압과 적응 방산(Adaptive radiation)에 있다. 가뭄, 질병, 새로운 포식자 출현 등 급격한 환경 변화가 생존과 번식에 대한 강한 압력을 가하면 환경에 유리한 유전형질을 가진 개체들이 압도적으로 우세해진다. 또 적응 방산(Adaptive radiation)은 하나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진화한 생물 분류군이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빠르게 여러 종으로 분화하는 진화 과정을 말한다. 주로 새로운 자원이나 환경적 기회가 생겼을 때, 혹은 포식자나 경쟁이 줄어들었을 때 발생하는데, 그 결과 다양한 형태와 생태적 지위를 가진 종들이 만들어진다.

‘급격한 진화’는 강한 선택압과 함께 지리적 격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체군 내에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유전적 변이(대립형질)가 있어야 가능하다. 즉 어떤 잠재적 유전 인자가 없다면 선택압이나 적응 방산 효과가 있다고 하여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급진적 변화는 새로운 변이가 발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 변이 중 최적의 것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갈라파고스 핀치새는 급격한 진화의 산물

대표적인 사례는 갈라파고스 핀치새이다. 찰스 다윈에게 진화론의 영감을 준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치새들은 약 200만 년 전 처음 정착한 새의 후손들이 여러 종으로 진화한 사례이다. 이들은 섬이라는 지리적 격리 환경에서 먹이 종류에 따라 부리 모양이 다양하게 진화했다. 특히, 가뭄과 같은 급격한 환경 변화는 핀치새의 부리 모양을 단기간에 변화시키는 강한 선택압으로 작용했다.

급격한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은 생존을 위협하는 강한 외부 압력(위기)이 발생했을 때, 개체군 내에 이미 존재하는 유전적 다양성으로부터 가장 유리한 형질을 빠르게 선별하여 진화의 속도를 가속화하는 현상이다. 이는 새로운 형질의 창조보다는 기존 형질의 재배치와 최적화에 가깝다. 지리적 격리나 새로운 생태적 틈새의 등장은 특정 개체군이 제한된 자원 속에서 강한 선택압에 직면하게 만들고, 이는 기존의 유전적 다양성 내에서 빠른 적응과 종 분화(적응 방산)를 유도한다. 이는 외부 환경의 변화뿐만 아니라 내부적인 생태적 기회가 진화의 속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함을 보여준다.

생태계내 진화의 속도의 차이는 궁극적으로 생명체의 개체 보존과 확장에서 비롯된 것이다.또 진화의 속도가 단선적이거나, 진화의 방향이 한 방향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을 보여준다. 돌연변이에 의해서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유전학의 성과가 한때 모든 진화가 유전적 변이의 결과라고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진화는 단선적이지 않다는 점이 최근 들어 명확하게 정리가 되고 있다.

기업도 서로 다른 속도로 진화한다

산업 생태계 내에서는 어떤 진화의 속도가 있으며, 진화의 모습이 나타날까.

첫째, 산업 생태계에서도 ‘산업적 정체’가 있다. 이는 새로운 기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점차 쇠퇴해가는 산업을 의미한다.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 실패로 인해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도태되는 현상이다. 수요 성장세 둔화 또는 포화, 생산 규모 증가세의 둔화, 가격 경쟁 심화로 인한 수익성 저하 등 경제성의 원인, 새로운 기술 개발 및 도입의 부재, 기존 공정의 최적화 한계로 추가적인 원가 절감이 어려워진 기술적 이유, 경쟁자 등장(특히 파괴적 혁신을 동반한 신규 경쟁자), 대체재의 등장으로 인한 수요 감소, 시장 진입 속도 하락 및 기존 경쟁자의 이탈 본격화 시장적 이유가 있다.

대표적인 사양 산업으로는 섬유의류와 신발 산업과 전통 우편배달 서비스가 있다. 섬유의류, 신발산업은 과거 선진국의 주요 산업이었으나, 기술 발전과 글로벌 경쟁 심화로 인해 사양 산업으로 분류되었다. 전통 우편배달 서비스는 이메일, SNS 등 디지털 통신 기술의 발달로 우편배달 서비스 수요가 급격히 축소되었다.

생물학적 진화적 정체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비롯되는 반면, 산업적 정체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이는 산업이 스스로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고 외부 변화에 수동적으로 끌려갈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업의 내재적 적응 능력 부족을 반영한다.

다른 진화 속도: 섬유 신발산업과 식품산업

둘째로 점진적 산업 발전으로 성숙 산업의 안정적 성장 현상을 들 수 있다. 성숙 산업은 ‘태동기와 성장기를 거쳐 성장이 정점에 이르는 단계’에 도달한 산업을 의미한다. 이 단계에서는 급격한 성장은 둔화되지만, 제품 및 서비스의 점진적 개선과 효율성 증대를 통해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한다. 생명체의 점진적 진화와 유사하게, 기존 구조를 유지하며 미세한 변화를 축적하는 과정이다. 매출 성장률이 국가 GNP 증가율과 유사하게 둔화되지만, 꾸준한 수요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는 특징이 있다. 이 때는 제품 혁신 속도가 둔화되고 제품 표준화가 진전되는 경향이 있으나, 대신 기존 제품의 성능 및 기능을 개선하거나, 생산 공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점진적 기술 개선도 이뤄진다. 시장에서는 강력한 위치를 구축한 몇몇 경쟁자가 존재하며 경쟁이 매우 치열해져있다.

대표적인 점진적 산업 발전 사례는 식품 산업(건강기능식품)이다. 식품 산업은 오랜 역사를 가진 성숙 산업이지만, 건강과 면역에 대한 소비자 관심 증가(코로나19 팬데믹, 고령화 등)에 따라 ‘건강기능식품’ 분야에서 점진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 이는 홍삼, 프로바이오틱스 등 기능성 성분 개발, 식물성 단백질 대체육 등 지속가능한 먹거리 추구, 그리고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제도 도입을 통해 소비자의 개별 특성과 편의성을 반영한 제품 개발로 이어진다. 이는 기존 산업 틀 내에서 고객 니즈에 맞춰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사례이다. 성숙 산업의 점진적 발전은 급진적인 변화에 비해 기존의 강점을 유지하면서 개선에 집중하는 전략을 세우게 된다.

스마트폰, 카카오톡 출현은 ‘파괴적 혁신’

셋째로 ‘파괴적 혁신 산업’으로 시장의 재편의 꾀하는 현상이다. 파괴적 혁신은 기존 시장 환경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예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기존 산업과 시장을 재편한다. 이는 생명체의 혁신적 진화와 유사하게,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 제안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시장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꾼다.

기존 솔루션이 간과하거나 적절히 해결하지 못하는 틈새 시장 또는 비소비 시장을 공략하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비용 절감 및 접근성 향상을 통해 이전에는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여력이 없었던 고객을 대상으로 한다. ICT 기술, 3D 프린팅 등 기술 발전을 활용하여 기존 방식으로는 불가능했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파괴적 혁신을 일으킨다. 기존 시장 질서를 규율하는 법제도, 경쟁 사업자들과의 갈등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혁신적인 솔루션으로 신흥 시장에서 초기 견인력을 얻고 성장하는 특징이 있다. 카카오톡의 메시지 서비스는 초기에는 통신사가 적극적으로 막았지만 결국은 오픈해준 것처럼 혁신적인 솔루션은 초기에 특유의 견인력으로 성장한 것이 일반적이다.

대표적 파괴적 혁신 산업으로 스마트폰과 차량 공유 서비스가 있다. 스마트폰은 기존 피처폰 사용자뿐 아니라 전혀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던 계층까지 포괄했고, 우버는 기존 택시 이용자가 아닌 새로운 이동 수요를 창출하는데 성공했다. 파괴적 혁신은 기존 시장의 경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산업의 성장 동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창조적 파괴’의 속성을 지닌다.

재생에너지 산업은 ‘급변 환경 적응형’

넷째로,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산업으로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창출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산업은 팬데믹, 기후 변화, 공급망 불안정 등 예측 불가능하고 강력한 외부 충격에 직면해 생존과 성장을 위해 기존의 운영 방식이나 전략을 빠르게 전환하고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산업을 의미한다. 이는 생명체의 급격한 환경 적응 진화와 유사하게, 강한 선택압 하에서 기존의 역량을 재배치하거나 새로운 역량을 빠르게 습득하여 생존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팬데믹과 같은 위기는 경제 활동 위축과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켰지만, 동시에 비대면 수요 증가 등 새로운 시장 기회를 창출했다. 디지털 전환, 자동화, AI 및 IoT 기술 도입으로 수요 예측 정확도 향상, 운영 최적화, 공급망 가시성 및 회복력 강화도 이뤄진다.

대표적인 급변 환경 적응 산업으로는 재생에너지 산업이 있다. 재생에너지 산업은 기후 변화 위기라는 전 지구적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산업이다. 각국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 설정과 정책적 지원이 성장을 가속화하며, 기술 발전(태양광 발전단가 하락)이 경제성을 확보하며 확산된다. 전기차 보급 확대 및 충전 인프라 확충은 재생에너지 산업의 중요한 적응 사례이며, 이는 소비자의 구매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생물학적 급격한 환경 적응이 가뭄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강한 선택압을 통해 이루어지듯이, 산업계에서는 기후 위기, 팬데믹, 공급망 교란과 같은 대규모 외부 충격이 산업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강력한 선택압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기업들은 기존의 비효율적인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빠르게 도입하게 된다. 위기는 단순히 위협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재편과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창출하는 촉매제다. 위기 상황에서 기업은 회복탄력성을 높이고, 새로운 시장 기회를 포착하여 경쟁 우위를 확보한다.

생명체의 진화는 정체, 점진, 혁신, 그리고 급격한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이라는 네 가지 속도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발현된다. 이러한 생물학적 진화의 원리는 산업의 발전 양상을 이해하는 데 효과적인 프레임이다. 각 산업은 처한 환경, 기술 수준, 시장 역학 관계에 따라 상이한 발전 속도를 보이며, 이는 생명체의 진화 메커니즘과 유사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같은 비교 분석 방법은 산업의 미래를 예측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기업과 산업은 단순히 경제적 요인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적응하고 진화해야 하는 유기체적 특성을 지닌다. 각 산업의 특성과 현재 처한 진화 속도를 정확히 진단하고, 이에 맞는 적응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생존의 필수적인 과제이다. 단선적인 산업의 발전만이 아닌 각 산업의 특성에 맞는 진화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글쓴이

하영균 에너지11 기술 대표

필자인 하영균 에너지 11 기술대표는 어릴적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독일 녹색당 강령집인 생태학이라는 책을 보고 서울대 곤충학과로 진학했다. 생태적 사고가 모든 자연과 사회현상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지역과 기업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신발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했고 글로벌 경험을 통해 산업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살폈다. 지금은 어릴적 꿈(물로 가는 자동차)이었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국내 최초 나트륨 이온 전지 회사 '에너지11'을 창업해 기술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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