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비우호적인 한국 언론인이 왜 왔나”
전쟁 중인 러시아를 방문하며- 1편 긴장된 입국, 연방보안국 검문에 걸려 한국과 한국 언론에 대한 부정적 인상 “왜 서방편에서 일방적으로 보도하나”
두려움과 기대감이 교차한 러시아 방문
“최고의 시간이며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지만 어리석음의 시대이기도 했다. 믿음의 신기원이 도래함과 동시에 불신의 신기원이 열렸다. 빛의 계절이면서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들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들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현재와 너무나 비슷하게도, 그 시설 목청 큰 권위자들 역시 좋든 나쁘든 간에 극단적인 비교로만 그 시대를 규정하려 했다.”
세계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첫 문장으로 꼽는 찰스 디킨스의 『두도시 이야기』 첫 단락. 러시아 모스크바로 떠나는 길에 문뜩 이 문단을 떠올린 건 우연이 아니었다. 소설은 런던, 파리가 배경이었지만, 여행이 두려움과 기대감이라는 두가지 혼란스런 감정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 혼란스런 감정 중 어디에 가까운 나라일까.
누군가는 혁명의 나라, 이념의 조국이라 했다. 또 누군가는 독재와 전쟁의 나라라고 부른다. 우크라이나-서방 연합국과 전쟁 중인 이 나라를 방문하겠다는 결심엔 한 가지 동기만 있었다. ‘어떤 게 실체일까’하는 궁금증.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미지의 세계, 두려움의 실체는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무비자국인데 비자를 받아오라는 초청자측의 요청, 러시아 외무부의 방문목적 변경으로 인한 비자발급 차질, 새 여권의 발급 등으로 준비는 묘하게 꼬이고 방문국에 대한 우호감이 떨어져갔다. 그렇게 첫 인상은 경계심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었고, 그런 상황은 계속 이어졌다.

전쟁 안느껴지는 모스크바와 니즈니 노보고로드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스크바 외곽 평원은 한가로운 기지개를 하는 듯 나른한 푸르름으로 가득했다. 군데군데 민간 비행기 몇 대가 서 있는 작은 비행장이 곳곳에 보였지만, 군용기 한 대, 군트럭, 병사 한 명 보이지 않을 만큼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을을 맞이하는 은은한 공기 속 푸르른 평화의 움직임이 되려 당황스럽기만 했다.이런 곳을 환경을 더럽히는 항공유를 뿌려가며 구비구비 꼬인 우회 항공로를 거쳐 와야했단 말인가.
3년여 전만해도 인천 공항에서 8시간이면 도착했을 모스크바였다. 비행기를 갈아타지도 않아도 됐다. 그 하늘길이 끊어지자 14시간 넘게 걸렸다. 4개월 전에 인터뷰한 게오르기 지노비예브 주한러시아대사가 왜 “한국이 러시아와 관계정상화를 하려면 비행기 직항부터 복원해야 한다”고 했는지 실감했다. 마음의 연줄조차 끊어놓을 거리였다. 인천에서 날아오른 비행기가 중국북부, 몽골, 시베리아를 거쳐 모스크바에 도착했던 직항로가 끊어진 채 기약없는 재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러시아측으로부터 받은 비행기표는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모스크바를 가는 노선이었다. 러시아 정부가 개최하는 세계청년축제(WYF)의 주최측으로부터 행사취재 기회를 받은 언론인 자격이었다. 우리 일행은 나토(NATO)국이면서 러시아와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어쩌면 나토와 러시아 사이에 대화의 통로를 지켜주고 있는 튀르키예를 거쳐야 했다.
단순한 경유가 아니었다. 전쟁 전이라면 이스탄불을 떠난 비행기는 흑해 북부 상공, 러시아남부 상공을 거쳐 모스크바를 도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흑해 북부는 전장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실제로 이스탄불을 떠난 국제선 비행기는 유럽 북쪽으로 곧장 치고 올라갔다. 폴란드 북부, 발트해 상공까지 이르렀다가 러시아 서부 상공을 거쳐 모스크바에 도착하는 하늘길을 택했다.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우회하는 길이었다.
3시간 반~4시간 걸리던 운항시간은 이제 4시간반에서 5시간이나 걸렸다. 경유 대기 시간까지 감안하면 거의 7시간이 걸렸다. 이스탄불까지 7시간, 그곳에서 모스크바까지 7시간. 8시간 가던 거리가 14시간 넘게 걸렸다. 얼마나 불편하고, 하늘의 오염을 더했을까.
“비우호국 언론인이 러시아에 왜 왔어?”
그렇게 도착한 모스크바는 차분하고,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드넓은 평원에는 회색빛 자작나무와 소나무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한군데도 전쟁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시가를 행렬하는 군인이나 군용기도 보이지 않았다. 자작나무 숲에 쌓인 공항은 한국의 여느 비행장보다는 한가한 공항 차량이 움직일 뿐이었다. 전쟁으로 국제 항공편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라 했다. 우리 일행은 여기서 다시 남쪽의 니즈니 노보고르드를 향한 비행기를 타야했다. 그 전에 러시아에 입국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러시아 정부측의 일원이 초대를 했고, 간신히 비자까지 준비했으니 큰 걱정을 하진 않았다. 그러나 첫 관문인 모스크바를 통과한 순간 발목이 잡힐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비우호국인 한국에서 언론인이 왜 여기를 왔냐?” 우리의 기대는 크게 빗나갔다. 외국인을 맞이하던 연방보안국(FSB) 산하의 국경수비대 소속 군인의 입에서 쉽게 입국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 적지 않은 외국인들이 별외로 분류돼 입국장 구석으로 불려갔다.
일행을 이끌던 러시아 전문가인 김현택 한국외대 전 부총장도 유창한 러시아어로 상황을 설명하며 입국을 요구했지만 그들의 눈빛은 의심의 시선을 풀지 않았다.
“한국은 우리랑 비우호국인데, 여길 왜 왔나. 러시아 어디를 취재하려 하는 거냐”며 꼬치꼬치 물어보면서 본부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연방보안국 FSB는 악명 높았던 KGB의 후신이었고, 러시아 외무부도, 서울서 발급받은 비자도 통하지 않았다.
필자는 불안함이 더 컸다. 러시아어를 하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취재를 하겠다며 온 것이냐는 질문은 당연했다. 영어로도 띄엄띄엄 말을 잇고, 휴대폰을 꺼내 AI통역도 써가며 상황을 설명했다. 그 담당 군인은 필자에게 휴대폰 제출을 요구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의 실력을 확인한 것은 그때였다. 분명 잠금상태였던 필자의 스마트폰을 만지작만지작거리고, 본부로부터 전화로 받은 번호를 종이에 적더니 금방 스마트폰의 잠금을 풀어버렸다. 휴대폰 잠금코드를 푸는데 10초도 안걸렸다. 그리곤 여기저기 찾다가 사진 파일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 레닌훈장, 베를린점령훈장 사진이 뭡니까. 한국에서 소련 박물관을 탐색하고 정보를 저장한 이유가 뭡니까?”
지난 2024년 3월 22일 모스크바 도시 외곽 크로쿠스 시티홀에서 콘서트중 총기난사사고가 있었다 한다. 체첸반군, 이슬람극단주의 세력이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테러사건으로 100명 이상이 사망한 큰 사건이었다. 연방보안국은 우리 일행을 테러리스트가 아닐까 의심했던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라기 보다는 지난해 테러사건이후 보안조치를 강화한데 따라 외국인 중에 의심스런 이들은 모두 붙잡는 것이었다.
“얼마전 서울 성수동의 러시아그림 갤러리에서 주한러시아대사관이 주최하는 ‘종전 80주년 기념 사진전시회’가 열렸다. 이곳을 취재하고 기사도 함께 썼다”며 <더칼럼니스트>에 게재한 기사까지 보여줬다. 보안요원은 이 내용을 종이에 기록하고, 본부에 다시 연락했다. “알겠다”는 눈인사가 전해졌지만 그래도 풀려나진 않았다.

호의를 버리지 않은 옛KGB 군인
한 시간여 보안국 군인들에게 붙잡혀 있었는데, 우리 일행을 담당했던 군인은 위협적인 태도를 취하진 않았다. 조사하는 내용을 모두 손으로 적으며 엄격한 업무처리를 했지만, 냉전시대 영황에서 보이는 무뚝뚝하고 위압적인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큰 걱정하지 말라”며, “업무를 인계했으니 또 다른 군인이 붙잡으면 자신이 다시 가서 도와주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한국에 대한 호의가 묻어있었다. 하지만 그의 덧붙이는 한 마디 말이 필자의 뇌리에 박혔다.
“한국 언론은 모두 러시아를 다 안좋게 보도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서방 언론이 보도하는 것을 무조건 따라 보도한다. 왜 서방 언론 말만 듣나. 그렇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균형을 갖고 보도해주면 좋겠다. 우리는 한국 언론을 다 보고 있다.”
주한 러시아 대사관 관계자들에게, 지노비예프 대사에게 그렇게 맹렬하게 듣던 말이었다. ‘왜 한국은 서방언론이 주장하는 것만 일방적으로 보도하느냐.’ 이건 정보 취사선택의 문제였을까. 러시아 정보를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었을까. 우리 언론인 머리 속에 뿌리내린 ‘공산국가 소련’, 냉전 사고의 잔영 탓이었을까.
어쨌든 사람을 보면 체제를 알 수 있겠지. 어쩌면 전쟁의 본심도. 연방보안국 요원으로부터 받은 강렬한 첫인상을 뒤로 하고 목적지인 니즈니 노보고로드를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 안에서 만난 러시아인들 중에는 젊은 청년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전쟁 중이라 그런가? 그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2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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