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퀸의 가설? 生은 잠시도 멈춰선 안돼!
[하영균의 진화생태경제학] ‘거울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레드 퀸’ 진화 멈추면 경쟁 종에 멸종당한다고? 오랜 진화 거친 종, 멸종률 낮지 않아 경쟁 종도 진화하며 호시탐탐 노려 새 방어물질 만들며 끊임없이 대응해
모든 힘을 다해 달려도 겨우 제자리?
진화이론에서 ‘레드 퀸’ 가설(Red Queen Hypothesis, 붉은 여왕의 가설)이 있다. 1973년 진화생물학자인 레이 반 발렌에 의해 제안된 이 가설은 루이스 캐럴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후속 편인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온 말이다. 레드 퀸은 “여기에서는 제자리에 있으려면 할 수 있는 한 모든 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Now, here, you see, it takes all the running you can do, to keep in the same place)”라고 말한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레드 퀸 효과’는 생물체가 생태계 내에서 생존하고 멸종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변화를 거듭하지만, 동시에 경쟁 종들과 생태계 전체가 함께 변화하기 때문에 결국 해당 개체나 종의 평균 적합도는 제자리에 머무는 것처럼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 가설에서 진화의 핵심동인은 환경 변화를 야기하는 압력이 비생물적 요인보다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적과의 생물적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는 상호 작용하는 두 종, 또는 두 개의 상호 연결된 시스템이 서로에게 선택적 압력을 지속적으로 가함으로써, 한 쪽의 적응이 다른 쪽의 적응을 유도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생물학적 상호작용에는 두 가지 기본 유형이 있다.
열심히 진화했는데 적(敵)도 진화
하나는 길항적 공진화(Antagonistic Coevolution)로, 포식자-피식자 관계, 또는 숙주-기생체 관계처럼 생존 경쟁이 지배적인 형태가 일반적이다. 이는 레드 퀸 효과(Red Queen Effect, RQE)의 주된 유발 요인이 된다. 둘째로는 상리적 공진화(Mutualistic Coevolution)로 상호 이익을 제공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상대방의 착취를 통제하기 위한 끊임없는 미세 조정(Co-optimization)을 수행하는 경우다. 그렇다고 해서 레드 퀸 효과의 압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레드퀸 효과’는 본질적으로 진화적 제로섬 게임(Evolutionary Zero-Sum Game)의 성격을 띤다. 한 종이 생존을 위해 혁신하고 적합도를 증가시키는 진화적 발전은, 필연적으로 그 경쟁 종에게는 환경의 악화(적합도 감소)를 의미한다. 만일 경쟁 종이 경쟁을 통해 진화 발전하지 못하고, 가만히 멈추고 있다면 곧 멸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강한 종이 경쟁에 뒤진 종을 멸종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멸종의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
또한, 레드 퀸 효과는 진화생물학자 레이 반 발렌(Leigh Van Valen)이 1973년 논문 “A New Evolutionary Law”에서 제시한 개념인 ‘반 발렌의 법칙’(Van Valen’s law) - 멸종 확률이 종의 나이와 무관하게 일정함-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됐다. 그는 화석 기록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특정 분류군(taxon) 내에서 멸종 확률이 시간에 관계없이 본질적으로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관찰했다. 이는 등장한 지 오래됐거나 비교적 최근에 등장했는지에 상관없이 어떤 분류군이 멸종될 확률은 시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발견이다. 생물종이 오랫동안 진화했다면 생존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추측되지만, ‘레드 퀸 효과’로 항상 경쟁자도 진화를 하기 때문에 진화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생존 확률은 비례해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 발렌은 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레드 퀸 가설’(Red Queen Hypothesis)이라는 매우 효과적인 가설을 제시한 것이다. ‘반 발렌의 법칙’은 멸종률의 일정성을 보여주는 관찰 결과였고, 레드 퀸 가설은 끊임없는 공진화적 경쟁이 그 원인이라고 설명하는 이론적인 틀이 되었다.

‘레드 퀸’ 생물계의 군비 경쟁?
동물계에서 레드 퀸 효과는 포식자와 피식자 간의 끊임없는 ‘군비 경쟁’ 형태로 가장 명확하게 관찰되기도 한다. 고전적인 예로 토끼와 여우의 속도 경쟁이 있다. 여우는 토끼를 잡기 위해 더 빨라져야 하고, 토끼는 여우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더 빨라져야 하는 끝없는 경쟁이 바로 레드퀸 효과와 일치하는 단순한 사례다.
또 대표적인 군비경쟁 사례는 미국 오레곤 산맥에 서식하는 강한 독성을 지닌 뉴트(Taricha newts)라는 양서류와 이 독을 섭취하고도 생존할 수 있도록 내성을 진화시킨 가터뱀(Thamnophis sirtalis)의 생존경쟁이다. 뉴트가 생존을 위해 독성을 강화하자, 뱀은 이를 무력화하는 해독 시스템을 진화시켰다. 이처럼 양측의 적응 수준이 방향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높아지는 것을 ‘방향성 에스컬레이션 역동성’이라고 한다.
이 공진화적 경쟁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진화적 트레이드-오프’(Evolutionary Trade-off)를 꼽을 수 있다. 가터 뱀은 뉴트리샤의 독성 물질을 분해하는 능력을 얻는 대가로 신체적 비용을 지불하는데, 그 결과 이동 속도가 느려진다. 뱀은 독성이 강한 먹이를 섭취하는 이점(Payoff)과 느려진 속도로 인한 신체적 제약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했다.
국내에서 주요 해충인 담배나방(Helicoverpa armigera)도 레드퀸 효과에 맞추어 화학적 군비경쟁을 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담배나방은 담배와 고추 등 주로 가지과(Solanaceae) 식물만을 가해하는 협식성(Specialist) 곤충이다. 가지과 식물은 방어 물질로 니코틴이나 캡사이신 같은 독성 화학 물질을 방출한다. 다양한 먹이를 먹는 광식성(Generalist) 곤충이 넓은 범위의 식물 화합물에 반응하기 위해 복잡하고 다양한 해독 기작(機作)을 가진 것과 달리, 협식성 곤충인 담배나방은 특정 방어 물질에 국한되어 살아가며 보다 효율적인 적응 방식을 지니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지능 생물 이상의 전략적 진화
담배나방은 식물의 화학적 방어 물질을 단순히 해독하는 수준을 넘어 체내에 격리(Sequestration)하는 능력을 진화시켰다. 레드 퀸 효과의 질적 변화를 상징한다. 식물의 화학적 물질의 생산은 생존에 필수적인 에너지를 소모하는 투자다. 곤충이 이 화학적 방어 물질을 격리해 다른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활용하면, 식물의 진화적 노력은 완전히 무력화된다. 곤충은 이처럼 식물의 방어 자원을 ‘훔치거나’ 재활용함으로써 식물에게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진화적 비용을 들여 새로운 방어 전략을 개발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곤충의 고효율 해독 또는 격리 능력은 식물이 기존의 방어 기작을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2차 대사산물을 개발하거나, 혹은 곤충이 접근하기 어려운 물리적 구조를 진화시키도록 선택적 압력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지과 식물은 단순히 독성 물질을 만드는 것을 넘어 더 복합적인 방어 전략을 구사한다. 예를 들어 야생 담배(Nicotiana attenuata)는 담배나방 애벌레에게 피해를 받으면 특정 휘발성 물질을 분비해 애벌레의 ‘천적’인 노린재를 유인하기도 한다. 이는 가지과 식물이 곤충의 행동을 조종하여 자신의 생존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레드 퀸 효과’를 보인 사례인 셈이다. ②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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