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 ‘레드 퀸 효과’를 역이용해야

[하영균의 진화생태경제학] 생물처럼 기업도 정체되면 멸망 플랫폼산업은 선제적 ‘공진화’요구 못따라가면 ‘파괴적’ 공격받게 돼 한국기업, 지금 ‘레드 퀸 효과’ 이중고 자발적 자기파괴-선제적 주도 전략을

대표적인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 사진= 연합뉴스
대표적인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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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에 이어서

멈추면 멸망하는 산업생태계

자연 생태계의 이러한 ‘레드 퀸 효과’는 산업 생태계에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산업 및 경영학적 관점에서 레드 퀸 효과는 기업이 경쟁 우위를 유지하거나 현상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적응하고, 발전하며, 혁신해야 하는 경쟁 환경을 의미한다. 기업이 속한 시장 생태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어제 성공했던 전략이 오늘날의 생존을 보장하지 못한다. 잠시라도 멈추거나 안주하면 도태될 위험에 처한다. 레드 퀸 효과가 강화된 산업 생태계에서 나타나는 주요 변화 현상은 다음과 같다.

① 혁신 속도 가속화: 제품 및 서비스 혁신 주기가 극단적으로 단축된다.

② 마진 압축: 공격적인 가격 경쟁으로 인해 마진(Margin)이 지속적으로 압박을 받는다.

③ 제품 수명 주기 단축: 신제품의 시장 유효 기간이 짧아지며, 구제품은 빠르게 시장에서 사라진다.

④ 경계 융합 및 파편화: 전통적인 산업 간 경계가 모호해지고, 시장이 틈새 전문화(Niche Specialization)로 인해 파편화된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서 정체된다는 것은 곧 멸망이다. 예를 들어, 블록버스터 영화사는 스트리밍 비디오로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파산했으며, 노키아는 급변하는 iOS 및 안드로이드 기술에 대응하지 못하고 시장 지배력을 상실했다. 기업 경영에서 레드 퀸 효과는 성공은 단순히 ‘더 빠르게’ 달리는 것을 넘어, 경쟁자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전략을 선제적으로 조정하는 ‘더 스마트한 달리기’(Running Smarter)에 달려 있고 할 수 있다.

‘스마트한 달리기’를 하는 기업들

최근 들어 드러난 특별한 사례로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데이터 기반 플랫폼 기업들은 레드 퀸 효과의 역동성 자체를 활용하여 경쟁 우위를 비대칭적으로 구축하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의 경쟁 우위는 데이터 축적에서 비롯됐으며, 이들은 오래되었지만 현재도 사용되는 구식 시스템이나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경쟁자를 압도하는 포식자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이 모델의 핵심은 데이터가 ‘반(反)상품’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상품이나 소프트웨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격 경쟁에 의해 저가의 상품화가 되지만, 플랫폼에 축적되는 데이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효용과 통찰력이 커진다. 주로 ‘네트워크 효과’라는 불리는 이익을 독점하게 되는 것이다. 데이터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이는 곧 효율성과 경쟁 장벽을 동시에 성장시키는 ‘양의 되먹임 고리’(Positive Feedback Loop)를 형성하면서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플랫폼 기업은 더 선제적, 파괴적이다

이러한 비대칭적 공진화 전략은 기존 레드퀸 효과의 ‘평균 적합도 불변’이라는 규칙을 무력화시키려 한다. 플랫폼 기업은 데이터를 통해 경쟁자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시장의 흐름을 선제적으로 주도함으로써 자신에게 가해지는 레드 퀸 효과 압력을 완화하는 동시에, 전통적인 산업의 기업들에게는 파괴적인 압력을 극대화한다. 이들은 전통적인 경쟁자가 아닌 사업 모델 파괴(Business Model Disruption)를 통해 금융, 소매, 의료 등 모든 산업의 지배자로 부상하고 있다.

최고 수준에 오른 선발 주자라 할지라도 혁신을 멈추면 무너지는 것이 레드 퀸 효과의 본질이다. 예를 들어, 발명가 에디슨이 세운 GE는 125년 역사의 백열전구 사업을 정리했고, 세계 최초 노트북을 상용화한 도시바는 PC 사업 매각을 추진했다. 세계 최초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상용화한 소니 역시 배터리 사업을 매각했으며, D램을 최초 개발했던 인텔마저 1985년에 D램 시장에서 철수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세계 최초의 타이틀이 영원한 최고를 의미하지 않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한국 기업은 두 배 속도로 달려야

한국 산업 생태계는 레드 퀸 효과에 특히 취약한 구조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선진국 기술을 빠르게 추격하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었으나, 이제 그 성공 공식 자체가 레드 퀸 효과에 노출되는 양상을 보인다. 한국 산업계는 현재 두가지의 강력한 압력, 즉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첫째, 중국의 강력한 추격이다. 중국의 WTO 가입 이후 국제적 부상은 한국 산업에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을 의미했다. 특히 국내 제조업의 경쟁 열위 부문의 퇴출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선진국 수준의 기술 혁신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중국의 규모와 자본을 앞세운 ‘저가 공세’라는 샌드위치 압박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단순히 경쟁력을 강화하는 수세적인 목표를 넘어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공격적 초격차 전략’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둘째, 성숙 산업의 ‘레드오션화’다. 국내 자영업 시장이 대표적인 레드오션으로 지적되듯, 공급과잉에 따른 경쟁 심화는 이미 영업 환경을 크게 악화시켰다. 나아가 디스플레이와 같은 주요 제조업 분야 역시 레드오션화가 예상되며, 차세대 기술(OLED, Flexible)과 타 산업과의 융복합을 통한 신성장 동력 확보가 필수가 되었다.

지난 10월 31일 APEC 정상회의장에서 만난 이재명 대통령과 젠슨 황 엔비디아CEO, 그리고 국내 대기업 총수들. 사진= 연합뉴스
지난 10월 31일 APEC 정상회의장에서 만난 이재명 대통령과 젠슨 황 엔비디아CEO, 그리고 국내 대기업 총수들. 사진= 연합뉴스

이중고지만 극복할 길은 있어

레드 퀸 효과를 극복하고 장기적인 성장을 달성한 한국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자발적 자기 파괴’와 ‘선제적 시장 주도’라는 전략적 메커니즘을 사용했다. 이들의 성공 전략은 기업의 규모와 산업 특성에 따라 두 가지 주요 경로로 분류될 수 있다. 대기업들은 막대한 규모의 투자와 조직 혁신을 통해 초격차를 창출하거나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했다. 반면, 강소기업들은 좁고 특화된 특정 시장 부문(틈새 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과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는 전략인 글로벌 니치 시장 지배력(Global Niche Dominance)를 구축하거나 개방형 혁신을 통해 사업 모델을 근본적으로 혁신했다. 이런 과정의 보면 이중고를 겪고 있지만 길은 있는 셈이다.

레드 퀸 효과는 일시적인 경제 위기가 아니라, 고도로 상호 연결되고 기술 발전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현대 글로벌 경쟁의 구조적 조건이다. 한국 산업 생태계 내에서 장기적 성장을 지속하기 위한 성공 사례들은, 성공의 규모와 방식이 다를지라도 공통적으로 ‘자발적 자기 파괴’와 ‘혁신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가 기업의 생존을 결정한다는 점이 명확해지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현행 시장의 효율성과 미래 시장의 불확실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전략적 이중성을 내재화하고, 끊임없이 다음 경쟁 환경을 선도적으로 정의해 나가야만 레드 퀸 효과의 위협을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길을 걸을 수 있다.

레드 퀸 효과에서 보듯이, 종의 멸종 사이클이 진화한다고 하여 수명이 길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업도 한두 번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제 한국 기업은 구조적으로 레드 퀸 효과를 역이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 산업 생태계가 몰락이 아닌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끝)

글쓴이

하영균 에너지11 기술 대표

필자인 하영균 에너지 11 기술대표는 어릴적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독일 녹색당 강령집인 생태학이라는 책을 보고 서울대 곤충학과로 진학했다. 생태적 사고가 모든 자연과 사회현상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지역과 기업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신발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했고 글로벌 경험을 통해 산업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살폈다. 지금은 어릴적 꿈(물로 가는 자동차)이었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국내 최초 나트륨 이온 전지 회사 '에너지11'을 창업해 기술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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