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발 에너지 쇼크, 최악 시나리오는?

이미 글로벌 석유시장 혼란에 빠져 호르무즈해협 전면 봉쇄시 ‘물류 중단’ 마진콜 등 금융시장 혼란까지 이어질 수도 ‘세계5위 방어능력’ 한국 경제에 충격은?

2019년 6월 역내 갈등으로 호르무즈해협에서 유조선이 피격을 당했다. 지난 20월28일 대이란 공습이후 아직까지 유조선 피격사태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2019년 6월 역내 갈등으로 호르무즈해협에서 유조선이 피격을 당했다. 지난 20월28일 대이란 공습이후 아직까지 유조선 피격사태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세계 에너지 시장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과연 이 거대한 폭풍 앞에 한국은 얼마나 견고한 방패를 들고 있는가.

관건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교전이 장기전으로 치달을지 여부다.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아 보이지만, 그 열쇠는 ‘호르무즈 해협’이 쥐고 있다. 이란산 원유의 최대 고객인 중국이 해협 봉쇄로 인한 타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중재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사태의 성패는 봉쇄의 수위와 지속 시간에 달렸다.

‘효율성’이라는 이름의 치명적 부메랑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공습에 맞서 이란이 해협 봉쇄라는 초강수를 뒀다. 항행 방해를 넘어 유조선에 미사일 공격을 퍼붓는 실력 행사에 나선다면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은 즉각 마비된다. 중동산 원유를 70%가량 수입해 제품으로 가공·수출하는 한국 경제에는 그야말로 ‘직격탄’이다.

문제는 현재 석유 시장이 과거보다 훨씬 취약해졌다는 점이다. 현대 공급망은 이른바 ‘효율성의 최적화’라는 함정에 빠져 있다. 재고 저장을 최소화하고 실시간 배송(Just-In-Time)에 극도로 의존하는 구조다. 기업들은 비축을 ‘낭비’로 간주하고 딱 필요한 만큼만 실어 나른다.

이 정교한 시스템에선 유조선 한 척의 지연이 정유소 가동 중단으로, 다시 석유화학 공장과 물류망 멈춤으로 이어지는 도미노 붕괴가 일어난다. 완충지대 없는 수급 구조가 작은 충격에도 전체 네트워크를 위기로 몰아넣는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 출처=GS칼텍스.
호르무즈 해협. 출처=GS칼텍스.

석유시장을 뒤흔들 ‘전쟁의 3대 변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독기 어린 보복을 다짐한 이란의 행보는 시장에 세 가지 최악의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첫째, 유조선 피격 및 격침 상황이다. 해협 내에서 선박이 침몰해 항로가 물리적으로 막히거나, 보험사가 이 구역을 ‘항해 불가 구역(Exclusion Zone)’으로 선포하는 순간이다. 이때부터는 기름값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배를 띄울 수 없는 ‘물류의 중단’이 시작된다.

둘째, 유가 ‘배럴당 120달러’ 돌파다. 시장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이 선을 넘어서면 전 세계 인플레이션 통제는 불가능해진다.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급격히 올리며 실물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진다. 이때 ‘패닉 바잉’까지 겹치면 유가는 150달러, 200달러를 향해 폭주하게 된다.

셋째, ‘미국 vs 이란’의 직접 군사 충돌이다. 대리전을 넘어 양국 정규군이 정면 승부하는 상황이다. 이미 이란의 미사일은 사우디아라비아 정유시설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란이 인근 산유국의 생산 시설과 송유관을 정밀 타격한다면, 봉쇄보다 무서운 ‘생산 능력 자체의 파괴’라는 파국을 맞게 된다.

파국을 막을 ‘보이지 않는 방패들’

물론 이 미친 질주를 멈출 힘들도 작용하고 있다.

4억 1,544만 배럴(2월 20일 기준)에 달하는 미국의 전략 비축유(SPR)가 시장의 공포를 얼마나 잠재울지가 1차 관건이다. 셰일 가스 능력을 갖춘 미국이 최대 생산국으로서 동요를 막아설 수 있다.

또한 이란의 큰손인 중국의 역할, 그리고 호르무즈해협이 아닌, 사우디의 ‘동서 송유관(East-West Pipeline)’을 통한 우회로 확보량 역시 시장의 숨통을 틔워줄 지표다.

이란의 최대 석유수입국인 중국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로부터도 육로 송유관을 통해 상당량의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의 안전항해를 위해 평화를 중재하는데 나실지, 서방 국가와 한국, 일본이 타격을 입는 모습을 지켜보며 중동에서의 미국 영향력을 완전히 밀어내는 ‘장기전’을 택할지 주목된다.

시장은 이미 비명을 지르고 있다

현재 대이란 공습으로 세계 유가는 이미 요동치고 있다. 배럴당 74~75달러선인 두바이유와 73달러선인 브렌트유는 봉쇄 위협으로 인해 두바이산 현물 가격이 브렌트유보다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선물 시장은 지난 일주일 사이 ‘전쟁 프리미엄’을 반영해 5~10% 급등했다. 대체 유종인 미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수요 급증으로 스프레드가 확대되고 있다.

물류 현장은 더 안좋다. 초대형 유조선(VLCC) 기준 일일 임차료는 20만 6,141달러로, 2020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하며 연초 대비 4배나 폭등했다. 전쟁보험료 역시 화물 가액의 1.0~2.0%**로 치솟아 평상시(0.1%) 대비 10~20배나 올랐다. 결과적으로 배럴당 2~5달러의 추가 비용이 이미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시장 붕괴의 3단계 시나리오

사태가 악화되면 석유 시장은 시스템 자체가 작동 불능에 빠진다.

1단계는 가격 폭등이다. 봉쇄와 함께 현물가가 선물가를 압도하는 극단적 백워데이션이 발생한다. 금융 자본이 실물 확보 전쟁에 뛰어들며 가격은 통제 불능이 된다.

2단계는 물류 붕괴다. 20만 달러인 일일 선박 임차료가 50만 달러를 넘어서면 중소 정유사들은 수입을 포기하게 된다. 보험사가 담보 인수를 거부하게 되면 배가 있어도 움직일 수 없는 물리적 단절이 일어나며, 증거금 압박(Margin Call)에 직면한 기업들의 연쇄 파산이 시작된다.

3단계는 공급망 단절이다. 석유화학 원료가 끊기며 전 세계 제조 라인이 멈춘다. 비중동 산유국들이 자국 우선주의로 수출을 통제하면, ‘돈이 있어도 기름을 못 사는’ 시장 붕괴를 맞는다.

한국, ‘세계 5위 방어력’ 뒤에 숨은 아킬레스건

한국의 상황은 독특하다. 석유 수급상 ‘효율의 끝판왕’이지만, 당장 무너질 만큼 허약하지도 않다.

우선 우리는 정부 비축량 약 9,949만 배럴과 민간 보유량을 합쳐 200일 이상을 버틸 수 있는 세계 5위권의 비축유 강국이다. 또한 2024년 말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을 ‘제로(0)’로 유지하며 직접적인 제재 리스크를 차단했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호르무즈 해협의 병목’에 있다. 우리 원유 수입의 약 70%가 이 좁은 통로를 통과한다. 우리 정유 시설은 중동의 ‘고유황 중질유’에 최적화되어 있어 대체 유종을 찾는 데만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한국은 또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이 약 25~30%로 OECD 최고 수준이다. 기름값 상승이 즉각적으로 물건값 상승과 직결되는 구조다.

결국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방패(비축유)를 가졌으면서도, 목줄(호르무즈 해협)은 타인의 손에 쥐여준 ‘구조적 모순’ 속에 있다. 해협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물리적 고립과 가격 쇼크라는 양면의 칼날 위에 서야 하는 현실이다.

글쓴이

문주용 기자

문주용 대표이사 겸 기자는 31년간 언론인 생활을 바탕으로 새로운 언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힘든 세상에서 위로받고 지혜를 얻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바라는 미디어를 만들려 합니다.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집단지성의 지혜를 쌓을 것입니다. 전문가그룹과 소비자들이 함께 하는 미디어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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