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판례가 두렵다면 진짜 판례부터 공개하라
판사 80% “AI 가짜 판례 겪었다”…법원, 과태료 추진 허위 주장엔 관대하더니 가짜 판례에만 민감한 이유 판결문 공개율 37%…헌법 “판결은 공개한다”와 어긋나 판결문 전면 공개하면 가짜 판례는 설 곳이 없다
- 가짜 판례에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법원이 정작 판례를 독점하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법관 80%가 가짜 판례를 겪었다며 과태료를 추진한다. 하지만 판례를 사실상 법으로 쓰면서도 검색 가능한 판결문은 2023년 기준 37.4%뿐이고, 한 건 열람에 1,000원을 받는다.
- 판결문을 닫아 두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 헌법 제109조는 비공개 예외를 ‘심리’에만 두었고 판결에는 두지 않았다. 영국 Find Case Law, 프랑스 Judilibre처럼 개인정보 문제를 안고도 공개하는 나라가 있으니 결국 의지의 문제다.
- 판결문을 전면 공개하면 가짜 판례는 설 곳이 없다. 허위 인용 중 없는 판례는 80.7%였고, 전부 공개된 법령은 16.9%였다. 모든 판결문이 공개되면 사건번호와 내용을 바로 대조할 수 있으니, 법원은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까지 2년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
법원행정처가 지난 2일 ‘AI 허위 판례 등 인용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민사·가사·행정 재판을 맡은 법관 360명 중 10명에 8명꼴로 소송 서면에서 존재하지 않거나 내용이 틀린 판례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대법원 판결서 형식을 그럴듯하게 흉내 낸 가짜 판결서가 제출된 일도 있었다고 한다. 법원행정처는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을 고쳐 과태료를 부과할 근거를 마련하겠다며 국회에 의견을 내겠다고 밝혔다.
AI가 지어낸 판례를 확인도 하지 않고 법원에 내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상대방은 있지도 않은 판례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재판은 늘어진다. 그런데 과태료라는 말을 듣는 순간 고개가 갸웃해졌다. 법원이 언제부터 서면의 내용에 이토록 엄격했던가.
허위 주장엔 관대하더니
재판을 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준비서면에는 사실과 다른 주장이 넘쳐난다. 받은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하고, 분명히 한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상대방은 그 주장을 반박하느라 증거를 찾고 증인을 부른다. 민사소송법에는 선서한 당사자가 거짓 진술을 하거나(제370조) 진정한 문서를 고의로 부인한 경우(제363조) 과태료를 물릴 수 있는 규정이 이미 있다.
하지만 이 조항들이 실제로 쓰이는 것을 보기란 쉽지 않다. 거짓 주장은 대개 패소 판결 한 장으로 정리되고 끝났다.
그런데 유독 가짜 판례에는 민감하다. 왜일까. 판사들이 그만큼 판례에 기대어 재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법에서 판례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법원조직법 제8조는 상급법원의 판단이 ‘해당 사건에 관하여’ 하급심을 기속한다고 정할 뿐이다.
그러나 실제 법정에서 판례는 사실상 법이다. 대법원 판례와 다른 판결을 쓰는 하급심 판사는 드물고, 비슷한 사건의 하급심 판결도 중요한 잣대가 된다. 가짜 판례가 섞여 들어오면 판단의 토대가 흔들리니 판사들이 곤혹스러워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판례는 여전히 법원 서고 안에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판례를 법원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3년 기준으로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는 판결문은 전체의 37.4%에 불과하다. 그나마 한 건을 열람하려면 1,000원을 내야 한다.
이름을 가리지 않은 판결문은 경기도 고양의 법원도서관 한 곳에서만 볼 수 있는데, 검사·변호사·교수와 공공기관 직원, 기자만 들어갈 수 있고 사진도 찍을 수 없다. 필자가 처음 변호사가 되었을 때는 변호사들이 하급심 판례를 구하려 친한 판사에게 알음알음 부탁해야 했다. 요즘은 하급심 판례를 대신 구해주는 업체들이 많아져서 예전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판례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법원 서고 안에 있다.
법원은 개인정보 보호를 내세운다. 판결문 공개를 요구하는 헌법소원 사건에서도 법원은 판결문에 성범죄 피해나 이혼·입양 같은 민감한 정보가 담겨 있고, 이름을 가려도 정보를 조합하면 당사자를 알아낼 수 있다며 기각 의견을 냈다. 물론 일리가 없는 걱정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같은 고민을 안고도 문을 열었다. 영국은 2022년부터 국립기록원이 운영하는 ‘Find Case Law’에 법원이 판결문을 의무적으로 보내 공개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6년 ‘디지털공화국법’으로 모든 판결을 무상으로 공개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2021년부터 파기원(프랑스의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편집자주)이 운영하는 ‘Judilibre’를 통해 하급심 판결까지 단계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법원 판결문을 실명으로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결국 기술이나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판결문을 닫아 두는 것은 헌법과도 맞지 않는다. 헌법 제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정하면서, 국가안전보장 등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 예외는 ‘심리’에만 두었다. 판결에는 예외가 없다. 법정에서 주문을 한 번 읽어 주는 것으로 공개 의무를 다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좁은 해석이다.
재판을 공개하는 이유는 국민이 사법권의 행사를 지켜보고 통제할 수 있게 하려는 데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제2항). 사법권도 예외가 아니다. 국민이 판결을 읽을 수 없다면 무엇으로 사법권을 감시할 수 있을까.
진짜가 공개되면 가짜는 설 곳이 없다
판결문 전면 공개는 가짜 판례 문제의 해법이기도 하다. AI의 ‘환각’은 AI가 모르는 것을 그럴듯하게 지어낼 때 생긴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2024년 연구에서 AI가 널리 알려진 연방대법원 판례보다 자료가 적은 하급심 판례에서 훨씬 자주 틀린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번 설문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판사들이 겪은 허위 인용 가운데 존재하지 않는 판례는 80.7%였지만 허위 법령은 16.9%에 그쳤다. 법령은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전부 공개되어 있다. 이 차이를 모두 공개 여부 탓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우연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기술적으로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즘 법률 AI 서비스는 답을 내기 전에 판례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고 그 결과를 근거로 답하는 방식(검색증강생성, RAG)을 쓴다. 데이터베이스에 모든 판결문이 들어 있다면, AI가 인용한 사건번호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 판결에 정말 그런 내용이 있는지 대조하는 일은 순식간에 끝난다. 변호사도, 당사자도, 판사도 클릭 한 번이면 확인할 수 있다. 지금 가짜 판례가 법정까지 흘러 들어오는 것은 진위를 확인하는 일이 번거롭고 비싸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판결문을 공개한다고 AI의 오류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판례의 취지를 잘못 읽는 일은 여전히 남을 것이다. 그러나 없는 판례를 지어내는 일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고, 남는 오류도 누구나 원문을 대조해 바로잡을 수 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확정되지 않은 하급심 형사 판결문까지 공개하도록 형사소송법을 고쳤지만, 시행은 공포 후 2년 뒤로 미뤘다. 법원이 정말 가짜 판례를 걱정한다면 그 2년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
AI가 지어낸 판례를 들고 온 당사자에게 과태료를 물리기 전에, 왜 국민이 진짜 판례를 마음껏 볼 수 없는지부터 돌아보아야 한다. 가짜 판례는 과태료로 막을 일이 아니다. 판결문을 전면 공개하면 해결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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