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미국 중간선거, 다극화시대의 미국은 어디로 가는가 트럼프가 보여준 미국의 민낯과 패권의 다음 선택
- 이번 중간선거는 다극화 속 미국의 대외 전략을 가늠할 변수다. 중국·러시아의 성장과 글로벌사우스의 독자외교로 미국이 다른 나라의 선택을 제한하는 힘은 줄었다. 선거는 미국이 관세·제재·군사압박을 더 강화할지, 온건하게 대응할지를 보여준다.
- 트럼프는 미국을 바꾼 것이 아니라 미국의 민낯을 드러냈다. 클린턴·오바마·바이든 정부가 인권과 동맹으로 포장한 힘을 트럼프는 돈과 관세, 군사력 위협으로 노골화했다. 동맹의 무기는 ‘억제력’, 조선(북한)의 군사력은 ‘도발’로 부르는 잣대도 같은 속성이다.
- 미국은 다극화를 거스를 수 없으니 봐야 할 것은 승자의 힘 사용 방식이다. 트럼프 2기 ‘돈로 독트린’의 삼극화 구상은 일극패권 복귀를 노리는 과도기 구상일 뿐이다. 한국도 어느 당이 유리한지보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미국 중간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미국 국내정치의 일정으로만 볼 수 없다. 미국은 긍정과 부정을 떠나 세계 각국에 여전히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 대한 세계의 관심도 높다. 다만 세계는 이미 미국 중심의 일극질서에서 벗어나 다극화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 유권자는 생활비와 의료, 전쟁처럼 자신의 삶과 직접 연결된 문제를 보고 투표한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치열하게 싸우지만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을 지키려 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역시 어느 당이 더 유리한가보다 미국의 정치변화 속에서도 자신의 판단과 선택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재 국제정세 속에서 미국 중간선거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미국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미국은 어떻게 기존의 지위를 지키려 하는가. 다극화가 진행되는 세계에서 어떤 전략을 선택할 것인가. 이번 중간선거는 다극화시대의 미국이 어디로 움직이는지를 가늠하는 국제정세의 변수다.
미국의 힘은 어디까지 줄어들었나
다극화는 미국의 일극적 패권에 도전하며 등장한 새로운 국제질서다. 중국과 러시아의 성장, 글로벌사우스의 독자외교, 지역강국의 자율성 확대가 겹치면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다른 나라가 따르던 질서는 흔들리고 있다.
조선(북한)처럼 오랫동안 미국의 군사·경제적 압박에도 독자노선을 유지한 국가의 존재도 일정한 상징적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미국 패권의 약화를 어느 한 나라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중국과 러시아의 성장, 글로벌사우스의 독자행보, 미국 내부의 경제적 부담과 정치적 분열, 전쟁과 제재의 반작용이 함께 작용했다.
미국의 붕괴 여부보다 더 중요한 변화가 있다. 다른 나라의 선택을 일방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힘이 줄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 개입하지만 이전처럼 원하는 결과를 쉽게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미국은 줄어드는 영향력을 지키기 위해 관세와 제재, 군사압박을 강화한다. 그러나 압박이 강해질수록 다른 나라들은 미국 밖의 시장과 금융통로, 안보협력을 찾는다. 이번 중간선거는 다극화를 만들어내는 선거가 아니다. 이미 진행되는 변화 속에서 미국이 강경한 대외정책을 택할지, 보다 온건한 방식으로 대응할지를 보여주는 선거다.
트럼프는 미국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트럼프를 광기와 좌충우돌의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트럼프가 미국을 잘못된 길로 끌고 갔다고 평가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에만 집착하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
트럼프는 미국을 바꾼 것이 아니다. 미국의 속성을 알아보기 쉽게 만들었다.
클린턴과 오바마, 바이든 정부는 민주주의와 인권, 다양성, 동맹, 국제규범을 앞세웠다. 미국의 힘을 행사하면서도 품위와 명분으로 포장했다. 트럼프는 그 포장을 걷어냈다. 돈을 더 내라고 말하고 미국 상품을 더 사라고 요구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관세를 부과하고 필요하면 군사력을 쓰겠다고 위협한다.
MAGA 지지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트럼프가 없던 불만과 분노를 만든 것이 아니라 공적인 언어에서 억제됐던 감정을 정치의 전면으로 끌어냈다.
국가관계에서는 더 선명하다. 미국과 동맹국이 미사일을 개발하고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을 전개하면 ‘억제력’과 ‘방어’라고 부른다. 조선(북한)이 군사력을 강화하면 ‘도발’과 ‘위협’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누가 힘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를 미국이 판단하려 하기 때문이다.
조선(북한)은 군사적 압박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미국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 동맹과 경쟁국으로부터 양보와 경제적 이익을 끌어내려 한다. 트럼프의 말과 행동이 다를 때가 있듯 미국의 대외정책도 명분과 실제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트럼프는 미국을 바꾼 것이 아니다. 트럼프를 통해 미국이 더 잘 보이게 되었다.
다극화시대, 한국의 선택
다극화는 한국에도 위기만은 아니다.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한쪽을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어느 쪽에도 자신의 판단을 맡기지 않는 외교공간을 넓힐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일방적인 영향력이 약해질수록 한국이 자신의 이해에 따라 판단할 공간도 넓어진다. 그러나 다극화가 자동으로 한국의 자주성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국제질서가 바뀌어도 한국이 자신의 선택권을 사용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미국 중간선거도 민주당과 공화당 가운데 어느 쪽이 한국에 더 편한가만 볼 일이 아니다. 미국 정치가 어떻게 변하든 한국이 자신의 이해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다극화시대는 자주권 확립의 시대다. 한국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보다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한국의 일을 한국이 결정하는 것이다.
다극화와 삼극화 ― 미국의 선택
미국도 다극화가 현실이 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질서로 바꾸려 한다. 미국은 남북미에서 자신의 우위를 인정받고, 러시아와 중국에는 각각 일정한 지역적 영향력을 인정하는 삼극질서를 상정한다. 이것은 미·중·러의 공동구상이 아니라 미국의 구상이다.
미국의 삼극화 구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19년 존 볼턴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은 “먼로독트린은 살아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먼로독트린은 서반구를 미국의 우선적 영향권으로 보는 논리였다. 트럼프 2기의 ‘돈로 독트린’은 이를 훨씬 노골적으로 되살린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이를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조선(북한)도 오래전부터 반제·반미와 세계자주화를 대외정책의 중심기조로 내세워왔다. 해방 이후 80여 년 동안 미국의 압박에도 굴복하지 않고 그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오늘의 표현으로 풀면 각 나라의 자주권과 독자적 선택을 중시하는 다극화와 맞닿아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이런 조선(북한)의 입장을 잘 알고 있다. 조중·조러 관계가 밀착되고 세 나라가 다극화 국제질서 확립을 위해 행보를 같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패권은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의 선택을 제한하고 자주권을 훼손하는 질서다. 다극화는 각 나라의 자주권과 독자적 선택을 존중한다. 따라서 세 강대국이 세계를 나눠 관리한다면 그것은 다극화가 아니라 패권의 분할이다.
미국의 삼극화 구상도 현실을 인정하고 순순히 패권을 포기한 상태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다극화를 거스를 힘이 약해진 현실에서 일단 후퇴하고 힘을 다시 모으려는 선택에 가깝다. 미국은 삼극화에 머물 생각이 없다. 힘을 회복하면 다시 세계적 우위를 되찾겠다는 패권욕망은 그대로 남아 있다. 삼극화는 미국에게 최종질서가 아니라 다시 일극패권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적 구상이다.
오는 11월 중국 선전에서 미·중·러 3자회담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실제로 성사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중미, 미러, 중러가 각각 양자회담을 갖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이 구상한 삼극질서의 틀 안에서 함께 세계를 관리하는 모습을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세 나라가 각각 만나는 것과 세 나라가 하나의 질서를 합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결론- 다극화는 미국도 거부할 수 없다
미국은 지금 스스로 선택한 퇴장이 아니라 강요받은 연착륙 과정에 있다. 과거처럼 세계를 일방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워졌고, 관세와 제재, 군사압박이 더 노골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 중간선거는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이 이기든 공화당이 이기든 미국은 다극화를 거스를 수 없다. 선거 결과는 다극화된 세계 속에서 미국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다시 확인시킬 뿐이다. 과거의 일극패권 시대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할 수 있는 조건도 이미 사라졌다.
그래서 세계가 봐야 할 것은 승자 자체가 아니라 승자가 미국의 힘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가이다. 힘의 우위를 노골적으로 앞세울 것인지, 동맹과 외교, 가치와 협력이라는 여러 통로를 통해 유연하게 접근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관세와 제재, 군사압박을 노골적으로 강화할 것인지, 아니면 압박과 함께 이익과 양보를 제시하며 미국 질서에 유연하게 순응하도록 만들 것인지가 선거 이후 드러날 것이다.
미국은 더 이상 다극화를 무시한 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미국도 이미 다극화시대 속에 들어와 있다. 이번 중간선거는 그 현실을 다시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 글은 윤현일 재미 칼럼니스트께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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