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잘 한다‘는 진정한 의미

[이창봉의 언어문화 산책] 언어의 창조성과 문법의 역할에 대해

2018년 처음으로 MLB 올스타전에 뽑혔던 추신수. 그는 미국에서의 생활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영어를 배우는 것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사진= EPA/연합뉴스
2018년 처음으로 MLB 올스타전에 뽑혔던 추신수. 그는 미국에서의 생활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영어를 배우는 것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사진= EPA/연합뉴스

‘이창봉의 언어문화 산책’ 연재를 시작하며

어느 학자가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접하고 학문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단순하면서도 흥미로운 답을 제시한 바 있다.

Science is a conscious effort of explaining something that is happening unconsciously.

(과학이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의식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을 말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언어 현상만큼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없다. 마치 매일 숨 쉬는 공기의 존재를 모르듯 우리는 매일 언어로 의사소통하면서도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언어학은 이렇듯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서 무의식적으로 지나치는 언어 현상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 분야 과목을 교수하고 학습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그 학문 분야의 이론과 개념들을 활용하여 무의식적으로 지나치기 쉬운 어떤 현상들을 의식적으로 파헤쳐서 설명하는 지적 훈련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데에 있다. 인문학은 그 어느 학문 분야보다도 이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데에 유용한 학문이다. 현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분석력을 연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의 생각과 다른 독창적인 주장과 생각을 전개하는 비판 능력과 표현 능력을 다듬을 수 있으며 어떤 현상을 자신의 삶과 사회문화의 공동체의 모습에 비추어 반성하고 더 나은 미래를 구상하는 성찰력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연령과 상관없이 이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더욱 지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이가 평생 책을 가까이 해서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 서적들은 전통적으로 인문학자들의 고집 속에서 대중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난해한 이론적 내용이 주를 이루어왔으나 최근 깊이 있는 인문학적 내용을 일반 독자들에게 쉽게 풀어 써서 대중적 접근성을 높인 콘텐츠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연재물도 인문학의 대중화라는 큰 틀의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문학 콘텐츠들이 대중적 수준에 맞추어 쉽게 풀어 쓰는 데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이 연재물은 인문학적 내용의 이해와 인문학적 사고 훈련의 병행과 통합을 지향하고자 한다. 현상 분석을 바탕으로 이론적 내용을 이해하는 흐름 속에서 인문학적 사고 훈련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병행하는 형식으로 글을 구성하려고 한다. 글의 시작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무의식적으로 지나치기 쉬운 언어문화 현상을 주목하고 관찰하는 데에서 출발할 것이다. 이어서 그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언어학적 이론과 개념을 동원하여 설명하고 분석한 후 그 분석 결과를 우리 개인의 삶의 모습과 우리 사회문화 공동체의 모습에 비추어 비판과 성찰을 도모하는 식으로 전개할 것이다.

건강을 위해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아름다운 숲 속을 산책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정신적인 건강과 지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인문학적 콘텐츠가 살아 숨 쉬는 숲 속을 걷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언어학자인 필자와 함께 다양한 언어문화 현상을 관찰하고 분석하면서 여러분 개인의 삶은 물론 우리 사회와 문화 숲 전체의 모습도 조명하며 성찰하는 지적으로 흥미로운 산책에 많은 독자들이 동참해 주시기를 바란다.

[이창봉 가톨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영어 어렵지 않아요. 필수 문장 100문장만 외우고 따라하면 유창해질 수 있어요.”

정말 귀가 솔깃해지고 눈에 확 띄는 광고문구이다. 매우 유혹적인 문구가 영어 학습자들의 조급한 성취욕을 파고든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영어 습득의 압박 속에 살고 있으며 그들에게는 영어가 단순한 외국어가 아니라 학업 성취와 경력 개발에 있어서 당장의 필수 요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 광고대로 100개의 필수 문장을 외우면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 불가능하다. 그 결정적 이유는 우리는 문장을 외워서 쓰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만들어서 쓰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언어로 의사소통할 때 말하고 쓰는 문장들은 남이 쓴 것을 외워서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창조해서 쓰는 것이다. 놈 촘스키 (Noam Chomsky) 교수는 ‘이전에 전혀 들어보지 못한 문장들을 이해하고 독창적인 고유의 문장을 만들어서 쓰는 것’을 인간 언어의 창조성 (creative aspect of language)이라고 표현했다.

언어의 창조성이란

우리가 어떤 새로운 것을 창조할 때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들을 바탕으로 창조한다. 문장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어휘와 문법(grammar)이 바탕이 된다, 우리 인간은 좌 뇌(left brain) 속에 언어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능력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어휘부와 문법부이다. 신비로운 것은 우리의 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어휘의 숫자와 문법 규칙은 유한(finite)한데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문장은 무한(indefinite)하다는 점이다. 즉 인간 언어는 유한한 자원으로 무한한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우리는 매일 머리 속에 보관하고 있는 어휘와 표현들을 문법 규칙이 허용하는 대로 자유롭게 결합시켜서 독창적인 형식과 내용의 문장을 만들어 낸다. 풍부한 어휘 습득과 튼실한 문법 체계의 구축은 창조적인 언어 사용의 전제 요건임을 깨닫게 된다. 다르게 표현하면 한 언어를 창조적인 수준으로 구사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어휘 습득이 기본 바탕이며 문법 규칙을 확실히 이해하고 내재화(internalize)해야 한다.

담화 상황에 맞는 영어 구사하기

모국어 문법은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습득해서 쉽게 내재화되는 반면 영어를 제2언어로 습득할 경우에는 모국어 문법과의 비교언어학적인 학습을 통해서 인공적인 학습을 통해서 내재화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형(grammatical form)을 이해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어떤 담화 상황(discourse context) 속에서 그 문형을 활용해서 어떤 의미(meaning)를 표현할 수 있는지를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 문법 활용 연습과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전의 문법 위주의 전통적인 영어 교수법에서는 문법 규칙과 문형 자체의 이해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적절한 담화 상황 속에서 활용하는 연습과 훈련을 등한시했었다. 이 불균형적인 영어 교육과 학습 방법은 영어 학습을 영어 문법의 이해 수준에 그치게 하고 영어로 기능하는 힘을 키워주지 못하는 폐단을 낳고 말았다.

예를 들면 우리 세대처럼 70-80년대에 중고등 영어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영어 문장에서 쓰인 부정사(to-infinitive)의 용법들 중 어느 것이 형용사적 용법으로 쓰였는지 이론적으로는 잘 이해했지만 막상 그 용법을 사용해서 화자로서 자기 나름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그 구문을 활용해서 창조적으로 문장을 만드는 연습은 거의 한 적이 없다, 그 당시의 영어 습득 노력은 문법 규칙의 정확한 이해에 극도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영어로 ‘누군가가 영어를 잘 한다’는 말을 하라면 어떤 표현이 떠오를까? 흔히 일상에서 She speaks English fluently” 같은 말을 많이 하지만 이 문장은 발음의 유창성에 초점을 둔 표현이이다. 그러나 오히려 영어로 “She has a good command of English”라고 표현이 훨씬 종합적인 영어 실력을 묘사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서 야구의 투수(pitcher) 얘기를 잠깐 해 보자. 투수는 타자를 상대로 다양한 구종의 공(속구, 커브, 슬라이더 등)을 던져서 그를 삼진 아웃(strike out) 시키거나 범타에 그치게 하도록 노력하는 수비의 최전선에 있는 선수이다. 투수의 기본 요건은 다양한 구종을 던질 줄 아는 것이다. 그런데 그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을 원하는 곳에 자유자재로 던질 줄 아는 제구력(control)도 갖추어야 한다. 여기서 제구력(control)은 ’command’와 비슷한 뜻을 나타낸다.

영어 구사 능력 쪽으로 빗대어 이해한다면 전자는 풍부한 어휘와 정확한 문법 규칙을 갖춘 것을 말하며 후자는 적절한 상황에서 그것들을 결합해서 실제 문장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뜻한다. 달리 표현하면 전자는 이론이고 후자는 실재이다. 결국 영어 실력 향상은 문법 규칙을 정확히 이해하는 이론적 학습과 더불어 그것을 담화 상황 속에서 활용하는 실제 연습과 훈련이라는 2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다. 이 이중적 노력을 다해야 결국 영어를 창조적인 수준으로 (자신이 원하는 문장을 적절한 상황에서 자유롭게 만들어 내서 쓰는 수준) 구사할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이 소위 영어 실력의 핵심 덕목임을 알게 된다.

문법의 노예가 되지 말라더니

이전의 문법 위주의 영어 교육에 대한 반발과 성찰로 사실 요즘에는 영어 문장 구사 연습과 훈련이 꾸준히 강조되어 왔으며 오히려 문법의 중요성이 등한시되어 온 측면이 있다. 이 분위기 속에서 문법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메시지가 강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문법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뜻은 문법을 학습하지 말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문법 규칙의 철저한 이해를 구축하되 정확성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뜻이다. 누구도 완벽한 문법을 구사하는 사람은 없고 다소 문법적으로 틀리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영어로 과감하게 의사소통을 시도하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교훈은 역지사지로 외국인이 우리 한국어를 구사할 때 문법적으로 약간 어색한 말을 해도 그 문장의 뜻이 독창적이고 의미 깊은 것이라면 그 사람의 한국어 능력을 좋게 평가하게 된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언어 능력의 핵심은 창조성이며 창조적 언어 능력의 바탕은 풍부한 어휘 구축과 정확한 문법 규칙 학습이다. 학습으로 익힌 이 자원을 활용하여 담화 상황에 적절한 문장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연습과 훈련을 꾸준히 하는 노력을 통해서만 창조적 수준의 언어 능력에 이를 수 있다. 스스로 정확성의 노예가 되어 주눅이 들지 않고 문법(grammar)을 어떤 종류와 성격의 문장도 자유자재로 만들어서 자기 자신만의 독창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충실한 도구로 승화시키는 일은 학습자 자신의 몫임을 명심하자. 문법이 여러분을 자유롭게 하리라!!!

글쓴이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

이창봉 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언어학 박사(화용론 전공). 언어와 문화의 밀접성 관련 주제를 주로 연구하며 영어교과서와 학습교재와 일반 인문 교양서 집필 활동도 하고 있음. 최근 <미국이라는 나라 영어에 대하여> (사람in 출판) 책을 출간함 Facebook에서 언어학자로서 언어를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글도 활발히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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