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대통령 vs 누리는 대통령

“국민만 섬기겠다”는 약속 어디갔나 물가·북핵 위기인데 주말 나들이만 윤대통령의 각성을 정중히 촉구한다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서 영화 '브로커'를 관람랬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서 영화 '브로커'를 관람랬다. 사진=연합뉴스

우려했던 대통령 후보의 인식 그대로

필자는 이곳 <더칼럼니스트>를 통해 “윤석열 후보의 망언 자질이 보인다”라는 제목의 글로 그의 언행을 비판한 적이 있다. 물론 당선전의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작년 10월 초에 부산 해운대갑 당원협의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전두환 찬양론을 은근히 내세우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고 전문가들을 뽑아서 적재적소에 놓고 저는 시스템 관리나 하면서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소통하며 챙겨야 할 아젠다만 챙길 생각이다.“

당시 언어학자의 시각에서 필자는 이 말에 드러난 당시 윤석열 후보의 대통령직(presidency)에 관한 인식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윤석열 후보는 ‘시스템 관리’라는 표현 뒤에 왜 평범한 목적격 조사 ‘-를, -을’ 붙이지 않고 ‘-나’를 붙였을까. ‘-나’는 문법적으로 한정사(delimiter)로 분류하며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흔한 선택 혹은 차선의 선택(a routine choice or the second-best choice)으로 상쇄하는 화자 태도를 함께 전달하게 된다. 그의 의식 속에 ‘시스템 관리’가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무의식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바로 뒤에서 그는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소통하며 챙겨야 할 아젠다만 챙길 생각’이라고 한 것이 묘한 대비적 효과를 일으킨다. 적재적소에 전문가를 배치하는 것은 기본인데 그 기본적인 일을 끝낸 후에는 전권을 위임하는 대신 ‘시스템 관리’는 별로 신경 안 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국민들 앞에 나서서 멋진 모습 보이는 쇼만 하고 싶다는 것으로 들린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지난 한 달 동안 윤 대통령이 연출한 주요 장면들은 우려스럽게도 필자의 분석과 예측이 거의 맞았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는 일을 고집해서 한국 현대사에서 최초의 출퇴근 대통령이 되었다. 시민들에게 교통체증 불편을 끼친다는 우려와 비판 속에서 연일 출근 시간이 늦어지면서 야당으로부터 그렇게 하다가는 재택근무를 하는 쪽으로 전환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출퇴근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취임 직후부터 몰아닥친 북한 미사일 위기와 한미 정상회담 준비와 물가 대책 등 굵직한 국정 현안을 두고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저녁 시간에 맞추어 칼퇴근을 했어야 했을까? 참모들과 회의 하느라고 어느 날은 매우 늦게 퇴근했다는 소식을 접해 본 적이 없다. 모든 일을 부하들에게 맡기고 자기는 집에서 원격 조정하듯이 관리만 하고 편하게 지내면 된다는 안일한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듯하다.

윤 대통령은 출퇴근할 때 이외에도 시민들과 격의 없이 소통한다는 목적으로 수시로 외출을 했다. 부부가 함께 신발을 사러 가고 영화를 보러 가고 빵을 사러 다녔다. 시민들과 자주 만나고 소통하려는 의도는 근본적으로 좋은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상황에 따라 절제가 필요한 법이다. 결국은 일이 터지고 말았다. 대통령실 주변을 경비하는 경찰 소속 101 경비단에서 실탄 6발을 분실하는 초유의 사고가 발생했다. 졸속으로 급하게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는 상황에서 경호 업무에 심각한 과부하가 생겼다.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101경비단의 실상은 참담했다. 경비 담당 대대도 4개에서 3개로 줄며 업무가 가중되었고 낡은 폐건물에서 생활하며 살인적인 업무 강도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높아진 업무 강도가 실탄 분실 사고까지 부른 것이라는 분석이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윤 대통령 부부는 외출을 자제하기는커녕 빈번히 외출 사진을 게재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이미지 만드는 모습에 열중했다.

대통령 취임 나흘째인 지난 5월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금융상황 점검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 취임 나흘째인 지난 5월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금융상황 점검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취임 한달 ‘누리는 대통령’의 모습만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민만 바라보고 섬기겠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가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일하는 대통령이라면 출퇴근과 빈번한 외출로 과부하가 걸려서 혹독한 근무 환경에서 고생하는 직원과 요원들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보고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있어야 했다. 그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 쇼핑은 온라인으로 하고 빵 같은 것은 배달을 시키고 집에서 소박하게 지내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국민들에게 알렸다면 오히려 대통령의 소탈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고 국정 지지도가 오르지 않았을까? 왜 윤 대통령은 그런 배려를 하지 못했을까? 대통령직을 국민을 섬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권력과 지위를 ‘누리는 대통령’으로 보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받는 국가 위기 시기에도 대통령이 이런 그릇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최소한의 성실성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몇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윤 대통령은 밀양에 산불이 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중대한 일이 벌어졌음에도 부부가 집무실에 애견을 데리고 와서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진들을 내보냈다. 산불이 거의 진화된 6월 2일에는 밀양에 가서 이재민들을 위로하는 대신 한국- 브라질 국가대표 축구평가전을 관람하고 손흥민 선수에게 직접 훈장을 수여하는 일을 택했다. 윤 대통령은 왜 산불 진압 대책 회의보다 축구 경기 관람이 더 중요했던 것일까? 일하는 것보다 왜 사진 찍는 일이 더 중요했을까?

더욱 개탄스러운 장면은 북한이 미사일을 쏜 다음날 저녁에 밖에서 수백만원 어치 술 파티를 벌이고 만취하는 행보를 보인 점이다. 어떻게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방 관련 긴급 현안이 발생했는데 밖에서 술을 마시고 만취 상태에서 업무 공백 상황을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일이 과연 용인될 수 있는 것일까?

야당도, 언론도 비판목소리 내지않아

놀라운 것은 대통령이 이 정도로 심각한 일탈 행위를 했는데도 지금까지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정치 쟁점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방선거 패배 후 내분에 휩싸인 야당이 이를 정식으로 문제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당 내부의 비판이나 자성 목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사실을 파헤치고 보도한 열린공감 TV 이외에는 거의 모든 언론이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가 실종되었고 언론이 죽었다. 대통령의 우려스러운 행보가 계속되어도 주요 언론은 연일 대통령의 국민소통 나들이 홍보성 사진만 올리고 올곧은 비판을 하지 않는다. 엊그제는 화물연대 파업으로 나라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데도 대통령 부부는 영화관에 다녀왔다. 역시 언론들은 대통령 부부가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관람하는 사진을 올리고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이라고 띄워주기에 바쁘다. 기사 어느 곳을 읽어봐도 국민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주제를 놓고 어떤 의미있는 소통을 했는지 그런 내용은 없다. 김건희 여사가 이번에는 어떤 옷을 입었는지가 최대 관심사인 듯하다.

국민의 안위와 시민 경제를 걱정하는 대통령이라면 외출해서 영화 보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대신 물류 대란을 해결하기 위해 참모들과 회의를 하고 대책 업무를 주도하는 것이 극히 상식적인 행보가 아닐까? 그리고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필자가 이곳에서 지적하는 우려와 비판을 제기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대통령직은 이 나라의 어느 직책보다 숭고한 직책이다. 그야말로 나라 일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총괄하는 직책이다. 대통령은 정치, 외교, 경제, 국방, 문화 등 모든 국정 관련 깊고 넓은 식견과 지혜와 경륜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모든 분야에서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전문가들의 보고를 듣고 신중한 판단을 내리고 결단을 내리고 지휘와 감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관리나’ 해서 될 일이 아니고 ‘관리를’ 철저히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늘 깨어있고 늘 공부하고 늘 지휘하고 감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도 잘하기 힘든 자리다. 시작부터 ‘일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누리는 대통령’의 모습에만 열중하는 사람에게서 이런 숭고한 책임감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이 순간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토론장에 손바닥에 ‘왕(王)’자 주술이 쓰여진 채로 등장한 장면이 떠오른다. 손바닥에 ‘왕’자를 쓰고 나온 이 장면이 겹치면서 이제까지 윤 대통령이 보인 행적을 반추해 보면, 대통령직을 머슴처럼 국민을 섬기며 일하는 숭고한 봉사직이 아니라 왕처럼 신하들에게 국정을 맡기고 군림하는 자리로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야말로 더욱 야당의 견제와 언론의 올곧은 비판이 절실하다. 그러나 정치도 언론도 역할을 못하면서 대통령이 제대로 일은 하지 않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도록 방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에 위급한 일이 닥쳤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의 우려가 기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의 각성을 정중히 촉구한다.

글쓴이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

이창봉 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언어학 박사(화용론 전공). 언어와 문화의 밀접성 관련 주제를 주로 연구하며 영어교과서와 학습교재와 일반 인문 교양서 집필 활동도 하고 있음. 최근 <미국이라는 나라 영어에 대하여> (사람in 출판) 책을 출간함 Facebook에서 언어학자로서 언어를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글도 활발히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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