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정치하는 곳인가
조민 양의 입학취소 결정 ‘심히 유감’ 대학 본질적 기능·역할 망각한 결정
대학은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는가
지난 4월 5일 부산대학교는 조민 양의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틀이 지나서 4월 7일 고려대학교도 지난 2월 말에 입학 취소 결정을 내렸음을 뒤늦게 발표했다. 발표 후 두 대학의 결정을 두고 정치권은 물론 언론과 일반 시민들의 SNS 공간 등에서도 다양한 시각에서의 반응과 의견 표출이 이루어지고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두 대학의 결정을 둘러싼 갑론을박에 뛰어들어 시비를 가리거나 정치적 파장을 논의하고 싶지 않다. 필자는 대학에 있는 사람으로서 두 대학이 이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인 행태를 보고 깊은 충격을 받았고 대단히 실망했다. 독립된 최고 교육 기관으로서 대학의 자율성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대학이 존재하는 기초 근거인 교육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고민과 노력의 흔적이 없었고, 오히려 대학 본연의 정체성을 스스로 저버리고 정치적 행태를 보였다는 점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먼저 두 대학의 처신과 결정은 독립된 최고 교육 기관으로서의 대학의 자율성에 심각한 의문을 자아냈다. 두 대학이 입학 취소 처분의 타당한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법원의 결정이다. 부산대 측은 “동양대 총장 표창장 등이 위조 또는 허위라는 법원 판결이 내려졌다”며 “부산대 신입생 모집 요강에 허위서류를 제출하면 입학을 취소한다고 명시돼 있다”고 입학 취소 사유를 밝혔다.
우선 상식적으로 드는 의문은 조민 양의 경우 학사학위증명서, 자기소개서, 각종 성적증명서 등 주요 제출서류의 기재사항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고, 기타 서류로 제출된 서류(표창장)의 진위가 문제가 되었던 것이었으며 더구나 부산대 입학전형 공정관리위원회는 이 기타 서류가 조민 양의 합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입장까지 앞서 밝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입학 후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한 사실이 발견될 경우”로 간주하는 것이 과연 교육 기관으로서 자율적 판단으로 온당한 해석에 이른 결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부산대가 주체성 있는 교육 기관이라면 어떻게 ‘입시에 영향을 끼지지 않은 서류’라는 판단을 자율적으로 한 후 그 서류가 위조라는 법원의 판결을 접하자 이전의 자율적 판단에 합치하지 않은 불필요한 확대 해석에 매몰될 수 있었을까?
더욱 근본적인 의문은 부산대가 왜 법원의 판단과 결정을 반드시 따라야만 했을까일 것이다. 부산대가 독립성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대학이라면 입학 취소 처분의 타당성 준거로 외부 기관인 법원의 결정이 아니라 대학 자체의 자유롭고 자율적인 근거를 내세워야 하지 않았을까? 사실 대학에서 대학 공동체의 일원인 교수나 학생을 징계할 때에는 대학 고유의 규정에 따라 위원회를 구성하여 법원의 유무죄 판단과 상관없이 자율적으로 독립된 결정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대학다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안에 해당하는 합당한 징계만 하면 되지 그것을 확대해서 학생의 입학이나 교수 경력 전체를 부정하는 결정을 하지 않는다.
절차적 중요성 지키지않아 논란 자초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매우 엄중한 조사와 심의 과정을 거치며 특히 충분한 소명의 기회를 보장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이 부분이 바로 두 대학이 혹독한 비판을 받아야 할 또 다른 측면이다. 대학의 존립 근거는 교육과 연구라는 본연의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교수와 학생의 존재다. 특히 학생을 아끼고 사랑하고 보호하는 교육적 가치보다 더 숭고한 가치가 없다. 그런데 이번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두 대학이 보인 행태를 보면 그런 교육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고민과 노력의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 두 대학 내부에서는 나름 그런 고민과 노력을 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두 대학이 어느 정도로 세밀하게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고 얼마나 치열한 고민과 논의를 했는지 그 상세한 내막을 알 길이 없다. 언론을 통해 두 대학이 발표한 입장은 크게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런 결정을 어떤 근거로 내리게 되었는지 사실관계의 줄기만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정도의 중대한 사안이라면 심의 과정에서 허위 서류 제출 여부 관련 사실 확인과 사실 해석을 훨씬 뛰어넘는 광범위한 쟁점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치열하게 논의했어야 마땅하다. 다른 학생의 입시에도 영향을 미쳤는지? 해당 학생의 학업 성취도와 공동체 기여도는 그런 잘못을 상쇄할 만한 것이었는지? 대학 당국의 잘못은 없었는지? 이런 질문들을 신중하게 던지고 검토했어야 했다. 특히 입학 취소로 얻는 것과 잃는 것의 비중을 비교하고 어떻게 해야 교육적 가치를 지키고 균형을 잡을 수 있을 것인지? 이 정도의 잘못으로 한 젊은이의 인생의 시계를 완전히 돌려서 대학과 대학원 재학 기간의 노력을 무효로 하는 결정이 자기 대학에서 충실하게 학업을 완수한 학생에게 내리기에는 너무 가혹한 결정이 아닌지? 이런 질문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했다.
사실 두 대학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결정을 내리기가 상당히 부담스러웠음에 틀림이 없다. 그만큼 대학 내외에서의 파장이 큰 결정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에 더욱더 대학으로서는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을 했는지를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필자가 두 대학의 총장이라면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건조한 단순 발표를 하기보다는 대학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기자 회견을 열어서 기자들의 질문에 친절히 답하면서 대학 공동체가 얼마나 함께 고민하고 어떤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알리려고 했을 것 같다. 필자는 무엇보다도 학생을 아끼고 보호해야 할 교육적 가치를 최고로 여겨야 할 두 대학이 그런 가혹한 결정의 무게에 준하는 충분한 고민과 노력의 모습을 보여준 흔적이 별로 없었음을 당당히 표출하는 그 무감각한 모습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겁함으론 ‘진리의 상아탑’ 정체성 못지킨다
여기서 두 대학이 이토록 자율성과 교육적 진정성을 잃어버린 모습을 보이게 된 이면에는 정치적 눈치를 본 비겁함이 깔려 있다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그 근거는 두 대학의 결정과 발표 시점의 정치성이다.
대학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대학이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교육과 연구가 중심 기능이고 그 어떤 외압도 배제하고 오직 진리만을 추구하는 중심을 지켜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두 대학이 매우 정치적인 결정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근거는 그 결정과 발표를 모두 대선이 끝나고 했다는 점이다. 대학으로서는 정치적 해석의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이 모든 조치를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에 당당히 먼저 끝냈어야 했다. 그리고 대선 후에 결정과 발표를 한다고 하더라도 위에서 지적한 면밀한 검토와 고민의 흔적까지 모두 국민들에게 알림으로써 정치적인 눈치를 본 게 아니었음을 더 적극적으로 증명해 나갔어야 했다.
최근에 대학을 둘러싼 환경은 녹녹치 않다. 자본주의의 폐해로 대학이 치열한 경쟁 구도에 휘말려서 교육보다는 경영에 몰두한다는 비판을 들은 지 오래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을 못 지키고 특정 정치 세력에 유리한 식의 노골적인 정치적 행보를 보인 적은 없었다. 이번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산대학교와 고려대학교가 보인 자율성 없는 정치적 눈치 보기 행태는 그들 스스로 독립된 최고 교육 기관으로서의 대학의 주체적 정체성을 포기한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대학의 위기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제까지 한국 사회의 대학들은 위기의 요인을 주로 대학을 둘러싼 외부 환경 변화에서 찾아왔다. 이번 일은 대학 스스로 위기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각성할 일이다.
자기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어떻게 올곧게 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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