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와 술의 동반관계(partnership)에 대하여
[김세리의 차와술 이야기] 흥을 돋구는 술...정신을 맑게 하는 차 상생하는 사이, 오래전부터 ‘꽤 괜찮은 동반관계’ 적당히 취하는 즐거움과 맑게 깰 줄 아는 지혜를 배우자
[김세리 성균관대 초빙교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먹고 마시는데 집중되어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눈 감는 그 순간까지 입이라는 기관을 통해 다양한 무언가를 채우는 일을 무수히 반복 또 반복한다. 세상에 이런 성실함이 또 있을까.
만약 인간이 한 달에 한번 혹은 일 년에 단 한번만 영양을 섭취해도 살아가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잠자는 시간을 최대한 늘려 운동량을 줄이거나, 저장형 체형으로 변모하거나, 그동안 먹을 것에 관련되어 사용되었던 모든 기회비용도 다른 일에 사용해버리거나...
그런데 딱히 그렇게 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 그런 획기적인 발명품은 없는 것 같고, 누가 열렬하게 그런 걸 원하는 것 같지도 않다. 우리는 여전히 매일 무언가를 먹고 마셔야한다. 누군가는 생명 부지를 위한 애절한 한 입을, 누군가는 우아한 가치로서의 한 모금을. 각자 다른 이유로 매일의 먹거리를 삼키고 있는 중이다.
축제의 자리에 항상 있었던 ‘술과 차’
세상엔 매력적인 먹거리, 마실거리가 다양하다. 그 중에서 호모루덴스(Homo Ludens:유희하는 인간)를 위한 가장 매력적인 음료는 단연 차와 술이다. 즐거움의 자리, 축제의 자리에 술잔을 기울이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장면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찻잔에 대해서는 좀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예로부터 차와 술은 서로 아웅다웅 거리며 같은 자리에 등장하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술에 대한 인식은 대중적이지만 차는 그렇지 못한 편이라 늘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차와 술의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우리나라 차와 술에 대한 이야기는 통일신라시대 설총이 지은 「화왕계花王戒]」에 처음 등장한다.
설총(薛聰)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에게 의인화된 꽃들에 비유하여 군왕으로서 지켜야 할 계율을 권했다. 봄을 맞아 만발한 아름다운 꽃들은 그들의 왕인 화왕(花王) 모란꽃의 눈에 들고 싶었다. 화려하게 이목을 끄는 꽃도 있었지만, 한쪽 옆에서 조용히 한마디 거드는 꽃이 있었으니 바로 할미꽃이 차와 술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
「이 몸은 서울 밖 한길 옆에 사는 백두옹(白頭翁, 할미꽃)입니다. 아래로는 창망한 들판을 내려다보고, 위로는 우뚝 산 경지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옵건대, 좌우에서 보살피는 신하는 고량(膏梁, 기름진 고기와 맛있는 음식)과 향기로운 차와 술로 수라상을 받들어 임금님의 식성을 흡족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해드리고 있사옵니다.」 -화왕계(花王戒) 내용 중
산해진미와 기름진 고기, 향기로운 차와 술로 잘 차려진 임금님의 수라상을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다. 술은 음식 맛을 돋게 하며 흥을 오르게 한다면, 차는 정신을 맑게 하고 소화를 빠르게 한다. 차와 술은 서로 상생하는 사이가 맞다. 아주 오래전부터 차와 술은 음식과 함께 한자리에서 있는 모습이 썩 잘 어울렸다.
선비들 풍류에 빠지지 않는 술과 차
조선 정조의 시대 대표적인 인물화가로 김홍도가 유명하다면, 산수화가로는 이인문을 꼽는다. 이인문의 <누각아집도(樓閣雅集圖)>는 그의 나이 76세에 벗들과 함께 누각에서 풍류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 것이다.
지금이면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될 일이지만 당시는 수동의 시대였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음악연주를 위해 거문고를, 그림과 그날의 기록을 위해 벼루와 붓, 화선지 및 문방기물들 하나하나 모두 준비했다. 글을 쓰려고 먹을 한참 갈았을 것이고, 불을 피우려고 어린 시동들이 매운 연기에 애먹었을지도 모르겠다.
화면의 오른쪽 위에는 긴 화제(畵題)가 쓰여 있다.
“늙은 소나무가 몇몇 그루인데, 흐르는 물이 그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 (소나무는) 창창(蒼蒼)하고 (물은) 냉랭(泠泠)하여 가득한 골짜기에 바람이 인다. 높직한 헌창(軒窓)에 구름과 아지랭이(雲霞)가 영롱한 사이에 안석에 기대어 축(軸)을 펼치고 있는 자는 도인(道人) 이인문이고, 손에 화전(畵箋, 그림을 그린 종이)을 가지고 곁에서 살펴보고 있는 자는 수월(水月) 임희지(1765~?) 이며, 거문고를 내던지고 난간에 기대어 있는 자는 주경(周卿) 김영면(18세기 활동)이고, 걸상에 걸터앉아 목소리를 길게 늘여 읊고 있는 자는 영수(潁叟, 성명이 확실치 않음)이니, 곧 이 네 사람은 죽림칠현과 적수가 될 만한 사람들이다”라고 적어두어 나름의 출석도 확실히 하고 있다.
자연의 신선함과 좋은 벗들이 함께하는데 향기로운 차와 술이 빠질 수 있을까? 누각의 한편에는 술상과 거문고가 준비되어 풍류 넘치는 아회가 이루어지고 있고, 누각의 왼쪽 아래에서는 차를 끓이는 아이가 불을 지피고 있다. 지금이야 차를 우려서 마시는 문화이지만 당시는 끓여 마시는 문화였기 때문에 차를 폭폭 끓이고 있는 모습이다. 또 한 아이는 끓인 차를 나르고 있다.

자연에 취하고 벗에 취하고 즐거움에 취하며, 이렇게 적당히 취한 후에는 차로 맑게 깨운다. 이것은 옛 선현들의 풍류 문화에서 비슷한 패턴으로 보인다. 적절히 즐길 줄 알되 지나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차와 술은 꽤 괜찮은 동반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서로를 보완해주는 상당히 매력적인 관계. 오늘 술을 한잔 한다면 그런 다음에 차 한잔은 어떨까? 적당히 취하는 즐거움을 알고, 맑게 깰 줄 아는 지혜로운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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