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과하게’ 실수하며 배운다는 것의 의미는
[이창봉의 언어문화 산책] ‘과잉 적용’현상이 교육과 학습에 주는 시사점
[이창봉 가톨릭대 영어영문학 교수] 태어난 아이가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언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건 아니냐고 한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정말 대단한, 기적같은 일이다.
어떻게 아이들은 일정 시기에 어떤 언어에 노출되면 아무런 전문적인 교육이나 훈육 없이 그 언어를 습득할까. 정말 놀라운 능력 아닌가. 아이의 인종, 부모의 교육 정도와 경제적 능력과 배경, 태어난 곳과 자라는 동네, 보모가 있는가의 여부와 상관없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다양한 변인에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은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고 말을 하게 된다.
‘과잉적용’ 현상 이해하기
더욱 흥미로운 것은, 모든 아이가 같은 언어 습득 단계와 습득 패턴을 보인다는 점이다. 학자들은 ‘과잉 적용(overgeneration) 현상’에 주목한다. 내 딸 아이가 한창 말을 배울 때 다음과 같은 대화를 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빠: 동화책 어디 두었니?
딸: 책가 저기 있어.
딸의 문장에서 주목할 표현이 ‘책가’다. 딸은 우리말을 배우면서 주어 기능을 하는 모든 명사의 뒤에 주격조사 ‘-가’를 붙이는 규칙을 스스로 과잉 적용(overgeneration)한 것이다. 이후 자연스럽게 ‘-가’와 ‘-이’를 구별하는 규칙을 깨닫고 적용하게 된다.
영어를 습득하는 아이들도 유사하다. 동사의 과거형을 쓰기 시작할 무렵 모든 동사의 뒤에 과거형 규칙 동사 어미 ‘-ed’를 붙여서 ‘Mommy goed to church’ 같은 문장을 발화한다. 나중에 불규칙형으로 ‘went’를 익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일단 어떤 일반적인 규칙을 먼저 설정한 후 예외적이고 불규칙적인 현상을 접하면 그 규칙을 수정해 나가는 방식으로 언어를 습득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확대하면 인간의 지적 활동은 기초적이고 일반적인 정형화된 규칙을 먼저 설정한 후 그것을 수정해 가면서 규칙 형성을 완성해 가는 성격과 특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자기주도 학습이 중요한 이유
이것은 교육과 학습에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인간은 정형화된 규칙을 단계별로 스스로 인식하고 형성하는 존재인 만큼, 교육과 학습에서 자기 주도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한국 교육의 고질적 병폐는 주입식 교육으로 학생의 개성과 적성을 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학에서조차도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중요한 이론을 전달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데에 너무 집착한다. 학생들이 정작 어느 단계와 수준으로 이해했는지를 살피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사고 훈련하는 지적 활동을 유도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거꾸로 학생들은 교수들의 교육 방법론에 수동적으로 이끌려 다니며 자기 주도적 학습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다. 어느 교육 현장에서든지 주입식 강의 위주 수업은 인간 지성의 근본적 성격인 자기 주도성에 맞지 않는 전근대적 교육방법론일 뿐이다.
특히 대학 교육은 학습 내용과 전달 과정과 방법에 있어 학생들에게 비판적 사고 훈련과 발표, 토론의 기회를 주어 ‘더 나은 사고력을 가진 자(a better thinker)’로 키우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둘째, 교육에 있어서 학습자의 실수를 용인하고 포용하고 인내하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잉 적용(overgeneration) 현상 자체가 실수를 전제로 하는 현상이다. 자기 주도적 규칙 인식과 형성 과정에서 실수는 배움의 필수적인 요소이며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배움에는 일정 시간이 걸리므로 학습자가 스스로 그 규칙을 깨달을 때까지 인내하고 돕고 기다려야 한다. 부모와 교수의 역할은 그런 학습자를 돕고 격려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조급한 성취를 부추기고 야단까지 치면서 자기 주도적 학습 노력을 방해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이가 언어를 습득하는 속도가 다 다르듯, 개인마다 어떤 지적 콘텐츠를 접하고 그것을 자기 주도적으로 이해하고 배워 나가는 속도와 방식 또한 다르다. 그러므로 참고 기다리는 인내와 포용이 필요하다.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려라
혹자는 이 말이 한국 사회처럼 입시 위주의 경쟁과 성과 제일주의가 판치는 곳에서는 매우 비현실적인 공허한 소리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거꾸로 우리 사회가 바로 그런 가혹한 현실 속에 있기 때문에 더욱더 이런 교육적 인내와 포용이 더 절실한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 아이들을 교육하는가? 교육의 본래 목적이 무엇인가? 부모와 선생이 학생의 성취를 자랑하기 위해 교육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 자신의 잠재력을 키워주기 위해 교육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긴 전체 인생 승부의 극히 일부 경쟁일 뿐인 입시 경쟁에 뒤처졌다고 해서 깊은 열패감으로 자살 충동을 느끼게 하는 사회는 심각히 병든 사회다. 학생 스스로 깨닫고 안에서 자기가 진실로 좋아하는 것을 열정적으로 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절실한 시대가 됐다.
셋째, 효과적인 학습법이란 일반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세부적인 것들을 전체적인 맥락과 연결해 이해하려는 노력을 자기 자신의 개성으로 구현한 것이다.
현명한 학습자는 콘텐츠를 접했을 때 늘 전체를 보는 안목을 바탕으로 세부적인 것을 이해한다. 구체적인 예로 흔히 암기 과목으로 여겨지는 역사 과목 학습 방법론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역사 과목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암기하는 과목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과목이다.
전체를 본 후 디테일을 이해하기
역사적 콘텐츠를 접했을 때 어떤 사건의 세부 사실에 매달리지 않고 역사적 흐름 속에서 사건을 연결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래서 우수한 학생의 책이나 노트를 보면 전체 내용의 흐름을 요약한 자기 나름의 주도적 내용 이해, 스토리텔링 흔적이 있다. 반면 부족한 학생은 책에서 개별 사건의 세부 사항 곳곳에 줄을 치는 데에 매달려서 그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결국 어떤 콘텐츠를 접하든지 학습 능력의 차이는 학습자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체를 보면서 세부 사항의 연결성을 파악하는지, 비교와 분석을 통해 그 전체 맥락 이해 속에 그림을 그리고 이해하는 능력을 발휘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뛰어난 작가나 화가는 효과적인 아웃라인(outline)이나 스케치를 바탕으로 전체적인 모습과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이들은 세부적인 부분을 전체 맥락과 연결하면서 알차게 완성해 간다.
우리는 언어를 습득하는 아이들로부터 배울 부분이 있다. 우리 어른들에게 인간 지성의 근본적 특성을 살리는 본연의 방법으로 돌아갈 것을 일깨워 준다. 우리 모두는 교육자요 학습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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