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사주 VS 헌법 파괴...심층 프레임에 집중하라

[이창봉의 언어문화 산책] ‘누가 고발 사주했나’는 표층 프레임 이보다는 ‘누가 민주주의 파괴하나’가 중요해

김웅 국민의 힘 의원. 사진= 연합뉴스
김웅 국민의 힘 의원. 사진= 연합뉴스
  • 조선일보 [단독] 김웅 “의혹 제보자, 누군지 안다...왜 그랬는지도 짐작가” 중앙일보 김웅, 제보자 겨냥 “그가 등장하면 배후세력 진상 밝혀질 것” 경향신문 김웅 “‘고발장 전달’ 다 사실일 수 있다”···“제보자가 조작 가능성도”

[이창봉 가톨릭대 영어영문학 교수] 윤석열 후보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어제(9월7일)자 주요 신문들의 머리 기사 제목이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위와 같은 보도를 접하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떠올렸을까? 김웅 국민의힘 의원 개인이 이 사건의 핵심 인물처럼 보인다. 더욱 중요한 인물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국민의 힘 입장은 별로 부각되고 있지 않다. 이 사건에서 누가 이 의혹을 제보했고 누가 문건을 직접 작성했고 누가 야당에게 전달했는지가 가장 중요한 쟁점일까?

쟁점은 무엇일까

인지 언어학 분야의 거두로 미국의 중요 양심 지성 중의 한 명인 조지 레이코프 (George Lakoff) 교수에 따르면 미디어의 전형적인 왜곡 수법이란 바로 ‘선택적인 부각(highlighting)과 은폐(hiding)’다. 그들이 쓰는 책략 중의 하나가 비본질적인 쟁점을 부각해 본질을 은폐하는 것이다.

이 사건 관련 애초에 ‘고발 사주 의혹’이라는 식으로 사건을 명명하고 증거 문건 작성자와 전달자와 제보자가 누구인지를 가려내는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인 양 사태가 흐르고 있는 것 자체가 크게 잘못됐다. 이 사건의 본질은 어느 헌법 파괴 세력이 선거 개입으로 민주주의를 유린한 사건이다. 문건 관련 사실 관계와 윤석열 후보 개인이 검찰총장 시절 그 일을 사주했는지의 여부 등의 쟁점만이 표면화되고 부각되어 정작 훨씬 중요한 사건의 본질이 가려지고 있는 형국이다.

레이코프 교수는 <Thinking points(생각의 갈래)(2006)>라는 저서에서 정치적 논쟁과 여론의 흐름은 대부분의 경우 어떤 프레이밍이 더 지배적으로 작동하느냐에 따라 좌지우지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기서 ‘표층 프레임’과 ‘심층 프레임’을 구분했다. 표층 프레임은 단일 이슈나 정치인 개인 등에 대해 단기적 메시지를 담은 대중 조작과 매력적인 슬로건 같은 것이지만 심층 프레임은 가장 깊은 신념과 정치적 원리같은 사회 기저의 가치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소위 ‘윤석열 후보 고발 사주 의혹’ 사건과 관련한 특정 사실 관계 해석이나 의견을 표출해서 어느 진영에 유리한 정치적 발언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학자로서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레이코프 교수의 프레이밍 이론적 시각에서 분석하고, 한국 정치계가 특히 집권 세력인 민주당이 궁극적인 가치인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성찰해 보고자 한다.

누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가

레이코프 교수는 프레임이 우리의 아이디어와 개념을 구조화하고 우리의 사유 방식을 형성하고 심지어 우리의 지각 방식과 행동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는 보통 프레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그 프레임 속에 갇힌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가 어떤 사건을 두고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도 결국 이 보이지 않는 프레임에 달려 있다.

우리는 뉴스버스(Newsverse)의 보도로 이 사건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 사건이 표면화된 이후 보도 내용 사실 검증 과정에서 김웅 의원의 모호한 발언에만 초점이 맞추어지고 윤석열 후보 개인을 포함해 여러 정치인들의 정치적 발언 등이 여과 없이 보도됨으로써 표층 프레임이 난맥을 형성하자 우리는 그곳에 갇히고 말았다.

그 결과 이 모든 쟁점의 기저에 있는 사건의 핵심이자 본질로서 헌법 파괴 세력이 선거에 개입해서 민주주의를 유린했다는 사실이 가려지는 역효과가 생기게 됐다. 즉 비본질적인 표층 프레임에 가려서 기저 심층 프레임의 작동이 되지 않는 개탄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세력은, 특히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이 기저 심층 프레임을 복원시켜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최초에 이 사건이 ‘고발 사주 의혹’으로 프레임화되어 윤석열 후보 개인에게 정치적 공격이 시작된 것부터 잘못됐다. 뉴스버스의 보도는 윤석열 후보의 책임론을 겨냥하고 있더라도 민주당은 자세한 내용 보도 검증 이슈에 휘말리지 말고 심층 프레임의 기초를 다지는 일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제1 야당에게 그런 문건이 전달된 것이 엄연한 사실이므로 사건의 성격을 큰 틀에서 ‘검찰-야당 야합 선거 개입 의혹 사건’으로 보고 제1 야당이 자체 조사를 통해서 그들 중 어느 세력이 헌법 파괴적 만행을 저질렀는지 밝혀달라고 정국 파트너인 제1 야당에게 가장 먼저 공을 던졌어야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의 힘 내에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세력을 자극하고 그들 중 진영논리를 떠나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이 누구인지 그것을 철저히 규명하고 처단하는 데에 함께할 것을 촉구해야 했다.

국민의 힘도 호응해야

만일 그들이 이 당연한 요구에 호응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힘 당 전체가 민주 파괴 세력임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민주당은 국민들에게 ’민주주의 수호‘라는 더 큰 가치를 외치고 있다는 모습을 지키고 호응 여론을 주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민주당과 민주 세력들은 윤석열 후보를 비롯한 이 의혹에 연루된 사람들의 방어 반응에 일일이 반응한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들을 특정하지 말고 ’선거 개입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한 세력 규명과 단죄‘라는 기저의 목소리를 유지하다 보면 국민의 힘 내부에서도 비판이 점증하고,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철저한 조사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밀약을 한 사람이 윤석열 후보이든 누구든 철저한 수사로 드러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될 것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결정적인 증거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윤석열 후보 개인을 특정화해 공격하는 표층 프레임을 작동하면 오히려 정치적 희생양 프레임의 역공과 일부 국민 동정 여론을 등에 업고 되치기를 당할 수도 있다.

심층 프레임 작동과 유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론을 왜곡하는 표층 프레임만 작동하고 심층 프레임이 작동하지 않으면 진정한 사회 발전을 위한 여론 흐름과 정치 발전이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세력이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지엽적인 사실 관계 시비나 증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특정 개인을 공격하는 표면 프레임에 말려들지 말고 심층적인 프레임(민주주의 수호)을 작동시키고 지키는 의지와 일관성이 필요하다.

과연 민주당이 중심을 잡고 ’민주주의 수호‘라는 심층 프레임을 효과적으로 작동해서 야당의 양심 세력을 끌어들이고 국민 여론을 주도할 수 있을까?

글쓴이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

이창봉 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언어학 박사(화용론 전공). 언어와 문화의 밀접성 관련 주제를 주로 연구하며 영어교과서와 학습교재와 일반 인문 교양서 집필 활동도 하고 있음. 최근 <미국이라는 나라 영어에 대하여> (사람in 출판) 책을 출간함 Facebook에서 언어학자로서 언어를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글도 활발히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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