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호텔 ‘애프터눈 티’는 어떨까

[ 문기영의 홍차 클래스]

우리나라 호텔에서 만나는 '애프터눈 티'
우리나라 호텔에서 만나는 '애프터눈 티'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영국은 홍차의 나라다. 그리고 영국 홍차문화를 상징하는 것이 애프터눈 티다.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는 뜻 그대로 오후에 여유롭게 마시는 홍차라는 뜻이다.

1840년대부터 귀족계급의 소규모 사교모임으로 시작한 애프터눈 티는 홍차가격이 싸진 1890년경부터 전 국민이 즐기게 되었고 영국을 상징하는 문화로까지 발전했다. 그러면서 영국이 직접 지배하거나 영향력이 미치는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어 영국 홍차문화를 대표하게 되었다.

1800년대 후반에 영국인들이 애프터눈 티를 즐기는 모습.
1800년대 후반에 영국인들이 애프터눈 티를 즐기는 모습.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정작 영국에서는 애프터눈 티 문화가 점점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영국인들이 줄곧 홍차를 많이 마시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만, 예쁜 식기와 다구들, 다양한 티푸드 등으로 멋지게 꾸민 테이블에서 우아하게 즐기는 애프터눈 티 문화는 전쟁 중 시작된 홍차 배급 영향과 전쟁으로 파괴된 영국을 복구하느라 바쁜 일상에 묻혀 점점 잊혀져 간 것이다.

그나마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1980년대 이후 일본인들의 해외여행이 본격화되면서 부터다. 유럽문화를 동경했던 일본인들이 영국에 와서 애프터눈 티를 찾게 되면서 영국에서는 잊혀진 애프터눈 티가 여행 상품으로 일부 호텔에서 부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명맥을 유지해 오던 애프터눈 티가 10여 년 전부터 영국인들의 관심을 새롭게 받게 되었다. 2008년 리만브러더스 사태로 인한 불경기로 외출 보다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알뜰하게 즐기는 대안으로 애프터눈 티가 새롭게 조명 받았다. 2012년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행사인 다이아몬드 쥬빌리(Diamond Jubilee) 역시 영국인들에게 잊혀졌던 자신들의 전통을 되돌아 볼 기회를 제공했다.

여기에 우리나라처럼 음식관련 프로그램들이 유행하면서 티푸드가 자주 다뤄지자 오늘날 영국에서는 애프터눈 티가 완전히 부활했다. 애프터눈 티로 유명한 일류호텔의 골든타임에는 3개월 전에 예약이 끝날 정도다. 이 영향으로 일본, 홍콩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애프터눈 티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영국홍차문화를 대표하는 애프터눈 티 2010년 전후 영국포함 전 세계에 부활 우리나라 일류호텔 대부분 애프터눈 티 판매 양적성장은 눈부시나 아쉬운 점도 많아

필자가 홍차에 관심을 갖게 된 10여 년 전에도 우리나라 호텔에 애프터눈 티가 있었다. 그 때도 아쉬운 점은 많았지만 그 무렵은 우리나라에서 홍차 자체가 그렇게 일반화 되지 못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아쉬움 이었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홍차관련 제반 여건들은 질적, 양적으로 많은 성장을 했다. 질적 성장에는 홍차애호가들의 수준이 높아진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즉 다양한 홍차를 접하면서 좋은 홍차가 어떤 것이고 잘 우린 홍차의 맛과 향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호텔 애프터눈 티도 지난 10년간 많이 성장했고 특히 양적성장은 눈부시다. 지금은 일류 호텔 중에 애프터눈 티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비교적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호텔 애프터눈 티에 가는 이유는 ‘호텔 애프터눈 티’자체가 주는 품격과 우아함 그리고 고급스러움을 누군가와 함께 하고자 하는 목적이 크다. 친구든 연인이든 가족이든 동행한 사람과 함께 기억에 남을 멋진 순간을 경험하고 또 이 경험을 블로거나 인스타 같은 매체를 통해 타인과 공유해 보고자 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 목적이라면 우리나라 일류 호텔 애프터눈 티 대부분은 런던 호텔의 애프터눈 티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티룸 분위기, 창 밖 전망, 티푸드의 맛이나 디스플레이 등 모든 것이 다 훌륭하다.

아쉬운 점은 애프터눈 티의 티(Tea) 즉 홍차 그 자체로, 우려서 서빙하는 방법과 홍차의 맛과 향이다. 애프터눈 티를 판매할 정도의 홍차전문점이라면 해당 홍차의 맛과 향이 최고로 잘 발현되게 맛있게 우려서 제공해야 한다. 찻잎은 제거하고 우린 홍차만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커피전문점이 원두에서 추출한 커피만 제공하는 것과 같다.

티팟에 찻잎이 들어있는 상태로 제공하는 것은 고객에게 우리는 과정 즉 맛과 향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모래시계나 타이머(Timer)를 같이 제공하면서 물을 부은 후 경과한 시간까지 알려준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치 않다면 고객입장에서는 어느 시점에 찻잎을 제거해야 할지 혹은 찻잔에 부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찻잎이 뜨거운 물속에 얼마나 담겨 있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홍차는 3~5분 정도 우린다. 호텔의 규모와 동선을 고려하면 티팟에 찻잎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후 바로 가져 온다고 해도 2~3분 정도는 소요될 수 있다. 필요이상 우려져 홍차 맛이 떫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또 하나는 찻잎이 들어있는 티팟만 가져오고 우리고 난 차를 옮길 티팟은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찻잎을 티팟에 넣은 채로 서빙 하는 것은 사실 영국식이다. 영국은 과거부터 대부분 우유와 설탕을 넣어 마시기 때문에 강하게 우러나는 것이 문제 되지 않는다. 티팟에서 계속 우려져 진해지면 우유와 설탕을 더 넣으면 되었다.

우리나라는 설탕과 우유를 넣지 않고 홍차만을 마시는 편이다. 따라서 티팟 속에 찻잎을 두면 계속 우려져 진해짐으로 우린 차를 옮겨 담을 또 다른 티팟이 필요하게 된다.

전형적인 영국 애프터눈 티 테이블. 우유와 설탕도 있다. 사진= 구글
전형적인 영국 애프터눈 티 테이블. 우유와 설탕도 있다. 사진= 구글

비록 홍차문화를 완성시킨 것은 영국일지 모르지만 차를 고급스럽게 제대로 마시는 것은 우리나라 방식이다. 최근에는 영국에서도 건강에 대한 염려로 우유와 설탕을 넣지 않고 마시는 추세다. 이 경우에는 홍차 자체의 맛과 향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당연히 우리는 방법도 중요해지고 있다.

우려서 제공하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옮겨 담을 티팟을 추가로 제공하는 것이 번잡하다고 느낀다면 고객이 손쉽게 제거할 수 있도록 티백을 사용하면 된다. 요즘은 잎차(loose tea)를 넣은 고급 티백도 많다. 티백 사용이 내키지 않는다면 인퓨저(찻잎을 가두는 그물망 형태의 도구)가 내장된 티팟을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고객이 인퓨저를 꺼집어 내면 된다. 이 방법을 사용하는 호텔도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좋은 방법은 맛있게 우려서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이 옳은 방향이고 번잡한 모든 문제도 해결해 준다.

근래에는 맛있게 우린 홍차와 함께 멋진 애프터눈 티를 제공하는 홍차전문점이 많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호텔 애프터눈 티만이 가지는 매력은 여전하다. 런던에서도 가장 유명한 애프터눈 티는 대체로 호텔에서 제공한다.

그런 높은 기대감 때문인지 호텔 애프터눈 티를 경험한 홍차애호가들 대부분이 홍차 맛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매력적인 분위기뿐만 아니라 맛있게 우려진 홍차까지 더해진 멋진 ‘호텔 애프터눈 티’를 기대해 본다.

글쓴이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문기영은 1995년 동서식품에 입사, 16년 동안 녹차와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제품의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홍차의 매력에 빠져 홍차공부에 전념해 국내 최초, 최고의 홍차전문서로 평가받는 <홍차수업>을 썼다. <홍차수업>은 차의 본 고장 중국에 번역출판 되었다. 2014년부터 <문기영 홍차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홍차교육과 외부강의, 홍차관련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홍차수업2> <철학이 있는 홍차구매가이드>가 있고 번역서로는 <홍차애호가의 보물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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