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2세 여왕이 모델? 영 ‘왕실 홍차’ 마케팅

[문기영의 홍차 클래스] 영국 차회사들, 왕실 이벤트 연계 다양한 홍차 판매 2015년 즉위기록 깬 기념에 ‘강한맛’ 홍차 시판 윌리암 왕세자 결혼 맞춰 출시된 ‘웨딩 브렉퍼스트”

1953년 대관식 직후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 공이 버킹엄 궁에서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 사진= 구글
1953년 대관식 직후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 공이 버킹엄 궁에서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 사진= 구글

포트넘앤메이슨, 왕실 마케팅 열심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사망했다. 필자에게 영국이라는 나라를 강하게 인식시킨 첫 번째 책은 『영국을 생각한다』로, 국내 신문사 영국특파원이 썼다. 1980년에 출간되었으니 아마 고등학생 때 읽었던 것 같다. 잘 사는 선진국에 대한 동경을 어린 필자 마음속에 듬뿍 담았을 것이다. 그 때도 엘리자베스 여왕이었고 그 때 이미 30년 가까이 여왕이었다.

영국 차(茶) 회사들은 오래전부터 왕실을 홍차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왕실에 이벤트가 있으면 거의 빠지지 않고 관련된 홍차를 발매했다. 특히 영국 최고 차(茶)회사 중 하나인 포트넘앤메이슨은 왕실과 유독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지금도 왕실과 관련된 다양한 홍차들을 판매하고 있다.

포트넘을 대표하는 스테디셀러 홍차인 ‘로얄 블렌드(Royal Blend)’는 빅토리아 여왕을 이어 1901년에 즉위한 에드워드 7세 요청으로 1902년에 처음 발매되었다. 그래서인지 발매 당시 상품명은 ‘킹스 블렌드(King’s Blend)’였다. 1920년 이후 지금의 상품명이 되었다. 또 다른 스테디셀러인 ‘퀸 앤(Queen Anne)’은 1907년 포트넘 창립 200주년을 기념해 발매되었는데 ‘퀸 앤’이라는 상품명은 1707년 포트넘 설립당시의 왕이 앤 여왕이었다는 것과 관련 있다.

왼쪽부터 주빌리 블렌드, 플래티넘 주빌리, 퀀스 블렌드.
왼쪽부터 주빌리 블렌드, 플래티넘 주빌리, 퀀스 블렌드.

윌리엄 왕세자· 해리 왕자 결혼 기념 홍차들

‘웨딩 브렉퍼스트(Wedding Breakfast)’는 이제 왕세자와 왕세자비가 된 월리엄과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을 기념해서 2011년 발매되었다. 심지어 이들의 아들인 조지 왕자가 세례 받은 것을 기념해서 나온 홍차도 있는데 ‘크리스닝 블렌드(Christening Blend)’다. 최근에는 ‘빅토리아 그레이(Victoria Grey)’라는 상품명으로 가향차가 발매되었다. 이 역시 빅토리아 여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라고 틴에 적혀있다.

2018년에는 월리엄 왕세자 동생인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식을 기념해서 ‘웨딩 부케 블렌드(The Wedding Bouquet Blend)’가 발매되었다. 한정판(A Limited edition)이라 지금은 판매하지 않는다. 이 상품처럼 처음부터 한정판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고 발매 후 반응이 저조하거나 혹은 또 다른 이유들로 판매를 중단시키기도 한다. 이런 내용들로 유추하건데 그동안 왕실과 관련된 수많은 차들이 발매되고 또 사라졌을 것이다.

지난 70년간 왕위에 있었던 엘리자베스 여왕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차가 발매되고 사라져갔을 것이다. 내가 뚜렷이 기억하는 지난 10년 동안만 해도 포트넘은 여왕과 직접 연관된 3개 홍차를 발매했고 현재 2개가 판매되고 있다.

‘주빌리 블렌드(Jubilee Blend)’는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하여 2012년에 열린 다이아몬드 주빌리(Diamond Julilee)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서 발매되었다. 2012년의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는 아주 오랜만에 개최된 대규모 왕실 행사로 영국 전체가 큰 축제였다. 주빌리는 25주년, 50주년 같은 기념일을 뜻하는 단어다.

포트넘은 기념 홍차뿐만 아니라 본점 4층에 있는 애프터눈 티로 유명한 세인트 제임스 레스트런트를 새롭게 꾸며 오픈하면서 다이아몬드 주빌리 티 살롱(The Diamond Jubilee Tea Salon)이라고 명명했다. 그 오픈 행사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포트넘을 상징하는 민트색 원피스를 입고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올해는 즉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늄 주빌리 기념행사가 지난 6월에 진행되었다. 작년에 남편인 필립 공이 사망하고, 여왕의 건강도 좋지 않아 10년 전 행사보다는 화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차 회사들이 기념차를 발매했고 포트넘 역시 ‘플래티늄 주빌리(Platinum Jubilee)’라는 홍차를 선보였다.

지난 6월 플래티늄 주빌리 행사를 선언하는 여왕 모습. 사진= 구글
지난 6월 플래티늄 주빌리 행사를 선언하는 여왕 모습. 사진= 구글

한편 2015년에는 ‘퀸스 블렌드(Queen’s Blend)’가 발매되었는데, 그동안 영국역사에서 가장 오래 왕위에 있었던 왕은 빅토리아 여왕으로 64년간 재위했었다. 퀸스 블렌드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 기록을 깬 기념으로 발매된 것이다. 퀸스 블렌드는 케냐 홍차를 중심으로 블렌딩 되었는데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1952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공주시절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 조지 6세를 대신해서 영연방을 순방하고 있었다. 영연방 국가중 하나인 케냐에 머물 때 조지 6세가 사망했고, 왕위는 잠시라도 비울 수 없다는 전통에 따라 공주는 즉시 왕에 즉위했다. 엘리자베스 2세가 왕이 된 곳이 케냐라는 뜻이다. 물론 대관식은 1953년 런던에서 성대히 치러졌다. 이런 배경에서 케냐 홍차를 중심으로 르완다 홍차와 아삼 홍차가 블렌딩 되었는데 그래서 ‘퀸스 블렌드’는 상당히 강한 홍차였다. 그럼에도 조화가 아주 잘 되어 필자도 몹시 좋아했다. 아쉽게도 지금은 판매되지 않는다.

현재 서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중국 홍차는 기문홍차와 전홍이다. 전홍은 운남홍차라는 뜻이다. 기문홍차는 19세기 말부터 서양에 알려졌지만 전홍은 1939년경 운남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전홍이 유명하게 된 것은 엘리자베스 여왕 덕분이기도 하다. 1986년 6일간의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한 여왕은 운남성 성도인 쿤밍에도 들렀다. 쿤밍에서 차 애호가인 여왕에게 전홍을 선물했고,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전홍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한 사람의 죽음이 한 시대의 이정표가 되는 경우가 있다. 1952년부터 왕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는 지난 70년 동안 영국을 상징했다. 홍차애호가로서 “홍차의 나라 영국”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필자는 우리나라 홍차애호가들과 함께 홍차와 관련된 일화를 통해 여왕을 추모하고자 한다.

글쓴이

문기영 홍차아카데미 대표

문기영은 1995년 동서식품에 입사, 16년 동안 녹차와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제품의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홍차의 매력에 빠져 홍차공부에 전념해 국내 최초, 최고의 홍차전문서로 평가받는 <홍차수업>을 썼다. <홍차수업>은 차의 본 고장 중국에 번역출판 되었다. 2014년부터 <문기영 홍차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홍차교육과 외부강의, 홍차관련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홍차수업2> <철학이 있는 홍차구매가이드>가 있고 번역서로는 <홍차애호가의 보물상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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